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호(朝鮮胡)와 조선 해중(朝鮮海中):
남만주와 중원과의 교류가 활발해 지면서 나타난 현상이 창해군이다. 통상권을 놓고 겨루던 한무제는 섭하(涉何)를 사신으로 조선에 보냈다. 그가 전송 나온 조선의 비왕을 국경선 浿水가에서 살해 하고 급히 도망처서 국경선에 설치 했던 요새로 들어 갔다. 한무제는 그를 진급시켜 요동 도위(遼東都尉)로 임명 했다[1].
원봉중(元封:前110年-前105年)에 길상이 나타 났다. 조선을 격파하고 낭랑과 현토군을 세우니 朝鮮이 바닷속에 있서 월지상(越之象)이라 하고, 북방 내륙에 살던 사람들을 조선호(朝鮮胡) 지역에 살았다[2].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 오고, 북쪽 으로도 흐터저 나갔다는 뜻이다.
그 전부터 고조선 사람들은 지리지형에 따라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에서 살아가던 풍속을 계속 지니고 살았던 사람들을 호(胡)라 했다. 서주 세력의 북쪽에 살던 고조선 사람들 그추그맥 (其追其貊、奄受北國)이라 했다. 산서성에서 해지 연안에 가까이 살던 사람들은 서주 세력에 잡혀 관노(官奴)로 일 하던 사람들을 노예 예 (隸)자로 기록 했다. 그 당시 고조선 사람들의 어음을 인용하여, 해안선과 큰 강가에 살던 사람들을 더러울 예(穢, 濊, 薉)자라고 표현 하고, 지도자를 한 (韓, 汗, 翰) 이라고 기록 했다.
왕험성을 점령 한지 3년 후인 기원전105년 가을(元封六年秋)에 반항이 심하게 나타났다. 이를 매뚜기 때가 나타났다(蝗)고 표현 했다[3]. 발해만 연안에 살던 사람들은 바다로 진출 했다. 하여 한들이 관장하던 바다란 뜻에서 이를 한해(翰海, 翰海)라고 했다. 한해로 퍼저 나갔던 삼한의 후예는 한해 동서남북 연안에 정착 했다. 동북 쪽으로 멀리 떠난 사람들은 먼 훗날에 서양 사람들이 처음으로 기록하여 퉁구스, 샤만(Shaman), 아이누 (Ainu)란 낱말이 나타났다. 이렇게 역사의 흐름에 따라 고조선 사람들이 동북아시아 북쪽으로 퍼저 나갔던 현상을 착각하여 한국사람의 기원이 바이칼호 유역이라는 학설이 나왔다.
한해의 동남쪽으로 나갔던 사람들이 정착한 곳이 일본 구주다. 이를 열도백제 (남부여)라 한다. 이에서 떠러저 나가 제일 큰 섬(本洲) 동쪽지역에, 해리(蝦夷, 蝦蛦, Ainu, 아이누)가 살았다. 신라가 한반도에 내려와 동해안으로 올라가서 울릉도의 원주민을 만났다. 이들이 일본에서 나타난 아이누와 같은 혈통이라 본다. 모두 햇님의 후손이란 뜻이 글자 (蝦; 叚:借也) 속에 있다. 빌 가, 성 하, 빌릴 가, 성씨 하, 층계 단(叚jiǎ/ Xiá/ xie) 이로 읽는 글자는 하늘(虛空, 天)을 뜻하던 고조선 말의 사음자다. 한국 낱말에 <먼 하늘 나라로 갔다>는 뜻에 멀 원자를 붙여 승하(昇遐, 昇天)란 한자 낱말을 만들었다. 전국시대에 하간목(叚干木)이란 시람이 있었다. 빌 하(叚)자를 모양이 비슷한 글자로 바꾸어 선비족 단씨 (段氏)가 나타났다. 삼국지에는 <빌 하(叚)자를 어근 으로 하는 글자들(拜假倭王, 遐)이 많이 나타난다. 모두 햇님의 후손이란 뜻이 잠겨 있는 글자다. 삼국지 기록에 강화도와 제주도에 다녀왔다는 기록은, 한해를 따라 한반도 남쪽에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는 증거다. 그 일대에서 왕망 시절의 동전과 금속유물이 나타났다. 일본 구주후쿠오카 시(福岡市) 해안에서는 왜왕인(委奴國王)이 발견 되었다. 일본에서 국보로 다루는 옥새의 글자를 중국에서는 왜소 왜(倭)자로 바꾸어 “漢倭奴國王印”라 한다.
이러한 고고학적 유물은 모두 전한 말기 이전 부터 한반도 서해안을 따라 일본 구주에 이르는 해양 교류가 활발 했었다는 증거다.
위진 시대에 古朝鮮의 본향인 전욱 고양씨가 자리를 잡았던 赤峰 일대 사람들이 활발히 진출하여 오호십육국 시대라는 혼란기를 격었다. 이 시절에 나타난 부족 이름자 “鮮卑, 慕容, 拓跋, 宇文” 에는 모두 고조선의 후예였다는 설명이 있다. 그러나 해안선을 관장하던 한예(韓濊)의 활동은 기술하지 않았다. 대륙백제의 존제를 숨기려는 의도에서 였다. 손권과 남만주의 교류를 기술하면서 중국 동해안을 관장 하던 한예(韓濊)의 활동상이 나타난다.
[1]. 史記 朝鮮列傳:何去至界上,臨浿水,使御刺殺送何者朝鮮裨王長,即渡,馳入塞,遂歸報天子曰「殺朝鮮將」。
上為其名美,即不詰,拜何為遼東東部都尉。朝鮮怨何,發兵襲攻殺何。
[2].漢書:元封中,星孛于河戍。占曰:「南戍為越門,北戍為胡門。」其後漢兵擊拔朝鮮,以為樂浪、玄菟郡。朝鮮在海中,越之象也;居北方,胡之域也. 武帝紀: 朝鮮王攻殺遼東都尉,乃募天下死罪擊朝鮮
[3]. 越絕書 篇敘外傳記: 萬代不滅,無能復述。故聖人沒而微言絕。賜見春秋改文尚質. 太平御覽 廢學: 是故孔子憂道之不行,
歷國應聘。自衛反魯,然後樂正,雅頌乃得其所;修易,序書,制作春秋,以紀帝王之道。及夫子沒而微言絕,七十子終而大義乖。孝經注疏 御製序并注: 嗟乎!夫子沒而微言絕,異端起而大義乖
끝
January 19, 2019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