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환공의 고조선 친입.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선왕 중흥이란 20여년 간이 지난 후에는 옛 고조선 땅에 살던 려민 (黎民,九黎,句麗)들이 강성 하여 서주는 동쪽으로 쫓겨 와 춘추 전국시대로 너머가게 되였고, 다시 이들이 제후국 진(晉) 땅을 한조위(韓、趙、魏) 세 가문이 나누어 삼가분진 (三家分晉) 현상이 나타나 전국시대 (戰國時代)로 이어졌다 .
당시의 상황이 사기흉노열전 2에 잘 나와 있다. 산융의 습격을 받자 동주 양왕이 처음 동주 창립을 도와준 정으로 도망을 갔다. 후에 (정이 섭섭히 대하여) 정을 칠 욕심으로 융적 여자를 왕후로 받아드려 융적과 같이 정을 첬다. 융후가 자대(子帶) 와 협작하여 서문을 열어 주어 융적이 동주 왕궁을 점령하고 자대를 천자로 새웠다. 이르 자대의 난이라 한다. 그동안 주나라 양왕은 도성 밖에서 4년이나 살았다. 당시 흉노는 동주 수도를 지나 동쪽 위나라에 까지 퍼저 중원은 패허가 되였다. 기원전635년에 진 문공(晉文公)과 진 목공(秦穆公)이 힘을 합하여 동주왕 자대를 살해 했다. 이로 인하여 진문공( 晉文公)이 두번째로 춘추오패가 되였다 .
춘추시대 (春秋時代)에서 전국시대(戰國時代) 중옆 까지는 만주 서남쪽에 수도를 두고 있던 고조선이 중원의 북부 화북평원을 비롯하여 산동성에서 발해만 연안으로 이어지는 교류 통로를 따라 통상을 하면서 고조선 문명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를 관자는 발조선(發朝鮮) 또는 북주 (北州)이라 했고, 서양 학자들은 동호(東胡)가 활동이 왕성 하였던 시기라 한다. 동호를 춘추좌전과 환단고기에서는 산융 (山戎)이라 했다. 산융을 고리 (高夷) 라 했고 동호 또는 호(胡)라고 기록 했다. 주로 동쪽에 살던 산융을 동호라 했다. 하여 이들을 조선호(朝鮮胡)또는 고구려호(故句驪胡)라 했다 . 제 환공 초기까지만 해도 산융이 황하 이북 중원을 석권하였다. 사기등 중국의 여러 사서에서는 연(燕)이 산융의 친입을 받아 제 환공의 도움으로 산융을 몰아 내고 고죽국을 정벌했다 . 당시 제(齊)나라에는 외교 수완에 뛰어난 해우유비(海于/於有蔽)는 사람이 있었다. 제상 관중은 해우유비(海于有蔽)를 사신으로 여러 나라에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제 환공에게 권유했다. 해우유비(海于有蔽)의 도움인가, 제 환공은 여러 제후의 허락을 받아 고조선 친입을 위한 군수 물자를 확보하여 기원전664년에는 실천에 옮겼다. 춘추좌전을 보면, 옛적에는 연(燕)이라 하던 이름이 노양공 (魯襄公; 기원전575-542년)시대 부터는 북연(北燕)이라고 나온다. 주 왕실과 함께 협곡관을 나온 연(燕)이 동북쪽으로 옮겨 갔다는 증거다 . 그 당시 전쟁이 발생 했던 장소를 보아도 거의 전부가 황하 이북은 조용했었고 주로 황하 이남 지역에서 싸움이 많았다.
제(齊)의 북쪽에 있던 연(燕)이 늘 산융의 친입을 받아 동쪽에 있던 노나라와 모의 했다 . 제후국 연은 산융이란 뜻 또는 산융 땅에 자리잡고 살았다는 뜻이다. 연(燕)이란 지역을, 또는 그 일부을 자부선인(紫府仙人, 柴夫)이 다스렸다 . 관자에 나오는 발조선과 제(齊)와의 물물 교류를 보면 제 환공이 관자의 계획에 따라 여러 제후들과 공모하여 연나라에 들어온 산융을 치고 더 올라가서 발조선의 본거지 까지 치려는 계획을 새웠다 . 관자에 그 상황이 잘 설명되여 있다 .
“북주후(北州侯) 즉 발조선 (發朝鮮)의 지도자는 위로는 천자의 명을 듣지 않고, 아래로는 제후 들에게 무례하다. 북주후를 주살해야 한다고 청하니, 제후들이 허락하여 북쪽 영지를 벌하고,부지산 아래서 고국군을 살해 하고, 산융을 만났다. 관중에게 묻기를 어떻게 할것인가? 관중이 답하기를 군(君)께서는 제후들을 교육 시키시고…..” 라고 말을 바꾸었습니다. 산융을 치러 갔다면서 부영지와 고죽군은 처벌 하고, 그 원흉인 산융을 만나서는 마땅히 사생 결판을 냈서야 할터인데, 흐지부지하고 말았다. 제 환공은 겁이나 활 한번 쏴보지도 못하고 도망 왔다.
언제나 중국 역사기록을 보면, 그들의 실패는 과소 평가하거나 춘추필법에 따라 은미 하게 기록했다. 환공이 도망오는 장면을 그렇게 기록에 남겨 “직역을 하면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워” 여기 본문을 각주로 싣는다 .
환공이 고죽군을 처형하고 계속 전진하여 산융이 사는 산채 “비이지계(卑耳之谿) 십여리 밖에 이르 갑가기 정지 했다. 활을 달라하여 겨누더니 갑까기 활을 내리며 좌우를 돌아 보며 하는 말이 “너희들 저 앞에 사람을 못 보았느냐” 모두들 예기 하기를 “못 보았습니다”하니, 환공이 말하기를 “사기부제호 事其不濟乎, 어떻게 건너겠나? 내가 대혹(大惑), 즉 욕심이 커서 바른 정시늘 목차린 모양이다. 장척되는 인물이 저기 있다. 관을 벗어 옆에 끼고 팔소매를 것어 올리고 말을 달려 도망치며 왜첬다. 어떻게 건너나? 내가 욕심이 컸서, 정신이 나갔지. 저 건너 그들이 있지 않느냐?”
혼비 백산이 되여 정신을 못차리는 환공을 관중이 달래였다: “신이 듣기로는 산에 오르면 귀신이 장척이나 되는 작은 아이로 보입니다. 패왕의 군이 흥할 징조 입니다. 산에 올라 귀신을 보고 말을 달려 질주 하셨스니 바른 길을 택하셨습니다.” 팔을 걷어 올리고 계곡 여울을 건너 비이지곡에 이르러 길을 아는 사람을 만나 그의 조언으로 큰 강물을 건넜다. 도망 나온 환공은 말에서 내려 제상 관중이 탄 말앞에 서서 아래와 같이 간곡히 사죄했다. 설원에는 말 앞에 앉자서 사죄 했다고 한다.
“管子 小問: 桓公立拜管仲於馬前曰:「仲父之聖至若此,寡人之抵罪也久矣。」”.
“說苑: 「仲父之聖至如是,寡人得罪久矣。」
“至卑耳之溪,有贊水者曰:「贛左方涉,其深及冠,從右方涉,其深至膝。已涉,其大濟。」桓公坐拜管仲之馬前,曰:「仲父之聖至若此,寡人之罪也久矣。」
이 역사적 전대 미문의 희극을 그린 사료가 설원, 예문류취,태평어람등 여러 곳에 글자도 약간 다르게 실려 있고 풀이도 아전인수격으로 다양 하다. 금루자에서는 이를 깨끗하게 풀이 하여 제환공이 그의 제상 관중을 성인(仲父聖人也)이라 했다 .
桓公問管子曰:「吾聞海內玉幣有七筴,可得而聞乎。」管子對曰:「陰山之礝碈,一筴也。燕之紫山白金,一筴也。發朝鮮之文皮,一筴也.
管子對曰:「吳越不朝,珠象而以為幣乎!發朝鮮不朝,請文皮毤。服而以為幣乎!禺氏不朝.
管子 小問 :桓公北伐孤竹,未至卑耳之谿十里,闟然止,瞠然視。援弓將射,引而未敢發也,謂左右曰:
「見是前人乎?」左右對曰:「不見也。」公曰:「事其不濟乎?寡人大惑,今者寡人見人,長尺而人物具焉,冠右袪衣,走馬前疾,事其不濟乎?寡人大惑,豈有人若此者乎?」管仲對曰:「臣聞登山之神有俞兒者,長尺而人物具焉,霸王之君興,而登山神見,且走馬前疾,道也。袪衣,示前有水也。右袪衣,示從右方涉也。」至卑耳之谿,有贊水者,曰:「從左方涉,其深及冠,從右方涉,其深至膝。若右涉,其大濟。」桓公立拜管仲於馬前曰:「仲父之聖至若此,寡人之抵罪也久矣。」管仲對曰:「夷吾聞之,聖人先知無形。今已有形而後知之,臣非聖也,善承教也。」
도망 올 때의 사정은 한비자와 사기태공세가 에도 실려 있다 : “길을 잃어 늙은 말(老馬)의 도움을 받았고, 마실 물이 없어 개미의 습성을 이용했다.” 사마천은 이를 은미 하게 “연후(燕莊公)가 고맙다고 따라와 국경을 넘기에 도랑을 파서 막고 돌려 보냈다”하는 은유법으로 기록 했다.
제 환공이 여러 제후들을 설득시켜 병력을 동원한 이유는 “교만한 북주후”를 주살 하겠다고 했지만 고죽군을 처형하고 더 전진하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도망 온 비이지계/곡/산(卑耳之谿/溪/山)이 만주 서쪽을 흐르는 대흥안령 남쪽”이라 한다. 설원에서는 그들이 고생 했던 큰 강물(其大濟)을 요수(曰遼水)라 했다 . 그러나 수경주에서는 비이지계가 진시황 때 상곡군(上谷郡)이고 그들이 건넜다는 강은 래이수의 지류 청리수(㶟水:清夷水)즉 하북성(河北省) 에 있는 영정하(永定河) 라고 한다 . 일설에는 요서 영지현을 지나던 유수(濡水) 즉 역수 (易水)라 한다. 사기 흉노열전에는 “연의 장성이 서쪽 상곡에서 부터 시작” 했다. 앞장에서 추리한 한후가 살던 한성(溥彼韓城)은 하북성 보정시 탁주 (河北省保定市涿州) 유역에 있었다는 설과 일치한다.
북주 (北州)가 어디를 뜻하나를 찾아 보면 사기 한서등 여러 문헌에는 우(禹)왕의 후손인 흉노(匈奴, 葷粥, 山戎)가 북쪽으로 도망한 부족이라고 풀이 했다 . 옛부터 논란이 되는 사기 세가의 마지막 편인 삼왕세가 (史記 世家 三王世家)에 실린 상왕의 봉지가 옛 하우씨 후손들이 활동하던 지역이다. 하북성에서 발해만 연안을 따라 산동 반도 북쪽은 옛 부터 중원과는 말이 다른 고조선 사람들이 살았다. 해하 연안은 오랫동안 숙신씨의 본향이였다. 이 곳에 백제의 일부였던 맥국(貊國)이 있었다. 예맥 족(濊貊, 貊國)이 중원이 있었다는 문제는 뒤에 다시 취급하기로 한다.
춘추오패의 대명사로 알려진 제 환공이 북쪽에 있던 발조선 의 한 부족이라 볼수있는 산융 만을 치려고 출병 했다고 보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이 있다. 관자에 그 상황이 잘 설명되여 있다 .
“북주후(北州侯) 즉 발조선 (發朝鮮)의 지도자는 위로는 천자의 명을 듣지 않고, 아래로는 제후 들에게 무례하다. 북주후를 주살해야 한다고 청하니, 제후들이 허락하여 북쪽 영지(令支)를 벌하고,부지산 아래서 고국군을 살해 하고, 산융을 만났다. 관중에게 묻기를 어떻게 할것인가? 관중이 답하기를 군(君)께서는 제후들을 교육 시키시고…..” 라고 말을 바꾸었다. 산융을 치러 갔다면서 부영지와 고죽군은 처벌 하고, 그 원흉인 산융을 만나서는 마땅히 사생 결판을 냈서야 할터인데, 흐지부지하고 말았다. 제 환공은 겁이나 활 한번 쏴보지도 못하고 도망 왔다.
이 역사전 사건 기록에 나오는 지명이 ‘그 지역 사람들이 하던 말을 이리저리 뒤바꾸어 적은 여러 한자’가 나온다. 천자의 명을 따르지도 않는다고 하는 북주군 모(北州侯莫; mò mù )는 앞에서 예기한 “중국9주 이외의 또 다른 주”란 뜻으로 갈석산 북쪽에 있다는 제도 (帝都)에 사는 “소우는 소리로 기록 되는 맥 (貊)족” 즉 발조선(發朝鮮) 의 지도자를 의미 했다. 계(谿)자와 같이 어찌해 (奚:xī xí /hei)변이 붙은 글자는 모두 다 앞에서 ‘요동돼지 우화’를 말씀 드릴 때 나온 해/희(hei, 奚)라 발음 하던 부족들이 살던 곳을 의미 한다. 이때에 “진나라 하나라(秦夏)에 살던 사람들을 만났다”고 했다. 중화문명의 핵심이 되는 자들의 직계 후손이 산서성 서쪽에서 태행산맥을 따라 하북 평원에서 동쪽으로 발해만 연안에 와서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막상 북주후를 만나서는 도망오고 말았다. 정벌하러 떠날 때의 기고 만장하던 좌세는 어디 가고, 춘추오패의 첫 쩨로 알려진 황제 (皇帝)에 버금가던 제 환공이 타고 가던 말에서 내려 그의 제상 관중에게 코가 땅에 닫도록 사과 하는 장면은, 세계 역사상 어디서도 볼수 없었던 모습입니다.
제상 관중 (管仲)은 묘책을 내어 실신한 환공을 부추겨 강물을 건넜다. 환공이 돌아 올 때 건넜던 강이 난하(灤河) 였다고 영문본에 실었지만 이느 사료를 잘못 인용하여 그릇된 풀이를 했다. 그 때 요수(遼水)는 북경을 지나 천진을 가로 지르는 해하 (海河)가 아니면 그 지류인 영정하라 본다 . 사마천은 한국 발음으로 “해와 하”를 혼용 했다. 한원 해지 일대에 살던 사람들 (해,奚, 亥, 解)이 동쪽으로 와 살던 지역의 강이라 하여 해하 (海/解河)라고 불렀고, 그 강물이 중국에서는 멀리 떠러진 곳에 있는 강이라 하여 요수 (遼水)라 했다. 그 동쪽이 후한시대 이전의 요동(遼東) 이다. 하북성 서남쪽에서 올라온 연(燕)나라가 설치했다는 장성이 상곡에서 시작하여 해하(海河) 연안에서 끝났다.
북쪽에 있는 발조선이 조공은 바치지 않고 ‘그들의 특산물만 비싼 값으로 사라 한다’ 하여 처 부시려고 북으로 올라 갔던 중원의 강자가 만났던 고조선 수도는 중원 사람들의 상상 이외였다. 싸우기는 고사하고, 고조선 사람들에게 발견 될까 겁이나서 도망 오고 말았다. 도망 올 때의 사정은 한비자와 사기태공세가에도 실려 있습니다 : “길을 잃어 늙은 말(老馬)의 도움을 받았고, 마실 물이 없어 개미의 습성을 이용했다.” 사마천은 이를 은미 하게 “연후(燕莊公)가 고맙다고 따라와 국경을 넘기에 도랑을 파서 막고 돌려 보냈다”하는 은유법으로 기록 했다. 이 곳이 하북성 밣해만 서남쪽 창주현(河北滄州) 일대라 한다. 그후 400년 동안 북경 태원 일대에는 동호의 활동이 활발하여 만리 장성을 쌓았다 했고, 연의 진개가 동호를 처서 조선이 쇄약해 젔다는 기록을 보면, 고조선이 중원과 경계를 이루었던 지역은 북경 남쪽 이였다.
춘추오패의 대명사로 알려진 환공이 북쪽에 있던 발조선의 한 부족이라 볼수있는 산융 만을 치려고 출병 했다고 보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이 있다. 관자에 그 상황이 잘 설명되여 있다 .
“북주후(北州侯) 즉 발조선 (發朝鮮)의 지도자는 위로는 천자의 명을 듣지 않고, 아래로는 제후 들에게 무례하다. 북주후를 주살해야 한다고 청하니, 제후들이 허락하여 북쪽 영지를 벌하고,부지산 아래서 고국군을 살해 하고, 산융을 만났다. 관중에게 묻기를 어떻게 할것인가? 관중이 답하기를 군(君)께서는 제후들을 교육 시키시고…..” 라고 말을 바꾸었다. 산융을 치러 갔다면서 부영지와 고죽군은 처벌 하고, 그 원흉인 산융을 만나서는 마땅히 사생 결판을 냈서야 할터인데, 흐지부지 하고 말았다. 제 환공은 겁이나 활 한번 쏴보지도 못하고 사력을 다하여 도망 왔다.
이 수양제에 못지 않을 무력을 동원하여 중원의 패자가 직접 인솔하고 고조선을 친입한 역사기록에 나오는 지명이 ‘그 지역 사람들이 하던 말을 이리저리 뒤바꾸어 적은 여러 한자’가 나온다. 천자의 명을 따르지도 않는다고 하는 북주군 모 (北州侯莫; mò mù )는 앞에서 예기한 “중국9주 이외의 또 다른 주”란 뜻으로 갈석산 북쪽에 있다는 제도 (帝都)에 사는 “소우는 소리로 기록 되는 맥 (貊)족” 즉 발조선(發朝鮮)의 지도자를 의미 한다. 계(谿)자와 같이 어찌해 (奚:xī xí /hei)변이 붙은 글자는 모두 다 앞에서 ‘요동돼지 우화’를 말씀 드릴 때 나온 해/희(hei, 奚)라 발음 하던 부족들이 살던 곳을 의미 한다. 이때에 “구지하 ((拘秦夏))라, 진나라 하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났다”고 했다. 중화문명의 핵심이 되는 자들의 직계 후손이 산서성 서쪽에서 태행산맥을 따라 동쪽으로 발해만 연안에 와서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고구려와 부여의 시조로 알려진 동명성왕이 살던 곳을 신이경 에서는 천지장남의 궁이라 했고, 해모수 해부루 를 설명 하면서 “ 천신(天神)의 아들” 이라 했고, 삼국유사에는 해(解)씨가 하느님(상재)의 명을 받아 왕이 되였다고 했다.
예기 (禮記)에는 황제의 후손을 계(薊)에 봉했다 합니다. 그러나 그 곳이 발해만 서쪽이 아니아 북경 서남쪽이 되는 탁군계현 (涿郡薊縣)이라 했다. 상말 주초를 무대로한 봉신연의(封神演義)에는 요의 후손을 찾아 계(薊)에 봉해서 “봉당제지사; 奉唐帝之祀”라, 즉 당제를 모셔 제사를 지내라는 뜻이다. 갈석산 가까운 곳에 백이숙제일화가 담긴 수양산이 있다고 하지만 이는 황제와 요 임금에게 빼앗긴 함지(咸池)일대 하동 (河東) 에 살던 사람들이 발해만 서안 일대로 밀려와 살면서 그들의 선조를 기리는 사당을 지어 모셨다는 뜻이다. 하동에 가서야 결국 요동돼지 (遼東豕)와 같은 돼지가 두 곳에 있었다는 우화에서 설명 했다. 하동에 살던 사람들이 요동으로 왔다는 뜻이다.
시경에는 당풍 채령(唐風 采苓))에 수양(首陽)산이 나오니 함곡관 서쪽에서 발해만 연안으로 옮겨와 고조선 지역에서 자리를 잡고 살다가 제 환공이 기원전 664년에 토벌 했다는 기록과 일치한다 . 논어주소에서는 백이(伯夷)의 성이 묵(墨, 墨胎) 자를 공신 (公信) 숙제는 공달 (公達)이라 하여, 황제의 성(姓) 공손(公孫)과 연관을 시켰고 한고조의 제상이 였던 공손홍 이후로는 이 지역에 공손(公孫)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번창 하여 한 때 는 공손도 왕국을 이루었다 . 후세 사람들은 “상서우공편에 나오는 우협갈석(夾右碣石)이란 문구를 근거로 협곡관 서쪽에 있던 백이 숙제의 전설이 담긴 수양산이 갈석산 유역에 있었다”고 잘못 인식하고 있다.
갈석산 유역에는 옛 고구려의 선조들이 살았다. 그 내력이 부여와 고구려의 건국신화에 나오고,광개토대왕 비문에도 실려 실려 있는 하백(河伯) 이란 글자, 즉 치수사업에 성공한 우왕의 후손이란 뜻이다. 그 뒤에 글안(契丹)이 옛 조선 땅에서 나타났다.
끝
November 21, 2016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