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는 기원전 208년에 흉노 묵돌선우(冒頓單于)의 급습으로 동호왕이 죽을 당시 오환산(烏丸山) 과 선비산(鮮卑山)에 숨어 생존하여 오환(烏丸)과 선비(鮮卑)라는 부족 이름이 생겼다고 했다 . 오환산(烏丸山) 과 선비산(鮮卑山)이 오늘의 지도에는 어디였는가를 찾아 본다.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흉노가 동호왕을 살해 하기전에 오환(烏桓, 烏丸)이 제후국 연(燕)의 북쪽에 부여(夫餘)와 같이있었다 . 그 일대에는 동호(東胡)영역에 옛부터 소유권을 놓고 동호와 흉노가 싸우던 구탈(Ou tuo甌脱, 歐代地)이 있었다. 이곳이 옛적에 헐거생활을 하던 유적 (Ancient Cliff dwellings古崖居遺趾)이다 . 오늘 북경 서북쪽 만리장성에서 가장 인기있는 팔달링(八達嶺) 가까이에 있다. 오환 선비 두 산 이름은 진수가 옛 지명을 글자를 바꾸어 새로 지은 이름이 분명하다.
오환산(烏丸山):
옛적 부터 오환(烏桓)의 성산(聖山)을 진수가 오환산(烏丸山)이라고 바꾸었다. 오환(烏桓)의 환(桓)자는 상산(常山)의 상(常,上,商)자을 피휘(避漢文帝諱)한 글자다 . 전에는 항산 (恆山, 恒山, Héng Shān)은 북악이라고도 하던 오악(五嶽)의 종주가 되는 대종(岱宗)산이다 . 이곳의 계곡을 상구(商丘)라 했다. 상의 시조가 하우씨 영역의 오지였던 곳에서 나타나 이곳을 상구라 했다 . 적봉에서 산서성 해지 연안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있다. 우왕의 치수사업과 관계된 많은 일화가 얽혀 있는 산악이다 . 어떻게 환웅천왕과 그를 모시던 제단을 맡아보던 제터 단자 단군 (壇君)의 어원이 되는 아침 단(旦) 자, 나무가 없던 지역의 아침을 그린 담 원(垣)자, 무환자 나무옆으로 미명을 그린 굿셀 환(桓, 恆, 恒)자가 같은 발음을 다시 알 환(丸) 붉을 단(丹)으로 기록하여 오손에서 오환으로 바꾸어 적었나 하는 문제는 글안 / 거란 /계단/기탄 (契丹, Khitan, Chi-dan)의 어원에서 밝혔다.
이러한 과정에 나타난 시조는 모두 알(卵, 丸)과 관계를 맺어 설화로 전해왔다.
선비산(鮮卑山)의 어원:
중국사서에는 선비족의 발생처로 알려진 선비산(鮮卑山)이 내몽고 뭘리, 대요하의 상류라고 설명한다. 이치에 틀린 글자 풀이다. 선(鮮)는 조선(朝鮮)의 약자요 비(卑)는 흉노의 노 (奴)자와 같이 사람이란 뜻을 비하하여 붙인 글자다. 이를 좋게 풀이하면, 비(卑) 는 해비씨(解批氏)와 같은 빛(sunray)의 사음자로 선비란 뜻은 이란 뜻이다 . 선비족은 이다.
현토군 영역에 있던 산이라야 한다. 그 산 이름을 선비산(鮮卑山)이라고 바꾸었다. 조양시 가까이에 있는 흙산 (黑山, hèshān/hēi shān /해산/흐어산, 의무려산)을 선비산(鮮卑山)이라고 했다 . 그 산 가까이에 오호십육국시대 전연(前燕)의 초대 황제, 모용황(慕容皝, 재위: 337년 – 348년)이 수도로 쓰던 유성이 있다. 삼국지에는 선비족이 아니라 오환이 유성(柳城)일대를 장악 했다. 그 곳에 숨어있던 원소 잔당을 조조가 섬멸했다 .
선비(鮮卑)족과 고조선의 관계:
위만(魏滿)조선의 탄생을 살펴 보면 위만이 수하 병력을 이끌고 그 지역에 새로운 통치자가 되였다. 이를 한국 사가들은 중국문헌에 실린 글자와 뜻을 인용하여 “지조선, 한씨 조선, 또는 기조선, 후조선”하는 이름을 붙였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위만은 우리와 같은 어순을 쓰던 사람들을 인솔하고 옛 부터 잘 알려진 통로를 따라 중원에서 발생한 난을 피하여 먼 낙원이라고 인식 했던 만주땅으로 들어 왔다. 이 길목에 경계선 패수(浿水)가 있었다.
전사사(前四史)에는 위만이 들어온 지역에 관한 기록을 묘호하게 기록했다:
안사고가 주를 단 한서 필사본(武英殿二十四史本。漢書)에는 시대를 소급하여 조위시대 사람, 여순의 의견“如淳曰”을 많이 인용 했다. 현토(玄菟)를 원토 (元菟)라 했다. 한서 지리지, 후한서 동이열전에 실린 개조선(皆朝鮮)은 사기의 기조선(暨朝鮮)을 다른 글자로 바꾸어 적었다. 요사(遼史)에서는 . 부산 부산(富山負山) 염수상 (鹽水上) 비려(碑麗) )하는 문구가 광개토대왕 비문에 있다. 또 부산(富山)에 숨은 적을 고구려가 공손도를 도와 처벌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낙랑 대방이라 한 곳이다 . 그 곳에 선비산이라고 별명한 <해를 숭산하는 부족의 성산으로 다루던 흑산 (黑山, 의무려산:醫巫閭山)이 있다. 요하 건너편에 살던 글안 사람들이 새운 나라가 대요(大遼)제국이다. 그들은 치수사업에 성공한 우왕의 후손이라 했다 .
글안의 발생지가 이라는 설은, 중국사람들이 은미하게 기록한 글자를 잘못 풀이한 결과다. 글안(契丹)의 어원은 시경에 나오는 이다. 서역에서는 그 곳을 진단(震旦)이라고 했다. 중국서쪽에 살았다는 증거다. 이들이 단군조선의 주류였던 오손(烏孫) 오환 (烏丸)으로 중원 세력에 가장 가까이 접해 있던 동호(東胡)연맹의 한 부족이다. 선비(鮮卑)족은 고구려 부여 (夫餘)와 같이 현토군 땅에 살던 고조선의 후예로 깊은 혈연관계가 유지 되였다.
이조시대의 선학들은 을 사용 했었다. 아직도 한국상고사 학회를 진단학회(震檀學會)라 한다. 한국의 별칭이다.
다음에 계속, 끝
April 22, 2017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