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12, 2018
고조선 수도 평양이 산서성 서남 쪽 해지(Xie chi pool解池) 연안
한국에서 상고사를 전공하시는 분들과 상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왜 못 찾았나요?
옛 사람들이 못찾아, 찾을 생각도 않고 포기 한듯 합니다.
왜 다른 사람들은 고조선 발생지를 못 찾았었나요?
뻔하지 않나요.
중국사람들이 풀이한 경전의 내용에서 못찾아 포기 한것 아닙니까. 생각들 해 보세요. 역사서는 당대의 제일가는 학자가 생명을 걸고 국익을 위해 작성 했지요. 중국의 국익에 마추어 편찬 했지요. 은밀하게 숨겨 놓았서요.
요순시대에 古朝鮮을 세웠다니 그 시대 그 장소에 관한 기록을 깊히 살펴 보야야지요. 그 시대와 장소에 관한 기록을 살펴 보지 않았서요.
November 16, 2018.
저의 글을 읽어 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이덕일 소장님의 조언이 옳았습니다.
지난주 <November 11 > 부터는 <중고등학생에게 저의 학설을 설명>한다는 좌세로 글을 올립니다. 좀더 깊히 살펴 보려는 분들을 위하여 한글 설명 끝에는 한자 원문을 올립니다.
저의 개인 사정으로 reply하신 분들에게 일일히 회답은 못하겠습니다.
네! 뻔하지 않나요. 선생님?
곰과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다니 어떻게 믿어요? 신화가 분명 하지요. 옛적부터 삼국유사에 그렇게 실렸다고 가르쳐 주지 않았나요?
네 그래요. 그렇게들 풀이 해 왔습니다. 그림 글자를 잘못 풀이 했습니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처 三國遺事 에 실린 내용을 하나하나 설명 하지요.
옛 중국 기록은 모두 황하문명 발생지에 살던 사람들 중에는 서쪽에서 온 유목민도 살았서요. 그사람들은 우랄 알타이어 계통에 속하는 퉁구스어를 썼서요. 그사람들의 말(언어,Language)을 그림 글자로 남겼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경전에 실린 글자 풀이를 전문으로 하는 학문을 훈고(訓告)학>이라고 했서요. 옛 글자를 설명한다는 뜻 또한 “訓故、故訓、古訓、解故、解詁”등 여러 글자로 표현 했서요. 이렇게 글자를 이리저리 두섞어 (PLCs & PSMCs) 경전을 작성 했습니다.
그러니 후세 사람들이 글자 풀이에 혼란이 나타났지요.
November 17, 2018.
단군왕검의 어머니는 유목민의 여자
일연 스님은 예기의 출처를 위서(魏書) 라고 밝혔서요. 위나라의 역사서란 뜻입니다. 이름을 “위魏, 圍, 衛”라고 지은 나라는 옛부터 여러 곳에 있섰서요. 시경에는 어느 특정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부르던 노래(향가)를 모아 국풍이란 편명을 만들었서요 그 안에 “魏風, 衛風”이라는 두 편명이 있서요. 위란 말소리는 지금 한국에서 쓰는 높다(high, on top, above of)는 뜻 입니다. 그때 쓰던 말이 아직도 우리가 쓰고 있습니다. 그런 말 소리를 한자로 바꾸어 “高, 崔, 元”씨 로 썼습니다. 그 사람들이 함곡관 동서에 흐터져 살았다는 증거가 위풍이란 이름에 있지 않아요?
훈고란 글자에서 보이듯, 같은 뜻을 여러 글자로 쓸수 있었습니다. 동사와 명사를 뒤섞어 써도 그 당시 사람들은 이해 했습니다. 이름 있는 학자가 글자를 두세개 붙여 문구를 만들어 경전이 나타났지요. 이를 후세 사람들이 중국황실의 입맛에 맞게 풀이 했었습니다. 그래서 중국 고전 풀이는 어렵습니다. 논란에는 끝이 없서요.
암컷 곰 한마리(熊女者)란 글자를 의인체 소설의 표현 입니다.
가공 인물 황제를 중국사람들의 조상이라 했지요. 그의 성이 유웅씨(有熊氏)라고 했습니다. 또 유웅국(有熊國)이란 나라도 있었지요. 이를 간략해서 융으로 기록한 증거가 많이 있서요. 유웅(有熊) 이란 한자는 서쪽에서 왔다는 융(戎)족을 길게 발음한 사음자 입니다. 독일에 흔한 융(Jung, 戎) 한 (Hahn,韓, 汗) 하는 성이 모두 유목민의 후손입니다. 황제(黃帝)란 글자에는 서쪽에서 온 머릿털이 누런사람이란 뜻이 있습니다. 중앙 아시아에 살던 스키타이(Scythians)와 흡사 했습니다. 그들이 유목민이였지요. 이를 서양 학자들은 “Eurasian Steppe people. Eurasian nomads”라고 했서요. 유목민이 하북평원 전역에 흐터져 살았습니다. 열자 탕문(列子 湯問)편에 신하 하혁 (夏革; 棘, 棗,僰)과의 대화에 나타 납니다. 그 후손의 한지류가 고조선의 후예로 알려진 글안(竊丹)을 세웠습니다[1].
[1].列子 湯問: 湯又問曰:「四海之外奚有?」革曰:「猶齊州也。」湯曰:「汝奚以實之?」革曰:「朕東行至營,
人民猶是也。問營之東,復猶營也。西行至豳,人民猶是也。問豳之西,復猶豳也。朕以是知四海四荒四極之不異是也。故大小相含,无窮極也。棘扈,鳥名。《賈逵云》棘扈,竊丹,爲果驅鳥者也。又與僰通.《山海經》鳳凰產于丹穴。竊丹,鳥名.棘:小棗亦越戟名又箴也,羸瘠也,又姓文士傳曰棗袛本姓棘其先避難改爲棗氏衞大夫棘子成之後也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의 어머니는 그와 같은 유목민의 여자란 뜻입니다.
단군왕검이라 불렀다(號曰壇君王儉)는, 유목민 어머니에서 태어난 애기가 커서 <제사장 왕검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제사장은 제단 위에 섰지요.어느 여인이 박달나무 밑에가서 아들 낳게 해 달라고 빌겠습니까?
제터 단자 단군(壇君)이 옳바른 글자 입니다.
November 18, 2018.
고조선의 역사는 상형 글자(韓子, 漢字)와 시경(詩經) 속에:
옛적에는 모든 신화와 전설이 의인체 우화(Fable)로 나타 났서요. 그리스 신화가 그렇고 중국이나 한국에 전해 오는 설화에는 모두 의인체로 설명 했지 않아요? 동서 문화를 막론 하고, 칠진법 십진법 십이진법이 모두 쓰였지 않아요?, 이름 있는 사람이 죽으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다고 믿었서요. 한국 동요에 “별 하나 나 하나”하는 예기가 있고, 활 잘 쏘는 사람이 영웅으로 등장 했지요.
구라파의 서쪽과 우랄 알타이 산맥 동쪽에 살던 사람들이 태고적 부터 교류가 있었다고 봅니다. 동서의 교류 통로는 크게 천산 북로와 천산 남로 두 갈래로 나타납니다. 알랙산더 대왕이 패르샤 왕을 추격한 통로가 천산 남로를 통해 폐르샤 만으로 이어지는 길이 였서요. 천산 산맥 서쪽 중앙 아시아에는 언제부터 인가는 몰라도 “ xx골, xx탄/단/땅, xx 달” 하는 어미 또는 “울 타리란 뜻의 우르 xx” 라는 어두의 지명이 있서요. 이는 모두 옛적 한국 말이지요?
이러한 근거가 현제 한국과 일본에서 쓰고 있는 한자, 즉 상형글자 속에 숨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글자를 쓰기전에도 말이 있었고 감정을 표현 한 노래는 불렀지요. 그 노래를 유목민이 부르던 노래라 하여 털 모자 모시(毛詩)라고 했서요. 오늘의 시경(詩經)이 옛부터 전해오던 유목민의 노래가 남아 입니다.
고조선의 역사는 상형 글자(한자, 韓子, 漢字)와 시경(詩經)에 남아 있습니다.
이 두 자료가 마땅히 고조선 연구에 인용 되였서야 합니다. 그를 제쳐 놓고는 고조선의 발생 변천 과정을 밝힐 수가 없습니다.
고조선의 역사 연구는 진시황 이전 (先秦 文獻)에서 찾아야 합니다.
모든 연구나 수사에는 절차와 방법이 중요 합니다. 이렇게 연구 해야 된다는 저의 연구 방법론에 질문이 있습니까?
November 19, 2018
중국사람들은 옛적에 귀하고 좋은 것은 모두 황제 또는 요 임금이 시작 했다고 한다. 황제 헌원씨(黃帝軒轅氏)에 관한 사료를 깊히 살펴 보면, 삼국유사에 실린 환웅 (桓雄)을 이리저리 뒤바꾸어 황제라는 가공 인물을 만들었다.
예기 오제덕(五帝德)에는 공자가 처음으로 황제를 소전(少典)의 아들 헌원 (軒轅)이고, 황제의 손이 전욱 고양씨라고 했다[1]. 대제예기는 어용 학자들이 백여 만자 (百餘萬言)를 바꾸었다는 후한시대에 완성 되었다[2].
소전의 아들 헌원(少典 軒轅)이란 네 글자는 음과 뜻을 이리저리 바꾸어 적은 글자다. 호천의 아들 훤(昊天之子曰桓)이란 표현을 그렇게 바꾸었다고 본다. 어용학자의 일원이 였던 허진이 만든 설문 해자에서는 훤(桓:亭郵表也)을 장승 (푯말, totem pole)을 뜻한 글자라고 했다[3]. 한국에서는 그대로 받아 드려 서낭당에 세워 놓은 장승이 이정표로 둔갑 했다.
November 20, 2018
[1].公孫龍子 白馬論: 曰:求馬,黃、黑馬皆可致;求白馬,黃、黑馬不可致。使白馬乃馬也,是所求一也。所求一者,
白馬1不異馬也;所求不異,如黃、黑馬有可有不可,何也?可與不可,其相非明。故黃、黑馬一也,而可以應有馬,而不可以應有白馬。是白馬之非馬,審矣! 1. 馬 : 原作「者」。從《百子全書》本改
[2].後漢書 列傳逵所著經傳義詁及論難百餘萬言,又作詩、頌、誄、書、連珠、酒令凡九篇,學者宗之,後世稱為通儒。然不修小節,當世以此頗譏焉,故不至大官。永元十三年卒,時年七十二。朝廷愍惜,除兩子為太子舍人。京字仲譽。習孟氏易,作難記三十萬言. 著春秋外傳十二篇,改定章句十五萬言。撰尚書雜記三十二篇,四十萬言.
[3].公孫龍子 白馬論: 曰:求馬,黃、黑馬皆可致;求白馬,黃、黑馬不可致。使白馬乃馬也,是所求一也。所求一者,
白馬1不異馬也;所求不異,如黃、黑馬有可有不可,何也?可與不可,其相非明。故黃、黑馬一也,而可以應有馬,而不可以應有白馬。是白馬之非馬,審矣! 1. 馬 : 原作「者」。從《百子全書》本改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