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절(端午節)의 기원 리단(履端)-1
단오란 글자는 양나라 종름(宗懍; 502-565년)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사민병답백초지허(四民並蹋百草之戲)란 문구에 이어 처음 나온다.
산속에서 자라는 답백초를 씻어 문앞에 걸어 놓으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전설에 따라 유행 하던 풍속이다. 같은 풍속놀이를 삼월삼일(三月三日)에도 실시 했다. 같은 풍속이 풀 이름도 바꾸고,행사 또한 해종절(解粽節) 단양 (端陽) 중오 (重午) 포절(蒲節) 욕란절(浴蘭節) 등 여러 이름으로 전해 온다. 시대적으로는 서진이 강남으로 쫒겨간 이후, 왜오왕이란 글자가 나오고, 백제땅이 서쪽으로 월주(越州)에 이르렀다는 시기다. 천진 일대 미추홀에 정착 했던 비류의 후손이 중원의 옥새를 잡았던 시절이다.
왜 오월오일에만 단오절 (端午節)이라 하여 풀을 목욕 시켜 문앞에 매달아 놓는 풍속이 전해오는지 이류가 다섯 오(五)와 음이 같은 오(午,吾,汙)자에 있고 본다. 바를 단, 끝 단, 헐떡일 천, 홀 전 (端; 立:耑; 而:頰毛也) 읽는 글자에는 서쪽에서 온 유능한 유목민 지도자 란 뜻이 있다. 조선 또는 우뚝 일어설 발 발해(勃海)란 글자와 뜻이 같은 제후국 진(晉)이 산서성에 있었다. 그 제후국이 분산되여 한위조 (韓,魏,趙) 세 나라가 생겨 전국시대 가 시작 된다. 진서에 단씨봉 진군 (端氏封晉君)이라 했다. 산서성에 단씨를 허수아비 진군으로 봉했다. 중원을 통일한 수나라의 역사서에 [단오에 관한 풀 또는 행사이름]이 없다. 단씨(端氏)를 우왕이 치수사업을 했던 황하동쪽 연주 (兗州, 燕)에 봉 했다. 그 곳에 흐르는 연수 (沇水,衍水) 에서 택한 이름이라 했다. 그 지역에서 단(端)이란 글자가 나왔다. 한국어에 단단(端端)하다, 딱딱하다는 어원의 출처다.
끝
March 12, 2021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