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의 세로운 고찰.
일본(日本)이란 이름자는 수당 (隋唐)전환기에 한해의 동남쪽 섬에 있던 열도 백제를 뜻하던 왜(倭)에서 나왔다. 진수가 삼국지(鮮卑傳)에서 한(汗人, 汗國)자 동이전에는 왜(倭人,倭國)자로 기록 했다. 이를 후한서에 그대로 인용하였다. 왜자의 출원지는 발해만 서남쪽, 창해군(滄海之郡)이 나타났던 곳이다. 양자방언에 조선(朝鮮)이라한 지역의 해안이다.
임나(任那)란 글자가 그 곳을 정벌했던 광개토대왕 비문에 나타난“自倭*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 城卽歸服, 安羅人*戍兵. 拔新羅城, 鹽*城, 倭寇大潰*, 城內” 문구에 있다.
이와 같은 사료를 근거로 “任那加羅”란 지명이 한반도 남쪽에 있었다는 일본 사람들의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을 세로이 설명 한다.
필자는 광개토대왕의 격전지가 남만주에서 중원에 이르는 지역에 국한 되어 한반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논증 했다. 임나가라란 지역은 대왕이 요동만 서쪽 해안을 따라 천진-당산 일대를 지나(過富山*負山至鹽水*上) 이르렀던 곳이다.
임나(任那)란 글자는 햇님을 숭상 하던 사람들이 해지 연안에서 밀려(詩經 商頌 那: 詩說 商頌: 祀成湯之樂歌.冉,阝:《玉篇》同那)나 발해만 연안에 살던 곳의 수도(那:何也,都也)을 맏겼다는 뜻이다. 옛적에 온조왕(溫祚王, ? ~ 28년)의 형 시조 비류(始祖 沸流王)가 도읍을 정했던 대방 땅 미추홀(彌鄒忽)이 아닌가 생각 된다. 중국 고전 여러 곳에 나오는 어느 임성(任城)이 임나(任那)란 곳을 뜻했다고 본다. 천진-당산 일대에 살던 고조선 사람들이 뱃길로 한반도 서남쪽을 지나 한해(翰海 瀚海)의 동남쪽 해안, 즉 오늘의 일본에 정착 했다. 임나가라(任那加羅)가 한반도 남쪽에서 나타났다는 설은, 남만주 졸본주(卒本扶餘)에 살던 백제여왕 비미호(倭國女王卑彌呼; ? ~ 247년)를 왜여왕 히미코라고 잘못 인식 하듯, 중국사료를 잘못 풀이하여 나타난 현상이다.
진서 (晉書)에 나타난 동왜(東倭)에 관한 기록을 살펴 보면; 대륙백제 시조 비류가 졸본부여(東倭,卒本扶餘)를 떠나 대방 땅 미추홀(彌鄒忽)에 정착 했다. 대반 땅을 서왜(西倭)라고 인식 했었다.
끝.
June 8, 2019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