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소곡(會蘇曲):
한국 전통 악기로는 가야금과 거문고 (瑟)를 친다. 해금 (奚琴) 이라는 현악기가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전사사(前四史)에는 삼국지 변진전 (弁辰傳) 에 축과 비슷한 현악기(有瑟,其形似筑)가 있었다고 했다. 옛 고조선 땅에 살던 사람들이 쓰던 가장 오래된 악기다 .
필자는 “古朝鮮 찾기”에서 “글자를 사용하기 전부터 노래와 춤이 있었다. 먼 훗날에 그 를 모아 글로 남긴 유산이 시경(詩經)이다”는 전제로 시경에서 우리민족 의 상고사를 살펴 보았다. 하여 단군왕검이 수도로 정한 평양이 산서성 해지 동북쪽에 있는 운성시 일대라고 추론 했다.
사마천은 옥중에서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여러 선현들이 극한 사정에서 글을 써서 남겨 놓았다고 하면서, 자기는 사기를 평생 사업이로 집필 한다는 의지를 굳혔다. 그러면서 모시 (國風) 300여편은 “성현인이 그 곳에서 분(憤)이 솟구쳐 이를 못참아 노래를 읊었다”고 했다 . 그러한 표현이 상서와 예기에도 실려 있다 . 국풍(國風) 에는 서주의 수도 동북 쪽에 있었다는 제후국 진(晉)과 연(燕)의 국풍이 없고, 위풍(魏風) 당풍(唐風)이란 이름이 있다. 삼국유사에 실린 향가(鄕歌)가 신라의 국풍(國風)이라고 했다 . 모시정의(毛詩正義)에 실린 국풍에 관한 설명을 종합해 보면, 현제 사용되는 시경이 완성된 이후에 고조선 영역에 제후국 진(晉)과 연(燕) 을 만들어 넣었다는 추측이 나올수 밖에 없다.
사기에 실린 서악(書 樂書)의 내용을 보면, 옛부터 노래 (詩)를 읊으면서 음의 장단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 원시 춤이다. 우(禹)왕의 아버지(夔;조심할 기; kuí/ kwai4/ ghyui)가 제일 오랫적 시를 읊었다 . 그 노래가 지도자를 “우(웃사람)라 부르던 산융”의 노래다. 다리 하나 달린 괴물(외발 도깨비)이란 뜻은 초원에 살던 사람들이 탶땐스(tap-dance)를 하던 모습이다 . 축융의 후손들이 글자도 만들고 시를 읊으며 춤추고 노래도 했었다.
삼국사기 잡지(三國史記 雜志第一)에 제사와 악(祭祀、樂)에 관한 설명이 있다. 신라 3대 임금 유리이사금 (儒理尼師今. ?-57년) 9년 조에, 8월 15일 추석 명절을 즐기던 기록에서 전통 춤 (무, 舞)에 관한 면모를 살펴볼수 있다. 이를 가배(嘉俳)라 했다. 이때는 신라( 新羅)가 남만주 요동만 북쪽 연안에서 옛 조선유민들이 모여 살던 6부에서 탄생 했던 시절이다. 가배가 한국전통 명절의 태두가 되는 한가위의 기원 이다. 광대 배/어정 거릴 배(俳; 左:亻,右:非.)자가 무(舞;羽,下:亡)자와 같이 “소가 우는 소리, 馬/牟/無;móu mù mào”라고 기록 되기도한 해(非, 빛)를 숭상하던 부족 우왕의 후손 (羽)이 본거지에서 쫒겨나 분(憤)이 솟구쳐 탶 땐스(tap-dance)를 하던 모습을 뜻한다. 노래와 춤은 (歌舞)은 신께 바치는 제사의 필수 행사였다. 하여 주인공은 제사를 바쳤다. 승무의 기원이다. 그때 쓰던 현악기를 월남에서는 단쟁(檀筝, 壇箏)이라고 이름했다. 제시 지낼 때 쓰던 악이란 뜻이다. 이 현악기를 고조선 사람(東胡)들이 쓰던 현악기라 하여 호금(胡琴)이라 하고 만주 지역에서는 해금 (奚琴)이라 부른다 . 신라에서는 한가위 때 경기에 진편 사람들이 서서 춤을 추며 “회소 회소 하며 호소(起舞嘆曰)하던 노래 내용이 너므나 슬프고 아름다워 후세 사람들이 이를 회소곡(會蘇曲) 이라 했다 . 회(會;huì kuài guì) 는 를 뜻하던 그 당시 쓰던 말(言語)의 사음자다 . 되살아날 소(蘇)자는 부활을 뜻한다. 회소곡이란 “유능한 지도자가 다시 나타나 기를 기원 하는 뜻이 담긴 하는 가무곡” 이었다. 회소곡은 일제 강점기에 흔히 인용하던 “임이여 어서 속히 돌아오서소” 하는 뜻이다. 그 모습이 모추광배 모모(暮秋枉裴xx)하는 당시 (唐詩)에 그려저 있다 .
기마유목민족 (騎馬遊牧民國家, The Eurasian Steppe)이 였던 우리 민족의 조상이 뙤놈(胡)으로 비하 되였고, 그들이 비탄의 시구를 읊으며 현악기 (깽깽이)를 사용하며 춤을 추는 모습이 “거지 깽깽이, 절룸바리 곱사 춤”으로 전해 왔다. 그들이 이조 시대에는 천민으로 멸시 되여 “소백정 고리백정”하는 직업으로 생활을 유지해 살아 왔다. 미국 서북부 원주민 이 초원에서 추던 춤과 중앙 아시아 초원에서 보이는 기마민족의 춤은 그 기원이 하우씨 부족”으로 기원을 같이 한다 .
태평어람을 비롯한 각종 사서에 사리악(四夷樂) 특히 동이지악(東夷之樂)을 살펴보면 그 내력이 뚜렸하다.
이러한 시달림이 시경에 실려 있고, 노래(樂)와 춤(舞)에도 나타났다.
서주 수도 를 중심으로 옛적에 무왕을 도와 주었던 원주민 (戎狄, 貊, 牧)을 동서남북(東西南北) 방위에 다라 그 방향에 사는 사람들이란 뜻의 이(夷)자를 써서 동이 (東夷) 북이(北夷) 서이(西夷)라 했다. 태평어람에서는 그때까지 전해오던 사료를 종합하여 사리(四夷)의 음악을 한마디로 표현 했다 . 서주 목왕 때에 편찬된 사료가 그 출처다.
동쪽으로 밀려간 사람들의 음악은 매 (昧)라 즉 “어두울 매. 어둡다. 찢다. 무릅쓰다”하는 감정 표현이고 창을 들고 복수 하겠다는 뜻이 들어 있다. 북쪽은 금(禁)일 즉 “견딜 금, 금하다, 삼가다”라 했다. 서쪽은 떠날 리(離)자로, 서글품을 달랬고, 남쪽은 맏길 임(任)자로 표기 했다. 남쪽사람들은 완전 순종 동화 되였단는 뜻이다. 이러한 표현은 옛 부터 중히 여기던 해지(解池)를 중심으로 그리 멀리 떠러지지 않은 곳에 살던 사람들을 예기 했다. 이렇게 해지에서 밀려 났던 원주민들, 특히 개적 (蓋狄)으로 기록에 나오는 북이 (北夷, 고조선 주민, 동호)가 서주를 계속 공격하여 서주는 멸망했다. 그 여세로 후에도 계속하여 동주 왕실을 괴롭혔다. 한후를 만났던 윤길보의 후손을 원망했다 . 또 하나는 북이와 동이의 음악을 비숫하게 때로는 뒤 바꾸어 기술 했다. 동쪽으로 온 사람들이 분수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 갔다가 동 쪽으로 왔다는 증거라 본다. 한서의 주 저자인 반고(班固)는 백호통의(白虎通義)에서 예악을 설명 했다 . 같은 내용이 동한 허진(許慎)의 오경통의(五經通義), 당대의 예문류취(藝文類聚)와 통전(通典)에서 같은 내용을 설명했다 . 그리고 북송시대의 태평어람 (太平御覽 四夷樂) 그때 까지 문헌에 나타난 사리악(四夷樂)을 종합하여 설명 했다 .
무용(舞踊)이란 무(舞: 〔古文〕(上:羽,下:亡)자에는 “ 망한 또는 도망친 지도자(웃 사람, 羽, 하우씨 후손들)란 뜻”이 잠겨있다 . 우왕의 후손인 우리 민족의 조상이 박자에 마추어 펄적펄적 뛴다는 뜻이다.
May 19, 2017
끝, 다음에 계속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