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하류에서 발굴된 유적은 백제의 문화유산이다.
최근 Face Book에; 이라는 표제의 글을 읽고 필자가 찾아 밝힌 내용을 요약하여 설명 합니다.
한국상고사를 연구하신 분들의 큰 오류는 해 왔습니다.
그러한 증거가 개화기 이전에 실학파 학자들이 남긴 기록 보입니다.
이분들이 남긴 역사에 관한 기록은 “강단 사학계에서 주장하는 실증 사학”입니다.
응용과학을 전업으로한 저는 “古朝鮮 찾기”에서 밝혔습니다.
단군조선의 건국년도가 요순시대로, 즉 동양 역사의 발생시대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니 문제를 풀려면 탄생 시대와 직결되는 기록들; 고 봅니다.
우리민족의 원천(源泉)을 찾아 흐르는 물길을 따라 오면서 살펴본 결과를 지난 13개월에 걸처 여러분앞에 올렸습니다. 일연 스님이 남긴 단군조선의 건국에 관한 기록을 이러한 시각에서 살펴 보면 첫 수도 평양이 산서성 해지 연안이였고 치수사업을 한 우왕이 단군왕검(壇君王儉)이시고 그 뒤를 이어 받은 이익(伯益)이 동이부락 의 수장이라고 합니다. 그를 죽인 일당이 해지 연안에 하 왕조를 세워 중원 세력의 첫 왕조라고 합니다. 지도권을 강탈 당하고 밀려 났습니다. 글자 또한 박달 나무 단(檀)자가 아니라 재터 단(壇)자 단군 (壇君)이 뚜렸 합니다.
진수의 삼국지 동이전은 동북 쪽으로는 남만주 수계를 너머가지 못했고, 한과 왜(汗,韓, 翰,倭)를 혼용하여 한해(翰海)를 따라 멀리 흐터저 나간 고조선의 후예들을 기록 하면서, 중원 세력과 직결 했던 대륙백제를 으로 기록 했습니다. 한해(翰海)를 따라 멀리 흐터저 나간 고조선의 후예들을 설명하면서도 은 극소 합니다. 요동 반도 남단에 갔던 기준 (箕準;否死,其子準立)이 한(韓)들이 사는 땅에 가서 왕(居韓地,自號韓王)이 되였다는 곳은 현행 지도로 강화도 (有州胡在馬韓之西海中大島上) 또는 대동강 하류 (到其北岸狗邪韓國)라고 기록 했습니다. 바람에 밀려 제주도에 까지 갔다 온 증거가 동옥저전에 보이고,
(耆老言國人嘗乘船捕魚,遭風見吹數十日,東得一島,上有人,言語不相曉,其俗常以七月取童女沈海。又言有一國亦在海中,純女無男)
왜인전에는 삼한의 후예들이 뱃길(翰海)로 다녔습니다. 가려면 한반도 서해안 여기저기 특히 한반도 서남 쪽 목포 일대에 배를 정박 했어야 합니다만 그러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한편 “소가 우는 소리, 馬/牟;móu mù mào”라고 기록 되여 오던 기마유목민족 (騎馬遊牧民國家, The Eurasian Steppe)이 중원 세력에 밀려 남만주에 배수진을 치고 있던 고조선의 후예 고구려는 을 살려 대륙세력과 오랫동안 싸웠습니다. 삼국지에는 등등, 한-중 사료에 나타난 고구려 초기의 영역은 한반도가 포함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증거가 광개토대왕 비문에 실려 있습니다. 대왕의 전쟁터는 남만주 한해(翰海)연안에 국한 되였습니다.
중앙일보에 실렸다는 “3세기 축조, 고구려 벽화무덤 새로 발굴”의 고구려라는 형용사는 합당치 않습니다. 기록을 연구의 소제로 하는 역사학 탐구자의 풀이로는 한해(翰海)를 통치 했던 대륙 백제의 유산이 분명 합니다. 한반도 서해안 일대에서 발굴된 3-4세기 유물에는 낙랑 또는 고구려란 형용사는 붙일수가 없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필자의 website, 또는 Face book에 올린 글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https://www.facebook.com/people/Mosol-Lee/100010115040138.
September 23, 2017
모솔, 이 돈성.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