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나라(周族)의 시조는 산해경과 시경에도 나오는 후직 (后穫, 后稷)이라 한다. 시경에 나오는 공유 (公劉)는 후직의 증손 이고, 함곡관 동쪽 상나라 땅에서 들어온 고공단부(古公亶父, 古公亶甫, 周公亶父)가 후직의 후손이라 한다. 죽서기년에는 상나라의 28대 군주 무을(武乙;?- 1112 BC)이 즉위하여 은에 살았다. 분이 기주로 옮겼다. 제위 3년에 은에서 하북으로 옮기고, 기읍을 주공단부에게 하사(賜) 했다. 21년에 주공단부 (周公亶父)가 죽었다. 한시외전에는 대왕단부(大王亶甫)라 했다.
단부 (亶父)란 사람은 직책과 이름 자가 일정치 않고, 처음부터 함곡관 서쪽에 있던 사람이다. 부(甫, 父)자는 <성인의 경칭으로 영어 미스터(Mr.)와 같은 뜻. 한국 현대어로 ㅁㅁ 이 >로 사용 되였다 . 두루 주자와 옛 고자는 형용사다. 상나라는 황하문명의 발생지 전역을 다루던 지도자 (公) 단(亶)에 밀려 (쫓겨) 함곡관 동쪽 으로 나왔다. 공단(公亶)은 해지연안에 남아 있던 단군조선 후예의 지도자 였다. 그를서주의 조상이라 했다.
공유 (公劉)란 공(公)을 죽이고 이긴 사람 (劉)이란 뜻이 있다. 백익을 죽인 제개(帝啟)의 후손이라 본다. 홍수 피해를 받던 지역에 살았다. 공손씨(公孫氏)란 살인자 공유 (公劉)의 후손 이란 뜻이다. 하여 공손씨를 황제의 후손이라 한다 . 사마천이 만들은 황제란 직책에는 백익의 업적을 많이 실려었다.
맹자는 시가 사라진 후에 춘추를 작성 했다(詩亡然後春秋作)고 했다 . 시경이 중국역사의 첫 기록이란 뜻이다. 공자가 그 당시 전해 오던 가요3000여편을 시문 10 중에 하나 씩 골라 305편으로 했다. 위로는 상나라 시조 설과 주나라 시조 후직으로 (上采契后稷)부터 주나라의 전성기를 다루었고 서주를 망친 유왕과 려왕의 실책 에서 띁냈다. 하여 상나라 이전의 민요는 시경에 남기지 않아 단군조선 건국 당시에 불리었던 민요는 담기지 않았다 . 서주 시대의 역사가 주류를 이룬다. 특히 시경 문왕지습( 詩經 大雅 文王之什)는 서주의 건국을 읊은 시문이다 . 시경에는 단부 공손 (亶父. 公孫)하는 글자가 보이고, 공유 ( 詩經 大雅 生民之什 公劉)란 편명이 있다. 모시정의에는 공유(公劉)를 자세히 설명했다. 시설에는공유(公劉)를 소공의 작품이라 했다.공유 (公劉)와 단부(公亶) 란 글자는 “산해경,여씨춘추 등 전통적 유교 서적 이외의 고전(外書)” 에는 보이지 않는다.
유가경전의 대명사인 예기(禮記) 에는 시문을 65수나 인용(詩云) 했지만, 순자 (荀子) 에서와 같이 인용 되었던 많은 시귀가 현존하는 시경에는 보이지 않는다. 현존하는 시경의 시문은 후한 시대에 많이 수정 되었다.
문왕지습에는 서주 창립에 관한 두편의 시문에 실린 내용들이 앞뒤가 틀린다:
주공의 작품이라는 면(文王之什‧緜)에는 고공단부가 집이 없서 굴속에서 살았다 (古公亶父,陶復陶宂,未有家室)고 했다. 같은 시대 사람 소공의 작품이라는 공유 (公劉)에는 고공단부의 선조가 같은 장소에 큰 관저 (篤公劉、于豳斯館)를 지고 어려움을 무릅쓰고 위수를 건너 다녔다(涉渭為亂)고 했다. 이렇게 서주의 창립과 선조에 관한 내용이 사서와 시경, 시경을 다룬 모시정의에 모두 다르게 기록었다.
사기 주본기에는 서주의 먼 선조 후직의 어머니가 유태씨로 제곡 고신씨의 원 부인이라 했다 . 단군조선의 발생지에 처음으로 나타난 고구려와 부여의 선조는 전욱고양씨다. 서주의 혈통과는 기원이 다르다 . 후직의 어머니의 본향인 태(邰)자는 시경 생민에 보인다. 삼국지 백제 본기에 <진서(晋書)의 내용을 인용하여 고구려 역시 고신씨의 후예>라 했다. 그러나 진서에는 고신씨(高辛氏)가 고구려 백제 부여의 선조란 기록이 없다. 고신씨(高辛氏)는 상나라와 서주의 시조로 실렸다. 삼국시기 백제 본기에 <(高句麗亦以高辛氏之後)란 문구는 전욱 고양씨(顓頊高陽氏)의 오기>가 분명 하다 .
사기에는 제사를 잘 거행한 군주로서 묘사되고 있다. 숙진이란 글자에 그러한 뜻이 있다. 서백 창의 부친으로 알려진 계력(季歷)후한서 서강전(西羌傳)에 실렸다. 그가 상나라 말기에 함곡관 서쪽에 살던 융적(戎狄)을 제압 했다 .
위키패디아에 단부 부터 서주의 첫 왕 이 된 희발(姬發)까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 했다:
“계력(季歷, ? ~ ?)은 고공단보의 셋째 아들이고, 서주 문왕의 아버지이다. 주 문왕(周 文王)은 중국 상나라 말기 주(周) 씨족의 수령이고, 이름은 창(昌)이다. 둘째 아들인 서주 무왕이 주나라를 세운 후 문왕으로 추존했다.”
예기 단궁편에 문왕이 큰 아들 백읍고(伯邑考)를 제치고 두쩨 아들에게 자리를 네 주어 무왕이 되었다 . 유향의 열여전에는 무왕의 어머니가 우의 후손인 유신사씨 (禹後有莘姒氏之女)집안 여자로 현명한 여자 여서 무왕은 외치, 태사(太姒)는 내치를 했다. 배로 다리를 만들었다. 첫 부인으로 아들 열을 두었다. 첫쩨가 백읍고 (長伯邑)다 . 한서의 저자 반고가 편집 했다는 백호 통덕론 (白虎通德論) 에서 무왕 아들 열의 이름을 밝히고, 첫 아들 백읍고(伯邑考)를 해지연안에 살던 숙신씨 (肅愼氏)와 음이 같은 숙진(伯邑叔震也)이라 했다 .
서주를 천명을 받아 설립된 왕정제라고 주장하는 유가의 설명이 부당 하다. 밖에서 들어온 세력을 단군조선의 발생지에 남아 있던 토착 세력에 접 붙여 그들의 주장을 합리 미화 시켰다. 단군조선의 역사가 담긴 시경을 수정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앞뒤가 틀린 증언이 계속 나왔다. 지금도 니오고 있다.
August 15th, 2018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