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려산(醫巫閭山)의 뜻:
의무려산(醫巫閭山)이란 글자는 통전에 처음 나온다[1]. 같은 시대 역사서 당서와 구당서에도 나타 난다. 특별한 사당(閭山祠)이 있었다[2]. 요녕성 서남쪽 북진시 (北鎮市)의 서쪽에 있는 영산으로 요세였다. 이렇게 추론 되기까지에는 여러 징검 다리를 건너야 했다.
북진에 상응되는 남진(南鎮)이란 이름은 없다. 북(北; běi /빼이)자는 빛을 뜻한 사음자다. 북진(北鎮)이란 햇님의 후손을 관장하던 지도자의 본거지란 뜻이다. 햇님의 후손을 관장하던 지도자(巫堂, 壇君,shaman and medicine man)의 뜻을 담은 글자도 “醫毋, 巫 醫無, 醫巫” 또한 다양 하다[3]. 장자와 논형에는 의무방술 (醫無方術)을 실행하는 사람으로 풀이 했다[4]. 후한서에는 의무려산을 이리저리 돌려 무우(無慮)가 의무우산(醫無慮山)에 있다. 유목민의 지도자를 겁쟁이하고 비하한 글자다. 그가 살던 곳이 험독(險瀆)현이라고 했다[5]. 한서에는 요동군에는 무우(無慮)와 험독(險瀆)현이 있다. 그러나 그 지역을 처음 기록한 사기 조선열전에는 의무려산이란 이름이 없다. 후세 사람들은 위만의 수도, 왕험 (王險,衛滿所都)이라고 하던 곳이다[6]. 사료를 종합해 보면 의무려 (醫無閭)란 글자는 279년에 발굴된 급총죽간에서 나타났다. 의무를 육손이 기/지 홀/무한 (枝忽汗; 忽作勿) 또는 지불한(枝不汗)이라고 했다[7]. 홀무불(忽,勿, 不)자가 모두 같은 뜻으로 사용 되였다. 가지 지 또는 육손이 기(枝)로 읽는 글자는 달빛을 뜻하는 지(支)를 바꾼 글자로 <지불한(枝不汗)은 햇님의 후손을 관장하던 지도자> 란 뜻이다. 근세에 쓰이던 육손이란 이름은 지불한(枝不汗)에서 나온 말다.
의무려산에 사는 유목민의 지도자 단군의 관(Crown, 冠)이 동북지방의 특산물로 주옥을 많이 달은 관 (醫毋閭之珣玗琪)이라고 했다. 일주서에 실린 마을 려(閭; lǘ )자는 사슴 록 (鹿;lù lǘ )과 같은 사음자로 사슴 머리위에 붙은 뿔과 같이;
<특수한 목적으로 어떤 물체를 (머리)위에 차려 놓은 장식 품> 이란 뜻이다[8]. 한국어에 “머리에 이고 가다, 머리에 였다. 초가집 이영 용마루”에 나타난 “이, 이여, 이영”발음을 적은 사음자가 마을 여/려(閭; lǘ )자다. 일주서에 실린 멀 요자 요관(隃冠)은 사음자로 보석이 많이 달린 반짝 반짝 흔들린 다는 뜻의 요(搖)자로 부여 지도자가 쓰던 요관(搖冠)의 원형이다. 선비족 모용씨의 어원이라고 한다[9]. 단군이 쓴 갓 관(冠) 이란 뜻이다. 성역의 입구 문(仙所居) 위에 설치했던 다양한 모양으로 사용 되였다. 큰 마을에는 단군(巫堂, 醫巫)이 있었다 하여 그 마을에는 보통 문이 아니라 문위에 특별한 장식을 여문(閭門)이 있었다[10].
의무려산 일대에 햇님 (hēi]/항/흐이/히)의 후손들이 산다 하여 흑산(黑山,해산)이라 고 했다. 고조선 사람들이 숨어 살아 났다 하여 선비산(鮮卑山) 이라고 했다[11]. 글안국지와 요사를 종합해 보면 의무려산을 선비산,태보사(太保山), 또는 대보산 (大保山) 이라고도 했다[12]. 태보산이 태백산으로 삼국유사에는 나오는 단군이 은퇴하여 백악산 아사달 (白岳山 阿斯達)에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는 곳이다[13]. 이곳이 삼국유사 북부여기(北扶餘)에 천제가 어룡거를 타고 내려 왔다는 흘승골성 (紇升骨城)이다[14]. 이를 한나라 이후에 편찬된 여러 사서에는 유주(幽州)라고 청성산(青城山) 이라고 했다. 삼국사기와 중국기록에 실린 내용과는 장소가 다르다[15]. 요서에는 의무려산이 있는 곳이라 하여 려주(閭州)라고 했다. 한서 지리지에나는 요동(遼東)군 무려현, 후한서에는 요서(遼西)군으로 실렸다[16].
이곳이 삼국유사 북부여기(北扶餘)에 천제가 어룡거를 타고 내려 왔다는 흘승골성 (紇升骨城)이다[17]. 이를 한나라 이후에 편찬된 여러 사서에는 유주(幽州) 청성산 (青城山) 이라고 했다. 삼국사기와 중국기록에 실린 내용과는 장소가 다르다[18].
거란국지(契丹國志 )와 요사(遼史)에는 의무려산이 있는 곳이라 하여 려주(閭州) 라고 했다. 한서 지리지에나는 요동군, 후한서에는 요서군 무려현으로 실렸다[19].
이러한 사실을 잘못 풀이 하여 부여와 고구려의 시조가 같은 사람으로, 요하 서쪽에 있던 흘승골성(訖升骨城)을 요하 동쪽으로 둔갑 사켰다. 고조선(古朝鮮)의 첫 수도 아사달(阿斯達)이 요녕성 서남쪽 해주(海州)에 있었다고 했다. 해주를 일연 스님은 한반도 서해안으로 풀이하여 잘못 알려진 지명이다.
의무려산(醫巫閭山)이란 <햇님의 후손이라고 자칭하던 유목민을 관장하던 지도자 가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금관을 쓰고 살던 산> 이란 뜻이다.
중국 남북조 시대 동위의 실권자로 있던 발해만 연안 태생의 고환(高歡, 496년– 547년)이 큰아들 고징(高澄, 521년–549년) 과 같이 북제(北齊, 550년 -577년)의 건국 기반을 닦았다[20]. 살아 남은 두쩨 아들 고양 (高洋, 526년 ~ 559년)이 북제의 초대 황제가 되여 부친과 형을 추존하고, 조카 효형(高孝珩)을 광녕왕(廣寧王)으로 봉해다[21]. 대륙백제의 기반을 닦은 고환(高歡)의 선조가 살던 부여(扶餘) 땅에서 왔다. 그곳이 옛 현토 땅으로 고구려현, 상은대 서개마 세 현이 있던 요하 서쪽이다.
끝
[1].通典 禮六 山川:會稽山為永興公,岳山為成德公,霍山為應聖公,醫巫閭山為廣寧公.
[2].舊唐書:遼東在無慮縣,即《周禮》醫無閭山。樂浪在朝鮮縣,玄菟在高句驪縣,今皆在東夷也。古之北燕
新唐書:有東北鎮醫巫閭山祠. 縊死醫巫閭祠下
[3].淮南子 墬形訓:東方之美者,有醫毋閭之珣玗琪焉;東南方之美者,有會稽之竹箭焉. 逸周書:東北曰幽州,其山鎮曰醫無閭 爾雅 釋地:東方之美者,有醫無閭之珣玗琪焉,東南之美者,有會稽之竹箭焉.
[4]. 莊子 天下: 天下之治方術者多矣,皆以其有為不可加矣。古之所謂道術者. 論衡 量知: 孔子曰:「賊夫人之子。」
皆以未學,不見大道也。醫無方術,云:「吾能治病。」問之曰:「何用治病?」曰:「用心意。」病者必不信也
[5].後漢書 君國志: 故天遼,屬遼西。賓徒故屬遼西。徒河故屬遼西。無慮有醫無慮山。險瀆房
[6]. 朝鮮邯浿水含資占蟬冥列口〔一〕長岑屯有昭明鏤方陽東北三千二百六十里。〔二〕昌遼故天遼,屬遼西。
〔一〕賓徒故屬遼西。徒河故屬遼西。無慮有醫無慮山。險瀆〔二〕房〔一〕何法盛晉書有青城山。〔二〕史記曰,王險,衛滿所都。右幽州刺史部,郡、國十一,縣、邑、侯國九十
[7]. 太平廣記 神仙六 東方朔: 。語曰:『年末年,枝忽汗。明鈔本末作未。忽作勿。御覽卷九五三引洞冥記作年未半。
枝不汗』此木五千歲一濕,萬歲一枯也。」帝以為然。다음사전: 枝 가지 지, 육손이 기. 康熙字典: 又干支亦作幹枝。《博雅》甲乙爲幹。幹者,日之神也。寅卯爲枝。枝者,月之靈也。
[8].逸周書 王會解: 解隃冠,發人。麃麃者,若鹿,迅走.北唐以閭,閭似隃冠白州比閭,比閭者,其華若羽,伐其木以為車,
終行不敗. 東北曰幽州,其山鎮曰醫無閭. 左傳·襄十八年: 州綽門於東閭。《註》齊東門。《穀梁傳·成元年》客不說而去,
相與立胥閭而語。《註》胥閭,門名。《釋文》閭,力居反。又仙所居.
[9]. 逸周書 王會解: 解隃冠,發人。麃麃者,若鹿,迅走.北唐以閭,閭似隃冠. 遼西時燕代多冠步搖冠跋好之乃斂髮襲冠諸部因謂之步搖後音訛爲慕容焉.
[10].通典 禮六 山川: 隋制,祀四鎮:東鎮沂山,西鎮吳山,南鎮會稽山,北鎮醫無閭山,在東夷中,遙祀. 北鎮醫無閭山,
於營州;北海及北瀆大濟,於洛州。會稽山為永興公,岳山為成德公,霍山為應聖公,醫巫閭山為廣寧公。
[11]. 三國志 烏丸鮮卑東夷傳: 魏書曰:鮮卑亦東胡之餘也,別保鮮卑山,因號焉。其言語習俗與烏丸同。其地東接遼水,西當西城。特屬累犬,使護死者神靈歸乎赤山。赤山在遼東西北數千里,如中國人以死之魂神歸泰山也。歷嶮阻,勿令橫鬼遮護,達其赤山,然後殺犬馬衣物燒之。敬鬼神,祠天地日月星辰山川,
[12].契丹國志 黑山: 如京東北有山曰黑山,曰赤山,曰大保山,山水秀絕,麋鹿成群,四時游獵,不離此山.
冬至日,國人殺白羊、白馬、白雁,各取其生血和酒,國主北望拜黑山,奠祭山神。言契丹死,魂為黑山神所管。又彼人傳云:凡死人,悉屬此山神所管,富民亦然。契丹黑山,如中國之岱宗。雲北人死,魂皆歸此山。每歲五京進人、馬、紙物各萬餘事,祭山而焚之。其禮甚嚴,非祭不敢近山。遼史 黑山: 遼國其先曰契丹,本鮮卑之地,居遼澤中. 秋,如黑山,
赤山射鹿. 獵於黑山、赤山,至於月終. 遼史卷 地理志一 上京道 黑山: 在州西二十里。有黑山、赤山、太保山、
老翁嶺、饅頭山、興國湖、轄失濼、黑河。景幅元年復置,更隸興聖宮。統縣三:玄德縣。本黑山黑河之地.
遼史 列傳第三:。刺葛之亂也,淳欽皇後軍黑山,阻險自固。太祖方經略奚地,命阿古只統百騎往衛之
[13]. 三國遺事 阿斯達: 魏書云。乃往二千載有壇君王儉。立都阿斯達經云無葉山。亦云白嶽。在白州地。或云在開城東。
今白岳宮是開國號朝鮮。與高同時。古記云。昔有桓因謂帝釋也庶子桓雄。數意天下。貪求人世。父知子意。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乃授天符印三箇. 後還隱於阿斯達為山神。壽一千九百八歲。唐裴矩傳云。高麗本孤竹國今海州
[14]. 三國遺事:北扶餘古記云。前漢書宣帝神爵三年壬戌四月八日。天帝降於訖升骨城在大遼醫州界. 三國史記: 『漢書志』云:「遼東郡距洛陽三千六百里,屬縣有無慮,則『周禮』北鎭醫巫閭山也,大遼於其下置醫州。玄●郡,
[15].紇升骨城: 三國史記:『魏書』云:「至紇升骨城。」.按『通典』云:「朱蒙以漢建昭二年,自北扶餘東南行,渡普述水,
至紇升骨城居焉。號曰句麗,青城蕭齊置齊基郡,後周改之。有青城山. 涪陵人范長生率千餘家依青城山
[16].遼史 地理志: 幽州在渤、碣之間,並州北有代、朔,營州東暨遼海。其地負山帶海。閭州。羅吉王牧地,近醫巫閭山。
統州三、縣三:奉先縣。本漢無慮縣,即醫巫閭,幽州鎮山。世宗析遼東長樂縣民以為陵戶,隸長寧宮.閭州。
羅吉王牧地,近醫巫閭山.後漢書 志 郡國五:屬遼西。賓徒故屬遼西。徒河故屬遼西。無慮有醫無慮山。險瀆房
漢書 地理志 :遼東郡:襄平,新昌,無慮,上谷郡: 縣十五:沮陽,泉上,潘,軍都,居庸,雊瞀,夷輿,寧,昌平,廣寧,
[17]. 三國遺事:北扶餘古記云。前漢書宣帝神爵三年壬戌四月八日。天帝降於訖升骨城在大遼醫州界. 三國史記: 『漢書志』云:「遼東郡距洛陽三千六百里,屬縣有無慮,則『周禮』北鎭醫巫閭山也,大遼於其下置醫州。玄●郡,
[18].紇升骨城: 三國史記:『魏書』云:「至紇升骨城。」.按『通典』云:「朱蒙以漢建昭二年,自北扶餘東南行,渡普述水,
至紇升骨城居焉。號曰句麗,青城蕭齊置齊基郡,後周改之。有青城山. 涪陵人范長生率千餘家依青城山
[19].遼史 地理志: 幽州在渤、碣之間,並州北有代、朔,營州東暨遼海。其地負山帶海。閭州。羅吉王牧地,近醫巫閭山。
統州三、縣三:奉先縣。本漢無慮縣,即醫巫閭,幽州鎮山。世宗析遼東長樂縣民以為陵戶,隸長寧宮.閭州。
羅吉王牧地,近醫巫閭山.後漢書 志 郡國五:屬遼西。賓徒故屬遼西。徒河故屬遼西。無慮有醫無慮山。險瀆房
漢書 地理志 :遼東郡:襄平,新昌,無慮,上谷郡: 縣十五:沮陽,泉上,潘,軍都,居庸,雊瞀,夷輿,寧,昌平,廣寧,
[20].北齊高孝珩,世宗第二子,封廣寧郡王尚書大司徒同州牧.高孝珩(?-577年),渤海蓨(今河北省景縣)人,追尊齊神武帝高歡之孙,追尊齐文襄帝高澄第二子。歷位司州牧、尚書令、司空、司徒、錄尚書、大將軍、大司馬、封廣寧王。
[21]. 北齊書:帝至自晉陽。封世宗二子孝珩為廣寧王,延宗為安德王。廣寧郡故屬上谷,太康中置郡,都尉居。
渤海公段匹磾,領護烏丸校尉、鎮北將軍劉翰,單于、廣寧公段辰,遼西公段眷. 廣寧王孝珩為錄尚書.廣寧王孝珩為大將軍,
舊唐書 :遼東在無慮縣,即《周禮》醫無閭山。樂浪在朝鮮縣,玄菟在高句驪縣,今皆在東夷也.
舊唐書:北鎮醫無閭山,於營州. 範陽司馬畢炕祭醫無閭山廣寧公;太子中允李隨祭東海廣德王.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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