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설명-2: 韓原之戰 지도
이 지도에 나온 글자들은 사마천이 사기를 만들기 전이라 [당시 사람들이 글자를 만들어 써오던 육서(六書, 陸書)의 원칙에 따라 풀이 하면 사마천이 뜻과 음을 이리저리 뒤바꾸어 중국 전역에 퍼트렸다]는 필자의 주장을 어느정도 이해 하시리라 봅니다. 제가 추리한 세로운 학설에 따르면 이 지도에 나온 글자 속에 고조선의 수도가 숨어 있어야 합니다.
고조선의 여러 수도는 어디:
삼국유사에 동북아 역사의 시작을 설명 했다:
그에 실린 의제사언고조선(意在斯焉古朝鮮王儉朝鮮)란 문구는
[사언들이 세운 고조선 즉 왕검조선에도 있다]란 뜻이다 .
언/안 또는 오랑캐 이(焉)로 읽는 글자는 새의 모양을 본뜬 상형자로 서쪽에서 온 오손족(Scythian)을 뜻한 글자로 고조선을 세운 사람들의 혈통이 잠겨있다 . 사기에 태초원년(太初元年) 이름을 언봉(焉逢)했다. 이를 한서에는 흉노의 여자 무당을 뜻한 글자 안봉(閼逢)이라 했다.
융우로 부터 통치권을 이양 받기 전에 고조선의 첫 수도가 아사달(阿斯達)이다. 글자를 살펴보면 아사달(阿斯達)이란 [햇님의 후손이 자리잡은 언덕]이란 뜻이다 .
상서에는 아사달을 양곡이라 하여 택우리왈 양곡(宅嵎夷, 曰暘谷)이라 했다. 후에 다시 아사달에 돌아가 산신이 되니 1,908세 (壽一千九百八歲) 라고 했다 . 기원전 2,333년 부터 1,908년 후라면 기원전 425년이 된다. 춘추시대 말기에 [공자의 제자 자하(卜商.子夏)를 사부로 삼았다는 위문후 (魏文侯, 재위: 기원전 445년 ~ 기원전 396년)가 산서성에 있던 진나라 영토를 나누어 위나라를 세워 (三家分晉) 이때 부터 전국시대가 시작] 되었다. 고조선의 여러 수도[平壤城 白岳山阿斯達. 弓. 方忽山. 今彌達]와, 장당경(藏唐京)은 모두 위서에 (魏書云) 있었다. 위나라는 산서성에서 나타나 산서성에서 사라젔다. 모든 [고조선의 수도는 산서성에 있었다]는 필연의 결론에 이른다. 산서성에 살던 원주민들을 잡아 관노로 글자를 세겨 산서성을 노예들이 사는 곳이라 했던 성(隸省, 晉)이라 했다.
초씨역림에 실린 (순임금이 살다 죽었다는 해지연안) 는 문구와 일치한다.
그곳을 진의 대륙 (晉之大陸)이라 했다 . 진(晉)는 조선(朝鮮)과 같은 뜻이 있는 글자다. 산해경 해내경 나오는 조선이 산서성에 있었다. 초씨역림에는 조선과 기자 나온다. 고조선의 첫 수도가 아사달(阿斯達)이 있던 곳에 기자가 갔다.
곽태산 (霍太山)이 아사달(阿斯達)이다:
아사달(阿斯達)은 오늘의 지도에 태원-진중시로 부터 분수를 따라 내려가 산서성 임분시 일대에 있던 옛적 중국 오대진산의 하나 였던 곽태산 (霍太山)이라 본다. 이를 사마천은 하본기 (夏本紀)에 단군왕검 백익이 살던 곳으로 기자가 갔다는 조선이라 했다. “益讓帝禹之子啟,而辟居箕山之陽”라 했다.
단공이 고조선의 수도 평양에서 무왕과 같이 가까이 지네던 시절을 읇은 시문이 시경 시간(詩經 小雅 祈父之什 斯干)이다.
위문후를 진대부 위사(晉大夫魏斯)라고 한다 . 위사의 고향이 안읍(安邑, 옛적 平壤, 平陽) 즉, 오늘의 산서성 운성시 (山西省運城市)이라 한다. 시경에 나오는 사한의 후손이다. 위 문후의 후손 위후영(魏侯罃)이 대량(大梁)에 수도를 정해서 양해왕(梁惠王)이라 한다 . 위문후(魏文侯)에 관한 숨은 내력이 위키 백과 (维基百科,自由的百科全書)에 나타났다 .
중국 고전은 이렇게 글자를 이리저리 뒤바꾸어 갈피를 종잡을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 주모자의 한사람이 단군왕검 백익 살해 사건을 은밀하게 기록한 맹자다.
끝. 다름에 계속:
September 29, 2019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