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도(綠圖)란 글자는 동이의 수장으로 알려진 전욱고양씨(顓頊氏)와 관계가 있다. 그의 후손이 대흥안령 서남쪽 일대에서 나타난 홍산문화의 근간을 이루었다.
진서(晉書)에 실린 전욱수학어록도(顓頊受學於綠圖)란 문구가 한서의 저자 동한의 반고(班固; 32년-92년)가 집필한 백호통론(白虎通德論)에는 제전욱사록도 (帝顓頊師綠圖)란 글자가 있다. 출처를 전왈 (傳曰)이라 했다 . 유향의 신서(新序) 에는 전욱학호록도 (顓頊學乎綠圖)라 했고, 신선(新書)에는 강안에 들어가 녹도를 취(取綠圖)했다. 회남자(淮南子)와 묵자에는 황하에서 녹도가 나왔다(河出綠圖)고 풀이 했다. 록자 앞에 붙은 “於, 乎” 자는 형용사고, “造, 師, 取, 出, 奉”는 동사다.
형용사는 위(於high)란 어음이고, 호(乎hū hú;胡, 𣬣, 鬍)자는 삼족오를 타고 내려온 오손(烏孫, 烏丸, 烏桓)이란 뜻이 있는 어음이다. 강희자전에 따르면 록(綠)자는 음에 따라 여러 글자(䩮: 祿。籙。簶. 𩌫)로 기록 했다. 이 글자를 루(𩌫;lù)로 발음 했다 . 사슴을 뜻한 글자와 음이 같다. 단군왕검 백익과 관계가 있다.
단군조선시대의 신지 녹도문 천부경 원본 풀이라는 설도 있다. 기원이 심원 하다.
그러나 중국문헌에는 녹도문(鹿圖文)이란 글자가 없다. 강희자전에 불가의 사원을 승원, 도가의 사원을 도원, 유가의 사원 이름에 백록서원(白鹿書院)이 있었다 .
록도(綠圖)란 문구를 남긴 반고는 한서 고금인표(漢書 古今人表)에서 동양인의 시조를 설명 했다. 태호 복희씨 (太皞伏羲氏)를 첫쩨로 하고, 여러 부족의 지도자를 순서 대로 염제 신농씨 (炎帝神農氏), 황제헌원(黃帝軒轅氏), 소호김천씨 (少昊帝金天氏), 전욱 고양씨 (顓頊帝高陽氏), 제곡 고신씨(帝嚳高辛氏), 도당씨 (陶唐氏)로 나누어 이들을 상상성인(上上聖人)이라 하고, 그들의 후손을 상중인인 (上中仁人), 그 다음을 하중지인 (上下智人)라 했다 .
전욱 고양씨(顓頊帝高陽氏)의 후손으로는 백이량부 (柏夷亮父) 록도(綠圖)라 했다.
한서에는 백익을 백이 (柏夷)로 적었다. 그 밑에 록도(綠圖)라 하였스니, 녹도를 어떻게 설명 하든 그 글자(綠圖)는 백익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어(於)자는 우(于)자로 쓰였다. 그 글자는 위(爲)와 같이 높다는 퉁구스어의 사음자다.
록도(綠圖)란 글자 앞에 붙인 어조사가 아니라 <옛 적에 높으신 분이 록도(綠圖)을 만들었다>는 풀이가 합당 하다.
옛 부터 문구의 출처를 밝힌 전왈(傳曰)이라는 어휘설명 또한 다양하다. 오래된 춘추좌전을 칭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전왈(傳曰)이라하고 뒤에 따라 나온 문구설명을 찾아 보면 좌전에 보이지 않는 “鳥之將死,其鳴也哀”란 문구를 썼다. 이 문구는 진한시대 이전 부터 전해 오는 구전이란 뜻이다. 논어에는 증자가 인용했다. 유향의 신서, 사기 골개열전에는 전왈 (傳曰)이라 하고, 삼국연의에는 성인이 남긴 말 (聖人云) 이라 했다 .
설문에는 말린 꿩 고기(Dry Meat)를 설명 하면서 요임금 때는 납향 납(腊) , 순임금 때는 꿩포 거, 날짐승포 거(腒)라 한다. 반고가 <전왈(傳曰)이한 뜻은 옛부터 구전 되여 내려 오는 설화에 따르면>하는 뜻이 분명 하다 .
여씨 춘추에 녹도번박(綠圖幡薄)라 했다 .
번박(幡薄)이란 낮말은 부적의 가차 글자 라고 한다. 옛적 부터 붉은 글자로 적어 단서부록(丹書符籙)이라 했다 . 광운(廣韻)에는 록(籙)자를 도록(圖籙)을 뜻한 글자라고 했다. 사기에는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게 한 동기를 <진나라를 망칠 자는 호(亡秦者胡也) 라한 문구의 출처를 아뢸 주 주록도서(奏錄圖書)이라> 했다 .
옛 전서(篆書字)를 근거로 만든 주역(周易 繫辭)에 실려 있기를;
“河出圖, 洛出書,聖人則之”라고 했다. 이를 직역 하면:
<황하에서는 지도(圖)가 나오고 낙수에서는 글자(書)가 나왔다. 성인의 법칙이다>.
황하문명의 발생지에서 치수사업을 하느라고 단군왕검 백익이 그려 놓은 설계도 (산하 구릉을 그려 놓은 약도, 山海經, 山河經)와 그를 설명한 글자를 뜻한 문구다.
즉, 법칙 칙(則)자는 칼(刂)로 조개 껍질(貝)에 긁어 놓은 글자란 뜻이다. 이 글자는 향찰(鄕札)의 ‘札 (箚)자와 같이 칼로 긁어 만든 상형자로 소식을 전해 오던 증거품 이다. 긁어 삼형자를 만든 사람들은 빛을 숭상 하던 해 (合, 解, 亥, 奚) 족이 었다. 그 들이 살던 지역에 따라 지방의 토산물인 대(竹) 또는 조개 껍질(貝)을 썼다. 단군조선 지역에 글자가 있었다는 뚜렷한 증거가 있다. 장병린 (章炳麟, 章太炎; ?-1936년)이 남긴 구서(訄書)에 ‘조선에는 순임금 때 부터 가첩이 있었다’했다 .
칙(則)자는자연의 법칙을 뜻한다. 단군 왕검 백익(伯益)의 말씀이 곧 법칙 이란 뜻에서 익법(謚法)이라 했다. 중국사람들은 이를 요리조리 돌려 시법(諡法)이라고 바꾸었다. 주역에 실린 문구를 직역 하면; 진서(晉書)는 <산해경의 자료를 모아 주(註)를 달았다는 곽박 (郭璞)이 단군왕검의 유언을 요사(繇辭)라고 했다.
최근에는 록도(綠圖)라는 글자를 <그림을 파란 글자로 그려 록도라 한다>는 낭설을 퍼뜨리는 자들이 중국에 많이 있다 .
옛 중국문헌에 나타난 록도(綠圖)란 문구를 살펴 보면 그러한 근거가 없다.
Feb 20, 2018 일 Face book 에 올린 “단군왕검의 유언”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August 18th, 2018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