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東夏)가 대륙백제-2:
너무 상상 밖의 발설이라 “제씨천동하(齊氏擅東夏)가 대륙백제를 비하하여 부른 이름이라는 새로운 학설”을 좀더 설명 한다.
동하(東夏)란 무슨 뜻인가?
진서(晉書)에는 선륭동하(宣隆東夏)란 문구가 서진(西晉, 265년 ~ 317년)의3대 황제이자 마지막인 회황제 (西晉 懷皇帝, 284년 ~ 313년) 때에 나온다 . 선륭 (宣隆)이란 불교에서 쓰던 낱말을 사음한 글자로 손윤(孫倫(宣隆)念住禪修法) 이라고도 기록 했다. 불교 서적에는 선윤서(宣隆西)란 문구고 많이 보인다. 선륭동하(宣隆東夏)란 문구에서 하가 목적어 동(東)자는 형용사로 썼다.
삼국지에는 후한 말에 동탁(董卓, ? ~ 192년) 이 184년 황건적 난과 189년에 발생한 십상시의 난의 혼란기를 다룬 무제기에 나온다 . 하(夏)자는 유목민들이 살던 하북평원을 뜻하여 함곡관의 동쪽 하북 평원을 안정 시켰다는 뜻에서 녕동하 (寧東夏, 撫征東夏)하는 문구가 있고 동탁이 동하지역을 재계(齋戒) 했다는 뜻에서 탁제동하 (董齊東夏)라 했다 . 함곡관(函谷關) 동쪽을 옛적에도 동하 (東夏) 라는 문구를 썼던 근거가 좌전을 비롯한 여러 선진 문헌에도 보인다 . 후대에도 동하(東夏) 이란 문구는 모두 그러한 뜻의 일반명사로 사용 되였다. 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에는 동하일작 요갈(東夏一作遼碣)이라고 했다 .
이를 종합해 보면, 산서성 일대에서 군림한 원주민이 313년에 초대황제 사마염의 아들인 사마치(司馬熾)를 처형하여 서진은 멸망 했던, 서진이 망할 무렵에 나타났던 동하(東夏) 이란 문구는 발해만 연안(遼碣)을 의미 했다.
동하(東夏)의 하(夏)는 무슨 뜻인가?
당나라의 영호덕분(唐. 令狐徳棻) 등이 당나라 당 태종의 칙명에 의해서 저술한 서위와 북주의 역사를 기록한 주서(周書)에 <왕성 부여씨는 호가 어라하(於羅瑕)다. 보통 사람들이 부르기는 건길지(鞬吉支)다. 하 나라 때의 말(夏言)로 왕이란 뜻이다. (왕의) 부인을 어륙(於陸)이라 부른다. 왕비란 뜻이다. 같은 내용이 통전 백제편에 실렸다 . 이 문제는 다음에 깊히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백제가 는 사료를 보였다.
강희자전에 따르면, 십육국 춘추(十六國春秋)에 나오는 하씨(叚氏)는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해(sun, sun-ray)란 뜻의 사음자들“假, 瑕, 叚, 嘏, 蝦, 遐”은 뜻이 같아 바꾸어 쓸수도 있다 . 지도자 (令長之類, 大也)란 뜻이 있다 . 이 글자를 모양이 비슷한 글자“段 구분 단, 층계 단”로 바꾸어 적었다. 십육국 춘추에 나오는 하요 (叚遼)를 훈역하여 이미 아침이란 뜻 글자를 써서 기요(暨遼)라 했다 . 사마천이 시황 본기에 기조선 (暨朝鮮)이라고 했던 지역이다 . 남민주에 살던 이들의 한 부족은 동북 만주로 옮겨 연해주를 지난 일본열도 북부에 자리잡고 살았다. 이들을 통전에 오늘의 일본(日本)을 왜 부여 해리(倭,夫餘,蝦夷)라고 한 아이누족( Ainu)으로 656년(唐顯慶四年)에 사신을 당나라에 보냈다 .
고조선의 후예들이 시대가 지나면서 서로 싸웠다. 백제가 대륙에 있었던 시절이라 마땅히 백제도 이러한 전쟁에 가담 하였지만 은미하게 기술한 사료를 잘못 풀이하여 대륙 백제의 존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5 (百濟本紀第五)에 실린 내용을 종합해 보면 그 당시 동양의 지중해라고 볼수 있는 발해-요동만 일대의 역사가 좀더 뚜렷하게 그려진다.
진서와 자치통감에는 후연(後燕)을 세운 모용수(慕容垂, 326년 ~ 396년, 재위:
384년 ~ 396년)시대에 발해만 연안에 살던 사람들의 무력이 확대되였다는 뜻에서 소위 지금의 한백세호동하“所謂今之韓、白,世豪東夏”란 문구를 썼다 . 북제서에는 <건국의 기반을 닦은 고환(高歡)이 북쪽 변방에서 선비족과 같은 생활을 하여 호걸 협객이 사는 곳의 지도자(豪俠所宗)가 되였다 . 옛 현토군이 있던 지역에서 나타난 고환(高歡)이 발해만 연안에서 힘을 길러 동하(東夏)를 점령할 징조가 보였다는 뜻이다.
동쪽에 사는 기마유목민족 (騎馬遊牧民國家, The Eurasian Steppe)이 사는 영역을 동하(東夏) 이라 했다. 이 사람들을 로 기록 하고 그 사람 들이 사는 마을의 대표를 호민 (豪民)이라고 했다 .
사마천이 <오랑캐 호, 목 호, 되 호, 오랑캐 이름 호, 수염 호(胡)자를 진수(陳壽 233-297)는 뛰어난 재능을 갖춘 사람 이란 뜻에서 호걸 호(豪)자로 바꾸어 적었다. 북위의 최홍(北魏 崔鴻) 이 남긴 십육국 춘추(十六國春秋 )에는 뚜렷하게 함곡관을 경계로 서쪽에 살던 기마민족을 서하(西夏)라고 했다. 그들이 오손(烏氏人, 烏孫) 이다 .
주서(周書)에는 남만주와 한반도에 있던 고구려 백제 신라를 설명하고, 다른 지역에 있던 여러 나라들을 설명 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추가로 실었다;
“自晉、宋、齊、梁據江左,後魏宅中原,並遣使稱藩,兼受封拜。齊氏擅東夏,其王隆亦通使焉。
夫餘隆死,子昌立。建德六年,齊滅,昌始遣使獻方物。宣政元年,又遣使來獻 ”
이 문구는 북제 집권층, 제씨(齊氏) 즉 높다는 위(魏)를 훈역한 글자 고씨(高氏)의 연혁이다. 이 문장을 풀이하면 대륙백제의 남쪽 영역은;
, 북쪽으로는 에 살면서 사신을 보내고 번국으로 인정을 받았다. 고씨(齊氏)가 동하(東夏)를 제멋대로 했다. 멋대로 할 천 (擅, 扌:亶)자는 사직단(亶)에 손을 댔다는 뜻으로 옥새(國璽)가가 고씨(齊氏) 수중에 갔다는 뜻을 지닌 글자다.
고씨왕 융(其王隆)이 (전과 같이)사신을 보내 교류가 있었다. 융이 죽고 아들 창 (昌)이 뒤를 이어 받았다. 577년(建德六年)에 제를 파멸 했다. 창이 (다시) 사신을 보내 토산물(獻方物)을 바쳤다. 다음 해인578년(宣政元年)에 사신을 보내 선물을 바쳤다.
그왕융(其王隆)을 백제왕 부여융(百濟王餘隆) 으로, 아들 창은 부여 창 (百濟王餘昌)으로 풀이 된다. 마지막 문구 “又遣使來獻” 또한 승자 입장에서 조공을 계속 바쳤다는 사실을 되풀이 강조하기 위해 남긴 사족 (蛇足)이다.
중원의 옥새(國璽)가 고씨(齊氏) 손으로 너머가는 과정이 북제서(北齊書)와 북사(北史)에도 있다 . 북주의 제 3대 황제 무제 우문옹(北周 武帝 宇文邕,
560년-578년) 6년(567년) 정월에 <제주 전위어 기태자항(齊主傳位於其太子恒)
하고 년호를 승광(承光)으로 바꾸고 자신은 태상황(自號為太上皇)이라 했다 .
북주 우문옹이 (북제 수도) 업(鄴)에 이르니 제주(齊主)가 어머니와 처자는 (해변에 가까운) 청주 (青州)로 보내고 전쟁을 하다 패하여 자신도 청주로 도주 했다. 북주군사가 추격하여 청주 땅 진(陳)에서 제창왕 겁쟁이 경현 (齊昌王莫多婁敬顯)을 잡았다. 북주 무제가 크게 한마디 힐책하고 나서 (제주 齊主)를 죽였다(遂斬之) . 옥새가 없었다. 전승장군이 옥새를 찾으려고 불야 불야 수도 업 (帝入鄴城)에 입성 했다. 그에 앞서 제주(齊主)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 하여 기주(冀州)에 살고 있던 작은 동생 임성왕 개 (齊任城王湝)에게 옥새를 전하려 했다. 처형 당한 제주(齊主)가 하(河, 黃河?)에 이르러서 시중효경(侍中斛律孝卿)을 통해 국새를 전(送傳國璽)하여 선위(禪位)를 하려 했지만 효경이 도착하지 못하고 (孝卿未達) 잡혀 수도 업(鄴)으로 환송 되였다 . 중원의 옥새가 동부선비의 한 분파인 우문씨(宇文氏)가 세운 북주(北周)로 너머 갔다. 북사(北史)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삼한 의 후예중에 “齊氏擅東夏”라고 비하 했던 대륙백제의 전성기에 중원의 옥새를 잠시 소유 했었다 .
중원의 옥새를 지녔던 나라를 북제(北齊)라고 부른다. 남조에 나타났던 동진의 뒤를 이는 “晉、宋、齊、梁” 제(齊)를 남제(南齊) 라고 부르기도 하여 혼동을 가져온다. 북제(北齊)는 고구려와 같은 고씨(高氏)가 새운 나라고, 남제(南齊;
479년 ~ 502년)는 반 세기 앞서 남북조 시대 강남 지방에 소씨가 세웠다 하여 소제(蕭齊) 라고 부르기도 한다.
북제서에 실린 이름들이 중국의 다른 사서(북사, 양서,수서 등)와 한일 역사서에는 그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섫켜 당시 상황을 바로 인식하기 어렵게 되였다. 북제의 기반을 닦은 고환(高歡)이 처음에는 동위(東魏)의 발해왕(渤海王)으로 나온다 . 그가 깊히 관여 했던 으로 추존 되였다 . 난능왕(蘭陵王) 광녕왕(廣寧王)하는 이름도 있다. 평원왕 양성 (平原王, 諱陽成;재위 : 559년 ~ 590년)을 탕 (世子湯) 이라 했드시, 고씨(高氏)가 하북평원을 다스리던 시기에 나타났던 여러 왕의 칭호가 와전 되여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나타난 왕들의 이름이라고 본다 .
다음에는 황제 집안(齊氏, 高氏)의 혈통을 잘라 버린 북제서(北齊書)란 소제를 다루기로 한다.
끝, 다음에 계속.
October 23, 2017.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