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삼 불로초 의 대명사 영지버섯
한글 위키에서 “푸를(靑)를 설명한 내용은 해지 연안에 살았던 휴자(攜, xié 子),즉 “𣫴, xié/시애/쉐”로 읽던 글자다. 그 후손이 분수 계곡을 따라 올라가서 살던 지역에 마지막 수도 금미달이 있었다. 그 지역 청구(靑丘) 에서 황제가 자부선인(紫府仙人)으로 부터 삼황내문 (三皇內文) 을 받았다.
청구(靑丘)란 글자는, 삼국사기에 “靑丘之表,靑丘道行軍” 실렸다. 고구려 멸망이후 안승을 책봉 하며 내린 문구에“우풍진 어청구 威風振於青丘, 즉 위풍이 청구에 떨쳤다”. 옛적 고구려 땅을 청구라 했다. 두 글자 사용의 한계가 모호하다. 답이 삼국 유사에 있다. 모두 청구 소문(青丘沙門) 또는 청구불(青丘佛)과 같이 청구란 어음의 기원을 불교와 관련 되었다. 홍산문화권에서 내려오는 통로, 금미달 지역에 불교가 전래 되어 “붉을 단자를 붙인 청구”를 불교국을 뜻한 달월자를 붙인 청구(青丘) 로 바꾸었다.
청구(靑丘)란 어미모(母)자를 붉을 단(丹) 또는 달월(月)자로 바꾸어 천독 (天毒)이 살던 구릉(丘陵), 즉 령구(靈丘)에 붙인 이름이다. 영지 (靈芝) 또는 단지 (丹芝) 라고도 부르는 불로장생 (不老長生)을 가져오는 영험한 버섯이 나는 곳이다.
영구현 (靈丘縣)은 산서성 동북부 대동시 일대, 옛적 전국시대에 조무령왕(武靈王) 이정벌 했던 중산국이 있던 곳이다.
중산국(中山國, 기원전 414년 ~ 기원전 296년)은 주나라 중엽 백적(白狄)의 선우부 (鮮虞部)라 하던 하북성 북쪽 산속에 있던 제후국이다. 상나라 시대 고죽국이 올라와 자리잡은 곳이다. 같은 지역이다.
현제 중국과 일본에서는 “青”으로, 한국에서는 “靑”자로 기록 한다. 북쪽 사람들이 내려가 세운 월남 역사서 (大越史記全書)에는삼국사기에서와 같이 “靑 青”두 글자로 기록 했다.
청진“青 真”두 글자는 불교 전래와 관계가 있다.
청나라 초기에 만든 강희자전은 모든 글자의 설명을 일획 상형자 여섯 “一丨丶丿乙亅”으로, 청자는 달월 변 청 “青” 자, 청부(青部) 에서 설명 했다. 시서경등 많은 고전에 는 “海岱惟靑州”와 같이 “靑” 로 기록 했었다. 고전에 상형자는 각자 제나름 대로 형태가 변해 갔다. 참 진 (真:同眞 俗字) 자가 그 한 본보기다. 삼국사기에는 이 두 글자(真 眞)를 혼용했다. 일연 스님은 모두 “青”와 한일 홱을 똑바로 그린 진(真)자로 적었다. 이 두 글자는 금미달 지역에 전래된 불교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
고전백과 “https://ctext.org/zh사전” 이라 판단되는 자서(字書)편에 글자 설명이 실려있다. 중국 한나라의 사유(史游)가 편찬한 급취편 (急就篇)에서 참 진(真 眞)자와 푸를청 (靑 青)자의 편형을 찾아 볼수 있다. 진(真; 眞의 俗字)자와 달월 변의 청 (青)자는 실리지 않았다. 또한 불교국이 되었던 원나라 때에 주백기 (周伯琦; 1298-1369) 가 편술한 육서정와(六書正譌) 에는 달월 변의 청 (青)자는 있고, 붉을 단 변 청 “靑”자와 참 진 “眞” 두 글자가 없다. 원나라때 편찬된 원사 (宋史) 또한 참진(真), 여진 (女真) 으로 기록 했다. 일홱부수 한일형을 곧게 그은 두 상형글자 “靑 真”가 처음에 북쪽 사람들이 만들어 쓰던 글자다. 이는 태어 났다(靑,生也)는 뜻으로 우키패디아에서 설명 했다. 강희 자전에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풀이 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음이 같은 “영지현성 람산 令支縣之藍山”이라 했다. 또한, 중산국 대부(中山大夫) 람 (藍諸)여러 사람이란 문구 설명에있다. [1] 시경에 실린 三藍皆可作澱)는 삼감(三監) 이 독립 하려 모두 물가에 자씨 재상(澱:滓滋也)이 어전을 만들었다. 석가모니를 자씨라 한다. 요서 영지현에 고국국이 있었다. 불로초의 대명사 영지 버섯이란 명사의 출원지에 고죽국이 있었다. 이 곳을 밝게 햇살이 비추는 산 삼신산이라 했다.
그러나 금미달 에서 흐터져나가 제국을 이루었던 나라의 역사서 요사 금사 글안국지(遼史 金史 契丹國志)에는 붉을 단 변 청(靑)는 었다. 모두 달월자 변 청주 (青州) 란 기록이 있다.
현제 사용 되는 한자(漢字)에는 뜻과 음이 같으나 글자 꼴이 다른 글자가 많이 있다. 산서성을 조선과 같은 뜻 글자 진 (晉)이라 했다. 그 곳 사람들을 노예로 썼다. 제후국 진의 별명을 성(省)란 뜻에 간략 해서 “省作, 俗作, 隸作. 今變隸作” 이라 했다. 변할 변,또는 바를 변 이라고 읽는 변예(變隸) 란 글자는, 변한(弁韓)지역 사람들을 뜻했다. 고조선 마지막 수도 금미달 지역을 변한이라 불렀다고 앞서 논증 했다. [2] 금미달 영역에서는 허진 (許愼:58 – c. 148 CE)이 활동하던 시절(今)에도 고유의 글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고전 “詩, 書, 春秋, 禮記, 論語” 에서 없을 무(無)자를 4획 “无”자로 사용했었다. 그 출처를 불가의 자서전 “釋典, 釋文”이라 했다. 신비한 약으로 알려진 약초가 산서성 중산국 즉 고죽국지역에서 나타났다.
[1].康熙字典: 藍:音籃。染靑草也。《詩·小雅》終朝采藍。三藍皆可作澱,色成勝母,故曰靑出於藍而靑於藍。爾雅·釋鳥》秋鳸,竊藍。《註》竊藍,靑色。又濫也。《水經注》新河出令支縣之藍山。《通志·氏族略》戰國時中山大夫藍諸。又通襤。
[2]. Lee Mosol :· Lee Mosol: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 Second Edition.2020 by Xlibri
불로초 신약의 대명사 영지버섯
한글 위키에서 “푸를(靑)를 설명한 내용은 해지 연안에 살았던 휴자(攜, xié 子),즉 “𣫴, xié/시애/쉐”로 읽던 글자다. 그 후손이 분수 계곡을 따라 올라가서 살던 지역에 마지막 수도 금미달이 있었다. 그 지역 청구(靑丘) 에서 황제가 자부선인(紫府仙人)으로 부터 삼황내문 (三皇內文) 을 받았다.
청구(靑丘)란 글자는, 삼국사기에 “靑丘之表,靑丘道行軍” 실렸다. 고구려 멸망이후 안승을 책봉 하며 내린 문구에“우풍진 어청구 威風振於青丘, 즉 위풍이 청구에 떨쳤다”. 옛적 고구려 땅을 청구라 했다. 두 글자 사용의 한계가 모호하다. 답이 삼국 유사에 있다. 모두 청구 소문(青丘沙門) 또는 청구불(青丘佛)과 같이 청구란 어음의 기원을 불교와 관련 되었다. 홍산문화권에서 내려오는 통로에 불교가 전래 되어 “붉을 단자를 붙인 청구”를 불교국을 뜻한 달월자를 붙인 청구(青丘) 로 바꾸었다.
현제 중국과 일본에서는 “青”으로, 한국에서는 “靑”자로 기록 한다. 북쪽 사람들이 내려가 세운 월남 역사서 (大越史記全書)에는삼국사기에서와 같이 “靑 青”두 글자로 기록 했다.
청진“青 真”두 글자는 불교 전래와 관계가 있다.
청나라 초기에 만든 강희자전은 모든 글자의 설명을 일획 상형자 여섯 “一丨丶丿乙亅”으로, 청자는 달월 변 청 “青” 자, 청부(青部) 에서 설명 했다. 시서경등 많은 고전에 는 “海岱惟靑州”와 같이 “靑” 로 기록 했었다. 고전에 상형자는 각자 제나름 대로 형태가 변해 갔다. 참 진 (真:同眞 俗字) 자가 그 한 본보기다. 삼국사기에는 이 두 글자(真 眞)를 혼용했다. 일연 스님은 모두 “青”와 한일 홱을 똑바로 그린 진(真)자로 적었다. 이 두 글자는 금미달 지역에 전래된 불교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
고전백과 “https://ctext.org/zh사전” 이라 판단되는 자서(字書)편에 글자 설명이 실려있다. 중국 한나라의 사유(史游)가 편찬한 급취편 (急就篇)에서 참 진(真 眞)자와 푸를청 (靑 青)자의 편형을 찾아 볼수 있다. 진(真; 眞의 俗字)자와 달월 변의 청 (青)자는 실리지 않았다. 또한 불교국이 되었던 원나라 때에 주백기 (周伯琦; 1298-1369) 가 편술한 육서정와(六書正譌) 에는 달월 변의 청 (青)자는 있고, 붉을 단 변 청 “靑”자와 참 진 “眞” 두 글자가 없다. 원나라때 편찬된 원사 (宋史) 또한 참진(真), 여진 (女真) 으로 기록 했다. 일홱부수 한일형을 곧게 그은 두 상형글자 “靑 真”가 처음에 북쪽 사람들이 만들어 쓰던 글자다. 이는 태어 났다(靑,生也)는 뜻으로 우키패디아에서 설명 했다. 강희 자전에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풀이 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음이 같은 “영지현성 람산 令支縣之藍山”이라 했다. 또한, 중산국 대부(中山大夫) 람 (藍諸)여러 사람이란 문구 설명에있다. [1] 시경에 실린 三藍皆可作澱)는 삼감(三監) 이 독립 하려 모두 물가에 자씨 재상(澱:滓滋也)이 어전을 만들었다. 석가모니를 자씨라 한다. 요서 영지현에 고국국이 있었다. 불로초의 대명사 영지 버섯이란 명사의 출원지에 고죽국이 있었다. 이 곳을 밝게 햇살이 비추는 산 삼신산이라 했다.
그러나 금미달 에서 흐터져나가 제국을 이루었던 나라의 역사서 요사 금사 글안국지(遼史 金史 契丹國志)에는 붉을 단 변 청(靑)는 었다. 모두 달월자 변 청주 (青州) 란 기록이 있다.
현제 사용 되는 한자(漢字)에는 뜻과 음이 같으나 글자 꼴이 다른 글자가 많이 있다. 산서성을 조선과 같은 뜻 글자 진 (晉)이라 했다. 그 곳 사람들을 노예로 썼다. 제후국 진의 별명을 성(省)란 뜻에 간략 해서 “省作, 俗作, 隸作. 今變隸作” 이라 했다. 변할 변,또는 바를 변 이라고 읽는 변예(變隸) 란 글자는, 변한(弁韓)지역 사람들을 뜻했다. 고조선 마지막 수도 금미달 지역을 변한이라 불렀다고 앞서 논증 했다. [2] 금미달 영역에서는 허진 (許愼:58 – c. 148 CE)이 활동하던 시절(今)에도 고유의 글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고전 “詩, 書, 春秋, 禮記, 論語” 에서 없을 무(無)자를 4획 “无”자로 사용했었다. 그 출처를 불가의 자서전 “釋典, 釋文”이라 했다.
May 50th 2023
[1].康熙字典: 藍:音籃。染靑草也。《詩·小雅》終朝采藍。三藍皆可作澱,色成勝母,故曰靑出於藍而靑於藍。爾雅·釋鳥》秋鳸,竊藍。《註》竊藍,靑色。又濫也。《水經注》新河出令支縣之藍山。《通志·氏族略》戰國時中山大夫藍諸。又通襤。
[2]. Lee Mosol :· Lee Mosol: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 Second Edition.2020 by Xlibris. P 212: 說文解字 : 凡廾之屬皆从廾。今變隸作廾. 庖犧所結繩以漁。从冂,下象网交文。凡网之屬皆从网。今經典變隸作䍏. 康熙字典 无部: 无:〔古文〕𠑶《唐韻》武夫切,音巫。《說文》𣞣,亡也。奇字,无通𣞣。王育說,天屈西北爲无。《易·乾卦》无咎。《釋文》无音無。易內皆作此字。《藝苑雄黃》无亦作亡。古皆用亡无,秦時始以蕃橆之橆爲有無之無。詩、書、春秋、禮記、論語本用无字,變篆者變爲無,惟易、周禮盡用无。然論語亡而爲有,我獨亡,諸無字,蓋變隸時誤讀爲存亡之亡,故不改也。又《廣韻》莫胡切,音模。南无,出《釋典》.
s. P 212: 說文解字 : 凡廾之屬皆从廾。今變隸作廾. 庖犧所結繩以漁。从冂,下象网交文。凡网之屬皆从网。今經典變隸作䍏. 康熙字典 无部: 无:〔古文〕𠑶《唐韻》武夫切,音巫。《說文》𣞣,亡也。奇字,无通𣞣。王育說,天屈西北爲无。《易·乾卦》无咎。《釋文》无音無。易內皆作此字。《藝苑雄黃》无亦作亡。古皆用亡无,秦時始以蕃橆之橆爲有無之無。詩、書、春秋、禮記、論語本用无字,變篆者變爲無,惟易、周禮盡用无。然論語亡而爲有,我獨亡,諸無字,蓋變隸時誤讀爲存亡之亡,故不改也。又《廣韻》莫胡切,音模。南无,出《釋典》.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