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김 탁 대표 께서 동이 (東夷)의 뜻을 간단요약 하게 설명하여 face book에 올렸기에, 저의 “古朝鮮 찾기. 첫 장: 어떻게 찾았나. 글자 속에서. ” 에서 밝힌 내용을 근거로 보충 설명 한다.
앞에서 사이지악(四夷之樂)을 “그들이 흐터저 서러움을 춤과 노래로 표시 했다”고 설명 했다. 주 무왕은 목야전 이후에 서주의 발생지가 되는 해지 연안에 살던, 고조선의 근간이 되는 사람들을 착취 학대 하기 시작 했다. 그들은 사방으로 흐터젔다. 이들을 방위를 뜻하는 형용사를 앞에 붙여 기록 했다. 남쪽, 서쪽에 있던 살람들은 즉시 동화 되여 “서이 남이 하는 말”은 사라지고, 같은 방향 더 멀리 살던 부족을 “남만 서융”이라 했다. 동북으로 갔던 부족들은 반항이 심했다. 지형상으로 분수를 따라 올라갔던 사람들이 주로 서주 초기의 적(適)이 였다. 이들을 북적 (北狄)이라 개칭 했다. 그 일부가 더 동쪽으로 옮겨와 서주의 수도에 살던 사람들 과는 큰 안력이 없었다. 하여 동쪽으로 갔던 사람들 만이 이(夷)라는 글자를 유지 하게 되여 동이(東夷)라는 명칭이 지금도 쓰이고 있다. 이는 상형 글자다.
이(夷)자는 활(弓,矢)을 개발한 사람(大 )이란 뜻으로 부여(扶餘; 浮游作矢, Buyuel傅說, 傅說 Fùyuè)의 어원이 된다. 같은 해족이 바퀴를 만들었다.
故作者不祥,學者受其殃,非者有慶. 倕作弓,浮游作矢,而羿精於射;奚仲作車,乘杜作乘馬
글자를 개발한 사람이 해(奚, 解, 胡,東胡)족으로 상나라의 먼시조 설/게/글(契)다. 이를 해자 하면:
“칼(刀)로 engraving(㓞)을 한 사람(大:籒文大,改古文。亦象人形)이다.”
그 래서 한글 큰사전에서도 “거란 Khitan을 글안”이라 기록 했다고 본다.
동이 (東夷)의 “이”는 한자로 귀 이(耳)자로 사음 하기도 했다. 우리 말에 “니(尼) 왜 그래” 할때 의 “니”가 “이”와 같이 “상대방을 부르는 말소리”다.
노랫 가락 “아아 그이도 나를 사랑하고…”
공자를 중니(仲尼)라 한다. 출생순서로 따저서 “첫쩨도 막내도 아닌 중간에 태어난 사람”이란 뜻이다. 이 간단한 사료가 옛적부터 써 오던 말을 중국사람들이 삼음하여 기록 했다는 증거다.
이 설명은 청말의 저명한 중화민족주의를 주장 하던 정치가요, 저명한 훈고학자 장병린(章炳麟, 1868-1936년)이 남긴 겸명서 (兼明書- 卷一 )에 나온 기록을 보충설명 했다. 다음은 그 원문이다.
今人讀仲尼之「尼」與僧尼之「尼」音同。明曰:「非也。仲尼之『尼』,當音『夷』,古『夷』字耳。按《尚書》古文隅、島、萊並作『』,今文皆作『夷』,然則『夷』、『』音義同也。又按《左傳》魯哀公誄孔子曰:『烏呼哀哉,父』!晉王衍字夷甫,是用今文耳。又漢有諫,晉有潘,猶用古字。按字書仲之『』,従尸下二,僧之『』従尸下工,文字不同,音義亦別。代人不能分別,
October 22, 2016
모솔,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