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瀚海)교역의 중심지 일지국(一支國)의 허가 (許家)는 여인숙:
진수가 일대국(一大國)이라고 한 일지국(一支國)은 대해국(對海國; 對馬島)보다 적지만 ( 400리:300리) 가호는 1,000호(千餘戶)의 3배가 되는 3,000허가 있다(有三千許家)고 했다. 오기(誤記, typo)인가 하여 살펴보니, 필사본 (scanned text)에도 허가 (許家)라고 적혔다. 무슨 뜻인가?
이 두 섬은 경작지가 부족하여 배를 타고 (乖船)다니면서 남북시적(南北巿糴)이라. 일지국(一支國)도 그렇다 (亦南北巿糴). 사들일 적 (糴)이라니 남북 어디에도 시장이 있을 만한 큰 지역이 없다. 뱃길로 멀리 가서 구해온다는 뜻이다. 허가 (許家)란 ;인듯 하다. 그렇다. 해상통로의 구심점이 되는 섬나라였다. 일지국(一支國)에서 뱃길로 (방향은 거론 않고) 1,000리를 가면(又渡一海) 말로국에 도착(末盧國)한다. 같은 남쪽 방향으로 간다는 뜻에서 방향을 밝히지 않았다고 본다. 그 곳 해안에 4,000여호가 운집해 산다. 초목이 무성하여 앞에 가는 사람을 볼수 없고, 바닷 물이 깊지 않아 모두 잠수하여 생선과 전복을 캔다 . 일지국보다 크다. 말로국에서 육지로 동남방 500리를 가면 이도국 (伊都國)에 이른다. 말로국(末盧國)은 노국(盧國)의 끝이란 뜻이니,일본 구주의 서북쪽 해안에 있던 도시국가가 분명하다. 오늘의 당진시(唐津市? Karatsu-shi) 일대가 된다. 노국(盧國)이란 이름은 삼국지 한전에는 7, 변진전에는 3곳에 실려 있다. 한서 서역전에는 융로국(戎盧國)이 있다. 왜인전에도 융로국(戎盧國)이 있다. 로국(盧國)은 흉노의 나라(奴國)란 뜻이다. 변진전과 왜인전에 노국(奴國)이란 이름이 여러 곳에 실렸다 . 삼한의 후예가 구주에 살았다는 증거 사료다.
말로국(末盧國)에서 육로를 따라 동남 방향으로 500리를 가면 이도국 (伊都國)에 이른다. 말로국(末盧國)이 오늘의 좌하현 (佐賀県, Saga Prefecture) 서북 쪽이니, 이도국 (伊都國)은 좌하시 또는 그에 이르는 어느 마을 이라고 추정 된다.
이도국 (伊都國)을 설명 했다: 천여호로 대를 이어가는 왕이 있지만(世有王) 모두 여왕국(皆統屬女王國)에 속한다. 그 곳에 군에서 사절단(郡使)이 와서 상주 한다. 수장을 이지(爾支;난지) 부수장을 설/예모고(泄謨觚) 라 한다.
이도국 (伊都國)에서 동남으로 100리를 가면 노국(奴國)이다. 노국을 설명 했다: 군장을 시마고(兕馬觚) 부군장을 비노모리(卑奴母離)라 한다. 한해를 건너 와서 처음 보는 제일 큰 도시국가로20,000여호가 살았다. 동쪽으로 100리를 가면 부미국(不彌國)이다. 군장을 다모(多模), 부군장을 (이곳에서도)비노모리 (卑奴母離)라 한다. 1,000여가가 산다. 오늘의 유명해(有明海灣,Ariake Sea)의 북쪽 항구도시로 추정 된다.
남쪽으로 배를 타고 20일을 가면 투마국 (投馬國)이 있다. 군장을 미미(彌彌) 부군장을 미미나리 (彌彌那利)라 한다. 50,000여호가 산다. 투마국 (投馬國)은 유명해(有明海灣,Ariake Sea)를 나와 큰 바다에서 내륙으로 들어가는 항구도시라고 본다. 사쓰마센다이(薩摩川内市,Satsumasendai)로 추정 된다.
남쪽으로 배를 타고 가면 10일, 걸어서는 한달 걸리는 곳에 아마대국(邪馬壹國)이 있다. 그 곳이 여왕국의 수도다. 가이 70,000호나 된다 . 여왕국 관리로는 이지마, 다음이 미마승, 다음이 미마획지, 다음이 노가제 (官有伊支馬,次曰彌馬升,
次曰彌馬獲支,次曰奴佳鞮)다. 여왕국 이북의 거리와 호수를 대략 기제했다.
그쪽 방향 나머지 여러 나라들은 멀리 떠러저 자세하게 적을수가 없다. 그 남쪽에 구노국(狗奴國)이 있다. 남자가 왕이고,여왕의 속국이 아니다. 남자가 다스리는 왕국도 바다를 건너지 않은 구주/규슈 (九州) 동남쪽 가노야시(Kanoya,鹿屋市) 지역으로 추정 된다.
군사(郡使)는 누구였나?
왜인전에는 일본 구주 땅 남쪽 섬나라는 다루지 않았다. 여왕이 다스리던 나라 (女王國) 아마대국 (邪馬壹國)은 왜인 전에서 제일 큰 도시 국가였다. 두번쩨로 큰 투마국 (投馬國)과 같이 구주섬 남쪽에 있었다.
구주에 도착한 이후에 나오는 해상로는 거리를 로 적어 계산하기가 어렵지만, 군에서 여왕국 까지 12,000여리라 했다. 대해국(對海國)은 대마도 (對馬島)가 분명하다. 그로부터 대한해협(玄海灘)을 건너 여왕국 수도가 있는 구주 남단 아마대국 까지는 4,000리다. 대마도에서 한반도 남해안과 서쪽 해안을 지나 북쪽으로 8,000리를 가면 군사(郡使)가 온 곳이 된다.
그 곳이 낙랑본통 한국(樂浪本統韓國) 이라한 요동 반도를 돌아 동쪽으로 와 (歷韓國,乍南乍東)도착 했다는 구야한국 북안 (北岸狗邪韓國)이다.
갔던 길을 되돌아 계산해서 찾은 곳이 글자 풀이에서 찾은 대동강 하구와 일치 한다.
어찌하여 백제 온조왕의 수도(漢城) 였던 오늘의 평양(平壤)에서 온 사람을 군사(郡使)라고 불렀느냐는 내력은 삼국지, 후한서, 삼국사기를 종합하여 풀이면 답이 나온다. 특히 통전에는 고 했다.
진수는 해성시에 있었던 왜여왕 비미호(女王卑彌呼)를 구주남단 아마대국의 여왕으로 잘못 인식 했다. 정권이 바뀌는 혼란기였다. 서진에 왕위를 빼았긴 조위의 마지막 황제를 제왕 (魏齊王曹芳; 231년-274년)이라 한다. 진수(陳壽 233-297)는 그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제왕의 혈통이 분명치 않다고 했다. 이는 뒤에 깊히 다루기로 한다.
끝, 다음에 계속
June 22, 2017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