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서성 역사 진세가(晉世家):
세 쩻 장: 산서성 사람들이 한글 어순을 썼다:
필자는 동양역사 연구방법으로 “사서에 의존 하기보다는 글자 풀이(解字)와 시경
(詩經)에 무개를 두어야 한다. 한자(漢字)에는 동양 상고사가 숨어 있다”고 역설 한다. 한자(漢字, 韓字)에는 동양 상고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은 한학을 하신 분들은 다 알고 있다. 시경(詩經)을 모시(毛詩)라고도 한다. 그 내면에는 “소가 우는 소리, 馬/牟; móu mù mào” 라고 기록 되여 오던 기마유목민족 (騎馬遊牧民國家, The Eurasian Steppe)이 부르던 노래란 뜻이 있다. 목야 (牧野)전쟁터가 그러한 사람들이 살던 들판이란 뜻이다. 죽서기년(竹書紀年)에는 이곳을 무야(坶野)라고 했다. 마한(馬韓) 사람들이 살았다는 뜻이다. 저의 이와 같은 주장에 감명 했던가 아니면 그 전 부터 그렇게 생각 하셨든가는 분명치 않으나 시문을 보네 주시는 교수 한분이 버지니아에 사신다. 다음은 8월 7일에 받은 시문이다;
[내 마음의 韓詩 226] 處暑
處暑
蟬公勤演在虛空 / 선공근연재허공
眞綠平原穀波浪 / 진록평원곡파랑
淸凉微風載松香 / 청량미풍재송향
婉凊秋季已徠停 / 완청추계이래정
처서
매미의 노래는 허공에 걸려있고
푸르른 들판엔 곡식이 출렁출렁.
해맑은 실바람 솔향에 실려오니
서늘한 가을이 나몰래 다가왔나.
2017년 8월 6일
崇善齋에서
솔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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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후국 진(晉)나라는 단군조선 (壇君朝鮮) 사람들이 새운 나라:
그러한 증거가 사마천의 사기에 있다. 옛적에 산서성 사람들이 쓰던 말은 오늘 한국어와 어순이 같았다.
사마천은 산서성 지역을 돌아 보며 그곳 노인들을 만나 그 지역에 전해오던 구전을 그지역 사람들을 말을 그대로 사기에 남겼다.
1.진세가 (晉世家) 첫장 첫줄이 한국말 어순(Korean syntax)이다:
晉唐叔虞者,周武王子而成王弟。初,武王與叔虞母會時,夢天謂武王曰:「余命女生子,名虞,余與之唐。」及生子,文在其手曰「虞」,故遂因命之曰虞. 武王崩,成王立,唐有亂,周公誅滅唐。
맨 끝에는 강조법 표현이다; 하는 뜻이다.
노 나라(魯國) 목숙(穆叔)이 기원전 549년에 진(晉)나라를 찾아 갔던 장소에서, 실권자 범선자(范宣子)가 예기 했던 제후국 진(晉)의 먼 선조 도당씨(陶唐氏)를 주성왕 때에 주공 (周公)이 죽였다. 살인자를 주공단(周公旦) 또는 당숙(唐叔, 唐叔虞)이라 했다.
2.흉노열전 첫줄도 그렇다. 흉노는 우왕의 후손으로 한족 (漢族)을 피해 갔다.
匈奴,其先祖夏后氏之苗裔也,曰淳維。唐虞以上有山戎、獫狁、葷粥,居于北蠻,隨畜牧而轉移
3.산서성에서 기자 (箕子)에 관한 예기를 들었다. 그 대화에 기자가 한 말이 실려있다. 그문장 또한 한글 어순 이다.
且吾聞箕子見唐叔之初封,曰『其後必當大矣』,晉庸可滅乎!」
같은 내용을 춘추좌전(春秋 僖公十五年)에는 “當”자를 삭제했다: 且吾聞唐叔之封也,箕子曰,其後必大,晉其庸可冀乎,
하는 뜻이다.
4. 다음은 열선전 유백아 (列仙傳 幼伯子)의 첫 구절이다:
“幼伯子者,周蘇氏 客也。冬常著單衣,盛暑著襦,形貌穢異 ”
이 문구를 한글 어순으로 풀면; “유백자는 주 소씨의 객이였다. 겨울에도 늘 걸친 것은 홋옷(單衣) 뿐이요, 한창 더울 때도 걸친 것은 짧은 팔적삼어서 형모가 (그 곳에 살던 예맥)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랐다”하는 뜻이다.
끝, 다음에 계속.
August 29, 2017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