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시말 소고(始末少考):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가야를 아래와 같은 한자로 기록 했다:伽倻國: 伽倻, 加耶, 伽耶, 駕洛, 加洛, 加羅, 伽羅, 迦羅, 임나(任那), 가량(加良), 구야(狗耶)가 있다.
그 곳 사람들이 부르던 이름을 이다.
옛 창해군(滄海郡)이 가야의 탄생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모두 김수로왕(首露王)이 신라 초기에 나타났다. 가락국(伽落國,伽耶)은 고조선의 유민들이 남만주 해안선에 흐터저 이를 삼한이라고 부르던 동서 양한 교차기에 나타 났다 . 광개토대왕비문에 색인된 임나가라(任那加羅)가 발해만 서남쪽 해안선에 있었다고 풀이 했다 . 역사의 흐름을 감안하면; 다. 그를 뒷바침 할수 있는 사료가 삼국지 오환전과 관구검전에 실려 있다 . 이두편을 결부해 보면, 237년에는 관구검이 총사령관으로 공손연을 치려다 여의치 않아 돌아 왔다. 다음 해인 238년에 사마선왕(司馬宣王)이 자기 인솔하의 군사와 관구검 휘하의 대군을 인솔하고 새로운 작전을 구상하여 성공 했다. 이 작전에 고구려도 출병 했다. 고조선의 후손 들이 모두 사기꾼 공손연 토벌작전에 참여 했다. 공손연이 멸망한 후에 고구려는 옛적 잃었던 요동만 서쪽 땅을 찾으려고 중원 세력과 부디 쳤다. 중원 세력은 천진 방면에서 산해관을 지나는 길목, 발해만 서안, 즉 청구 (靑丘)를 설득 해야 길이 뚤린다.
그 곳에 있던 지도자가 주었다. 이 곳에 있던 지도자는 우부평 오환 선우 구루돈 (右北平烏丸單于寇婁敦) 의 동생 아라반(弟阿羅槃)이였다. 진서(晉書)에는 선비추장 아라다(鮮卑阿羅多)
란 이름이 있다. 이들은 언어 풍속이 마한 사람들과 같고 전투하는 방법도 마한과 비슷하다. 통전거사(通典 車師)편에 아라다 (阿羅多)에 관한 설명이 있다. 아라반(阿羅槃) 아라다(阿羅多) 아라나 (阿羅那)란 이름이 있다 . 후한 환제영흥초 (桓帝永興初 ;153-4년경에 둔전 고성 (屯田且固城)을 곡격하다 실패하여 북쪽 흉노 땅으로 도망갔다. 후한서에는 이 사건이 153년(永興元年)에 발생 했다고 실려있다 .
오환전(烏丸傳)에는 위약의 내용을 인용하여 는 기록이 있다 . 중국사료를 살펴 보면; 으로 풀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가야란 이름은 삼한의 후예들 중에서 불교문화권 이름이 가장 풍부하다고 본다.
금관가야(金官伽倻)가 대화국(大和國)을 발전: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가500년경에 수도를 남만주에서 한반도 동남 쪽 경주로 옮긴 이후, 법흥왕(法興王, 재위: 514년 ~ 540년) 19년(533년)에 신라에 복속 되였다. 금관 가야가 신라에 흡수되기 50년 전에는 왜( 열도 부여)와 같이 남제(南齊)에 사신을 보냈다. 그렇게 막강하던 가야가 싸우지도 않고 신라에 흡수되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의문이 생긴다. 당시 열도부여가 번창 하던 때라 경상 남도 김해(金海)에 있었던 금관 가야의 일부는 신라에 복속 되기를 거부하고 열도백제 (부여)로 건너 가서 나머지 잔여 세력이 신라에 흡수 되였다고 본다 . 송사 왜국편은 열도부여를 뜻한다. 왜왕은 마땅히 백제왕을 의미 한다 .
통전에 이르기를 라 했다 .
삼국지에 실린 내용을 종합해 보면, 대륙 백제가 붕괴 되자 열도 백제가 힘을 얻어 479년(建元元年)에는 열도부여가 고구려을 제외한 6국을 맏아 보는 큰 벼슬 “倭王武號為鎮東大將軍”을 달라고 요구했다. 같은 행사에 가라국왕하지가 참석하여 보국장군 가라국왕의 칭호를 받았다 . 신라는(수도가 아직 한반도로 옮기기 전이라) 사신을 보내지 못했었다. 중원이 다시 하나로 뭉치게 된 수나라((隋, 581년-619년 ) 때에 왜에서 일본(日本)이란 새로운 나라가 나타났다. 통전에는 같은 시대에 한반도 남쪽 이나타 났다 . 그들의 고 했다. 이들이 가야연맹과 관련이 있던 곳이라 한반도 남쪽에 있던 작은 섬나라들은 모두 가야에 관한 토의 대상이 된다. 수서에는 백제 성왕 (聖王,재위: 523년 ~ 554년)의 맏아들, 27대 위덕왕(威德王 扶餘昌, 재위: 554년~598년)이 제주도 (牟羅國)에 표류한 수나라 전함을 돌려 보냈다. 그가 598년(開皇十八年) 그장사왕(其長史王) 을 보네 (수나라가 고구려) 요동을 침략하려는 계획에 길을 안네 하겠다고 설득 (辯那)하였다. 그러나 607년 (大業三年) 수나라 조정에서는 백제가 (잃었던 중원 땅을 되 찾으려는) 두 마음을 먹은 듯하여 거절 했다 . 수나라 때에는 분명 중국 동남쪽 해안에서 유구열도에 이르는 항로를 찾았다. 신구당서와 통전에 나타난 동남아 여러 나라 이름에서도 가야를 찾아 백제 멸망 이후 10여년에 걸처 나타나는 섬나라 이름도 연구 대상이 된다. 금관 가야가 신라에 항복한게 아니라 절대다수가 바다 건너 <구주의 작은 유명해(有明海Ariake Sea)북쪽 이도국(伊都國)에 진을 치고 있던 열도부여에 가담하여 대왜감(大倭監)의 직책을 맏아 보면서 대화국 (大和國)을 건설했다고 본다.
삼국지에 남만주 일대를 다룬 편명에 어느형태의 가야를 뜻하는 이름이 실려 있어야 한다.변진전에 비사국(不斯國)을 비슷한 글자 죽사국(竹斯國 ) 동쪽이 모두 열도부여(倭)에 속한다고 했다. 진왕국(秦王國)은 진왕국(辰王國)이라 본다.
삼국사기에는 신라본기와 열전에도 아라(阿羅)란 이름이 나온다 .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에서 아라(阿羅)를 가야(伽耶)와 같은 이름으로 경상도 해안 일대에 있던 나라로 풀이 했다 . 어느 불교 서적에서 찾은 사료를 인용한듯 하다. 가야(伽耶)란 이름은 일본에서도 똑 같이 발음 한다.
한전에는 구야(拘邪)를 진지겸 (秦支廉)의 호라고 했다. 원술전에는 구(拘邪)를 억류하고 돌려 보내지 않았다 . 아라반(阿羅槃)의 반(槃)자는 변한 (弁/卞韓) 이라고 발음되는 다른 글자로 썼다. 이 곳에 변산 (卞/弁/山)이 있었다. 이 곳이 천진 일대다. 변산 지역이 지금은 반산 (槃山) 공원이 되였다.
진수의 삼국지에는 아라반(阿羅槃) 아라다(阿羅多) 아라나(阿羅那)란 이름이 있다.
발해만 서안을 다루었다고 보는 변진전에는 변진국야국(弁辰狗邪國)이 있고, 왜인전에는 구야한국(狗邪韓國)이라 이름한 곳이 대동강 하류에 있었다. 이 글자를 바꾸어 구야한국 (拘耶韓國)이 한반도 끝에 있는 풀이를 했다. 다음 단계로는 진서에 나오는 휴인 (休忍; [xiūrěn] 쇼랜; rest and endure)은 훈역한 이름으로 하북성 동북일대에 신라 백제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본다 . 이러한 이름들이 를 살펴 보아야 한다.
Ps: 한자문화권의 독자를 상대로 “가야 시말 소고(始末少考)”라 올렸습니다. 여러분들의 아낌없는 비판을 바랍니다.
July 4, 2017.
모솔, 이 돈성 드림.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