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구는 잡혀온 왜가 노를 저어 바다를 건넜다는 뜻이다.
이년 전 학술지에 제출한 논문의 요지는 “광개토대왕이 싸운 전쟁터가 남만주 일대 였다”는 증거를 제시 하느라 부득불 논란이 많은 비문 풀이에도 손을 댔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학설이라 여러분들의 질문이 많아 이를 널리 알리고자 이 글을 쓴다. 한글로된 풀이도 “광개토대왕 비문” 이란 Key word로 Internet에서 찾으면 여러 형의 풀이를 볼수 있다.
광개토대왕 비문은 “손상/실된 글자가 여러 곳에 있고, 비문이라 때때로 주어는 생략 되었고, 한글 어순이 많이 남아 있고, 구독점이 없다. 그 당시 남만주 일대에서 쓰던 말을 사음한 글자가 많아 인명 또는 지명이라 볼수 있는 명사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어떤 글자는 “옛적 풀이를 해야” 번역이 옳바로 된다. 당연한 얘기다. 고구려 사람들의 선조들도 “오늘날 쓰이는 상형글자, 즉 한자를 만들어 사용하였을 터이니 비문은 옛적에 쓰던 글자 뜻으로 썼다. 남송시대에 만들어진 광운(廣韻)이 현재 동양에서 쓰고 있는 각국 사전에 인용되었다 . 같은 상형 글자라도 시대와 지역이 달라 멀리 떠러진 상황에서 비문에 나오는 글자를 현제 쓰는 용어로 풀이 함은 모순이다. 이 글자들은 마땅히 “위진시대”이전에 북방에서 쓰던 뜻으로 사용 되었다. 옛 글자가 어떤 뜻으로 쓰였나는 광개토대왕 이전에 만든 아어나 설문해자 같은 사전에 있다. 오늘에는 숙어로 쓰이던 문구가 그 당시 고구려에서는 글자 하나 하나를 풀어서 썼다고 본다: 그 예가 유래(由來)즉 “그래서 와서, 그러한 연고로, 이러 이러하여 왔다.” 구시 (舊是)는 “옛/지난 바로 그 (그날,昰)때” 하는 뜻이다 .
비문에는 대왕 시절 고구려의 관습이 담겨 있어야 한다. 깨끗이 치운다는 뜻의 소제 (掃除)란 용어를 썼고, 요동 반도 동쪽 바다를 동해(東海)라 했다. 이 곳에 동옥저 (남옥저)가 있었다. 이를 잘못 풀이 하여 함경북도 동쪽 해안이라 한다. 발해만 서남쪽을 다녀 오면서 그 길을 양평도(襄平道)라고 했다. 사기에 실린 양평(襄平) 이 당산(唐山)일대를 뜻 했다는 필자의 주장을 이 비문이 입증 한다.
비문의 내용을 보면, 광개토대왕이 남 만주에 군림하여 발해만 연안을 장악했던 백제와 왜를 물리 쳤다. 위진시대 편찬된 삼국지에서는 발해만 서남 연안에 살던 사람들을 “한인(汗人, 韓人)이라 했는데, 남북조 시대 송나라의 범엽이 편찬한 후한서에서는 이들을 왜인(倭人)라 바꾸어 적었다 . 이곳이 “왜, 가야, 온조의 형 비류 (沸流)가 도읍을 정했던 서부 백제”의 시발점 이라고 본다. 이 곳이 옛적에 예군 남여(濊君南閭)가 28만 가구를 인솔하고 요동에 와서 한무제 때에 창해군 (滄海郡)을 새웠다는 곳이고, 당나라 때 장수절(唐. 張守節)선한 사기정의에는 이 곳에 맥국(今貊穢國)이 있었다고 한다 .
한일간의 논쟁이 되는 문구가 신묘년 조에 나오는 이왜이 (而倭以)란 문구다.
모두들 “이로 발음 하는 而, 以”자 풀이가 문제다. 문제가 되는 이왜이 (而倭以)의
이(而)자는 형용사로 “편안할 능, 능숙한 능”의 뜻이고, 이(以)를 “다스리다. 거느리다, 쓸용用,使用…을 이용하여”하는 뜻으로 사용한 흔적이 삼국지 한예전 (韓濊傳)에도 보인다. 그러나 비문에는 이(以)를 명사뒤에 붙여 때때로 어조사로 쓰기도 했다 .
이는 글자 풀이의 새로운 학설이다 . 설문해자에서는 이 글자의 원 뜻이 턱수염의 모형 글자(象形)라 했다 . 한자 문화권에서 한국만이 이 글자를 “편안할 능, 능히 능”이라고 풀이 했다는 근거가 “Daum 한자 사전” 에 실려 있다. 글자의 내력을 살펴 보면 “여유 있고 능력 있는 융족의 지도자, 너/당신(猶)이라 쓰던 뜻”에서 유래된 글자다. 이 글자는 논어(論語)에 많이 쓰였다. 흔히 인용하던 “사십이 불혹 (四十而不惑)은 나이 사십이 되니 능히(能) 불혹이라”는 뜻이다. 논어 학이(學而) 편은 마땅히 학능(學能)이란 뜻으로 풀이 된다. 이렇게 “능히 능”자라고 풀이 하면, 논어를 비롯한 여러 선진시대 고전의 본문이 자연 스럽게 풀려 나간다 .
이 글자(而)가 비문 몇 곳에 쓰이였다. 이를 “편안할 능, 능할 능 (能)”으로 읽으면 풀이가 부드럽다. 생능유성덕 (生而有聖德)이라 “날때 부터 천부의 재질을 타고 났고 성덕이 있었다”는 뜻이다. 삼국사기에서도 광개토왕 출생을 같은 문구 (生而雄偉)로 묘사 했다. 전쟁에 승리하여 돌아 왔다는 문구 끝에 전렵능환 (田獵而還)이라 했다. 쫒겨 온게 아니라 사냥도 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 왔다는 뜻이다. 고구려가 신라를 신민같이 받아드리고(新羅以爲臣民) 난 후에, 대왕이 순행하여 남쪽으로 내려가 평양에 이르니 신라왕이 아무런 두려움 없이(而) 사신을 보내 협조를 요구 했다는 표현을 “巡下平穰而新羅遣使”라고 새겨 넣었다.
비문 전체를 보면, 첫 면“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 까지는 대왕의 업적을 종합하여 실었다. 이 문구는 한글 어순의 문장이라,“백제와 신라는 永樂五年 부터 속민이였다. 그래서(由) 매년 와서(來) (고구려에)조공을 바첬다” 라고 풀이 된다.
그 뒤 “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新羅以爲臣民”부터는, 대왕이 그렇게 공을 세운 자초지종을 설명 했다. 이 문구를 일본 사람들이 풀이한 대로 “신묘년(대왕 원년, 391년)부터 지금까지 (年來) 왜가 바다를 건너와 (渡海), 백잔을 깨트리고, 신라를 신민(臣民)으로 삼았다”로 풀이 하면, 다음 문구부터 자세한 업적을 설명한 내용과는 문맥이 맞지 않아요. 어찌 하여 일본 사람들이 정벌한 백제(百殘)를 대왕이 오랜 시간을 두고 공격하여 백제(百殘)왕의 항복을 받고 백제의 각료들을 인질로 잡아 고구려로 돌아 갔서도, 백제(百殘)의 상관이 였서야 할 왜(倭)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나요? 어느 누가 조상의 업적을 기리는 비문에 숙적으로 싸우던 집안의 업적을 새겨 넣겠습니까? 앞뒤가 맞지 않는 풀이 입니다.
백잔과 신라 사이에 두 글자가 손실되여 분명치는 않으나, 신라 부터는 다른 문구로 봄이 타당 하다. 앞에서 설명한 능(而)자와 여기 나오는 이위(以爲)는 논어에 실린 “온고능지신 (溫故而知新)하면 가위사이여 (可以為師矣)라는 문구에서와 같은 용도”로 썼다 . 하여, 그 다음 문구는 “신라가 고구려의 시민이 되였다고 생각 해서 (以為) 그들을 써서 (以) 대왕 6년에는 ….”하는 풀이가 된다.
문제의 문구는 “능왜이 신묘년 래(而倭以辛卯年來)로 읽어, 연래(年來)을 “xx년 부터 계속하여”란 숙어로 풀이 하지 말고, 두 글자를 떼여 순서 대로 풀이 하면, 그 전의 전쟁에서 얻어온 왜인 포로 중에 바다에서 배를 잘 다를 수 있는 제능(才能)이 있는 자들(而)이 드디어 “신묘년 (年 가을)에 대왕의 군영에 와서 (來)” 이들을 사공 으로 사용(以)하여 노를 젓는 배를 타고 고구려 군사가 바다를 건너 발해만 동남쪽 요동 반도 끝에 이르러 백제가 가장 중요시 하던 통상로에 있는 성을 함락 했다는 뜻이다. 이 사실이 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대왕 원년 겨울 10월에 백제의 관미성(關彌城)을 쳐서 함락 시켰다. 그 성은 사방이 험준하고 바닷물에 둘러 싸여서 왕은 군사를 일곱 갈래로 나누어 공격 한지 20일 만에야 함락 시켰다”고 했다 .
강적을 공격할때 적의 주 무기를 해소 시킴이 급선무다. 대왕은 그러한 작전을 펴서 성공 했다. 발해만을 지나 한반도 끝까지 살펴보아도 이 설명에 합당한 지형은 없다. 관미성은 요동 반도 끝에 있던 요새가 분명 하다.
그후에는 왜와 백제가 사력을 다해 계속 고구려에 덤벼 들었지만, 이빠진 호랑이 였다. 삼국사기에는 이 전쟁 통에 고구려와 백제에 살던 사람들이 신라로 피란을 가서 신라가 갑짜기 커젔다고 했다. 결국 백제와 왜는 고구려에 패망하여 남만주를 떠나 뱃길로 한 줄기는 중국 동해안으로, 또한 줄기는 한반도 서해 연안을 따라 남쪽 바다로 내려 갔다 . 이들이 요동만과 황해를 처음으로 횅단 했다고 본다. 그 중에 신라가 제일 마지막으로 남만주를 떠나 한반도 동남 해안 지역으로 옮겨 왔다.
끝.
December 30, 2016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