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필로그
바둑(圍碁. Go)의 시원(始原): 시대와 장소.
오직 한국에서만 위기(圍棋 囲棋, 行く, go, departure)를 바둑이라 한다.
중원 기록에는 요임금(堯造圍棋)이 창안 하여, 그의 아들 단주 (丹朱)가 즐겼다고 한다. 아니다. 글자와 어음 언어에 그 사연이 있다.
바둑을 중원에서는 여러 글자로 기록 했었다. 논어 양화(論語 陽貨)편에 박이자(博弈者)로 적혂다. 공자는 [생각을 깊히 하고 지혜를 양성하는 행위]라고 했다. 맹자는 박이와 음주(博弈好飲酒)를 불효로 풀이했다. [1] 도가문시진경에는 [활쏘기, 현악기다루기, 바둑은 아무리 연습해도 똑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는 뜻에 “習射, 習琴, 習奕”란 문구가 있다. 박이(博弈)란 승패를 다투는 바둑을 뜻한 글자가 분명하다. [2]
한자문화권 세 나라 언어에 같은 상형자 “弈, 奕, 亦”를 어음이 다르게 읽는다. 한국에서는 “弈 바둑 혁, 奕 클 혁, 亦 또 역”이라 읽고, 중국에서는 모두 “이 yi”로, 일본에서는 “애끼”라고도 읽는다.
두(弈, 奕)글자를 혼용 했다는 풀이도 있으나, 풀이가 다양하다. 또 역, 겨드랑이 역(亦)자 밑에 “스물입발 廾”을, 또는 “큰 대 大”를 붙여 위대 하다”는 뜻을 나타냈다. 두 글자 모두 “겨드랑이 밑에 깊숙히 박아 넣었다” 하여 바둑을 뜻한 글자로도 풀이 했다.
오랫적 사전 미아(爾雅)에는 “큰 대 大”를 붙인 혁(奕 yi)자는 없고, 혁 (弈)자만 실렸다. 혁 (弈)자 를 위대 하다 크다(大)는 상형자로, 두 자(弈弈) 를 겹쳐서는 우울(憂也) 하다 또는 슬퍼 우는 “우름소리sorrowful hearts” 이라 했다. 두 자(弈弈)를 겹친 시구가 위(衛)자를 연(燕)자로 부꾸었다는 시경 규변 (頍弁)에 실렸다. 이 시문은 주 선왕의 아들로 서주의 마지막 유왕(幽王)을 풍자한 시문이라 했다. [3]
우수 하다 또는 뛰어 났다는 뜻의 혁(奕 yi)이라고 읽는 글자가 시경 한혁 (韓奕)에 혁혁(奕奕) 양산(梁山) 유우순지 (維禹甸之) 라고 실렸다.
혁혁 (弈奕)두 글자의 사연을 보면; 같은 글자를 되풀이 한게 아니라 뒤에 실린 “클 혁(奕 yi)자는 바둑 혁(弈) 자 로” 바꾸었다고 본다.
이기씨(奕 yi)가 바둑 놀이(博弈)를 했던 양산은 우가 개발한 땅이란 뜻으로 백익의 추종자 들이 최후의 방어 목적으로 뚝을 쌓았다(博弈)는 뜻이다. 이 일대에 왕검성 (王險城)이 있어야 한다.
역경에 요 임금은 단수(丹水)가에서 포수(浦壽)와 싸웠던 전장 터가 산서성 서남쪽 항산(恆山)일대 였다. 주역(周易)에 나오는 “습감(習坎,xí kǎn )으로 일국의 지도자(왕검)가 천혜의 요소에 자리를 잡았던 곳”이란 뜻이 침수가 안되는 높은 곳에 있던 왕험성 (王險城)이다. [4] 우리 말로는 “왕검성 (王儉城)”으로 수도인 평양 부근에 있었던 산성을 뜻했다.
이 곳에서 큰 싸움이 있었다. 이를 대전우감지야 (大戰于甘之野)라 하고, 남긴 격문을 감경(甘誓)이라 했다. 사기에는 대전 어감(大戰於甘)이라 했다. 단군조선 세력을 제압하고 우의 아들을 개 (帝啟)를 시조로 하는 하(夏) 나라가 생겼던 곳이다. 같은 곳을 죽서기년에는 우대목지야 (于大穆之野)라 했다. 우왕의 아들 계 (帝啟)가 백익을 따르던 사람들을 섬멸하고 기분이 좋아 춤을 추었다는 현상을 기록한 문구다. 감(甘)자는 지명이 아니다.
어조사 우(于)와 어(於)자는 “xx한 결과에 이르렀다”고들 풀이 한다. 그러나 전감우(戰于甘)의 우(于)자에 높은 지역”에서 싸웠다는 뜻이다.[5]
한국어에 대목(大穆)이란 낱말이 남아 있다. 강물이 흐르다 좁은 곳(물 목) 에 다리 양(梁)를 놓았다. 목(穆)이 “목구멍, 모가지(neck)로 쓰이고 있다. 주 소왕 뒤에 그 지역 태생의 지도자라 하여 목천자(穆天子, 穆王)라 했다.
이방인 주족(周人)이 원주민을 올라 타고(乘黎) 무참히 학살하여 조윤 (祖伊)이 달려가 (상나라 왕에게) 알렸다. 그 사실을 기록한 편명이 상서에 실린 서백 감려 (西伯戡黎)다. 동이 수령 백익을 왕검이라 했다. 검을 려(黎)자는 고조선 원주민을 뜻한 글자다. 려 黎 를 천할 시(斯)자로도 썼다. 그들이 쓰던 글자, 시문(斯文)으로 색인된 금문명(金文銘)을 공자가 읽었다. 원주민 노예 여자가 낳은 아들이 희발(姬發)이다. 한후와 주 무왕 은 모계가 같아 한후 또한 희성(姬姓)이라 했다. 서주 발생지에서 두 진 나라가 싸웠다. 이를 한원지전( 韓原之戰)이라 한다. 진나라가 위나라(秦 魏)와 싸운 전쟁을 소량지전 (少梁之戰)이라 한다.
주선왕이 한혁(韓奕 yi) 에게 조카 딸 을 주고 후작(侯爵)을 준 동양 최초의 화친맹약을 성취 했다. 이 성대한 행사를 읊은 시문 이름 한혁이다. 혁(奕)자는 이기씨를 뜻했다. 이기씨 후손중에 어느 젊은 지도자(큰, 각간, Kahn, Gahan)를 한혁(韓奕 yi)이라 했다.
중국문헌을 중국식으로 읽으면, 사기 주 본기에 이세재덕 (奕世載德)이란 글자가 있고, 당시(全唐詩)에는 이세 기 병이 (奕世皆秉彝)란 시구가 있다. 이세(奕世)란 평화스러웠던 고조선 시대를 뜻했다.
상서에는 검 왈 백이(僉曰:伯夷)라고 모두들 소리쳤다. 즉 만장 일치로 지도자 (益,汝作朕虞)가 된 동이 수령 “백익을 백이”로 기록 했다.
바둑을 뜻한 위기 (圍棋稱弈)의 어원은, 논어주소에 “이, 즉 이기씨가 권좌 에서 미끄러져 떠러졌다는 뜻(取落弈之義也)에서 취했다”고 했다. 위기 (圍棋, 囲棋)란 글자는 꼬깔모 변(弁; 辨 變 別也)를 쓴 사람 (其, 古作亓) 이 살던 위나라를 둘러 쌓았다는 뜻글자다. 삼한 중에 변한(弁韓)은 여러 글자로 기록 했다. 초씨역림(焦氏易林)에 실린 육박(奕棊六博)이란 글자는 글자 만드는 법을 육서(六博)라 했다. 여섯 육자가 아니라, 경전문헌에 실린 큰 땅이란 뜻의 대륙이다. 산서성 진나라 땅 (晉有大陸)에서 발생 했다.
이러한 문구와 글자를 보면, 바둑을 뜻한 글자는 치수 사업을 주관 했던 백익(伯益)이 살던 시대에 만들어 졌다. 하여 요조 위기(堯造圍棋)라 했다.
양산이 낙수(洛水) 와 황하 가까이 고조선 발생지, 즉 황하문명 발상지에 있다. 하여 하출도(河出圖),낙출서(洛出書)라는 문구가 전해 온다. 그 곳에 살던 이기씨 (伊耆氏; 伯益,河伯 馮夷)가 권좌에서 밀려났다는 뜻의 낙(洛) 자를 낙(落)자로 바꾸었다. 취낙이지의야(取落弈之義也)란 문구는 수도를 함곡관 동쪽 낙양(落陽)으로 옮긴 동주(東周) 이후에 붙인 설명이다.
고조선의 시말,Shanxi山西省China
한후의 선조는 우의 아버지와 같이 산해경 초안을 만들어 치수사업을 관장하던 백익이다.[6] 백익을 저 늙은이란 뜻에 이기씨(伊耆氏)라 했다.
실권을 한 늙은이가 작은 여울가에 살았다 하여 그 여울을 이수 (伊水) 또는 낙수(洛水)라 했다.[7]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사천성 (四川省, 즉 익주 益州)를 지나 운남성에 정착 했다. 그곳 노인들이 인도 동북부 히말리아 산속에 이르러 원시 불교가 나타났다. 삼국지 왜인전 (倭人傳)에 노자 (老子)가 호를 가르쳤다(教胡)고 했다. [8] 진수가 중원 변두리에 사는 외방인(外/倭)을 비하 하여 왜소 하다는 뜻글자로 바꾸었다. 번을 여러 사음자(弁 變 蕃 卞 繁 潘) 로 기록 랬다. 즉 의문이 많은 변한(弁韓) 사람들을 왜인(倭人)이라 했다. 원시 불교 전래에서 설명 했다.
금미달이 상곡군 – Search Images
불교나라 티베트 바둑은 한국 전통 순장바둑 같이 바둑 돌을 여럿 놓고 시작 한다.
백익(伯益, 馮翊)을 혁(奕yi) 이기씨(伊耆氏)라 했다. 한국어 응원가에 “싸워라 싸워라”, “이겨라 이기다, succeed”의 어원이라 본다.
넓을 박(博,bo)이라고 읽는 글자는 “박수, 박치기, 박사, (말뚝을)박다”는 등 “미지의 세계로 가는 앞장, front” 이란 뜻으로 맏 백(伯)자와 뜻이 같다.
미개척지 또는 적국의 영역을 점령 한 후에는 깃발을 꼿고 진을 첬다. 떠날 때는 표적을 남겼다. 이를 밭뚝 (boundary bank, Embankment)이라 한다. 그러한 전쟁 놀이가 서울 근교 뚝섬에서 있었다. 치우기를 사용 했다.
백익의 지지자들이 “방어를 위해 언덕 위에 높은 뚝을 싸았던 현상에서 한국어 “싸워라. 싸우다,쌓다, 둘러 싸다, 봇쌈” 하는 낱말이 나타났다.
전국시대 공격이 아닌 수비를 위주로한 학파를 묵가(墨家)라 했다.
넓을 박(博 바,bo)의 어음에는 “앞에서 휫불을 들고가는 사람” 백익 (伯益) 을 뜻하고, 둑은 뚝섬 (纛島)의 어원에서 나타난 이름이다. 치우천왕의 출사표를 뜻한 “둑 독, 둑 도, 기 독(纛) 어음 둑기(纛旗) 에서” 나왔다.
이 글자를 이아 역언 (爾雅 釋言)에서는 백익을 뜻한 글자 “둑은 이(翳yì 益)야 纛,翳也”라고 했다.
천독(東海之內,北海之隅,有國名曰朝鮮,天毒,其人水居,偎人愛人)이 다스리는 고을 (縣, 영역)을 뜻해 만든 깃발이 둑기(纛旗)란 글자다. 치우(蚩尤)천왕은 단군왕검 백익 이후에 나타난 구려(九黎)의 지도자다. 그가 싸운 탁록(戰涿鹿)이 금미달 영역이다.
한국 바둑 애호가들의 바둑 어원 설명에는 여러 설이 있다. [9]
한국 고유의 순장바둑의 [배석(排石)에서 비롯된 말이 바둑이라는 학설, 밭(田) + 돌(石)에서 ‘바독’ → ‘바돌’이 됐다.]는 학설이 있다.
찾고 찾고 또 차다 보니, 박(博 바,bo) 이기(伊耆)라 (nail down)는 어음의 출현 장소를 밝힌, 밭뚝이 바둑 놀이의 어원이다. 단군왕검 백익의 뒤를 이은 [마지막 단군이 금미달을 떠나던 (go, departure) 전국시대에 순장 바둑이란 이름]이 나타났다. 고려 가요 가시리의 주인공인 가야국 가실왕이 살던 시대와 장소에서 나타났다. 즉 맹자가 살던 전국시대 [산서성 대현 오대산 일대] 금미달 (今彌達)이 중원세력에 둘어 싸이던 (圍) 시절에 옛적 부터 전해 오던 바둑 놀이, 박이(博弈)기에 현제 쓰는 위기 (圍棋 囲棋)란 상형글자를 붙여 오늘까지 쓰고 있다.
떠날이(離)자는 갈 행(行) 갈 거(去 )자와 같은 뜻이다. 사마천의 조부가 금미달 (중산국) 에 제상(相中山)으로 일 했었다. 여러 지역으로 흐터져 살면서 때로는 이름자를 바꾸었다. [10] 가야국가실왕이 떠났던 행사를 사마천은 수유이예 (須臾離禮), 수유지악 (須臾離樂)이란 문구를 남겼다.
미륵의 미(彌) 자는 큰 활을 든 사람이란 상형자로 유목민이었던 동이의 지도자를 칭한 글자다. 단군왕검 백익을 뜻해 “彌:益也,長也,久也” 하는 풀이가 있다. 계사(繫辭) 에 미륜천지지도 (彌綸天地之道)란 문구가 있다. 홍범구주 이윤유서를 여러글자로 부꾸었듯이, 이윤 (彝倫)을 미륜 (彌綸) 으로 바꾸었다. [11] 그 시대에 원시불교가 백익의 후손(彌:益也)이 살던 금미달에 들어와 궁홀산(弓忽山) 요새에 살던 지도자를 미륵(彌勒) 또는 아왕(鵝 雁王)이라 했다. 두루미(彌. red-crowned crane)를 거위(雁) 또는 기러기(鵝, wild goose)로 바꾸었다. 그를 수유 (須臾, 이무기)라 했다. 위기십결(圍棋十訣)에는 수유 (須臾)를 뜻한 사자성어가 있다. 이무기가 움직이면 응하라, 위급하면 이무기는 버린다.
아왕(鵝王)이란 가아(鴚鵝 鴐鵝 가다, go, departure)왕을 간략한 글자다. 고유국이라고도 하던 가야국 가실왕을 가아왕 이라 했다. 그가 살던 궁홀산 (弓忽山) 금미달 (今彌達)이 위기(圍棋, 囲棋)란 글자의 발원지이다. 전국시대 만든 이름을 소급하여 요조위기 (堯造圍棋)라 했다.
포위 당했던 지역 (圍棋, 囲棋) 에 살던 사람들이 금미달을 떠나 해안으로 내려와 신라 시조 궁예(弓裔), 박 혁거세 거서간 (號居西干)하는 문구가 신라 본기 첫줄에 실렸다. 그일대에 신라 임나가라 (新羅任那加羅)와 백제 미추홀(彌鄒忽) 비미호(卑彌呼) 비미국(卑彌國)하는 이름들이 나타났다. 부여의 후손이 동남아 해안 4000 여리에 걸쳐 신미 제국 (新彌諸國) 20여 국을 이루었고, 백제22담로(擔魯)가 나타났다.
백제 담로(簷魯)가 동남아에:
부여씨가 세운 대륙 백제는 22 담로(二十二簷魯)가 있었다. 지나 (支那) 라고 부르던 동남아 해안에 있던 항구 도시를 백제 왕실의 자제가 다스렸다는 뜻이다. 노나라는 번인 (魯國蕃人), 즉 미개한 유라시아 유목민 말갈(靺鞨)족, 이 산동반도에 살았었다.
중산국에 담자(詹子)가 있었다. 금미달 중산국 사람들이 산동성으로 내려와 대만섬(Formosa)에 살았다. 백제 부용국 탐모라국(𨈭牟羅國)이 있었다.
백제는 동남아 여러곳에 담로(簷魯)를 두었다. 담 또는탐(簷𨈭)이라고
읽는 글자는 우리 말에[귀는 절벽 같다]란 표현의 사음자다.
백제의 수도가 있던 노魯나라의 언어를 이해 못하는 귀머거리 같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 뜻이 담로(簷魯, 擔魯)란 글자다. [12] 왜인전 어라(於羅)를 중앙 아시아에서 쓰던 하언(夏言) 이라 했다.[13] 삼국지 왜인전은 해양권을 장악 했던 부여씨의 선조가 중앙 아시아를 거쳐 동남아 해안에 이르렀던 방대한 지역을 기술 했다. 배를 타고 일년을 가면 (船行一年) 벌거숭이들이 사는 나라란 뜻의 유나국 (有裸國)과 흑치국 (黑齒國)이 있다. [14] 이는 진수가 직접 들은 예기를 기록 했다. 당시 동남아에 백제 담로 (簷魯)가 있었다. 그 하나가 팔타안성 (바다안: 八打雁省, bādǎ-an] Batangas)이다. 그곳 에서 항해의 필수품인 튼튼한 밧줄 마닐라 로프(Manila, May-ni-La, 摩尼羅亶)를 구했다. 단(亶; bundle)자는 “파 두단에 십원”에서와 같은 뜻의 음을 가차한 들자다.
필리핀마닐라(Manila Bay, Luzon Island呂宋島)란 상형 글자는 송(宋) 나라때 동남아 지나 (支那, cina) 영역 에서 찾은 여러섬“chain of Islands” 이란 뜻이다. [15] 그 당시 동남아 전역에 흐터져 나갔던 부여씨의 후손들이 찾았다는 뜻이 글자에 있다. 팔타안성(八打雁省, Batangas) 이란 글자는; “두드려 맞은 기러기 여덟마리, 기러기 바다, 바다안” 이란 뜻으로 풀이 된다. 기러기(雁)의 서식처는 바다가 아니라 호수다. 산서성 안문관 (雁門關)에 살던 [기러기 때(八雁)가 쉬어가던 곳]이란 뜻이 있다.
마니라단(摩尼羅亶)이란 글자는 마니산(摩尼山)에 정착 했던 마니가 퍼져나 갔다는 뜻이 있다. 오늘의 마닐라 배이(Manila Bay, Luzon)가 백제담로(擔魯)의 하나였다. 이주와 단주 (夷洲及亶洲)원주민으로 부터 [그들은 불사초를 구하러 갔던 사람들의 후손] 이란 예기를 삼국지에 남겼다. [16] 이주(夷洲)는 대만섬(Formosa)으로 판명 되었지만 단주 (亶洲) 가 어디인지는 알려 지지 않았다. 필리핀 마닐라 일대를 단주라 했다.
가라해(加羅希sea)가 진라(真臘. 占臘[Zhēnlà, Chenla])라고 부르던 크매르의 남쪽에 있었다.[17] 그 해협에 있던 항구를 싱가포르(Singapore, 加羅浦口: 昔南海僧伽羅國王清旦)라 했다.
백제는 이렇게 동남아 여러곳에 담로(簷魯)를 두고 있었다. 고조선 마지막 수도 금미달 (今彌達)에 살던 사람들이 해안을 따라 내려 와서 4000여리에 흐터져 새로 20여국을 세우고 살았다. 이를 장화는 신미제국(新彌諸國) 이라 했고, 그 양서와 북사에는 왜왕이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6국 (新羅、任那、伽羅、秦韓、慕韓六國)을 다스렸다고 했다.
순장 바둑: 공자가 살던 시대에 벌써 바둑 놀이가 있었다. 북쪽 고조선 땅에 여러 군웅이 나타났다. 이들을 어떻게 포섭하여 자기편을 만들어 관활 영역에 둑기 (纛旗)를 달았다. 바둑에서 따고 따기가 번복 되는 분기점을 “패” 라 한다. 춘추오패란 패(覇)자와 어음이 같다. 전승기(纛旗)를 달았던 곳에 말뚝이나 돌을 박아 밭뚝을 만들었다.
황해를 건너 한반도에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 불승 도림(道琳)을 만나 바둑을 즐겼다 (百濟王近蓋婁好博●/博奕)는 기록이 있고, 신라 고분에서는 많은 량의 바둑돌이 발굴 되었다. 일본이 탄생하기 전이다. 삼국 사기에 실린 바둑 (博奕)은 삼한땅에 전해오던 전통 순장바둑을 뚯했다.
순장 바둑의 승패: 순장(殉葬)을 음이 같은 순장(巡將)이로 바꾼 한국 고유의 바둑이름이 나타났다. 잡은 포로를 그들의 고향에 돌려 보내 주군과 같이 묻힌 순장(殉葬)풍속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금미달을 진(秦) 나라 장군 백기 (白起; ? ~ 기원전 257년)가 점령 했다. 항복한 조나라 군사 40만 명을 생매장 시켰던 역사적 사실에서 유래 했다고 본다. [18]
쌍간하(桑干河)가 흐르는 금미달에서 나타난 부여(扶餘)와 가라(加羅)에는 순장(殉葬) 풍속이 있었다. 삼가분진(三家分晋)이후 금미달 지역에 많은 군웅들이 나타났던 전국시대 말기의 역사가 순장바둑에 있다.
치수 사업 말기에 크게 싸웠던 전쟁을 대전 우감 또는 어감(大戰于甘. 於甘) 이라 했다. 우(于)자 어조사로 풀이 하여 감(甘)자를 장소로 풀이 한다. 잘못이다. 전감우(戰于甘)의 우(于)자에 높은 지역”에서 싸웠다는 뜻이다. 글자 풀이에서 “감 주기음, 숙야 (甘酒嗜音, 熟也)” 라 했다. [19] 우의 아들 개(啟)와 단군왕검 백익의 지지세력이 크게 싸워 사람을 많이 죽였다 (주기다, kill)는 뜻으로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지도를 고려 하면 이기씨가 살던 양산 일대 강폭이 좁은 대목 (于大穆)이였다.
혁혁 양산(奕奕梁山)이란, 전쟁에서 수비를 해기 위해 백익이 우를 시켜 치수 사업 (維禹甸之)을 하던 양산 일대에 백익 세력이 성을 쌓았다. 그곳에서 큰 전쟁이 있었다. 우의 지지 세력이 이겨 달감(甘)자가 나타났다. 단(sweet)술 이라고도 부르는 감주(甘酒)란 낱말이 나타났다.
상서와 죽서기년에는 감(甘)자 앞에 우(于)자를 썼다. 높은 지역에 방어선 (山城)을 만들었다는 뜻으로 풀이 할수 있다.
사장혁혁(四牡奕奕)이란 말 네마리가 끄는 수래가 경주를 하듯 빨리 뛰었다는 뜻이다. 백익을 “이기씨” 란 어음이 오늘도 운동 경기에서 쓰고 있는 “이겨라 이겨라” 로 남아 있다.
그때 그곳에서 “싸다. 쌓다. 싸우다, 싸움, 쌈” 이란 낱말이 나타났다. 경계선이 되는 밭(甸) 뚝 (boundary wall)에 확고한 표시로 돌을 밖아 놓는 승패를 다루는 놀이가 바둑이다. 밭뚝/둑이 바둑의 어원이라 추리 된다.
Ps: [이를 송서에는 왜 백제 신라 임나가라 진한 변한 “倭百濟新羅 任那加羅 秦韓慕韓” 일곱 나라는 왜왕이 다스렸다고 했다. 삼한 중에 변한(弁韓)이란 글자는 없다. 변한 사람들을 왜 백제(倭 百濟)라고 했다. 중원을 석권했던 삼한의 후손들이 남북조시대 말기에 수나라가 중원을 통일하던 시기에 대만섬을 거쳐 한해의 동쪽으로 옮겨 왔다. 수서에는 [백제 가야 신라가 왜 倭 를 강국으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끝
[1].論語 陽貨: 子曰:「飽食終日,無所用心,難矣哉!不有博弈者乎?為之猶賢乎已。」 博,《說文》作簙𢩁, 戲也, 六箸十二棊也。古者鳥曾作簙。圍棊謂之奕。《說文》弈從廾,言竦兩手而執之。棊者所執之子,以子圍而相殺, 故謂之圍棊。圍棊稱弈者,又取其落弈之義也孟子 離婁下:博弈好飲酒,不顧父母之養,二不孝也. 道家文始真經: 關尹子曰:「習射、習御、習琴、習奕、終無一事可以一息得者。惟道無形無方,故可得之于一息。」
[2].康熙字典: 棋(棊棋 碁)者,所執之子,以子圍而相殺,故謂之圍棋。沈氏云:圍棋稱弈,取落弈之義也. 詩經 韓奕: 奕奕梁山、維禹甸之、 有倬其道。韓侯受命、 王親命之、纘戎祖考。四牡奕奕、孔脩且張。 孔叢子 廣服、 棊局,謂之奕《爾雅·釋訓》奕奕,憂也. 焦氏易林 豫之: 剝:野鳶山鵲,奕棊六博;三梟四散,主人勝客.
[3]. 說文解字: 奕:大也。从大亦聲。《詩》曰:「奕奕梁山。」. 弈:圍棊也。从廾亦聲。《論語》曰:「不有博弈者乎!」 爾雅 釋詁:夏,幠,厖,墳,嘏,丕,弈,洪,誕,戎,駿,假,京,碩,濯,訏,宇,穹,壬,路,淫,甫,景,廢,壯,冢,簡,箌,昄、晊,將,業,席,大也. 爾雅 釋訓: 殷殷,惸惸,忉忉,慱慱,欽欽,京京, 忡忡,惙惙, 怲怲,弈弈,憂也, 詩經 頍弁: 未見君子、憂心弈弈. 毛詩正義 檢索 “頍弁”: 故《頍弁》諸公刺王不能 燕樂同姓, 而經曰:「豈伊異人,兄弟甥舅。」是也. 正義曰:作《頍弁》詩者,時同姓之諸公刺幽王也。
[4].康熙字典: 險:音獫。《說文》阻難也。《玉篇》高也,危也。《易·屯卦》動乎險中。《坎卦》習坎,重險也。《又》天險不可升也,地險山川丘陵也,王公設險,以守其國,險之時用大矣哉。焦氏易林: 坎:恆山浦壽,高邑所在。 陰氣下淋, 洪水不處,牢人開戶. 《說文》水出河東東垣王屋山
[5].康熙字典: 于: 通“於(3.2)” yú ㄩˊ: 介詞,相當於“從”、“到”。 Preposition: from or to.。通“於(3.3)” yú ㄩˊ: 介詞,相當於“比”. 詩經 韓奕: 韓侯入覲、以其介圭、入覲于王. 韓侯出祖、出宿于屠. 詩經 卷阿: 鳳凰于飛、翽翽其羽、亦傅于天.
[6]. 康熙字典 : 䳗 䳘 鵝: 野曰雁,家曰鵝 《世本》伯益作井。《汲冡周書》黃帝作井. , 鵝:《說文》曰:鴚鵝也. 鴐鵝 環其城邑曰圍. e圍 囲 같은 뜻과 음이 같다.鴚鵝也。長脰善鳴,峩首似傲,故曰鵝。《爾雅·釋鳥》舒雁,鵝。
[7]. 論衡 正說: 禹之時,得《洛書》,《書》從洛水中出,《洪範》九章是也。水經注 伊水: 《竹書紀年》曰:洛伯用與河伯馮夷鬬,蓋洛水之神也。
[8]. 三國志 倭人傳:臨兒國,浮屠經云其國王生浮屠。浮屠。父曰屑頭邪,母云莫邪。此國在天笁城中。 天笁又有神人,名沙律。昔漢哀帝元壽元年,博士弟子景盧受大月氏王使伊存口受浮屠經曰復立者其人也。浮屠所載與中國老子經相出入,蓋以為老子西出關,過西域之天笁、教胡。昔漢哀帝元壽元年,博士弟子景盧受大月氏王使伊存口受浮屠經曰復立者其人也. 通典 天竺:後漢通焉,即前漢時身毒國. 大夏國人曰:「吾賈人往身毒國市之。」即天竺也。或云摩伽陀,或云婆羅門。在蔥嶺之南,去月氏東南數千里,地方三萬餘里。其中分為五天竺.
[9]. 바둑의 어원/ 왜 ‘바둑’이라고 불렀을까. 바둑의 어원 https://m.blog.naver.com/shinc0503/220654008044
[10]. 史記 太史公自序: 司馬氏世典周史。惠襄之閒,司馬氏去周適晉。晉中軍隨會奔秦,而司馬氏入少梁. 自司馬氏去周適晉,分散,或在衛,或在趙,或在秦。其在衛者,相中山。在趙者,以傳劍論顯。在秦者名錯,與張儀爭論,於是惠王使錯將伐蜀,遂拔,因而守之。錯孫靳,事武安君白起。而少梁更名曰夏陽
[11]. 周易 繫辭上: 易與天地準,故能彌綸天地之道。仰以觀於天文,俯以察於地理,是故知幽明之故。홍익 인간(弘益人間)과 홍범구주 (洪範九疇) « Lee Mosol’s Book Collection (ancienthistoryofkorea.com)
[12]. 十六國春秋: 太初五年春三月萇攻陷新羅堡扶風太守齊益男棄郡 車師前部王 皆來朝堅引見于太極前殿大宛獻汗血馬肅愼 貢楛矢天竺獻火浣布羌抑摩獻羊六角二口四角八口新羅國獻美女國在百濟東 其人多美髪髪長丈餘. 晉書 萇攻陷新羅堡。 萇撫風太守 齊益男奔登。晉安郡太康三年置。原豐新羅宛平同安候官羅江晉安溫麻. 晉安郡 – 维基百科,自由的百科全书 (wikipedia.org)
[13].三國志 衞臻傳: 開拔奇之津. 三國志 孫策傳: 高岱 其友士拔奇,取於未顯,所友八人,皆世之英偉也
通典百濟:土著地多下濕,率皆山居。其都理建居拔城。王號「於羅瑕」,百姓呼為「讹吉支」,讹音乾。夏言並王也。王妻號「於陸」,夏言妃也。 太平御覽 百濟: 百濟國王姓夫餘氏,號於羅瑕,百姓呼為鞬吉支,夏言并王也.
[14].三國志 倭人傳: 女王國東渡海千餘里,復有國,皆倭種。又有侏儒國在其南,人長三四尺,去女王四千餘里。 又有裸國、黑齒國復在其東南,船行一年可至。參問倭地,絕在海中洲島之上,或絕或連,周旋可五千餘里。
[15].三國志 倭人傳: 女王國東渡海千餘里,復有國,皆倭種。 Luzon – Wikipedia. Batangas – Wikipedia
[16].三國志 陸遜傳: 遣將軍衞溫、諸葛直將甲士萬人浮海求夷洲及亶洲。亶洲在海中,長老傳言秦始皇帝 遣方士徐福將童男童女數千人入海,求蓬萊神山及仙藥,한해 따라 二萬里-5: 누가 언제 한해를 처음으로 건넜나-보충: « Lee Mosol’s Book Collection (ancienthistoryofkorea.com)。
[17]. 宋史 : 真臘國亦名占臘,其國在占城之南,東際海,西接蒲甘,南抵加羅希。其縣鎮風俗同占城, 地方七千餘里。加羅希:【加羅希】(Grahi)古地名。 故址一般以為在今泰國南部馬來半 -百科知識中文網
[18]. 백기 (진나라)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易與天地準,故能彌綸天地之道。仰以觀於天文,俯以察於地理,是故知幽明之故。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精氣為物,遊魂為變,是故知鬼神之情狀。與天地相似,故不違。知周乎萬物,而道濟天下,故不過。旁行而不流,樂天知命,故不懮。安土敦乎仁,故能愛。範圍天地之化而不過,曲成萬物而不遺,通乎晝夜之道而知.
[19]. 尚書 夏書 甘誓: 啟與有扈戰于甘之野,作《甘誓》. 大戰于甘. 史記·夏本紀: 有扈氏不服,啟伐之,大戰於甘.竹書紀年 帝啟: 費侯伯益出就國。王帥師伐有扈,大戰于甘. 《書·五子之歌》甘酒嗜音。又熟也. 甘酒1감주
2/11/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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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omac Forum 2025/02
바둑(圍碁. Go)의 시원(始原): 시대와 장소.
한반도에서만 위기(圍棋 囲棋, 行く, go, departure)를 바둑이라 한다.
중원 기록에는 요임금(堯造圍棋)이 창안 하여, 그의 아들 단주 (丹朱)가 즐겼다고 한다. 아니다. 글자와 언어에 그 사연이 있다.
바둑을 중원에서는 여러 글자로 기록 했었다. 맹자 이루하에 불효의 하나로 박혁 호 음주(博弈好飲酒) 이란 문구가 있다. 박혁은 내기바둑을 뜻했다.[18] 도가문시진경에는 [활쏘기, 현악기, 바둑은 아무리 연습해도 똑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에“習射, 習琴, 習奕”란 문구가 있다. [19] 혁(弈)자를 꼴이 비슷한 글자 이(奕 yi)자로 바꾸었다. 바꾼 글자가 시경 한혁에 있다. 박혁(博弈) 이란 내기 바둑을 뜻한 글자다.
Shanxi山西省China
한혁에 혁혁(奕奕) 양산(梁山) 유우순지 (維禹甸之、有倬其道) 라, 한후의 선조가 경작 (甸) 하던 곳이라 했다. 한후의 선조는 우(禹)의 아버지 절룸발이 기(夔) 같이 산해경 초안을 만들어 치수사업을 관장하던 백익 이다. [20] 양산 가까운 곳에 이수(伊水) 또는 낙수(洛水)라는 작은 여울이 있다. 그곳에 살았다 하여 그를 이기씨 (伊耆氏)라 했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사천성 (四川省, 익주益州)를 지나 운남성에 정착 했다.던 마을 삼한의 선조들이 사는 영역이였다. 이곳 노인들이 인도 동북부 히말리아 산속에 이르러 원시 불교가 나타났다. 원시 불교 전래에서 설명 했다.
불교나라 티베트 바둑은 한국 전총 순장바둑 같이 바둑 돌을 여럿 놓고 시작 한다.
바둑의 어원 설명에는 여러 설이 있다.
한국 고유의 순장바둑의 [배석(排石)에서 비롯된 말이 바둑이라는 학설, 밭(田) + 돌(石)에서 ‘바독’ → ‘바돌’이 됐다.]는 학설이 있다.
바둑의 “바”는 “앞에서 휫불을 들고가는 사람”백익을 뜻하고, 둑은 뚝섬 (纛島)의 어원에서 나타난 이름이다. 치우천왕의 출사표를 뜻한 “둑 독, 둑 도, 기 독(纛) 어음 둑기(纛旗)> 에서 나왔다. 이 글자를 이아 역언 (爾雅 釋言)에서는 백익을 뜻한 글자 “둑은 이(翳yì 益)야 纛,翳也”라고 했다.
천독(東海之內,北海之隅,有國名曰朝鮮,天毒,其人水居,偎人愛人)이 다스리는 고을 (縣, 영역)을 뜻해 만든 깃발이 둑기(纛旗)란 글자다. 치우천왕은 단군왕검 백익 이후에 나타난 지도자다. 백익이 우물을 만들어 마을이 나타났다는 곳을 포위 했다는 뜻글자가 위기 (囲棋)다. 기(棋)자는 고조선 변한 사람들이 쓰던 모자(亓即弁之隸變)를 뜻한 글자라 한다. [21]
여러모로 살펴펴 보면, 바둑 이란 돌로 쌓은 [밭 뚝]이 바둑의 어원이다.
찾고 찾고 또 차다 보니, 바둑놀이는 단군왕검 백익의 뒤를 이은 [마지막 단군이 금미달을 떠나던 (go, departure)전국시대에 바둑이란 이름]이 나타났다. 고려 가요 가시리의 주인공인 가야국 가실왕이 살던 시대와 장소, 즉 맹자가 살던 전국시대 금미달 (今彌達)에서 나타났다.
금미달 (今彌達) 영역
떠날이(離)자는 갈 행(行) 갈 거(去 )자와 같은 뜻이다. 사마천의 조부가 금미달 (중산국) 에 있었다. 가야국 (금미달 고유국) 가실왕이 떠났던 행사를 사마천은 수유이예 (須臾離禮), 수유지악(須臾離樂)이란 문구를 남겼다.
그 시대에 천독국 도술인 시라 (道術人名尸羅) 가 금미달 연도(燕都)에 들어와 궁홀산 (弓忽山) 요새에 살던 지도자를 미륵(彌勒) 또는 아왕(鵝 雁王)을 수유라 했다. [22] 아왕(鵝王)이란 가아(鴚鵝 鴐鵝 가다, go departure)왕을 간략한 글자다.
고유국이라고도 하던 가야국 가실왕을 가아왕 이라 했다. 그가 살던 궁홀산(弓忽山) 금미달 (今彌達)이 바둑(圍棋, go )의 발원지이다.
야생 기러기( wild geese) 와 같은 종류의 물 새를 거위 아(鵝: domestic goose)라 한다. 거위란 “갈 거去 높을 위魏”의 사음자다. 높을 “위魏 가” 살던 곳을 “음이 같은 에워쌀 위圍 囲 자”로 썼다. 그 곳을 고유라 했다. 북쪽 고유(高柳-檉)에 살던 신선(仙) 같은 사람(Buddhist nun)이란 뜻에 큰고니 (swan, (高尼?.白鳥, 天鵝)곤(鵠)이라는 새 이름이 나타 난듯 하다.
금미달을 떠나 해안으로 내려와 신라 시조 궁예(弓裔), 박 혁거세 거서간 (號居西干)하는 문구가 신라 본기 첫줄에 실렸다. 그일대에 신라 임나가라 (新羅任那加羅)와 백제 미추홀(彌鄒忽) 비미호(卑彌呼) 비미국(卑彌國)하는 이름들이 나타났다.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 불승 도림(道琳)을 만나 바둑을 즐겼다 (百濟王近蓋婁好博●/博奕)는 기록이 있고, 신라 고분에서는 많은 량의 바둑돌이 발굴 되었다. 일본이 탄생하기 전이다. 삼한땅에 전해오던 전통바둑을 뚯했다.
순장 바둑: 옛부터 전해오던 한국 특유의 바둑이다. 여덟 곳에 군웅이 있었다. 이들을 어떻게 포섭하여 자기편을 만들어 관활 영역이 가장 넓은 패(覇)자가 되어 둑기(纛旗)를 달았다.
순장(順丈)바둑 승패: 순장(殉葬)을 음이 같은 순(順)장으로 바꾼 한국 고유의 바둑 이름이다. 잡은 포로를 그들의 고향에 돌려 보내 영역이 줄어 든다. 주군이 경작 (甸) 하던 땅에 묻힌 (殉葬)풍속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금미달을 진(秦) 나라 장군 백기 (白起; ? ~ 기원전 257년)가 점령 했다. 치우와의 전쟁(蚩尤之亂)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장평 대전 (長平大戰) 에서 항복한 조(趙)나라 군사 40만 명을 조나라 땅(甸)에 생매장 (四十餘萬皆阬)시켰던 역사적 사실에서 유래 했다고 본다. [23]
쌍간하(桑干河)가 흐르는 금미달에서 나타난 부여(扶餘)와 가라(加羅)에 순장(殉葬) 풍속이 있었다. 삼가분진(三家分晋)이후 금미달 지역에 많은 군웅들이 싸우던 전국시대 말기에 순장바둑이란 이름이 나타났다.
고유국이라고도 하던 가야국 가실왕을 가아왕 이라 했다. 그가 살던 궁홀산(弓忽山) 금미달 (今彌達)이 바둑(圍棋, go )의 발원지이다.
야생 기러기( wild geese) 와 같은 종류의 물 새를 거위 아(鵝: domestic goose)라 한다. 거위란 “갈 거去 높을 위魏”의 사음자다. 높을 “위魏 가” 살던 곳을 “음이 같은 에워쌀 위圍 囲 자”로 썼다. 그 곳을 고유라 했다. 북쪽 고유(高柳-檉)에 살던 신선(仙) 같은 사람(Buddhist nun)이란 뜻에 큰고니( whooper swan, 高尼?) 백조 즉 천아아 (白鳥, 天鵝兒)라는 새 이름이 나타 난듯 하다.
금미달을 떠나 해안으로 내려와 신라 시조 궁예(弓裔), 박 혁거세 거서간 (號居西干)하는 문구가 신라 본기 첫줄에 실렸다. 그일대에 신라 임나가라 (新羅任那加羅)와 백제 미추홀(彌鄒忽) 비미호(卑彌呼) 비미국(卑彌國)하는 이름들이 나타났다.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 불승 도림(道琳)을 만나 바둑을 즐겼다 (百濟王近蓋婁好博●/博奕)는 기록이 있고, 신라 고분에서는 많은 량의 바둑돌이 발굴 되었다. 일본이 탄생하기 전이다. 삼한땅에 전해오던 전통바둑을 뚯했다. 금미달에 있던 궁궐이란 뜻이 개루(蓋婁)란 글자다.
순장(順丈)바둑 승패: 순장(殉葬)을 음이 같은 순(順)장으로 바꾼 한국
쌍간하(桑干河)가 흐르는 금미달에서 나타난 부여(扶餘)와 가라(加羅)에 순장(殉葬) 풍속이 있었다. 바둑이란 이름은 삼가분진(三家分晋)이후 진양에서 금미달에 아른 지역에 많은 군웅들이 영토 확장을 계획 하던 시절에 나타났다.
전국시대 말기에 그 곳을 포위 했다 하여 위기(囲棋) 란 이름이, 그 곳에서 장열히 죽었다 하여 순장(殉葬)이란 형요사가 붙은 이름이 나타났다.
지도자가 살던 안문관(雁門關)을 떠나 갔다 하여 갈 거 갈 행 (行く, go, departure)이라고 기록 했다. 이를 그곳사람들이 쓰던 언어 개적어(蓋狄語; 옛적 한국어)로 거위라 했다.
일어로 편지를 안서(雁書)라고도 했다. 제가 어릴때 [쌔쌔세, 저기가는 저기러기 편지한장 써주세요. 하는 동요]가 있었다.
끝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