바둑(圍碁. Go)의 시원(始原): 시대와 장소.
오직 한국에서만 위기(圍棋 囲棋, 行く, go, departure)를 바둑이라 한다.
중원 기록에는 요임금(堯造圍棋)이 창안 하여, 그의 아들 단주 (丹朱)가 즐겼다고 한다. 아니다. 글자와 어음에 그 사연이 있다.
바둑을 중원에서는 여러 글자로 기록 했었다. 박이(博弈) 란 어휘가 논어 양화(論語 陽貨)편과 맹자 이루하(離婁下)편에 하나의 소일 노름 (game) 으로 실렸다. 이를 공자는 [생각을 깊히 하고 지혜를 양성하는 행위]로, 맹자는 박이와 음주(博弈好飲酒)를 불효로 풀이했다. [1] 도가문시진경에는 [활쏘기, 현악기다루기, 바둑은 아무리 연습해도 똑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는 뜻에 “習射, 習琴, 習奕”란 문구가 있다. 박이(博弈)란 승패를 다투는 바둑을 뜻한 글자가 분명하다. [2]
한자문화권 세 나라 언어에 같은 상형자 “弈, 奕, 亦”를 어음이 다르게 읽는다. 한국에서는 “弈 바둑 혁, 奕 클 혁, 亦 또 역”이라읽고, 중국에서는 모두 “이 yi”로, 일본에서는 “애끼”라고 읽는다. 그러나 글자 풀이는 “또 역, 겨드랑이 역자” 밑에 “스물입발 廾을”또는 “큰 대大”를 붙여 위대 하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두 글자 모두 “겨드랑이 밑에 깊숙히 박아” 넣었다 하여 바둑을 뜻한 글자로도 풀이 했다.
우수 하다 또는 뛰어 났다는 뜻의 혁(奕 yi)자가 시경 한혁에 실렸다. 이를 한국에서는 “혁혁 양산 우순지”로 읽었다.
중국문헌을 중국식으로 읽으면, 사기 주 본기에 이세재덕 (奕世載德)이란 글자가 있고, 당시(全唐詩)에는 이세 기 병이 (奕世皆秉彝)란 시구가 있다. 이세(奕世)란 평화스러웠던 고조선 시대를 뜻했다.
상서에는 검 왈 백이(僉曰:伯夷)라고 모두들 소리쳤다. 즉 만장 일치로 지도자 (益,汝作朕虞)가 된 “백익을 백이”로 기록 했다.
바둑을 뜻한 위기 칭이(圍棋稱弈)의 어원은, 논어주소에 “이, 즉 이기씨가 권좌 에서 떠러졌다는 뜻(取落弈之義也)에서 취했다”고 했다.
이러한 문구와 글자를 보면, 바둑을 뜻한 글자는 치수 사업을 주관 했던 백익(伯益)이 살던 시대에 만들어 졌다. 하여 요조 위기(堯造圍棋)라 했다.
양산이 낙수(洛水) 와 황하 가까이 고조선 발생지, 즉 황하문명 발상지에 있다. 하여 하출도(河出圖),낙출서(洛出書)라는 문구가 전해 온다. 그 곳에 살던 이기씨 (伊耆氏; 伯益,河伯馮夷)가 권좌에서 밀려났다는 뜻의 낙(洛) 자를 낙(落)자로 바꾸었다. 취낙이지의야(取落弈之義也)란 문구는 수도를 함곡관 동쪽 낙양(落陽)으로 옮긴 동주(東周) 이후에 붙인 설명이다.
고조선의 시말,Shanxi山西省China
한혁에 혁혁(奕奕) 양산(梁山) 유우순지 (維禹甸之、有倬其道) 라, 즉 한후의 선조가 양산 일대를 경작 (甸) 하던 곳이라 했다. [3] 한후의 선조는 우의 아버지와 같이 산해경 초안을 만들어 치수사업을 관장하던 백익이다.
백익을 저 늙은이란 뜻에 이기씨(伊耆氏)라 했다. 실권을 한 늙은이가 작은 여울가에 살았다 하여 그 여울을 이수 (伊水) 또는 낙수(洛水)라 했다.[4]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사천성 (四川省, 즉 익주 益州)를 지나 운남성에 정착 했다. 그곳 노인들이 인도 동북부 히말리아 산속에 이르러 원시 불교가 나타났다. 삼국지 왜인전 (倭人傳)에 노자(老子)가 호를 가르쳤다(教胡)고 했다. [5] 진수가 외방인(外/倭)을 비하 하여 왜소 하다는 뜻글자로 바꾸었다. 원시 불교 전래에서 설명 했다.
금미달이 상곡군 – Search Images
불교나라 티베트 바둑은 한국 전통 순장바둑 같이 바둑 돌을 여럿 놓고 시작 한다.
백익(伯益, 馮翊)을 혁혁(奕奕) 이기씨(伊耆氏)라 했다. 한국어 응원가에 “싸워라 싸워라”, “이겨라 이기다, succeed”의 어원이라 본다.
넓을 박(博,bo)이라고 읽는 글자는 “박수, 박치기, 박사, (말뚝을)박다”는 등 “미지의 세계로 가는 앞장, front” 이란 뜻으로 맏 백(伯)자와 뜻이 같다.
미개척지 또는 적국의 영역을 점령 한 후에는 깃발을 꼿고 떠날 때는 표적을 남겼다. 이를 밭뚝 (boundary bank, Embankment)이라 한다. 그러한 전쟁 놀이가 서울 근교 뚝섬에서 있었다. 치우기를 사용 했다.
바둑의
넓을 박(博 바,bo)의 어음에는 “앞에서 휫불을 들고가는 사람” 백익 (伯益) 을 뜻하고, 둑은 뚝섬 (纛島)의 어원에서 나타난 이름이다. 치우천왕의 출사표를 뜻한 “둑 독, 둑 도, 기 독(纛) 어음 둑기(纛旗) 에서” 나왔다.
이 글자를 이아 역언 (爾雅 釋言)에서는 백익을 뜻한 글자 “둑은 이(翳yì 益)야 纛,翳也”라고 했다.
천독(東海之內,北海之隅,有國名曰朝鮮,天毒,其人水居,偎人愛人)이 다스리는 고을 (縣, 영역)을 뜻해 만든 깃발이 둑기(纛旗)란 글자다. 치우(蚩尤)천왕은 단군왕검 백익 이후에 나타난 구려(九黎)의 지도자다. 그가 싸운 탁록(戰涿鹿)이 금미달 영역이다.
한국 바둑 애호가들의 바둑 어원 설명에는 여러 설이 있다. [6]
한국 고유의 순장바둑의 [배석(排石)에서 비롯된 말이 바둑이라는 학설, 밭(田) + 돌(石)에서 ‘바독’ → ‘바돌’이 됐다.]는 학설이 있다.
찾고 찾고 또 차다 보니, 박(博 바,bo) 이기(伊耆)라는 어음의 장소를 밝힌 밭뚝이 바둑이란 이름의 어원이다. 단군왕검 백익의 뒤를 이은 [마지막 단군이 금미달을 떠나던 (go, departure) 전국시대에 순장 바둑이란 이름]이 나타났다. 고려 가요 가시리의 주인공인 가야국 가실왕이 살던 시대와 장소에서 나타났다. 즉 맹자가 살던 전국시대 금미달 (今彌達)이 중원세력에 위협을 받던 시절에 현제 쓰는 위기(圍棋 囲棋)란 상형글자를 바둑 놀이에 붙여 오늘까지 쓰고 있다.
떠날이(離)자는 갈 행(行) 갈 거(去 )자와 같은 뜻이다. 사마천의 조부가 금미달 (중산국) 에 있었다. 가야국 (금미달 고유국) 가실왕이 떠났던 행사를 사마천은 수유이예 (須臾離禮), 수유지악(須臾離樂)이란 문구를 남겼다.
그 시대에 원시불교가 백익의 후손(彌:益也)이 살던 금미달에 들어와 궁홀산(弓忽山) 요새에 살던 지도자를 미륵(彌勒) 또는 아왕(鵝 雁王)이라 했다. 그를 중원세력은 수유 (須臾)라 했다. 아왕(鵝王)이란 가아(鴚鵝 鴐鵝 가다, go, departure)왕을 간략한 글자다. 고유국이라고도 하던 가야국 가실왕을 가아왕 이라 했다. 그가 살던 궁홀산(弓忽山) 금미달 (今彌達)이 위기(圍棋, 囲棋)란 글자의 발원지이다. 전국시대 만든 이름을 소급하여 요조위기 (堯造圍棋)라 했다.
금미달을 떠나 해안으로 내려와 신라 시조 궁예(弓裔), 박 혁거세 거서간 (號居西干)하는 문구가 신라 본기 첫줄에 실렸다. 그일대에 신라 임나가라 (新羅任那加羅)와 백제 미추홀(彌鄒忽) 비미호(卑彌呼) 비미국(卑彌國)하는 이름들이 나타났다. 부여의 후손이 동남아 해안 4000 여리에 걸쳐 신미 제국 (新彌諸國) 20여 국을 이루고 살았다. 백제22담노가 나타났다.
황해를 건너 한반도에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 불승 도림(道琳)을 만나 바둑을 즐겼다 (百濟王近蓋婁好博●/博奕)는 기록이 있고, 신라 고분에서는 많은 량의 바둑돌이 발굴 되었다. 일본이 탄생하기 전이다. 삼국 사기에 실린 바둑 (博奕)은 삼한땅에 전해오던 전통 순장바둑을 뚯했다.
순장 바둑:공자가 살던 시대에 벌써 바둑 놀이가 있었다. 북쪽 고조선 땅 여덟 곳에 군웅이 있었다. 이들을 7 또는 9개의 돌로 표시 했다. 이들을 어떻게 포섭하여 자기편을 만들어 밭뚝을 만들었다. 관활 영역에 둑기 (纛旗)를 달았다. 바둑에서 따고 따기 번복 되는 분기점을 “패”라 한다. 춘추오패란 패(覇)자와 어음이 같다.
순장 바둑의 승패: 순장(殉葬)을 음이 같은 순장(巡將)이로 바꾼 한국 고유의 바둑이름이다. 잡은 포로를 그들의 고향에 돌려 보내 주군과 같이 묻힌 순장(殉葬)풍속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금미달을 진(秦) 나라 장군 백기 (白起; ? ~ 기원전 257년)가 점령 했다. 항복한 조나라 군사 40만 명을 생매장 시켰던 역사적 사실에서 유래 했다고 본다. [7]
쌍간하(桑干河)가 흐르는 금미달에서 나타난 부여(扶餘)와 가라(加羅)에 순장(殉葬) 풍속이 있었다. 삼가분진(三家分晋)이후 금미달 지역에 많은 군웅들이 나타났던 전국시대 말기의 역사가 순장바둑에 있다.
혁(奕)자는 이기씨를 뜻했다. 사장혁혁(四牡奕奕)이란 말 네마리가 끄는 수래가 경주를 하듯 빨리 뛰었다는 뜻이다. 백익을 “이기씨”란 어음이 오늘도 운동 경기에서 쓰고 있는 “이겨라 이겨라” 로 남아 있다. 경계선이 되는 밭(甸) 뚝에 확고한 표시로 돌을 밖아 놓는 승패를 다루는 놀이가 바둑이다. 밭뚝(boundary wall)이 바둑의 어원이라 추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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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論語 陽貨: 子曰:「飽食終日,無所用心,難矣哉!不有博弈者乎?為之猶賢乎已。」 博,《說文》作簙𢩁, 戲也, 六箸十二棊也。古者鳥曾作簙。圍棊謂之奕。《說文》弈從廾,言竦兩手而執之。棊者所執之子,以子圍而相殺, 故謂之圍棊。圍棊稱弈者,又取其落弈之義也孟子 離婁下:博弈好飲酒,不顧父母之養,二不孝也. 道家文始真經: 關尹子曰:「習射、習御、習琴、習奕、終無一事可以一息得者。惟道無形無方,故可得之于一息。」
[2].康熙字典: 棋者,所執之子,以子圍而相殺,故謂之圍棋。沈氏云:圍棋稱弈,取落弈之義也. 詩經 韓奕: 奕奕梁山、維禹甸之、 有倬其道。韓侯受命、 王親命之、纘戎祖考。四牡奕奕、孔脩且張。 韓侯入覲、 以其介圭、入覲于王。 《爾雅·釋訓》奕奕,憂也. 焦氏易林 豫之: 剝:野鳶山鵲,奕棊六博;三梟四散,主人勝客.
[3]. 康熙字典 : 䳗 䳘 鵝: 野曰雁,家曰鵝 《世本》伯益作井。《汲冡周書》黃帝作井. , 鵝:《說文》曰:鴚鵝也. 鴐鵝 環其城邑曰圍. e圍 囲 같은 뜻과 음이 같다.鴚鵝也。長脰善鳴,峩首似傲,故曰鵝。《爾雅·釋鳥》舒雁,鵝。
[4]. 論衡 正說: 禹之時,得《洛書》,《書》從洛水中出,《洪範》九章是也。水經注 伊水: 《竹書紀年》曰:洛伯用與河伯馮夷鬬,蓋洛水之神也。
[5]. 三國志 倭人傳:臨兒國,浮屠經云其國王生浮屠。浮屠。父曰屑頭邪,母云莫邪。此國在天笁城中。 天笁又有神人,名沙律。昔漢哀帝元壽元年,博士弟子景盧受大月氏王使伊存口受浮屠經曰復立者其人也。浮屠所載與中國老子經相出入,蓋以為老子西出關,過西域之天笁、教胡。昔漢哀帝元壽元年,博士弟子景盧受大月氏王使伊存口受浮屠經曰復立者其人也. 通典 天竺:後漢通焉,即前漢時身毒國. 大夏國人曰:「吾賈人往身毒國市之。」即天竺也。或云摩伽陀,或云婆羅門。在蔥嶺之南,去月氏東南數千里,地方三萬餘里。其中分為五天竺.
[6]. 바둑의 어원/ 왜 ‘바둑’이라고 불렀을까. 바둑의 어원
https://m.blog.naver.com/shinc0503/220654008044
[7]. 백기 (진나라)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易與天地準,故能彌綸天地之道。仰以觀於天文,俯以察於地理,是故知幽明之故。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精氣為物,遊魂為變,是故知鬼神之情狀。與天地相似,故不違。知周乎萬物,而道濟天下,故不過。旁行而不流,樂天知命,故不懮。安土敦乎仁,故能愛。範圍天地之化而不過,曲成萬物而不遺,通乎晝夜之道而知.
02/02/2025
바둑(圍碁. Go)의 시원(始原): 시대와 장소.
한반도에서만 위기(圍棋 囲棋, 行く, go, departure)를 바둑이라 한다.
중원 기록에는 요임금(堯造圍棋)이 창안 하여, 그의 아들 단주 (丹朱)가 즐겼다고 한다. 아니다. 글자와 언어에 그 사연이 있다.
바둑을 중원에서는 여러 글자로 기록 했었다. 맹자 이루하에 불효의 하나로 박혁 호 음주(博弈好飲酒) 이란 문구가 있다. 박혁은 내기바둑을 뜻했다.[1] 도가문시진경에는 [활쏘기, 현악기, 바둑은 아무리 연습해도 똑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에“習射, 習琴, 習奕”란 문구가 있다. [2] 혁(弈)자를 꼴이 비슷한 글자 이(奕 yi)자로 바꾸었다. 바꾼 글자가 시경 한혁에 있다. 박혁(博弈) 이란 내기 바둑을 뜻한 글자다.
Shanxi山西省China
한혁에 혁혁(奕奕) 양산(梁山) 유우순지 (維禹甸之、有倬其道) 라, 한후의 선조가 경작 (甸) 하던 곳이라 했다. 한후의 선조는 우(禹)의 아버지 기 (夔)과 같이 산해경 초안을 만들어 치수사업을 관장하던 백익이다. [3] 양산 가까운 곳에 이수(伊水) 또는 낙수(洛水)라는 작은 여울이 있다. 그곳에 살았다 하여 그를 이기씨 (伊耆氏)라 했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사천성 (四川省, 익주益州)를 지나 운남성에 정착 했다.던 마을 삼한의 선조들이 사는 영역이였다. 이곳 노인들이 인도 동북부 히말리아 산속에 이르러 원시 불교가 나타났다. 원시 불교 전래에서 설명 했다.
불교나라 티베트 바둑은 한국 전총 순장바둑 같이 바둑 돌을 여럿 놓고 시작 한다.
바둑의 어원 설명에는 여러 설이 있다.
한국 고유의 순장바둑의 [배석(排石)에서 비롯된 말이 바둑이라는 학설, 밭(田) + 돌(石)에서 ‘바독’ → ‘바돌’이 됐다.]는 학설이 있다.
바둑의 “바”는 “앞에서 휫불을 들고가는 사람”백익을 뜻하고, 둑은 뚝섬 (纛島)의 어원에서 나타난 이름이다. 치우천왕의 출사표를 뜻한 “둑 독, 둑 도, 기 독(纛) 어음 둑기(纛旗)> 에서 나왔다. 이 글자를 이아 역언 (爾雅 釋言)에서는 백익을 뜻한 글자 “둑은 이(翳yì 益)야 纛,翳也”라고 했다.
천독(東海之內,北海之隅,有國名曰朝鮮,天毒,其人水居,偎人愛人)이 다스리는 고을 (縣, 영역)을 뜻해 만든 깃발이 둑기(纛旗)란 글자다. 치우천왕은 단군왕검 백익 이후에 나타난 지도자다. 백익이 우물을 만들어 마을이 나타났다는 곳을 포위 했다는 뜻글자가 위기 (囲棋)다,
여러모로 살펴펴 보면, 바둑 이란 돌로 쌓은 [밭 뚝]이 바둑의 어원이다.
찾고 찾고 또 차다 보니, 바둑놀이는 단군왕검 백익의 뒤를 이은 [마지막 단군이 금미달을 떠나던 (go, departure)전국시대에 바둑이란 이름]이 나타났다. 고려 가요 가시리의 주인공인 가야국 가실왕이 살던 시대와 장소, 즉 맹자가 살던 전국시대 금미달 (今彌達)에서 나타났다.
금미달 (今彌達) 영역
떠날이(離)자는 갈 행(行) 갈 거(去 )자와 같은 뜻이다. 사마천의 조부가 금미달 (중산국) 에 있었다. 가야국 (금미달 고유국) 가실왕이 떠났던 행사를 사마천은 수유이예 (須臾離禮), 수유지악(須臾離樂)이란 문구를 남겼다.
그 시대에 천독국 도술인 시라 (道術人名尸羅) 가 금미달 연도(燕都)에 들어와 궁홀산 (弓忽山) 요새에 살던 지도자를 미륵(彌勒) 또는 아왕(鵝 雁王)을 수유라 했다. [4] 아왕(鵝王)이란 가아(鴚鵝 鴐鵝 가다, go departure)왕을 간략한 글자다.
고유국이라고도 하던 가야국 가실왕을 가아왕 이라 했다. 그가 살던 궁홀산(弓忽山) 금미달 (今彌達)이바둑(圍棋, go )의 발원지이다.
야생 기러기( wild geese) 와 같은 종류의 물 새를 거위 아(鵝: domestic goose)라 한다. 거위란 “갈 거去 높을 위魏”의 사음자다. 높을 “위魏 가” 살던 곳을 “음이 같은 에워쌀 위圍 囲 자”로 썼다. 그 곳을 고유라 했다. 북쪽 고유(高柳-檉)에 살던 신선(仙) 같은 사람(Buddhist nun)이란 뜻에 고니(高尼,Swan)한 새 이름이 나타났다.
금미달을 떠나 해안으로 내려와 신라 시조 궁예(弓裔), 박 혁거세 거서간 (號居西干)하는 문구가 신라 본기 첫줄에 실렸다. 그일대에 신라 임나가라 (新羅任那加羅)와 백제 미추홀(彌鄒忽) 비미호(卑彌呼) 비미국(卑彌國)하는 이름들이 나타났다.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 불승 도림(道琳)을 만나 바둑을 즐겼다 (百濟王近蓋婁好博●/博奕)는 기록이 있고, 신라 고분에서는 많은 량의 바둑돌이 발굴 되었다. 일본이 탄생하기 전이다. 삼한땅에 전해오던 전통바둑을 뚯했다.
순장 바둑: 옛부터 전해오던 한국 특유의 바둑이다. 여덟 곳에 군웅이 있었다. 이들을 어떻게 포섭하여 자기편을 만들어 관활 영역이 가장 넓은 패(覇)자가 되어 둑기(纛旗)를 달았다.
순장 바둑의 승패: 순장(殉葬)을 음이 같은 순장(巡將)이로 바꾼 한국 고유의 바둑 이름이다. 잡은 포로를 그들의 고향에 돌려 보내 영역이 줄어 든다. 주군과 같이 묻힌 순장(殉葬)풍속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금미달을 진(秦) 나라 장군 백기 (白起; ? ~ 기원전 257년)가 점령 했다. 항복한 조나라 군사 40만 명을 생매장 시켰던 역사적 사실에서 유래 했다고 본다. [5]
쌍간하(桑干河)가 흐르는 금미달에서 나타난 부여(扶餘)와 가라(加羅)에 순장(殉葬) 풍속이 있었다. 삼가분진(三家分晋)이후 금미달 지역에 많은 군웅들이 나타났다. 전국시대 말기에 순장바둑이란 이름이 나타났다.
끝
[1]. 康熙字典 : 䳗 䳘 鵝: 野曰雁,家曰鵝 《世本》伯益作井。《汲冡周書》黃帝作井. , 鵝:《說文》曰:鴚鵝也. 鴐鵝 環其城邑曰圍. e圍 囲 같은 뜻과 음이 같다.鴚鵝也。長脰善鳴,峩首似傲,故曰鵝。《爾雅·釋鳥》舒雁,鵝。
[2]. 孟子 離婁下:博弈好飲酒,不顧父母之養,二不孝也. 道家文始真經: 關尹子曰:「習射、習御、習琴、習奕、終無一事可以一息得者。惟道無形無方,故可得之于一息。」
[3]. 吳越春秋 越王無余外傳 : 與益、夔共謀,行到名山大澤,召其神而問之山川脈理、金玉所有、鳥獸昆蟲之類,及八方之民俗、殊國異域、土地里數:使益疏而記之,故名之曰「山海經」。
[4]. 太平廣記 天毒國道人: 燕昭王七年,沐骨之國來朝,則申毒國之一名也。有道術人名尸羅。問其年,云。百四十歲。荷錫持瓶,云。發其國五年,乃至燕都。喜衒惑之術。於其指端,出浮圖十層,高三尺,乃諸天神仙。
[5]. 백기 (진나라)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易與天地準,故能彌綸天地之道。仰以觀於天文,俯以察於地理,是故知幽明之故。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精氣為物,遊魂為變,是故知鬼神之情狀。與天地相似,故不違。知周乎萬物,而道濟天下,故不過。旁行而不流,樂天知命,故不懮。安土敦乎仁,故能愛。範圍天地之化而不過,曲成萬物而不遺,通乎晝夜之道而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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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ed 2023/01/20
바둑(圍碁. 行く. Go game)의 시원(始原): 시대와 장소.
오직 삼한땅 한반도에서만 위기(圍棋 囲棋, go departure)를 바둑이라 한다. 앞서 “바둑에 숨은 상고사”라 표제로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중원 기록에는요임금(堯造圍棋)이 창안 하여, 그의 아들 단주 (丹朱)가 즐겼다고 한다. 아니다. 글자와 어음에 그 사연이 있다.
바둑의 “바”는 백익을 뜻하고, 둑은 뚝섬 (纛島)의 어원에서 나타난 치우천왕의 출사표를 뜻한 “둑 독, 둑 도, 기 독(纛) 어음> 에서 나왔다. 이 글자를 이아 역언 (爾雅 釋言) 에서는 백익을 뜻한다 글자 “纛,翳也”라고 했다.천독(東海之內,北海之隅,有國名曰朝鮮、天毒,其人水居,偎人愛人)이 다스리는 고을 (縣, 영역)을 뜻해 만든 깃발 이름이 둑기(纛旗)란 글자다. 치우천왕은 단군왕검 백익 이후에 나타난 지도자다.
바둑놀이는 단군왕검 백익의 뒤를 이은 마지막 단군이 금미달을 떠나던 (go, departure)전국시대에 나타났다.
출판사에 넘긴 “고조선 壇君朝鮮始末考”제 5 장에 바둑을 왜 Go라고 부르는가 하는 질문에 답을 간략히 올렸다. 이를 좀더 설명합니다.
앞서 장구하게 미륵신앙 (彌勒信仰)의 유래를 정리하여 몇차례에 걸처 올렸다. 미륵의 미(彌) 자는 큰 활을 든 사람이란 상형자로 유목민이었던 동이의 지도자를 칭한 글자다. 단군왕검 백익을 뜻해 “彌:益也,長也,久也” 하는 풀이가 있다. 계사(繫辭) 에 미륜천지지도 (彌綸天地之道)란 문구가 있다. 홍범구주 이윤유서를 여러글자로 부꾸었듯이, 이윤 (彝倫)을 미륜(彌綸)으로 바꾸었다.[33] 륵 (勒:馬頭絡銜)자는 말굴래를 뜻한 글자로 통치, 또는 가죽 제품을 뜻한다. 왜왕 비미호, 미추홀, 우륵 (于勒), 미륵사(彌勒寺) 등등 한국상고사에 많이 나타나는 글자다
그 지역을 점령한 중원 세력은 두루미 미(彌)자를 기러기 안(鴈 鵝)로 바꾸어 천하의 요새를 안문관(雁門關)이라 하고, 불가에서는 그 곳에 살다 떠난 지도자를 미륵(彌勒) 또는 안(鴈 鵝)왕 이라 했다.
마지막 단군이 금미달을 떠나던 당시 상황을 맹자가 남겼다. 불가에서 아왕 (鵝王)이란 글자는 서안(舒鴈 鵝), 즉 기러기가 나라 가려고 (鴚) 날개를 활짝 편 상태를 뜻했다. [1] 대량으로 내려온 곳에서 맹자를 만나 답론 했다. 맹자는 사사건건 위혜왕 (鵝王; 魏 惠王, 기원전 400년 ~ 기원전 334년)을 힐책 했다. 육구몽(陸龜蒙, ? ~ 881년)은 “鴚鵝慘于冰”, 육립회소적 (陸立懷所適) 이라, 즉 (원대한 꿈을 실행 하려고) “날아 갔던 기러기가 뱅판에 내려 실패 했다. 등극했던 곳에서 적응 했어야 했다”고 읊었다.
가아참 우빙(鴚鵝慘于冰)이란 “거위는 얼음 위에서 위기에 처해 있다”는 뜻으로 풀이 한다. 가아란 어음을 다른 글자 “鴐鵝”로도 썼다. 그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기러기(雁)가 떠나 갔다]는 뜻의 어음을 가차 한 글자가
가아(鴚鵝 鴐鵝 가다, go departure)란 글자다. 야생은 기러기와 같은 종류의 물 새를 거위 아(鵝: domestic goose)라 한다. 거위란 “갈 거去 높을 위魏”의 사음자다. 높을 “위魏 가” 잡혔다 하여 “음이 같은 에워쌀 위圍 囲 자”로 썼다.
지도자 아왕(鵝王)이란 가아(鴚鵝 鴐鵝 가다, go departure)왕을 간략한 글자다. 고유국이라고도 하던 가야국 가실왕을 가아왕 이라 했다. 그가 살던 궁홀산(弓忽山) 금미달 (今彌達)이바둑(圍棋, go )의 발원지이다.
천자 “백익이 우물을 만들어 마을이 생겼다”는 곳을 포의 했다는 뜻이 우물 정자가 들어간 위기(囲棋)란 글자다. 그 곳이 금미달이다. 금미달을 떠나 해안으로 내려와 신라 시조 궁예(弓裔), 박 혁거세 거서간 하는 문구가 신라 본기 첫줄에 실렸다. 임나 가라 백제 비미호 모두 그일대에서 나타났다.
순장 바둑: 옛부터 전해오던 한국 특유의 바둑이다. 여덟 곳에 군웅이 있었다. 이들을 어떻게 포섭하여 자기편을 만들어 관활 영역이 가장 넓은 패(覇)자가 되어 둑기(纛旗)를 달았다.
영역 계산: 잡은 포로를 그들의 고향에 돌려 보내 영역이 줄어 든다. 주군과 같이 묻힌 순장(殉葬)풍속에서 유래된 이름이다.그곳에서 나타난 부여와 가라에 순장(殉葬)풍속이 있었다. 금미달 지역에 많은 군웅이 나타났던 발조선 (發朝鮮) 시대 말기의 역사가 바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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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康熙字典 : 䳗 䳘 鵝: 野曰雁,家曰鵝 《世本》伯益作井。《汲冡周書》黃帝作井. , 鵝:《說文》曰:鴚鵝也. 鴐鵝 環其城邑曰圍. e圍 囲 같은 뜻과 음이 같다.鴚鵝也。長脰善鳴,峩首似傲,故曰鵝。《爾雅·釋鳥》舒雁,鵝。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