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부여의 어원과 발생지는 황하문명 발생지에서 나타났다고 여러번 설명 했다.[1] 산해경에는 호부여지국 (胡不與之國)이 실렸다. 서쪽에서 온 <오환족(烏孫, Scythian) 으로 그 일대에 살던 사람들과는 다른 떠돌이> 라는 뜻이다. 시경 조풍에 부유(蜉蝣) 편명이 있고, 순자에는 부유작시 (浮游作矢)라고 했다. 떠돌이 방랑자란 뜻이다. 이들이 단군왕검이 피살 당하자 분산되여 한부류는 북쪽으로 밀려 갔다. 남쪽으로 피해 갔던 사람들이 토속 신앙을 인도 동북쪽에 전하여 원시 불교가 나타났다. 원시 불교가 전국시대에 금미달 지역(燕都)에 들어 왔다. 그곳에서 신라의 초기 이름 시라(尸羅 斯羅)가 나타났다. [2] 금미달에 살던 단군이 아사달에 돌아가 산신이 되었다는 뜻에 미륵(彌勒)이라하고, 그 전 여러 단군은 전륜왕 (轉輪王,轉輪大王),또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라고 했다. [3]
My last book; Ancient Korean faith is the seed of Taoism and Primitive Buddhism stated that; [Buddhist monks searched their roots and arrived at the Gojoseon capital Geummidal(今彌達). They depicted the Dangun who became the mountain god as to Mireuk, replaced the symbol of noble bird crane, Mi(彌) to goose (鴈;yan) and named the strategic pass as Yanmen Pass (雁門關) during the warring States Period. The native faith traveled a long journey and came back to the birthplace as the Mireuk Bul(彌勒佛). Buddhist claim the king at the Yanmen Pass (鴈王) as metaphor of Buddha.]
현제 사용하는 부여(夫餘)란 글자는 사마천의 사기 평준서에 처음 나온다. 같은 부족을 진수는 (夫餘, 扶餘)란 두 다른 글자로 기록 했다. 부여왕의 후손이 고구려와 백제를 세웠다. 삼국사기에는 특히 백제와 가야 연맹체에 관한 기록에 의문이 많이 남아 있다. 온조의 형 비류가 발해만 연안 옛 대방 땅에 새웠다는 기록 뿐 그후 자세한 설명이 없다. 이름자를 보면 백제와 임나는 훈역이요, 신라와 가야는 불교와 관련된 음역 글자다.
중원에 있던 부여씨가 새운 나라는 북송 (北宋: 1007년 -1008년) 시대 편술된 광운에서 밝혔다. 또 다른 기원은 고조선 사람들이 중원을 석권 하던 시절 발조선시대(發朝鮮 時代; 桓公彌亂.今國彌亂)에 나타난 한선자 (韓宣子 韓起:?—기원전514 년) 후손이 부여씨의 기원이라 했다. 또한 금백제왕 부여씨 (今百濟王夫餘氏) 라 했다 .[4]
백과 사전 격인 Wikipedia에서는 후한서 동이전에 실린 내용과 한국 기록을 인용 하여 기원전 2 세기에 만주에서 나타나 한반도에서 소멸 되었다고 한다. 중원과 일본 열도에 존제 했던 부여씨가 세운 대륙백제와 열도백제는 기록 하지 않았다. [5]
되돌아 보니, 전국시대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였다는 순자(荀子 荀況, 기원전 298년? ~ 기원전 238년?)의 영욕(榮辱)편에 처음 실렸다. 허나 한국에서는 부여란 두 글자를 명사로 풀이하지 않았다. [6] 곽광(霍光)이 추천 하여 황제가 된 전한 선제 유순(漢 孝宣皇帝 劉詢,재위 : 기원전 73년 ~ 기원전 48년)의 이름과 비슷하다 하여 손황(孫況)이라고도 불렀다. 경칭으로 순경(荀卿 孫卿子)로도 불린다.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순자의 선조는 삼가분진 초기에 고조선 수도 금미달 (今彌達) 지역에서 나타났다. 순자는 어느 누구보다 시경 내용을 많이 인용 했다. 그가 인용한 시경 문구의 대부분은 현존하는 시경에 없다. 그가 풀이에 합당성이 약한 청출어람 (靑出於藍), 즉 [쪽에서 나온 물감이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문구를 남겼고, 우물안의 개구리 란 뜻의 정중지와 (井中之蛙)란 문구를 남겼다. 모두 금미달 지역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만든 문구다.
청출어람 (靑出於藍)이란 청구(靑/青丘)에서 나는 옥돌에 새(bird) 모양의 글자를 새겨 넣은 도장과 관계되는 람전벽 (藍田璧),즉 화씨벽(龢氏之璧 垂棘之璧) 의 출처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음이 같은 “영지현성 람산 令支縣之藍山”이라 했다. 또한, 중산국 대부(中山大夫) 람 (藍諸)여러 사람 이란 문구 설명에 있다. [7] 시경에 실린 三藍皆可作澱)는 삼감(三監, Three Leaders/ Hahn/Gahan, 三幹, 三韓,), 즉 세 지도자가 독립 하여 모두 물가에 자씨 재상(澱:滓滋也)이 어전을 만들었다. 석가모니를 자씨라 한다. 요서(遼西) 영지현에 고국국이 있었다. 불로초의 대명사 영지 버섯이란 명사의 출원지 에 고죽국이 있었다. 이 곳을 밝게 햇살이 비추는 산삼신(三神山)이라 했다.
필자가 최근에 “고조선 땅에 살던 예맥 (濊貊, 斯 )족이 히말라야 동쪽에 올라가 그들의 믿음(斯文, 斯道) 을 전포하여 원시불교가 나타났다. 불교 기록에는 고조선 역사가 실려 있다. 북쪽으로 피해 갔던 사람들이 만주 땅에 전해 오던 역사를 처음으로 기록으로 남겨 환단고기가 나타났다”는 논증한 내용을 존전부터 연구 했던 한중 문헌에 결부 시켜 보면 상고사의 진모 해석에 도움이 된다. 이러한 자료를 근거로 새로운 시각에서 의문 투성이 부여를 다루기로 한다. 북부여 (北夫餘)의 출원지는 금미달이다.
이곳 호타하 일대 삼국유사에는 <단군기(壇君記)내용을 인용하여 해부루와 주몽은 배다른 형제> 라고 했다 . 중국기록에는 고구려와 부여의 건국에 나오는 해모수 (解慕漱), 그의 아들 해부루(解夫婁), 그리고 금와(蛙, 蝸)란 이름이 없다 . 한서 지리지와 통전에 나온 개마(蓋馬: 蓋; gài gě hé音合; hé gě) 란 이름을 비교해 보면,부여와 고구려 시조에 나오는 해모수의 해모(解慕) 같은 뜻이 분명하다 . 수(漱)자는 도망을 간 지도자 (澣)란 뜻으로, 현토군에 있던 서개마현의 지도자로 도망갔던 사람이 해모수 (解慕漱)다 . 흑(黑; [hēi] hēi hè/흐어/해) 자 해(解)자가 모두 해(sun, sun-ray)를 사음한 글자(蓋音合)와 같은 사음자다. 고구려와 부여는 현토군에 있는 선비산(鮮卑山)으로 증명된 의무려산 (醫巫閭山)이 있던 곳에서 나타났다. 조양시 동쪽에서 북진시 서쪽에 있는 높은 산이다.
순자정론(荀子正論)에는 난세의 어려움을 다루면서<왕옥산 요새에 숨었던 사람이 어떻게 동쪽에 있는 낙원 땅을 알수 있겠느냐 면서,이를 우물안의 개구리 우화 (坎井之蛙,不可與語東海之樂)로 다루었다. 황하 문명의 발생지에서 요순임금이 양위(堯舜擅讓)를 했다. 그곳을 떠난 부족이 중산국(中山)에서 부유(扶柳)족을 흡수하여 호타하(滹沱河)연안에 제단(擅呼沱)을 쌓았다. 오손의 오(烏)자를 음이 같은 “호:呼, 乎,虖, 戶, 胡”자로도 기록 했다 . 호타(滹沱.呼沱)란 뜻은 <호(胡) 저 다른 사람(它)이 사는 땅>을 지나는 여울(沱)이란 뜻으로 예하(濊河)라고도 했다. 이를 치수(治水)라고도 불렀다. 쌍간하(桑乾河) 영정하(永定河)와 같이 발해만 천진(天津)을 지나는 해하(海河)의 지류 일대에 예맥국()이 있었다.
광운(廣韻)에는 설문해자에 실린 천지를 설명 했다. 산서성에 있는 단군조선의 발생지인 해지(解池)가 분명하다 .
단군이 아사달로 돌아 가고 세 지도자(桑乾)가 나타났다.
삼국유사에는 <단군기(壇君記)내용을 인용하여 해부루와 주몽은 배다른 형제> 라고 했다 . 중국기록에는 고구려와 부여의 건국에 나오는 해모수 (解慕漱), 그의 아들 해부루(解夫婁), 그리고 금와(蛙, 蝸)란 이름이 없다 . 한서 지리지와 통전에 나온 개마(蓋馬: 蓋; gài gě hé音合; hé gě) 란 이름을 비교해 보면,부여와 고구려 시조에 나오는 해모수의 해모(解慕) 같은 뜻이 분명하다 . 수(漱)자는 도망을 간 지도자 (澣)란 뜻으로, 현토군에 있던 서개마현의 지도자로 도망갔던 사람이 해모수 (解慕漱)다 . 흑(黑; [hēi] hēi hè/흐어/해) 자 해(解)자가 모두 해(sun, sun-ray)를 사음한 글자(蓋音合)와 같은 사음자다. 고구려와 부여는 현토군에 있는 선비산 (鮮卑山)으로 증명된 의무려산 (醫巫閭山)이 있던 곳에서 나타났다. 조양시 동쪽에서 북진시 서쪽에 있는 높은 산이라 한다. 산서성 분수 계곡 에서 려관을 쓰고 살던 단군무당이 성주회에 실렸다. [8] 청구에서 구미호를 바쳤다는 지역에 려관을 쓴 단군이 이끌던 부족을 남만주에 접 붙였다.
순자정론(荀子正論)에는 난세의 어려움을 다루면서<왕옥산 요새에 숨었던 사람이 어떻게 동쪽에 있는 낙원 땅을 알수 있겠느냐 면서,이를 우물안의 개구리 우화 (坎井之蛙,不可與語東海之樂)로 다루었다. 황하 문명의 발생지에서 요순임금이 양위(堯舜擅讓)를 했다. 그곳을 떠난 부족이 중산국(中山)에서 부유(扶柳)족을 흡수하여 호타하(滹沱河)연안에 제단(擅呼沱)을 쌓았다. 오손의 오(烏)자를 음이 같은 “호:呼, 乎,虖, 戶, 胡”자로도 기록 했다 . 호타(滹沱.呼沱)란 뜻은 <호(胡) 저 다른 사람(它)이 사는 땅>을 지나는 여울(沱)이란 뜻으로 예하(濊河)라고도 했다. 산서성에서 나와 천진을 관통하여 발해만으로 빠지는 해하 (海河)의 한 줄기다 .
타(它)자는 시경 홍명(鶴鳴)에 나오는 타산지석(它山之石)이란 타자에 물수변을 더한 글자다. 타(它: 宀:匕)자는 “他, 牠”와 같이 <저들 유목민> 이란 뜻으로 해지(解池)연안에 살턴 토착 민을 그린 합성 상형글자다 . 설문에 바다해(海)자를 천지(天池)라 했다 . 광운(廣韻)에는 설문해자에 실린 천지를 설명 했다. 산서성에 있는 단군조선의 발생지인 해지(解池)가 분명하다 . 호타하(滹沱河)는 치수(治水) 성수(聖水)라고도 불렀다. 쌍간하(桑乾河) 영정하(永定河)와 같이 발해만 천진(天津)을 지나는 해하(海河)의 지류다.
그 일대에 맥국이 있었다.이를 동부여라 했다. 이를 여러 글자로 표기 했다.
이 일대에 나타났던 현상을 후에 창해군이란 표제로 설명 합니다.
끝 August 5th, 2023
[1]. 梁書: 林邑、師子國各遣使獻方物. 師子國,天竺旁國也 徐州刺史王 仲德於彭城請外國伊葉波羅譯出雜心。去六年有師子國八尼至京.
[2]. 太平廣記 幻術一 天毒國道人: 燕昭王七年,沐骨之國來朝,則申毒國之一名也。有道術人名尸羅。問其年,云。百四十歲。荷錫持瓶,云。發其國五年,乃至燕都。喜衒惑之術。於其指端,出浮圖十層,高三尺,乃諸天神仙。巧麗特絕。列幢蓋鼓舞,繞塔而行,人皆長五六分,歌唱之音,如真人矣。尸羅歕水為雰霧。闇數里間。俄而復吹為疾風,雰霧皆止。又吹指上浮圖,漸入雲裏。又於左耳出青龍,右耳出白虎。直入於口內。復以手抑胷上。而聞衣袖之中,轟轟雷聲。更張口。則向見羽蓋螭鵠。相隨從口中而出。尸羅常坐日中,漸漸覺其形小,或化為老叟,或變為嬰兒,倏忽而死,香氣盈室,時有清風來,吹之更生,如向之形。呪術衒惑。神怪無窮。
[3]. 轉輪王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ctext.org):大唐西域記:釋梵窣堵波前。是蓮華色苾芻尼欲先見佛化作轉輪王處。如來自天宮還贍部洲也。時蘇部底唐言善現。舊曰須扶提。或曰須菩提。皆訛也宴坐石室.凈飯王太子捨轉輪王位。悲愍六趣苦行六年。證三菩提具一切智。是吾師也.
[4]. 廣韻: 餘:殘也,䞉也,皆也,饒也,又姓晉有餘頠又漢複姓三氏晉卿韓宣子之後有名餘子者奔於齊號韓餘氏又傳餘氏本自傅說說旣爲相其後有留於傅巖者因號傅餘氏秦亂自淸河入吳漢興還本郡餘不還者曰傅氏今吳郡有之風俗通云吳公子夫摡奔楚其子在國以夫餘爲氏今百濟王夫餘氏也。
[5]. 扶余国 – 维基百科,自由的百科全书 (wikipedia.org)
[6]. 荀子 榮辱:人之情,食欲有芻豢,衣欲有文繡,行欲有輿馬,又欲夫餘財蓄積之富也。
[7]. 藍:染靑草也。《詩·小雅》終朝采藍。《周禮·地官·掌染草註》染草藍、蒨,象斗之屬。《通志》藍三種:蓼藍染綠,大藍如芥染碧,槐藍如槐染靑。三藍皆可作澱,色成勝母,故曰靑出於藍而靑於藍。又《古今注》燕支,中國人謂之紅藍。又《說文》瓜苴也。又《酉陽雜俎》藍蛇,首有毒,尾能解毒,南人以首合藥,謂之藍藥。又鳥名。《爾雅·釋鳥》秋鳸,竊藍。《註》竊藍,靑色。又濫也。《大戴禮》文王官人,藍之以樂,以觀其不寧。又地名。《晉語》三卿宴于藍臺。又山名。《水經注》新河出令支縣之藍山。《杜甫詩》藍水遠從千㵎落。又《綱目集覽》伽藍,梵語,猶中華言衆園。《通志·氏族略》戰國時中山大夫藍諸。
[8]. 逸周書 王會解: 揚州禺,禺,魚名,解隃冠,發人。麃麃者,若鹿,迅走,俞人雖馬,青丘狐九尾,青丘狐九尾 北唐以閭,閭似隃冠。東北曰幽州,其山鎮曰醫無閭.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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