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인시대 개코 생각 나십니까? 그가 양아치의 두목이었죠.
목야전(牧野之戰)을 기념한 이괘명문(利簋銘文)에는 무왕정상초 (珷征商隹)라 했습니다. 상초란 상나라 마지막 왕을 비하한 이름이 분명 합니다. 치(隹)란 양아치 한 속어에서 보듯 지도자 무목을 뜻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삼족오(烏 鳥)를 타고 왔다는 천손의 후예를 비하한 표현 입니다.
무정(武丁, 1250-1192BC)이 공사장에서 노예로 일하던자를 맞아드려 상나라의 중흥을 이루어, 불암성 노역장에서 얻은 즐거움 또는 조언자라 하여 부열(傅說)이란 이름을 주었습니다. 부열 (傅說)을 경사로 임명(卿士傅說)하여 견학양로(視學養老)라 했다. 얻은 후 융재태묘(肜祭太廟)에 유치래(有雉來)라 했습니다. 화살을 가지고 온 새란 뜻 글자 입니다. 유가에서는 꿩이 왔다고 풀이 합니다만 잘못 입니다. 활(雉:矢,隹)을 잘 쓰는 오환 부족이 찾아 왔다는 뜻입니다. 사건 당시 고종이 조을에게 문의 했다. 조을이 답하기를 원방군자 태유지자 (遠方君子殆有至者) 라, 진서에는 득치대희(得雉 大喜)라, 그들의 협조를 얻어 즐거웠다란 문구가 있습니다.부열과 유치씨가 살던 곳은 상나라 보다 문명이 앞섰던 곳이 분명 합니다. 이들은 모두 상나라의 서북쪽에 있던 고조선 사람들 입니다. 평안도 말에 xx치 하는 낱말의 뿌리가 고조선 시대로 밝혀 졌습니다.
한국에서 부르는 토종 닭이 어디서 왔나는 알려 지지 읺았지만 [글자 (鶏 닭 계. 雞 닭 계)속에]도 남아 있습니다. 해를 숭배 하던 우리 선조가 중앙아시아에서 부터 갖고왔습니다. 최씨 (崔氏) 또한 지도자란 뜻이 있습니다.
이렇게 고전에는 한국어가 남아 있습니다.
고조선의 후예로 이웃 사촌이었던, 대하와 글안은 사라졌고, 외몽고에서는 상형자를 안쓰고, 내몽고와 만주족은 CCP의 압력으로 고유 언어를 상실 했습니다.
아직 남아 있는 옛 한국어가 퉁구스어의 마지막 줄거리라고 정의 할수 있습니다.
그-2:
고전속에 한국어가 있다-2尚書 夏書 五子之歌: 其五曰:「嗚呼曷歸 予懷之悲. 란 문구는 고조선 사람들이 되돌아 왔다. 이를 어쩌나 하는 뜻입니다. 群書治要 尚書: 其五曰:烏虖曷歸,予懷之悲,曷,何也。言思而悲也。萬世仇予,予將疇依,仇,怨也。予懷之悲(여회지비) : 내 마음의 슬픔이라고 직역 되는 문구는;予懷(여회)는 상가에서 또는 제삿날 곡할때, 아이고 (나의 슬품), 여히 여이, 어히 어히, 오히 오히로 들리던 소리의 사음자(PLCs or PSMCs)다.춘추오패의 첫쩨로 나오는 하백곤오(夏伯昆吾)은 다섯 아들(五子之歌)의 아버지 하후개 를 뜻했다. 《詩》曰:『我無所監,夏后及商,用亂之故,民卒流亡。』《春秋左氏傳》:夏后太康,娛於耽樂,不循民事,諸侯僣差.竹書紀年 帝啟: 元年癸亥,帝即位于夏邑。大饗諸侯于鈞臺。諸侯從帝歸于冀都。大饗諸侯于璿臺. 二年,費侯伯益出就國。王帥師伐有扈,大戰于甘.六年,伯益薨,祠之. 八年,帝使孟涂如巴涖訟竹書紀年 帝太康: 元年癸未,帝即位,居斟鄩。畋于洛表。羿入居斟鄩. 四年,陟. 有說二里頭遺址,即是斟鄩故址. Bronze of the Erlitou culture. Ceramics of the Erlitou culture.곤오 (昆吾)란 우리 속어에 [예 니 곤장 (昆장)계시나. 거 주인장 계신가]하는 곤장 즉 상대방의 부친을 지칭하던 옛 말이다. 단군왕검 백익을 살해한 폭동 패거리는 다음 세대에 이르러 고조선 세력에 망하고 함곡관을 나와 Erlitou culture 를 남겼다. 고조선문화를 앙소문화(仰韶文化Yangshao)라고 한듯 생각 됩니다.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