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서성 역사 진세가(晉世家):
첫 장: 부루무송백(附無松柏):
앞에서 중국 사료 속에서 는 논증을 했다. 퇴개(隤敳) 라고 부른 이름자에는 백익이 산서성 하동군에 살던 귀한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퇴성(穨城)이란 글자는 이란 뜻이라고 논증 했다 . 고조선의 핵심부 였던 산서성(晉)의 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한 내용이 공자 (孔子; ?기원전 551년 ~ 기원전 479년)님 살던시대가 되는 춘추좌전 양공 (襄公 二十四年; 기원전549)편에 잘 나와 있다 .
춘추오패의 두 쩨 진문공(晋文公, ? ∼ 기원전 628년) 이후 남쪽에 있던 초장왕(楚 莊王, ? ~ 기원전 591년) 이 세번 쩨 패자로 등장 한다. 양자강 일대에 있던 나라들이 급성장하여 북쪽으로 진출했다. 기원전 482년에는 중원의 맹주였던 진나라(晉)는 영향력을 잃게 되였다. 공자님 께서는 이러한 사회적 혼란을 개탄하여 노나라(魯)의 사관, 좌구명(左丘明;기원전 556년 ~ 기원전 451년)이 편찬한 기존의 역사서를 수정하여 좌씨춘추 (春秋左傳)를 집필했다. 춘추와 사기에는 진나라 역사 기록(晉世家)이 제일 길고, 사용한 글자 또한 은미하여 춘추필법이란 용어가 나타났다. 다음은 이 과도기에 나타났던 일화다.
노 나라(魯國) 목숙(穆叔, 叔孫 豹;?-前538年)이 기원전 549년에 중원의 최 강자였던 진(晉)나라를 찾아가, 실권자 범선자(范宣子,大叔, 士匄/匃: 前548年)
와 나눈 대화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있다:
찾아온 손님에게;입니까요? 하고 물었다. (외교적 대화라 꽈백이 표현이다. 하여) 손님으로 온 목숙이 즉각 대답을 하지 못하고 주춤 했다. 주인 범선자가 말 하기를
산서성에서 동양 최초로 왕중왕, 단군왕검이 조선(朝鮮)이라는 나라를 세우기 이전 부터 기원전549년 까지의 산서성 역사를 이렇게 간략해서 말했다. 나타난 이름은 뜻과 음을 뒤섞어 만들었다. 도당씨(陶唐氏)는 도자기를 급던 마을에서 불을 잘 다루던 무당 지도자(火正,火官) 당군 (唐, 壇)이란 뜻이다 . 어룡씨(御龍氏) 란 왕중왕이된 단군왕검을 등극(登極)했다는 뜻에서 그렇게 표현 했다. 상(商) 나라는 도당씨(陶唐氏)와 같이 상산(常山) 계곡 상구(商丘)에서 도자기를 급던 사람들이 떠러저 나와 작은 부족국가를 만들어 살다 피하여 태행 산맥을 너머 하북평원으로 나와 자라면서 고난을 많이 격었다. 산의 서쪽지역에서 활잘 쏘는 부족을 대려다 갑짜기 성장 했다. 상산 계곡에 있던 사람들과는 견원지간이였다 하여 돼지 때의 우두머리 란 뜻 글자가 시위씨(豕韋氏)다. 상나라 후반기에 <함곡관을 지나 옛 구주(九州)의 중심부로 들어가 서주를 세운 주족(周族)은 산서성 해지 연안의 원주민을 사기 기만 협박등 온갖수단을 다하여 평양(平陽, 平壤)을 빼았고 밀어 버렸다. 이 당시 상황이 주로 시경(詩經)에 나타났다. 시문에는 팔배나무 두(杜), 감당(甘棠), 해(sun, sun-ray)를 뜻하던 여러 사음자가 주 무왕의 제후국 연(燕)나라의 소공(召伯)과 관계가 있다고 했다. 산서에는 당자 두자(唐,杜)가 해지연안에서 분수를 따라 상산(常山, 恒山, 岱宗山)으로 이어지는 지역에 나타난다. 진나라가 지금 중원 (諸夏)의 맹주가 되여 질서를 바로잡고 암흙 세상을 밝혀주었다는 뜻에서 범/환 (范fàn, 법 범 範, 桓,丸)씨라 했다. 옛적에 상구(商丘; 商:金音度也, 張也,降也,常也)라고 하던 상산(常山, 恒山, 岱宗山) 일대에서 오환(烏桓, 烏丸; 烏亘)이 나타났다.
그 대화에서 대숙 함선자(大叔,范宣子)가 부루무송백 (部婁無松柏) 이란 문구를 썼다. 이 문구는 설문해자에 부루(附無松柏)라고 나왔었다. 강희자전에는 여기에 나타난 별이름 루(婁)자는 바꾸었다는 설명이 있다 . 수경주에는 고 했다 . 부루(附)는 부여 (扶餘,夫餘)의 또 다른 사음자다. 태평어람(太平御覽)에는 언덕 부 부루 (培塿)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
<설문해자에는 부루(附婁)를 작은 흙더미(小土山)라 했다. 좌전(左傳)에는 언덕 부/배루무송백(培塿無松柏)이라 했다. 양자 방언(方言)에 무덤 총(冢)을 함곡관 서쪽 지역에서는 부루(秦晉之間謂之培塿)라 한다. 묵자(墨子) 에 따르면, 부루 옆에는 송백이 자라 사람들이 옷을 벗어 걸어 놓고 식사도 했다. 집도 짖고 살다 죽었다. 새상 사람들이 그의 책임이 아니라고 했다 하여 어질 인(仁)이라 했다. 풍속통(風俗通)에는 부루(培塿)는 작은 언덕 부(阜)의 일종이다. 지금 산동에 있는 제나라와 노나라 중간 평지에 자그만 언덕(田中小高者)을 부루(培塿)라고 한다.
상나라 고종이 불함산(不咸山,,傅巖 )에서 죄수로 일하던 사람을 등용하여 상나라가 번창했다. 그 죄수가 부열(傅說)이고 그의 후손이 상나라 경기지역에 살았다. 그 마지막 인물이 상나라 피란민을 인솔하고 천진-당산일대 조선에 갔던 기자(箕子)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하여 위에 인용한 문장을 남겼다.
범씨(范氏, 範氏)는 밝다는 뜻 환/훤( [fàn/ faan6;])의 사음자다. 같은 뜻을 여러 글자(樊, 番, 繁, 桓, 丸,恒)로 실었었다. 공자님이 살던 시대에는 이 다스렸다. 이 지역을 아침 햇살이 곱게 비추어 준 땅이라 하여 조선(朝鮮)이라 했다 . 해지 연안에 흐르던 자그만 여울 이름들을 습수 열수 선수 (湿水、洌水、 汕水)라고 했다. 상서대전에는 조일선명(朝日鮮明), 동국여지 승람 (東国輿地勝覧) 에는 조광선려지(:朝光鮮麗地)라고 했다. 산서성 해지 연안이 단군조선의 발생지다.
끝, 다음에 계속.
August 28, 2017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