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강지치(成康之治)
성강지치 (成康之治)란 문구는 유교 문화권에서 태평성세라고 평하는 시기의 대명사다. 이 문구는 진수의 삼국지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 남쪽 사람들이 만든 사자성어(四字成語)다. 같은 문구를 당나라 때 위징(魏徴)이 당태종의 명을 받아 편풀한 군소치요(群書治要 吳志下)에 인용 했다. 성강지치란 문구의 이념에 합당한 치세라 하여 당태종의 집권 시기를 정관지치(貞觀之治)라 했다.
이 문구에는 <무력을 쓰니 보다 권모술수로 다스림이 상책이다>는 뜻이 숨어 있다.
좋게 말하면, 무력 보다는 협상과 타협, 즉 외교정책을 잘한 시기란 뜻이다.
유가에서 통치자의 좌우명으로 다루는 성강지치란 문구는 유교의 비조 <공자가 가장 이상적인 정치가 이루어 진 사회를 요순시대>로 정의한 개념과는 다르다.
공자가 그렇게도 강조 했던 충서(忠恕)란 글자를 악용하여 나타난 삼강오륜의 이념이 한무제 때 부터 시작 되었다. 이렇게 변질된 공자의 가르침을 필자는 신흥유교 (Neo-Confucianism)라 이름 했다 .
요순시대에는 “강력한 독제자가 없던 시절 (無君長)이라한 제사장이 지도자가 통치 하던 사회”였다. 그후에 사람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한 독제자가 나타나 그 직권을 자식에게 넘겨준 세습제가 나타난 짧은 시기를 성강지치(成康之治)라 했다. 서주의 역사를 살펴 보면,선왕 직전을 공화기라 한다. 공백화 (共伯和)란 사람이 정치를 했다는 뜻이다 . 그 전에 나타난 목천자 또한 주 무왕의 혈통이 아니라고 본다. 이렇게 서주 초기에 같은 혈통이 아닌 사람들이 통치한 사실을 혼미하게 주조 삼가(周朝三恪)이란 묘한 이름을 붙였다. 가(恪)자는 마음이 다른 세 사람이 관을 썼다 (愙,㤩)는 뜻글자다. 시경 상송 나 (商頌 那)에 집사유가 (執事有恪)란 문구와 같은 뜻이다 .
신원이 불확실한 제계(帝啟)를 우왕의 아들(子啟)이라 하듯 이를 모두 같은 혈통의 권력 세습이라고 유가에서 주장 한다.
이러한 세습제가 남쪽에 내려 갔던 위만이 되돌아 와 고조선 땅에서도 나타났다 . 이를 진수는 만주 사람들의 예기를 듣고 한전에 “위만이 되돌아 와 왕이 되고 (復來王之), 한무제가 친입한 후에 점차로 고조선의 통치 체제가 남쪽 한나라의 정치 체제를 따라 읍 군을 통치 하는 관리가 나타났다”고 했다 . 그러한 통치 체제가 중국 서쪽 유목민이 살던 지역 (大宛) 에서도 나타났다 .
서양 문화권에서도 왕정이 실시 되었지만 제사장(壇君)의 직위는 유지 보강 되여 제정분리 체제로 발전 되여 오늘에 이른다. 그렇게 된 사연을 서양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다루었다. 동양에서는 이 문제를 아직 깊히 다루지 못했다.
필자는 단군조선의 역사는 시경과 산서성 역사를 다룬 사기 진세가(晉世家)에 숨어 있다고 밝혔다. 진(晉)자 에는 조선이란 글자와 같은 뜻이 있고, 진세가에는 한글 어순이 남아 있고, 기자(箕子)가 한 말이 또한 한글 어순이라고 밝혔다. 선조의 업적을 기린 송(頌)은 상주노 (商周魯) 세 왕조에 한 했다. 정치 집권자가 제사장을 밑으로 밀어버린 첫 징조가 시경 주송 (詩經 周頌) 여러 편에 보인다 . 모두들 주송(周頌)은 주왕실이 성공하여 태평 성세를 읊은 시문이라 한다. 모시서에도 그렇게 밝혔다 . 주송 집경(周頌 執競)에 불현성강 (不顯成康) 자피성강(自彼成康)란 시귀가 대표적 이다.
한학을 오래 하신분들에게 부탁 입니다. 이 시문을 중국사람들이 어떻게 풀이 했나를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불현(不顯)과 자피(自彼)란 글자 풀이>를 보면 아전인수 격으로 풀이 했습니다. 모시정의와 시경을 유심히 살펴 보시고 시경의 글자 풀이 (훈고학)를 새로운 시각에서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순자에는 “문왕은 넷을 죽이고, 무왕은 둘, 주공이 죽이는 일을 끝내서 (文王誅四,武王誅二,周公卒業) 성왕 강왕 때는 사람을 죽이는 일이 없었다”는 문구가 있다 . 문왕, 무왕 그리고 당숙 우를 죽인 주공은 모두 살인자였다. 하여 순자의 합당한 학설을 성악설로 평하고 서주의 창업을 미화 했다.
다음에는 고공단부(古公亶甫)를 선조로 하는 주족 (周族)이 고조선 땅에 들어와 원주민을 속이고 얼마나 나뿐 짓을 했나를 밝혀 본다.
August 10th, 2018.
무왕이 만들어 준 이괘를 받은 사람이 단군(壇君)이였다는 또하나의 학증.
태평어람에는 亶을但라 했다. 그가 이괘를 받은 총 지도자(作元后)로 만백성의 부모(元后作民父母)라 했다.
<太平御覽 治道部一君:《尚書•泰誓》曰:嗟我友邦冢君,越我御事庶士,明聽誓:惟天地萬物父母,惟人萬物之靈。亶聰明,作元后,元后作民父母.
尚書 周書 泰誓上: 惟十有三年春,大會于孟津。王曰:
惟天地萬物父母,惟人萬物之靈。但聰明,作元后,元后作民父母
洪范을 洪範라 했다: 《洪范》曰:惟辟作福,惟辟作威,惟辟玉食.
산서성 역사에는 범선자(范宣子) 범문자(范文子)등 범 씨가 지도자가 많았다. 진나라가 조선을 침범하여 범씨의 난을 처리했다“晉伐鮮虞,治范氏之亂也”.
산서성의 范氏는 홍범의 범자에서 따왔다고 본다. 성원에는 두백(杜伯)이 범씨의 시조라 한다. 주선왕이 두백을 죽여 그 아들이 선왕을 죽이고 산서성 멀리 도망 갔다. 세자 원쑤 놈이 도망 나가 사라저 버렸다(世子仇出奔)
August 9th, 2018.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