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 (神市) 환국 (桓國)시대 (1)의 첫 장 서론.
첫 아사달, 신시 (神市)는 어디였나.
환웅천왕이 다스리던 한국 (桓國)시대의 첫 수도를 한자로 신시 (神市)라 했다. 그 사람들이 쓰던 말로는 그 곳이 첫 아사달이다. 이를 어디였나를 찾아 보았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사마천은 그 당시에 있었던 전설을 포함한 여러 사료를 정리하여 중화사상을 설립하여 많이 과장하여 사기에 실었다.
사마천은 뫼산 변의 곤륜(崑崙)은 서쪽에 있다는 높은 산을 뜻했고 뫼산 변이 없는 곤륜(昆侖)이란 글자는 제사장 (道人, high Priest)을 뜻했다고 본다. 무제본기에서는 천자(한 무제)가 명당에 들어가 야외에서 지네는 제사와 같은 형식의 예를 치루었다.그 통로를 곤륜도(昆侖道)라 했다. 신령의 세계로 가는 길이란 뜻인듯 하다. 같은 내용을 봉선서(封禪書)에도 남겼다. 사마상여는 곤륜(崑崙)산, 서왕모 (西王母), 삼족오 (三足烏)를 모두 현실이 아닌 신비의 세계로 다루었다 . 그러한 이름은 그 당시 전해 오던 전설에서 취했다고 본다.
사기 대완열전은 서쪽사람들의 의견이 많이 담겨 있는 여행기록이라 사물을 반대쪽에서 볼수 있는 중요한 사료다. 이때에 서역으로 부터 많은 것을 배워온듯 하다. 서왕모 (西王母)가 삼족오를 사신으로 보냈고, 곤륜(崑崙)산, 오손왕 곤모 (烏孫王昆莫),우본기 (禹本紀) 란 이름이 나온다. 그들의 북쪽에 엄채와 려헌(奄蔡, 黎軒)이 있다 . 같은 사건을 기록한 한서 서역전에는우본기 (禹本紀) 려헌(黎軒) 이란 이름이 없다. 려(黎)헌(軒)두 글자는 중화문명의 발생지를 기록한 사서에 흔이 나타나는 글자다. 그러나, (편집자의 실수로?)우가 서융이라는 숨은 뜻을 보였다 . 안식국 노인들이 전해 들었다는 지명 “조지 條支”는 사음자로 사기의 “條枝”와 같다. 곤륜(崑崙)이란 말은 신비의 영령으로 “태일 황제가 이미 하늘에 올라가 성스러운 곤륜산 위에서 영원히 즐기고 있다”고 다루었다. 곤륜은 초인간을 뜻했다.
장건(張騫)과 같이 서역에 출정 했던 사람은 흉노 추장(胡奴甘父)으로 당읍 (堂邑, 즉 산서성 옛 당도 (唐都)사람이였다. 그는 흉노인이여서 활을 잘쏘아 새나 짐승을 잘 잡았다 . 대완 사람들은 한나라 (중국)가 물자가 풍부하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고, 중국 서쪽 지역에는 신 (神)을 섬기는 사람들이 동쪽에 있다 하여 진단(震旦)이라 했다 . 곤륜산에 있다는 서왕모가 패르샤에서 만난 노인들의 예기로는 “더 서쪽으로 수천리 떠러진 “조기/적지란 곳에 약수와 서왕모(條枝有弱水、西王母)가 있다”는 예기를 하더라 했다 . 신서에 실린 굴려가 예기한 내용이나, 후한서에 실린 굴려란 사람의 용기를 고려 하면 조지(條枝)란 지명은 서역 탐험 이전에 이미 중국사람들에게 알려진 흉노 땅이였다. 상서에 적혀 있다. 조지와 약수 (弱水)는 대우가 치수사업을 하던 시절에 알려진 여울이다 . 서역 사람들이 서쪽이라 한 곳은 중국의 서쪽에 있던 지명을 그대로 인용했다. 중국을 주어로 서쪽이라 했던 내용을 바꾸어, 서역의 서쪽이라고 기록 했다.
당(唐)나라의 구양순(歐陽詢) 등이 편집한 예문류취(藝文類聚)와 강희 자전에는 곤륜산(崑崙山)에 관하여 자새하게 설명 했다.
곤륜이 살던 높은 산 페허에는 성이 다섯 누각이12개가 있었다. 그곳에서 (중화문명의 탯줄이라 생각했던)황하가 시작한다. 그곳은 오색구름으로 덮혀있다. 하늘 가운데로 올라가는 기둥이 서있다 . 구부러진 산구릉을 따라 양지 바른 곳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 산이다. 산 위에는 주수(朱樹, 珠樹, 玉樹)가 있다 . 주옥을 달아 새워 놓은 목각이란 뜻이다. 천황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맑은 물의 정령을 위한 궁궐이 있다. 구중궁궐이 있다. 서왕모가 사는 석실이 있다. 희귀한 맛좋은 과일이 있다. 그산에는 날아가는 말이라도 갈수가 없는 약수가 있다. 아어에 이르기를, 서북지역의 특산물은 곤륜이 사는 곳의 옥림낭간 (璆琳琅玕)이다 . 이는 옥 구슬을 많이 달은 곤륜이 쓰던 관을 뜻했다. 이러한 특산물은 옛적에 우공이 다스리던 곳에 있었고, 제 환공시절에도 있었다. 한서 서역전에 나오는 글자들 “蔡, 黎, 軒, 弱水”이 상서와 시경에 보인다.
곤륜이 사는 곳에는 하늘로 높히 올라가는 천주(天柱)라 하는 구리로 만든 기둥이 있고 그 밑에는 신선을 모셔 놓은 둘래가 백장이나 되는 건물이 있다 . 토탬Totem Pole을 새워 놓은 밑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단(天壇)과 같은 건물이 있다 . 곤륜이 사는 곳에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여러 구조물이 있다는 뜻이다.
예문류취(藝文類聚) 곤륜산조 끝에는, 산해경에도 주를 달아 해석 했다는 곽박(晉 郭璞276-324년)의 찬을 달았다. 그 내용을 풀이해 보면, 그곳은 “제일 완벽한 인격의 소유자 곤륜신선이 사는 곳이고 그 산 밑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제왕이 도읍을 잡은 곳이다. 이 구조물은 융족이 지었고, 하왕조의 중추라 한다. 하늘을 떠 바치는 기둥 이라 했다”는 뜻이다. 그 곳이 천손이 성역으로 취급하는 그들의 첫 선조 환웅 천왕(桓雄天王)이 자리잡았던 곳이란 뜻이다. 이를 하 왕조의 마지막 왕이름 (王名桀)을 빌려 그의 먼 선조가 살던 곳이라 했다 . 우왕이 서왕국 에서 공부 했다는 한시외전, 순자,신서등의 내용과 일치 한다 .
비슷한 내용이 송대에 편찬된 태평어람(太平御覽 昆侖山)에도 실려있다. 같은 내용의 글자를 뒤바꾸고 많이 각색 하였지만, 삼국유사 고조선 (古朝鮮)편의 내용이 전주하여 실려 있다. 환웅천왕을 천왕 (天王) 또는 천제군 (天帝君)이라 했다. 곤륜을 제일 높은 산, 그 위에는 금대옥관이 있다. 음양 (원기)의 기운이 합치는 곳, 천제가 여러 신하를 다스리던 곳이다 . 위서에 있다는 태백산 (太伯山) 을 곤능산 (昆陵山)이라 했다. 다른 중국 사료(朝鮮史畧)에서와 같이 ‘높은 산에 사람이 있었다는 뜻을 감추어’ 사람인 (人)변이 없는 글자 “태백 (太伯, 太白) (伶倫) 倫을 윤(崙)”으로 바꾸었다 .
전국시대에 편찬 되였다는 죽은 사람이라는 뜻의 시자( 尸子)에는 “그 곳에 약초가 난다. 그를 먹으면 취한다. 삼백년을 자고나야 깨어난다”고 했다 . 전욱 고양씨 (顓頊高陽氏)가 전욱력(顓頊曆)을 만들었다는 통설이 있고, 시자에서는 상서에 나오는 화희 (羲 和,곤륜계곡, 태백산 해지 에서 온)가 달력을 만들었다니, 그들이 모두 우왕의 선조로 같은 혈통이라는 뜻이다 .
여씨춘추에 황제가 음률을 만들도록 명했다는영윤(伶倫)이란 자는 곤륜 (昆侖)을 뜻한다. 그가 곤륜산 북쪽 해곡(嶰谷, 谿谷)에서 대나무로 퉁소를 만들었다. 이에 관한 여러 사료를 종합해 보면 곤륜이란 명사가 “어느 특수한 사람, 그의 후예, 그러한 사람들이 살던 지역, 산의 이름등”, 여러가지 뜻으로 나타난다.
그 지역이 해지연안 북쪽 (崑崙之北, 崑崙北, 崑崙之丘, 崑崙之陰)을 다시 원유지음 (阮隃之陰)이라 부꾸었다. 이는 웃사람(지도자)이 살던 마을이란 뜻이 있는 원(阮) 자와 넘을 유(隃)자로 바꾸었다 . 완유 (阮隃)가 곤륜이라 했다; “ 阮隃rŭan yú:昆仑别名”. 글자 풀이와 시경등 다른 사료를 참작해 보면 완유 (阮隃)는 해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곳에 살던 사람이 곤윤(昆侖)이였다. 곤륜 (崑崙)이라는 글자를 풀어 보면 곤(昆; 日,比。Sun, sunray)자에는 해, 햇빛이란 뜻이 있다. 윤(侖:思也. 仑;logical reasons, logical order)자에는 “깊이 생각한다”는 뜻이 있다. 곤윤(昆侖)이란 하느님의 인정을 받은 최고인격의 소유자 즉 환운천왕, 그의 후손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단군이란 뜻이다. 여기에 뫼산 (山)자는 뒤에 붙여 서쪽에서 제일 높은 산에 환운천왕이 자리 잡았다는 전설을 그렇게 숨겼다고 본다. 한국 옛말에는 곤(昆)자를 “두드러지게 높다, 돗 보인다”는 뜻으로 써왔다 .
현제 쓰는 곤륜산맥이란 이름은 한문제가 붙인 이름이다. 장건의 서역 탐험으로 서역에서 옥석을 가져왔고 황하의 기원을 찾았다고 확신 했다. 이리하여 산서성 분수계곡 에 있던 곤륜이란 말이 중죽 서쪽에 나타났다. 장건(張騫)의 탐험담을 듣고 같은 사료를 근거로 사마천은 옛 전설을 믿을수 없다고 했다. 두사람 모두 맥족이 믿고 있던 우본기(禹本紀)의 내용과 “태백산,Tengri Mountain 아래에 환운천왕이 신시”를 새웠다는 전설을 믿을수 없다고 인식 했다 .
시경 대아에는 원국 (阮國)을 침범하고 하내공성 ( 河內共城)으로 향했다는 시귀가 있다 . 곤륜 (昆侖)은 산서성 서쪽 분수(汾水)분지에 있었다. 그 곳 가까이에 서왕모도 있었고 구주(九疇) 언저리에 우왕의 아버지 곤이 귀양 살이를 했다는 숭산 (崇山, 恒山, 常山)이 있다 . 이곳을 상구 (商丘)라 하던 우공(禹貢) 치수 밖이다 . 그 후손이 한반도를 지나 뱃길로 제주도는 물론 하고, 일본열도, 유구에는 돌궐인과 같은 사람이 살았고 곤륜인(昆侖人)과 말이 통하더라는 근거가 수양제에 관한 기록에 실려 있다 .
결론:
이를 종합해 보면 서왕모 (西王母)와 곤륜(崑崙)은 가차전주한 글자가 확실 하다. 곤륜은 환웅천왕을 뜻했다. 곤륜인은 곤륜의 후예들,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러 단군을 말했다. 서왕모 (西王母)는 앞에서 목천자전(穆天子傳)의 기록을 인용하여 밝힌 바와 같이 서쪽 맥(貃, 牟, 謨, 毋)족의 왕(西王毋)이란 뜻이다.
곤륜(昆侖)이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 하앟케 눈이 덥힌 제일 높은 산(太伯山, 崑崙) 에 내려왔다. 그가 환웅천왕이다. 그가 아버지 하느님께 비는 제단을 쌓아 놓은 곳을 신시(神市)라 했다. 이 곳이 첫 아사달 (阿斯達)이다. 그는 때 (채색)가 묻지 않은 깨끗한 (힌,희, 백, 흑,휘 라고 발음 하는 색) 옷을 입고 시비선악을 판단하는
능력이 있는 신수(豸, Unicorn, 해태 獬豸)를 앞새우고 다녔다는 맥(貃, 貊)족의 지도자다 . 그가 쓰던 관 (冠)을 각종 옥“璆琳琅玕”으로 아름답게 장식 했다. 이 구슬은 하늘에서부터 인수 받았다는 상징으로 쓰여저 내려왔다. 단군조선의 대표 (解)와 북당의 대표가 비슷한 선물을 들고 왔다 . 북당이 살던 곳에 의무려산(醫巫閭/廬山)이 있었다. 의무 (醫巫/無)는 남여구별 없이 무당(medicine man and shaman)을 뜻했다. 의무가 거처하는 건물이 신성한 곳으로 길흉 건강을 기도 하던 막사(廬)였다. 전한기 효문황제기에 그 설립 취지와 의무의 역활을 설명 했다 . 한 무제는 처남 대장군 위청(衛青; ?-106기원전 )과 그의 부인을 그들의 고향 노산(廬山)에 합장하고, 묘옆에 노상(廝像) 즉 하인상을 새웠다. 그 곳이 하동 평양현 이다. 주례 하관사마에 나오는 의무려 醫巫閭(廬)를 설치해 놓았던 곳이다 .
그 풍속에서 구슬이 많이 달린 면류관으로 진전 되였다. 하늘로 부터 이어 받았다는 상징으로 ‘머리 또는 머리에 쓰는 관, 머리를 뜻하는 부위’에는 느려지는 장식을 이어 받은 풍속은 계속되여 성황당 또는 장승에 매어 달아 놓았다. 천벌을 받았다는 뜻에서 화살 또는 창 끝에는 선명한 색을 한 천을 달았다. 적의 시신에는 그러한 창을 꽂아 놓았다. 그들이 하늘의 명을 받고 내려와 지도자가 쓰던 관 (冠)을 각종 옥“璆琳琅玕”으로 아름답게 장식 했다. 홍산 문화권의 특색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태백산은 천산북로를 따라 중국 서쪽 알타이 산맥에 있는 천산(天山, Tengri Mountain)이다. 그로부터 환웅천왕의 후손들이 동서남북으로 갈라졌다고 본다. 동쪽으로 옮겨 온 부족이 오늘의 우름치 유역에 자리 잡아 그 곳에 천산 천지(天山 天池)하는 이름을 남겼다. 씰크로드를 따라 돈황에다 자리를 잡고 오래 살았다. 중국사료에는그 곳에서 관중분지에 이르는 기록이 나온다.
돈황에서 황하 북쪽 구비 (오르도스루프 Ordos Loop)를 따라 동쪽으로 펼처진 방대한 초원에는 소금의 공급처인 염호(Salt Lake)가 여기 저기 몇곳에 있다.
이러한 염호가 대흥안령 서쪽 시린골 초원 (Xilin Gol Grassland 锡林郭勒草原)을 바탕으로 관중 분지와는 다른 독특한 문화를 이룰수 있는 요소였다고 본다. 이 일대에서 홍산문화가 발생 하였고, 여기서 대흥안령을 너머 만주 평원에 이르러 찾은 소금의 공급처는 발해만이다. 이 두 문화권은 같은 유목 생활을 하던 부족이 이룩 하였으나, 중원의 영향권 밖이라 선진시대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본다. 내몽고와 만주에서 나타나는 유적은 돈황일대에서 번창 했던 문화와 같이 관중분지에서 나타난 황하문명 못지 않게 오래 되였다고 본다.
산서성에 해지연안에서 단군조선을 선포한 아사달이 평양성 이라 본다 . 그후에 옮겼다는 궁/방홀산(弓/方忽山)과 금미달 (今彌達)은 평양에 도읍을 정하기 전인 신시시대의 아사달로 다시 옮겨 갔을 가능 성이 있다. 그러나 단군이 장당경에서 돌아와 후에 아사달에 은거하여 산신이 되였다는 두 곳은 단군조선 건국이후의 수도가 분명하다. 그 아사달이 만주 서남쪽에 있는 의무려산일대 였다고 본다. 일연스님이 산서성에 있던 평양성 아사달을 백악산 아사달(白岳山 阿斯達)이라 인식하고 이를 오늘의 묘향산이라 풀이 했다. 단군조선이 그 멀리 중국 땅에서 탄생 했다는 사실은 그 당시 한반도 사람들의 상상 밖이였었다고 본다. 절대 다수의 한국사람들은 한만국경에 있는 제일 높 백두산이 한 민족의 성산이라 믿고 있다 . 이러한 전설과 그에 따른 풍속을 오늘 까지도 토속 신앙에 남아 이어져오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아주 옛적에 이러한 예맥족의 전설을 인식 하였지만, 자기들과는 다른 종족의 조상이라 숨기려고 이리저리 말을 바꾸어 서왕모, 곤륜 하는 낱말을 남겼다고 본다.
한국민족이 삼한의 후예로 이러한 전설의 종주권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그 상징이 태극기와 토속 신안에 뚜렸하게 나타나 있다. 후세들에게도 계속 이 유산을 이어가도록 가르처야 한다.
끝
September 9th, 2016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