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력(農曆)의 기반이 된 북두칠성:
융우가 동반자들을 죽이禹攻雲雨) 그의 아들 개가 백익을 죽였다. 비운에 죽은 사람들이 별이 되여 한국고유의 칠성신앙과 견우직녀의 설화로 전해 온다. 쓰래, 쓸어 버리다. 북두고리 같은 손이란 표현이 생겼다. 유목민이 자연의 변화 원칙에 따라 달력을 만들었다. 상서에 계절을 논했다. 일년을 사계절로 나누어 고조선은 곧을 정(正)자로 상나라는 성할 은(殷)자로 기록 했다. 하여 네 계절을 은중 정중(正仲) 이라고 기록 했다. 윤월을 넣어 366일이 일년이라 했다. 개천절과 납평절이 전욱력에 따라 실천 되었다.
사기 역서에 夏正以正月,殷正以十二月,周正以十一月”라 했다. 맹춘을 정월이라 했다. 한무제때에 태초력이 나타났다. 후한서에는 맹춘에 받갈이를 시작 한다고 했다. 하북지역에서 맹춘이란 땅이 녹은 이후다. 고육력(古六曆)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구당서와 수서에는 몇십종의 역서가 실렸다. 진시황이 통일하고 여러 지역에서 쓰던 달력을 전욱력으로 통일 했다. 한무제 때에 북두칠성의 손잡이(斗柄)가 동쪽 인시(建寅)에 위치한 달을 첫달(歲首)로 바꾸어 태초력으로 대치 시켰다. 전욱력과 태초력은 첫달 (歲首)이 바뀌었을 따름이다.
삼국지 부여전에는 은정월 재천(殷正月祭天)이라 했다. 부여씨 비류왕의 후손이 시조 동명왕조(東明朝)에 제사를 바친 기록을 보면, 백제는 하어 (夏言語), 즉 퉁구스어를 쓰고, 입춘을 세수로 하는 하력(夏曆)을 썼다. 후에 몇차례 달력이 바뀌었다. 대륙에서 옥새를 잡고 고씨가 세운 북제 (高齊, 北齊)에서 태초력을 수정한 천보력(天保曆)을 만들 었다. 북제와 고류가 왕성했던 구주로 건너가, 왜의 달력으로 명치유신 전 까지 씌이 였다. 천보력을 서양력으로 바꾸던 해의 세수(勢首, 元旦)가 2월 18일이였다.
한반도 에서도 천보력을 사용 했다고 본다. 하력 (夏曆)의 세해 (歲首) 첫 날이 춘분(春分)이다. 고대 패르시아의 달력이 되여 아직도 이란 서쪽과 터키 동쪽 커디스탄 소수민족의 설날로 쓰이고 있다. 전욱력의 세수와 관련이 깊어 보이는 문화적 행사가 Oktoberfest다. 그 지역에 큰 도시Salzburg는 소금과 관계가 있다.
북두칠성의 손잡이를 이루는 세별 (北斗柄三星)의 방향을 근거로 달력을 만들어 두력 (斗曆)이라 한다. 고조선의 혼이 담긴 칠성신앙과 북두칠성을 기준으로 만든 농력 (農曆)은 우리 문화의 특성이다.
끝
March 8, 2021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