利簋-2: 제터 단자를 박달나무 단자로:
선공(旜公)이라고 풀이한 글자는 https://ctext.org/zh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금석문 이나 갑골문에 없었다. 이 글자 “旜”를 강희자전 에는 주예(周禮)에 있다 하나 보이지 않고, 그 문구를 “通帛為旃”라 했다[1]. 깃발 전(旃)자를 “旜”자로 바꾸어 사용 했다. 그 글자에는 큰 붉은 빛(大赤)이란 뜻, 즉 떠오르는 아침 해를 그린 단(旦)자가 있다. 붉은 색을 서주를 상징 하는 색으로 사용했다. 중국사람들이 경사스러운 행사에 붉은 색을 즐기는 시원이 되었다고 본다.
목야전 당시에는 “旜”이란 상형 글자 가 없었다는 증거다. 이괘에 나타난 금석문자는 어느 누가 보아도 제터 단(壇) 자로 풀이 하리라 본다. 옛 사전 역명(釋名)에는 제터 단(壇)자를 박달나무 단(檀)자로 바꾸어 설명 했다: 박달 나무는 토담 벽이다(檀,垣也)유목민의 지도자 (햇 님의 사자)가 사용하던 평편한 토담 (摩之使垣然平) 이라고 설명 했다.
설문해자에서는 수래에 쓰인 나무(檀車)로 풀이 했다. 목야전을 읊은 시문(詩經 大雅 大明)에 단거(檀車)가 나온다. 지도자 단공 (壇公)이 쌍두 마차를 달리는 표현을 단거로 기록 했다. 또한 원주민을 처단 하는 장면을 읊은 벌단(伐檀)이 있다[2]. 그러나 시경 학명편 (詩經 小雅鶴鳴) 과 정풍 장중자 (鄭風 將仲子)에는 제터 단자를 박달나무 단자로 바꾸어 기록했다[3]. 시경에는 제사를 올리던 곳, 즉 제터 단(壇)자가 없을 수가 없다.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후한 광무제 때에 어용학자들이 옛경전에서 백여만언 (百餘萬言)을 바꾸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시절에 시경에 있던 제터 단자를 모두 박달나무 단자로 바꾸었다는 추리가 합당 하다.
무왕이 만들어준 기념품은 단군왕검(壇君王儉)의 먼 후손, 단공 (壇公)에게 주었다. 그가 햇님의 후손을 사음하여 만든 글자 필/비공(畢bì毕公)으로 시경의 사간(斯干) 이다.
끝, 다음에 계속
February 17, 2019
[1].旜:《唐韻》《集韻》《正韻》𠀤諸延切,音饘。《說文》旃,或从亶。《周禮·春官·司常》通帛爲旜。《註》通帛,謂大赤,從周正色。《又》孤卿建旜。《註》孤卿不畫,言奉王之政敎而已
[2].詩經 大雅 大明:牧野洋洋、檀車煌煌、駟騵彭彭. 詩經 小雅 鹿鳴之什 杕杜:陟彼北山、言采其杞。
王事靡盬、憂我父母。檀車幝幝、四牡痯痯、征夫不遠
[3]. 詩經 鄭風 將仲子: 將仲子兮、無踰我里、無折我樹杞. 將仲子兮、無踰我墻、無折我樹桑. 將仲子兮、無踰我園、無折我樹檀.
詩經 小雅 鶴鳴: 樂彼之園、爰有樹檀、其下維蘀. 樂彼之園、爰有樹檀、其下維穀.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