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팽 실위 (大彭、豕韋)단군 시절의 영역:
기원전 2333년-기원전 1046년.
단군조선 건립 부터 상나라가 멸망하고 서주가 등장하는 시기에 단군조선의 남방 한계선이 어디였는가를 추측할수 있는 사료를 찾았다. 하백곤오(夏伯昆吾)의 뒤를 이어 받은 오백지패 (五伯之霸也) 에서 두세번쩨로 거론된 지도자가 이끌던 시대다.
팽백(彭伯)은 하후국(夏后國)초기에 해지 연안에서 활약하다 . 그 후손이 상 왕조 중기부터 중원으로 나와, 기원전 1550년경 하단갑 (河亶甲 ?- 사망 기원전 1536 년)에서 조을(祖乙, 사망 기원전1508년)에 이르는 시기에 중원에서 활약 했다. 이시기에 상은 수도를 여러번 옮겼다. 중원에 살던 “소가 우는 소리, 馬/牟;móu mù mào”라고 기록 되던 고조선 사람들의 지도자 대팽 과 실위 (大彭、豕韋)의 시달림을 받았다. 이 두 사람이 단군고조선의 남쪽 영역을 통치 하던 단군이다.
문헌을 관찰하여 추리 작성한 역사학 기록을 눈으로 보여주는 학문이 고고학이다. 고고학자들이 궁금해 하는 장례식과 묘의 면모를 볼수있는 기록이 유교경전 예기(禮記)에 있다. 순임금 때에는 질그릇을, 하후씨는 구은 벽돌로 또는 돌로 곽(堲周)을 만들었고, 순장법이 있었다. 은나라에서는 목관을 썼다 .
하후씨의 후손은 체형인류학(physical anthropology)적 측면에서도 한화족 (漢華族) 과는 다르다. 하후씨의 혈통은 장신에 털이 많은 사람이라 했다 . 이들을 호(胡, 東胡, 毫, 豪)자로 표기 했다. 이들이 살던 지역이 천산산맥에서 부터 대륙을 건너 만주에서 한반도로 이어져 내려왔다. 만주에 살던 하람들을 조선호, 고구려호라 기록한 사료가 있고,청말의 장병린이도 한국사람을 호(胡)라 했다 .
이들이 중국서쪽 요새 밖에서 살았다 하여, 서양 사람들은 “Scyth, Saka, Sakae, Sacae, Sai, (塞) Scythian)라 한다. 그들이 해지연안에서 살때 “활, 마차, 한자의 기원이 되는 상형문자를 개발 한 부여 숙신족”의 선조다 .
죽서기년(竹書紀年)에 보면 “실위(豕韋) 단군이 하왕조 후기인 제공갑(帝孔甲)때 나타나, 25대 후가 되는 상 무정이 제위50년에 정벌 했다. 상무정(商武丁, 기원전 1250 – 1192년)은 은허에서 출토된 유물을 근거로,제위 년대가 확정된, 상 왕조를 부흥 시킨 군주다. 그 당시에 실위(豕韋)단군이 지휘 하던 고조선 부족이 중원을 석권하여 상 나라는 고조선 세력에 밀여 수도를 여러번 옮겼다 . 풍속통의에서는 “은의 세력이 약해지자 대팽과 실위씨가 그 뒤를 이어 (상나라)왕도를 취소하고 실력자로 다시 나타났다”고 했다 . 상 왕조는 끝났다가 뒤에 무정은 서쪽에서 활잘 쏘는 부족을 대려와 중흥을 이르켰다. 해지연안에 왕검성이 있던 불함산 (不咸山,부암, 傅巖)에서 얻은 즐거움이라 하여 그를 부열 (傅說. 傅說)이라 했다 .
중국사서에는 무정이 실위 (豕韋) 단군의 세력을 이겼다 했지만 고조선의 세력은 중원을 석권하여 한 때 상나라를 멸망 시키고, 다시 나타 났던 상나라가 망한 이후에도 계속 중원을 석권하고 살았다. 목야 (牧野)란 글자가 이를 증명 한다.
앞에서 인용한 “한글 어순으로 기록된 열선전 유백자”에 나오는 주나라 시대 소씨(蘇氏)가 중원에서 번창 했고, 북으로는 오환 부족과, 척발씨 때에 중요한 지위에 있었고, 글안의 소손녕으로 이어진다. 이들 모두 우리와 같은 어순을 썼던 전욱 고양씨의 후손이다 . 이 들이 분수계곡을 따라 남으로 내려와 해지연안 평양에서 단군조선을 새웠다. 북에서 내려 왔기에 북쪽을 높다는 뜻이 있는 상(上)이라 하고 그 방향을 향하여 기도 한다.
사마천은 6국년표 서문에서 제후국 진(秦)을 다음과 같이 설명 했다. 멀리 서쪽 오지에서 자라난 “제하빈지諸夏賓之”라, 즉(해지 연안에 성장 했던) 하후국(夏后國)의 빈객 격이 였다. 점차 동쪽으로 옮겨와 진 양공(秦襄公; 기원전 777-766년)이 주 유왕 (周幽王)이 기원전 771년에 수도 가까이 여산(驪山)에 살던 융적에 살해 당하는 서주 멸망의 와중에 공을 새워 처음으로 서주 제후의 반열에 올랐다. 진(秦) 은 그들의 선조가 서쪽에서 왔다는 뜻에 서쪽에 사당(西畤)을 지어 놓고 하느님을 모셨다. 후에 서주 제후국 진(晉)이 갈라저 “위 한 조 세 제후 (三晉) 국”이 되여 막강한 병력이 였지만 진(秦)이 그들을 이겼다. 꼭 지형적으로 유리한 조건에 있어서 였다기 보다는 천우신조의 덕이 였다고 설명 했다 . 진(秦)이 자라던 곳을 신을 섬기던 사람들이 살던 곳(神州) 또는 제사장(단군)이 다스리던 곳이라 하여 옹주(雍州)라 불렀다 . 사마천의 설명으로 우리민족이 지켜오는 “북쪽을 우러러 보는 풍속”의 근원을 추리해 보았다.
끝, 다음에 계속 함
October 31, 2016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