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용씨(慕容 氏)가 대륙 백제의 명맥을 이어 갔다:
필자는 “부여(夫餘, 扶餘)의 어원”에 관하여 여러 번 글을 올렸다. 새로운 사료를 찾았기에 다시 한 번 부여에 관해 설명 한다.
삼한에서 동북 아시아에 있었던 삼국이 나타났다. 고구려와 백제의 건국 설화에는 부여란 이름이 나온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아직 부여의 어원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이조 말기에 실학파 유생,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년-1836년)의 아방강역고 (我邦疆域考)나 이규경(李圭景, 1788년-1856년)의 “五洲衍文長箋散稿” “三韓始末辨證說”에도 부여에 관한 기록이 약하다. 삼국사기에는 나라 이름은 “扶餘” 로 나오고, 부여(夫餘)는 “夫餘神”이라는 문구로 나온다. 삼국유사에는 부여(夫餘)란 글자 마저 없고, “扶餘”로만 나온다.
부여(夫餘)라는 이름자는 사마천이 만든 글자다. 사기 소진열전에 연 문공 (燕文公;?-기원전 333년)이 연의 영역을 설명 했다: 전국책(戰國策 燕策)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 같은 저자가 화식 열전에서는 고 밝혔다 : 같은 지역에 살던 사람들을 흉노열전에는 동호 호(東胡, 胡)라 했고 좀더 세분 하여 오제본기에서는 발 산융 숙신 (山戎、 發、息慎), 발해만 서쪽 해안에는 기조선(暨朝鮮)이라 했다. 그 곳을 관자에서는 발조선(發朝鮮), 그 지도자를 북주후 (北州侯)라 했다 . 이를 상서정의 에서는 중원 구주 (九州) 밖이라 하여 여주(餘州, Extra-state) 라고도 했다 .
전국시대 까지는 부여(夫餘)란 이름이 없다가 흉노 모둔선우가 기원전 208년에 동호왕을 살해한 이후에 처음으로 나타 났다. 전국시대에 임호와 다락 루 번거로울 번(林胡、樓煩) 이라 하던 이름이 오환과 부여(夫餘)로 바뀌었다 . 루번(樓煩)이 부여(夫餘)의 전신이란 추리가 된다. 산서성 태원(太原)에서 연경 (燕京)에 이르는 지역에 있었다 . 이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친입을 맊으려고 장성을 쌓았다. 고조선 영역에 살던 사람들을 동호 호(東胡, 胡)라 했다. 진시황을 도와 법치주의를 확립 시킨 이사 (李斯)는 낭아대각석(瑯邪臺刻石) 진시황 송덕비에 흔히들 동호 호(東胡, 胡)라고 부르던 고조선 사람들을 대하(大夏)라 했다 . 글안(Khitan,契丹,大遼,
916년-1125년)의 후반기에 옛 단군조선 탄생 지역 서쪽에서 나타난 나라를 서하(西夏; 1038년-1227년)라고 했다. 그사람들은 백고대하국 (白高大夏國)이라고 불렀다 . 여름 하(夏)자는 빛을 뜻하던 여러 사음자(解,奚, 荷)의 하나다. 태고적부터 황하문명 발생지에서 나타난 첫 왕조를 새운 사람이 단군왕검이고 그를 도와 치수사업을 성공 시킨 백익(伯益)이 단군 조선의 두번쩨 지도자였다고 논증 했다. 그를 동이부락의 수령이라고 했다. 그 후손들이 만주에 올라와 살았다. 부족 이름에 해 (sun,sun-ray, 解,奚)를 붙여 만든 “발해, xx해(奚), 모해/말갈(靺鞨), 글안”하는 이름은 빛을 내는 세 물체(三辰)중에서 가장 뚜렸한 해와 직결 된다.
중원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빠진 동안 고조선 원주민들은 여러 갈래로 흐터져 살면서 중원 세력에 반항하던 시절을 위지 30편에 남겼다. 그중 한편이 부여전 (夫餘傳)이다. 진수는 “부여”란 이름을 로 나누어 기록 했다. 문자의 귀제들이 남긴 기록이라 글자 선택에는 숨은 뜻이 있다고 본다. 사내 부(夫)자 부여 (夫餘)란 이름은 사마천이 만들었고, 도을 부(扶)자 부여(扶餘) 란 이름은 진수가 새로 만든 이름이다. 한서는 사마천이 만든 부여(夫餘)란 이름을 그대로 인용 했다.
사마천이 한무제 영역의 주위에 살던 여러 부족을 비하하여 기록했던 실례와 북쪽에 살던 부족을 부여(烏桓, 夫餘)라 한 글자를 살펴 보면, 이는 발조선 이름을 쓰지 않고 북주(北州) 또는 여주(餘州)라 부르 듯, 북쪽에는 이라는 뜻으로 비하 하여 붙인 이름이 부여(夫餘)다. 명나라 때에 나타난 욱리자(郁離子)에는 산서성에서 하북성은 지나 발해만 일대에 이르는 옛 고조선 영역을 삼한부여(三韓扶餘)라고 했다 .
천손의 후예(烏孫)들이 동쪽에 와서 산다 하여 동호(東胡) 라고 부르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우왕을 도와 치수사업을 성공시키고 산서성 해지(解池) 분수(汾水) 유역에서 쫓겨난 부족이다. 중국 기록에는 단군왕검이 치수사업에 성공한 우왕으로 나타 났다는 논증을 했다. 우왕을 물길을 다루던 귀신이라 하여 하백(河伯)이라고도 했다. 고구려 시조 주몽이 하백의 외손이다. 단군조선의 후손들이 한 때는 분산되기도 하고 단합 되기도 했었다. 부여 (夫餘)연맹체를 이루고 살던 부족들도 단합과 분산을 거듭해 왔다.
전사사 (前四史)에 나타난 고조선 지역에 살던 부족 이름을 추적해 보면, 모두 동양문화의 발생지인 산서성 해지연안에 살았었다. 그러한 증거가 각종 사료가 있다 . 이들이 역사의 흐름에 따라 만주 땅으로 옮겨 와서 새로 정착한 곳의 지리지형에 적응 했다 . 그에 따라 한서 지리지에는 대흥안령을 경계로 동쪽과 서쪽을 따로 기술 했다. 동쪽 지역은 전쟁이 없던 낙원이라, 공자님이 가서 살고 싶다고 했다 . 대흥안령 서쪽은; 고 기록 했다 .
예맥(濊貃)의 서쪽에 살던 부여선우(扶餘單于)가 다른 여러 국가 지도자들과 같이 위나라의 초대 황제 문황제 조비(曹魏 高祖 文皇帝 曹丕, 187년-226년) 취임식에 사신을 보냈다 . 전통적으로 선우(單于)란 이름은 흉노의 여러 부족장이 선출한 부족 연맹체의 총지도자란 뜻이다. 부여선우(扶餘單于)란 문구 에는 는 뜻이 잠겨 있다. 앞에서 하왜왕(假倭王)을 설명 할때 인용한 견초(牽招) 전에 에서 부여(扶餘)란 글자를 썼다 .
진서에서도 부여(夫餘, 扶餘)란 두 글자를 삼국지에서와 같은 뜻으로 썼다 .
옛 고조선 지역에 살던 사람들을 이용하여 중원을 다시 통일한 위진 시대는 원주민의 반항으로 종말이 왔다. 그후에 이 지역을 다룬 역사서가 그지역사람 이 편찬한 (오호)십육국 춘추(十六國春秋)다. 그 안에 부여(夫餘)란 글자는 없고 부여(扶餘)란 명사가 나타난다. 모용(慕容)씨가 삼국지에 실린 부여(扶餘)의 후손이 란 뜻을 은미하게 기술 했다 . 통전에는 한말 공손도 덕택에 위진 시대에 그 땅을 얻었다 . 십육국 춘추 (十六國春秋) 전연록(前燕録)에는 선비족(鮮卑族) 모용외 (慕容廆, 269년-333년)의 선친이 사마 선왕이 공손연을 토벌 할 때 (司馬懿討公孫淵) 공을 세워 전욱 고양씨(顓頊高陽氏)가 살던 곳(顓頊之墟)으로 알려진 극성 북쪽 (棘城之北)에 나라를 세웠다 . 그의 아들 모용황(慕容皝)이 전연 (前燕)을 세워 고구려와 자웅을 다투었다. 명 나라 때 편찬된 욱리자(郁離子)
에는 연왕이 까마귀 (燕王好烏)를 좋아 해서 중정 나무마다 까마귀 집을 지었다. 전 국민이 까마귀를 길조로 취급(國人咸事烏) 했다. 궁정에 까마귀가 먹다 떠러뜨린 고기 썪은 맴세가 심했다. 소리개가 와 까마귀들과 다투니 소리개를 죽였다는 등 삼족오를 숭상 했다는 뜻을 은미 하게 기술 했다 . 통전에 따르면, 전연의 수도는 요녕성 서남부 조양시 (朝陽市) 남쪽으로 알려진 유성일대(慕容皝以柳城之北
龍山之南)였다 . 이 곳이 한무제가 친입 했던 우거왕의 수도 왕검성(王儉城)이다.
서진 역사책(晉書)에 나오는 조선(朝鮮)은 발해만 서쪽 갈석산 일대를 의미 했다. 전연(前燕)의 제1대(초대) 황제가 된 모용황 (慕容皝, 297년- 348년)을 조선공 (朝鮮公)으로 봉했다 . 모용씨 (慕容氏)의 어원은 부여란 이름이 와전(冠步搖冠; bù yáo)되여 나타난 사음자라 한다 . 진서(晉書)에는 선비족의 풍속에서 나온 음이 와전 되여 모용(慕容)이 되였다 하나, “보요(步摇)라고 읽는 글자는 [bùyáo] 부야오/부여로 발음 되였고 한서, 동관 한기, 자서(字書 釋名)등 한시대 문헌에 나온다. 자서 역명 (字書釋名)에는 귀인의 머리 장시품을 보요步摇했다. 삼국지에는 선비대인 모용 (慕容)이 있다 .
백낙천(白居易, 樂天; 772년 -846년)이 읊은 장편 서사시장한가(長恨歌)에는 “雲鬢花顏金步搖, 芙蓉帳暖度春宵”라 했다 . 모용씨(慕容 氏)는 부여족을 뜻하던 부여지국 (不與之國, 浮游作矢, 古者夷牟初作矢)의 후손으로 대륙 백제(百濟)의 명맥을 이어 갔다. 중국 대륙에 남아 있던 모용(慕容)씨의 후손이 동진시대 부터는 백제(百濟)로 나타났다.
끝, 다음에 계속.
October 14, 2017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