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제천 의식에 나타난 수신(隧神·禭神)의 뜻:
진수의 삼국지에 고조선 후예들의 제천(祭天)의식이 나타난다. 고조선영역의 서부지역이였던 곳에 살던 사람들을 오환 선비전에 “及祝天地山川之神. 敬鬼神,祠天地日月星辰山川,及先大人有健名者”실었다. 부여 고구려 예 한전(夫餘,高句麗,濊,韓傳) 에는 모두 제천(祭天)이라고 밝힌 의식(儀式)이 있었다. 이들의 제천(祭天)의식을 지역에 따라 몇몇 특징적인 행사를 기록 했다. 그 하나가 시월에 열렸던 고구려의 제천 의식 동맹(東盟)이다. 그 행사에 수자가 들어간 “隧神,名隧穴, 木隧” 이란 글자가 나타난다. 후한서와 통전에는 같은 행사를 설명하면서 글자를 바꾸어 “수신이라 부른다 號禭神”라고 했다. 한국 사학계에서는 고구려 제천절 행사에 모셨던 신을 아직 정확하게 설명을 못하고 있다.
1.수신이라고 읽는 뜻이 다른 두 글자(隧·禭) 풀이:
수신이라고 읽는 뜻이 다른 두 글자(隧·禭)가 사음자인가 아니면 훈역한 글자인가를 밝혀야 한다. 중국고전에는 한국사람들이 옛적에 쓰던 어음이 많이 남아 있다. 별(star)을 음이 같은 이별(離別)의 뜻이 있는 글자 나눌 별“別”로도 기록 했다.
수신(隧神·禭神.神隧)이라고 기록한 글자를 풀어 보면 로 기록 했다. 보일 시(示)로 읽는 글자는 “지신 기, 땅 귀신 기, 둘 치”라고 풀이 한 바와 같이 두손 모아 하늘에 떠 있는 별, 즉 삼신(三辰,日月星)께 기도를 드리는 상형글자다 . 유교사상에서 하늘에 기도하는 행위는 은밀한 곳에서 했다. 하여 다음 사전에는이라고 풀이 했다.
수(隧)자는 3개의 다른 글자(隧,𡑞,璲)가 있다 . 그 하나는 임금왕 변(璲)에 또 하나는 흑토 변(𡑞:同隧)에 따를 수를 붙인 글자다 “埏隧墓道也,俗作𡑞:同隧”. 지하 통로(tunnel, underground passage), 무덤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했다. 임금왕 변에 수(璲)자는 허리에 달은 보석(瑞)이란 뜻으로 시경에 나온다 . 다음사전에는 서옥(瑞玉;pendant girdle ornament) 을 상서로운 구슬이라 했다.
한전에는 를 뜻한 글자다 . 태평어람(太平御覽)과 명나라 때 자전 정자통(正字通)에는 어순을 아꾸어 신수(神隧)라 했다 . 중국의 남북이 어법이 달랐고, 같은 글자를 다른 뜻으로 사용 했다.
통전에는 수신(禭神)이라 했다. 통전 시사수(通典 始死禭)편은 쉽게 풀이하면 장의사(葬儀社,mortician)에 관한 편명이다. 그편에 “禭”자에 관해 자세한 뜻을 인식 할수 있다 . 예기 특히 단궁편(禮記 檀弓下)에는 마땅히 “禭”자가 있서야 한다. 위나라 대사 유장 (衛大史柳莊)이 죽었다. 위공이 관복을 바꾸어 입지 않고 조문을 가서 자기 옷을 벗어 수의로 했다 (不釋服而往,遂以襚之). 소의편(少儀)에 한번 나오는 보일 시변에 수(禭)자는 <시신을 염 할때 쓰는 옷의변에 수자를 붙인 수의(襚衣)를 뜻했다 . 예기에 나오는 “襚賵”는 공총자(孔叢子)에 설명이 있다. 예기(禮記) 다른 곳에는 “禭,襚”로 기록 했다. 시신에 입힌 옷은 수의 (襚衣)가 옳은 글자다. 이를 한국에서는 목슴 수자 수의(壽衣)로 바꾸어 쓰고 있다.
언덕 부(阜)자는 높은 곳이라 했다 . 우왕이 치수사업을 하던 시절에 때때로 물에 잠기기도 했던 언덕 마을을 뜻한 글자다. 시경 산해경등 선진문헌에 자주 나오는 글자다. 부여와 고구려의 선조들이 살던 마을을 뜻한 글자다.
한전(漢典; Han dictionary)에는 “隧”자와 같은 뜻글자(同義異體字)가 5개 있다고 한다. 그 하나가 불화 변에 따를 수자를 붙인 부싯돌 수(燧)자와 같은 뜻이다 . 다른 동의이체자(同義異體字)는 copy가 안된다. 진수(陳壽 233-297년)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황보밀(皇甫謐; 215~282년)의 제왕세기(帝王世紀)에는 상서대전(尚書大傳)의 내용을 인용하여 태호복희씨(太昊庖犧氏,伏羲氏)의 선임자가 되는 수인씨(燧人氏)를 설명 했다 :
부싯돌 수(燧)자는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는 뜻이라 하여 그를 수인씨(遂天之意,故為燧人)라 했다. 그가 불을 처음으로 사용하여 음식을 익혀 먹었다 . 수인씨가 쇠하여 복희씨가 나타났다. 상서대전(尚書大傳)에는 요 임금 집권 16년에 당후가 천자가 되었다. 수가 그의 호(唐侯升為天子,遂以為號)라고 했다. 수인(燧人)은 등불(torch)을 든 사람(伯)으로 지상에 나타난 최초의 지도자, 즉 단군왕검 백익(伯益)이전에 나타난 최초의 지도자를 뜻한 글자다.
강희자전에는 라고 읽는 글자가 고 하나 그러한 글자는 copy가 안되고 한글 옥편에는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중에 하나는 “XX:《玉篇》古文隧字”다. 그 글자를 자획보(字彙補)에는 북쪽 사람들이 주문에 쓰던 말소리(韻)자(韻籀文陸字)다. 옛적에는 xx자는 隧와 같고 xx자는 隘와 같다 . 좁을 액(隘)이라고 읽는 글자는 백익(伯益)이 살던 마을, 즉 주역에 돼지의 함정(周易彖傳 坎)이라고한 왕험성(王儉城,王險城)을 뜻한 글자다 .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살던 마을을 수(隧)라 했다. 단군왕검 백익(伯益)이전에 나타난 최초의 지도자를 뜻한 수인(燧人)의 후손들이 사는 마을이란 뜻이다.
진수는 고구려에서 시월 개천절 행사에 모시던 신의 실체를 숨기려고 “xx자, xx 자”와 뜻이 같다는 수(隧)라로 기록 했다. 후세 사람들이 “xx자, xx 자”와 뜻이 가깝고 이해 하기 쉬운 글자“禭”로 기록 했다.
글자 풀이를 종합해 보면 고구려에서 섬기던 신을 “suì zhuì /수주; suì/수”라고 발음 했다. 이러한 고구려 어음을 진수는 사용 했다 .
고구려 제천(祭天)의식 동맹(東盟)에 나오는 수신(隧神)이란 글자는 을 뜻했다.
산해경에는 숙신씨 마을에 옷을 입혀 놓은 웅상(雄常)이라고 하는 나무(服常樹)를 사랑간(伺琅玕樹,totem pole)이라고 했다 . 예문류취(藝文類聚)에는 사랑간에 각종 보석을 매 달았다(璆琳琅玕為實)고 했다 . 진수는 사랑간(伺琅玕)의 사(伺;[sì/시,[cì/쓰)자를 고구려 사람들이 수(隧 suì/스왜이/수이)라고 발음 하는 줄로 인식하여 사랑간수(伺琅玕樹,totem pole)를 목수(木隧)라고 기록 했다. 수신이라고 읽는 뜻이 다른 두 글자(隧·禭)는 고구려어 사랑간의 첫 음을 사음한 글자다. 아직도 시골에 가보면, 사랑간(totem pole)이 세워진 마을 어귀 언덕을 서낭재라 하고, 그 곳에 당집을 지어 서낭당 또는 성황당이라 했다.
시월 상달 초사흘에 열렸던 제천의식을 동맹(大會,名曰「東盟」)이라 했다. 수도 동쪽, 민중왕(閔中王, 재위: 44년~ 48년)이 찾은 석굴, 즉 본계 수동(本溪水洞)언덕 민중원(閔中原)에 사랑간수(伺琅玕樹,totem pole)를 모셔 놓고 그 앞에서 실행 했다. 진수가 살 당시에는 잃었던 옛 땅을 되 찾자고 다물(多勿) 정신을 맹세하는 궐기대회였다 .
천신이 보낸 사신이 내려와 즐거운 새상을 맞았다는 뜻이다. 신라의 도솔가(兜率歌)에 나오는 미륵(彌勒)이 사랑간수(伺琅玕樹,totem pole) 수신이다.
끝.
May 10, 2019
2.진수가 남긴 요수(遼隧)란 곳는 어디인가?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