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전 (January 23, 2017)에 운만 띄워 올린 “왜여왕 히미/매꼬(卑彌呼)는 백제왕이 였다”는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그 배경을 간단히 설명해 드립니다.
비미호(卑彌呼)와 비미호(卑彌乎) 비미국(卑彌國)
신라 본기에는 제8대 아달라 이사금(阿達羅泥師今, 154년~184년) 20년 (173년)에 왜여왕 비미호(卑彌乎)가 사신을 통해 예물을 가지고 았다는 기록이 있다 . 삼국지에는 발음이 같은 비미호(卑彌呼)가 왜여왕이다, 한전에는 비미국(卑彌國) 백제(伯濟國) 비리국(卑離國)등 비미(卑彌)와 발음이 같거나 비슷한 여러 국가이름이 실렸다. 이들이 지역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고 본다.
낙랑 본통 한국 (樂浪本統韓國)이라는 곳이 요동 반도에 있던 최리왕 영역으로 밝혀졌다. 그 곳에서 난리(亂離)가 나서 대방 태수 궁존(太守弓遵, 王遵,孔碩, 王頎)이 죽었다 . 태수 중존의 활동상이 등 여러 곳에 실렸고 그가 관구검을 도와 고구려 침략에 관여 했다는 기록은 에 있다 . 삭방/대방태수 궁전(朔方/帶方太守弓遵)이 관구검을 도와 고구려 침략에 동참 했다. 에 실린 내용과 같은 내용이 실렸다.
침략을 당한 고구려전에는 대방태수 궁존의 이름이 모호하게 기록 되였다 .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입할 때에 국내성을 분탕질 치고 계속하여 고구려 동천왕을 추격하다 살해된 관구검의 수하 장군 이름을 “乃遣將軍王●追之”라 했다. 한국에서 올린 삼국사기에는 왕기(王頎,王●)로 기록 되였다. 백제전에는 “삭방 태수 궁존(朔方帶方大守太守王遵弓遵)을 대방태수 궁존으로 바꾸어” 기록 했다. 이와 같이 은패하려는 흔적이 많이 보인다. 이 사건은 고구려가238년에 사마의를 도와 양평 (襄平, 오늘의 遼陽)에 숨어 있던 공손연을 주살한 이후다. 공손연이 관활 하던 영역을 삼한의 후손들이 되찾으려는 운동이 일어 났다. 그 일환으로 242년에 고구려가 서안평(西安平)을 공격하자 조위(魏, 220년- 265년)는 관구검이 현토에서 출발하여 비류수 북쪽(沸流水上)과 양맥곡(梁貊之谷)에서 고구려군을 크게 무찔렀다. 동천왕은 겨우 1000여명의 군사를 대리고 압록원 (鴨淥原) 도망 했다. 앞록강에서 가까이 있는 마을 이란 뜻이다. 이 곳이 서쪽에서 처들어 오는 세력을 피하여 동쪽으로 산령을 너머 마련한 고구려가 최후 배수진으로 준비 했던 환도성 (丸都城)이다. 환도성 마저 점령 당하자 동천왕은 수하장군 “밀우와 유유(密友、紐由)등 수명의 보호”를 받으며 (동)옥저로 도망가서 이들의 지략으로 조위군을 물리치고 살아와 평양성을 수리하고 종묘에 사직을 올렸다. 당시 고구려의 수도는 주몽이 처음 자리 잡았던 “비류수 북쪽, 양맥지곡(沸流水上, 梁貊之谷)으로 기록된 심양-요양 일대”에 있었다 . 이 곳이 삼국사기에 “평양은 본래 선인 왕검이 살던 곳이다. 혹 도왕검이라 한다”는 고구려의 수도다 . 태자하가 흐르는 요양시라고 한다. 이문제는 “고구려의 수도 이전”편에서 깊히 다루기로 한다.
관구검의 침략이 고구려전에는 242년이르 나오나, 백제편과 삼국지에는 정시원년(正始元年) 즉 240년으로 기록되였다. 왜인전에는(正始元年) 관구검이 고구려 환도성을 분탕질 치던 같은 해 (240년)에 태수궁전(太守弓遵)이 교위제준(校尉梯儁)등을 사절단으로 일본에 보면서 “봉조서인수(奉詔書印綬)을 주어 왜국에 보냈다 . 태수가 천자 행세를 했다는 기록을 믿을 수가 없으나, 필자의 논지는 시대와 장소 , 사건 진전 범위에 있다. 왜인전에는 조위 사절단이“가/해왜왕 (假jiǎ jià xiá 倭王)에게 경배하고 “지금부터 너는 친위 왜왕(今以汝為親魏倭王) 이다” 라는 칙서를 읽었다 . 가왜왕(假倭王) 을 훈역하여 가짜 왜왕이라 풀이 할수는 없다. 가왜왕(假倭王)과 같이 “가/개/지아/해 (假jiǎ jià xiá)를 형용사가 붙은 고유 명사”가 많이 보인다 . 가(假, jiǎ jià xiá)자는 하(夏xià jiǎ)자와 비슷한 발음으로 해(태양, sun-ray)를 사음한 글자다. 삼한의 후예들은 “빛, 해와 달과 별,즉 삼신(三辰, 三神)을 숭상하여 제사를 바치던 남녀 제사장이 부족장 역활을 하고 있었다. 제사장을 한국 역사에는 단군(壇君)이라 기록 했지만, 중국 역사에서는 이 글자를 피하여, 옹(雍), 예군(禮君) 등 여러 이름을 붙였다. 예군(禮君)의 부인을 예씨(禮氏) 또는 예씨 부인이라 했다.
왜왕비미호(倭王卑彌呼) 238년 (景初二年) 6월에 대부 난승미(難升米)를 대방에 보어 태수와 같이 조위 수도에 가서 천자에게 조헌 했다. 그해 12월에 조위로 부터 칙소를 받았다. 그 내용에 “남자 포로 4명과 여자 포로 6명”이 들어 있다 . 그 해에 공손연이 연왕(燕王公孫淵:237-238년)이라 자처하다 처형 당했다. 왜왕이 바친 남녀 포로 10명은 공손연 일당과 관여된 점범이라고 판단 된다.조위 사절단은 “칼과 거울 등 (并齎詔賜金、帛、錦、刀、鏡、采物) 지도권을 상징하는 물품”을 가왜왕(假倭王)에게 주었다. 원시4년(正始四年, 243년)에는 또다시 (假)왜왕이 대부 이성기(伊聲耆)편을 통하여 포로 액사구(掖邪狗)등 8명과 “특품 비단(倭錦、絳青縑)、솜옷(緜衣)、백포(帛布)、단목(丹木)、포로(),특품 활과 화살(短弓矢)을 선물”로 보냈다 . 이 품목 중에는 남만주 지역에 살던 예맥족의 특산물로 알려진 단궁시(丹弓, 檀弓, 矢)가 들어 있다 . 같은사람 진수가 쓴 삼국지 명제기에는 이 바첬다는 단궁시(短弓矢)를 숙신씨가 단궁을 바쳤다(肅慎氏獻楛矢)고 했다 . 후한서 동이전에서는 동이의 대왜왕(大倭王)이 사는 야마대국(邪馬臺國)은 낙랑군(樂浪郡徼)에 인접해 있다고 했다 . 이 동이의 대왜왕(大倭王)이라는 글자는 “대한 (大汗/韓)이라는 말을 이리저리 돌려, PSMCs, 假借轉注, 만든” 글자다. 그 명사에는 “크고 도 높은 왕”이라는 뜻으로 동이강국(東夷强國) 백제의 왕이라는 뜻이 숨어 있다 . 최고 제사장이란 뜻이다. 백제의 최고 지도자 대한 (大倭/汗/韓)이살던 곳을 위래성 (慰禮城)이라 했다.
삼국지에서 “한인(汗人) 이 그물로 생선을 잘 잡느다 동쪽 한국(汗國) ”을 후한서에서는 왜인국(倭人國) 으로 바꾸어 적었다 .
그 보다 앞서 경초景初, 237年三月-239年) 원년 유월에는 “왜여왕 비미호(倭王卑彌呼)가 대부난승미(大夫難升米)를 대방군(郡)에 보내 천자에게 줄 선물이 있다 하여 군 태수 유하(帶方太守劉夏)가 동행하여 조위 수도에 갔다. 그해 12월에는 조위 황실에서 왜왕에게 소를 내렸다 .
삼국지 변진전 (弁辰傳)은 변한(弁韓)과 진한 (辰韓)에 관한 설명이다. 그들은 “체격이 크고 왜와 진한 여러 나라와 접해 살고 언어가 유사 하다”고 했다 . 변진전에는 “변진을 형용사로 쓴 나라 이름”이 특히 많이 보인다. 같은 이름을 쓰던 나라가 다른 곳에도 있었다는 증거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 따르면, 변진전(三國志 弁辰傳)에 실린 사로국(斯盧國)이 신라 (新羅)의 옛 이름이다 . 여러 가한이 다스리던 여러 나라란 뜻의 한전(韓傳)에는 비미국(卑彌國)이 실렸고, 그와 발음이 비슷한 비이씨(卑耳氏) 비리국(卑離國) 비류(沸流) 하는 이름이 발해만 연안에 많이 나타났다. 광개토대왕 비문에도 “미(彌)자, 또 발음이 비슷한 비려 (碑麗)란 이름과 남만주 해안 일대에 있던 지명 이름”많이 새겨져 있다 .
이와 같은 사료를 종합해 보면, 동이의 대왜왕(大倭王)이 사는 야마대국(邪馬臺國)
은 요동반도 끝에서 산동반도를 연결하는 해상에 가상적 선을 그은서쪽 해연안에 있었다. 왜인전에는 가왜왕(假倭王) 즉 여왕비미호(女王卑彌呼) 이외에 구로국 남자왕 비미궁호(卑彌弓呼)란 지도자가 있었다 . 요동만 서북 해안에 있던 신라에 백제 여왕 비미호가 사신을 보내 조빙 했다는 기록이 있다. 시대와 글자가 다르나 인접해 있던 국가 였다 . 삼국사기에는 박혁거세가 집정 61년에 승하 (升遐)하여 사능에 장사지냈다 (葬蛇陵)고 했다. 사능은 담암사(曇巖寺) 북쪽에 있다고 했 . 흔히들 죽어서 하늘 나라로 올라 갔다는 뜻을 승천(昇天) 또는 상천(上遷)이라고 썼다. 강희자전의 설명에서 본바와 같이, 위서 30(魏書三十) 특히 왜인전에 나오는 가(假)자는 하(遐)자와 같이 먼 하늘 나라란 뜻이 분명하다 .
가왜왕(假倭王)이라고도 불렀던 왜여왕 비미호 (倭女王卑彌呼)는 백제의 최고 제사장 여자 무당이였다. 공손연 시절에 그녀가 백제를 다스렸다. 그녀가 공손연의 수급, 아니면 오나라 손권이 보냈던 사신의 수급을 대방 태수를 통하여 조위에 바쳤다.
끝
March 23, 2017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