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 본기 (晉書 帝紀)-5:
진무제(晉武帝)를 방문한 마한왕(馬韓王)이 대륙 백제왕:
사마중달의 아들 사마염이 조위을 찬탈하여 세운 서진(西晉;265年-316年)은 한 세대도 체우지 못하고 왕자들이 들고 일어난 팔왕의 난(八王-亂, 291년 ~ 306년)이 10여년간 계속 되여 결국 하북 평원을 떠나 강남으로 도망을 갔다. 이때 부터 대륙 백제가 있던 하북 평원의 역사는 오호 16국의 역사 속에 숨어 있다. 그러나 중국기록에는 고조선의 후예들 중에서 내륙을 생활 무대로 했던 기마민족의 역사 만을 남기고, 해양으로 퍼저 한해(翰海)를 통치 했던 삼한의 후예들에 관한 역사는 중국 땅에서는 완전히 밀어 버려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를 거처 유구에 이르는 지역의 역사로 기술 했다. 지난 달(Sep 06, 2017 12:29pm)에 올린 “고구려전(高句麗傳)-본론:남만주의역사-3.이서국(伊西國)”에서 고 밝혔다.
고구려는 장수왕 때에 만주를 통일하고 그 후로는 서쪽으로 진출하여 16국 시대의 동북부 여러 부족 국가와 접했고, 서쪽세력 돌궐과도 접했다. 짧은 기간 동안이 지만 위치가 확실히 알려지지 않은 장안성(長安城)으로 수도를 옮겼다 . 또한 오호 십육국 시대가 끝날 무렵인 492년(文咨明王 3년)에는 부여왕이 스스로 집안 가솔을 대리고 고구려에 나라를 바쳤다 . 뒤에는 중원을 통일한 수나라와 부디쳤다. 수나라가 고구려를 치려는 계획을 세울 때(開皇十八年)인 589년에 고 자원 했지만, 수나라는 백제(百濟)가 딴 마음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여 받아 주지 않았다 . 이러한 음직임을 인식한 고구려는 598년에 선제 공격을 하여 북경 근교에 있는 임유관에서 수나라 군을 크게 격파(臨渝關戰鬪) 했다. 장안성 (長安城)은 요하 서쪽에 있었다고 본다.
수나라에서 당태종 때 까지 살았던 위징이 편술한 수서(隋書)에는 백제에 관한 기록이 여러 곳에 있다. 중국 사신이 왜(倭)로 가는 길을 설명 했다 . 백제가 수나라 때에도 중국대륙 해안에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결정적 단서가 있다.
도백제 행지 죽도(度百濟 行至竹島) 하는 문구가 smoking gun이다. 도백제 행지 죽도(度百濟 行至竹島) 하는 문구가 smoking gun이다. 북사(北史)에도 똑 같은 문자로 기록 도였다. 같은 표현으로 쓰인 도(度)자가 염철론에 가 보인다. 한서 왕망전(漢書 王莽傳上)에도 보인다. 모두다 큰 물 (또는 바다)를 건너기 전이란 뜻이다.
중국에서 왜국(倭國)으로 가는 해상로에 나오는 죽도(竹島)가 고려도경 (宣和奉使高麗圖經)에 송나라 사신이 택했던 뱃길에 나오는 죽도(竹島)와 같은 섬이다. 한반도 서남 해상에 흑산군도(黑山群島)의 하나다 . 백제(百濟)는 이 섬에 이르기 전에 중국 동해안을 떠나기 전에 나타난 이름이 분명 하다.
수서(隋書)에는이를 보증 하는 Smoking gun이 하는문구다. 수 문제가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진나라를 평정할 시절(隋文帝, 平陳之歲588-589년)에 탐라국(耽牟羅國) 즉 제주도에 표류 했던 수나라 전함을 돌려 보냈다. 이 사건은 삼국사기와 수서에 실렸다 . 후에 수나라가 고구려를 치려 계획 할때에도 산동성에서 요동반도에 이르는 한해의 해로를 안내해 주겠다고 제언 했지만 수나라는 백제의 속샘이 의심스럽다 혹시(수나라가 통일한 영역에 백제가 다시 들어 올까 두려워)하여 백제의 제안을 받아 드리지 않았다 .
배들이 지나 간 곳은 중국 해안선에 있던 대륙백제의 어느 한 도시가 분명 하다.
중국 동해안에 있던 백제를 확인할수 있는 사료가 삼국사기 최치원 (崔致遠)전에 실렸다. 고구려와 백제의 전성기를 설명 했다 :
수서에; “백제는 서쪽으로 3일을 가면 맥국(百濟自西行三日,至貊國云) 에 이른다는 등등”하는 문구를 남겼다 . 여기에 실린 이다. 대륙백제의 북쪽 영역이였다 .
이를 신구당서에는 백제의 옛 북쪽 영역은 나타내지 않고 “서쪽으로는 바다를 건너 월주(越州)에 이르고 남으로는 왜(倭) 모두다 바다 건너(皆踰海)에 있다”고 백제의 전성 시대를 설명 했다 .
서긍의 고려 도경에는 가 옛적부터 사용하던 뱃길이라 했다. 그 일대 섬에는 신라인의 전설이 전해 온다. 지금도 홍콩에는 장보고가 그지역을 관장 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렇게 뚜렷한 사실을 은패시키려 했다.
같은 내용이 통전에도 있다. 수서와 통전에 실린 문장을 깊히 고찰 비교해 보면 , 삼국지 왜인전에 나오는; <여행객을 받아 드려도 된다는 허가를 받은 집 3,000여 가호(三千許家)나 된다는 한해 교류의 심장부였던 일본 서남열도 일지국 (一大國, 一支國, 日支國, 壹岐島)에 이르는 동안에 나오는 여러 도서를 삭제 하고, 글자 “度를 渡” 로 바꾸어 중국 동해안에 있던 백제를 황해를 건너 한반도에 있는 나라로 묘사 했다 . 이 문제는 금년 유월(Jun 22, 2017 . 새로운 고찰-2: 왜인전(倭人傳)의 개요 끝: 한해(瀚海)교역의 중심지 일지국 (一支國)의 허가 (許家)는 여인숙)에서 설명 했다.
위진 남북조 왕조들의 계통도
진서(晉書)에는 백제(百濟)란 낱말이 강남으로 도망간 이후에야 나온다. 대륙백제의 역사는 북쪽 중원 땅에 살던 고조선의 후손들이 저나름 대로 여러 부족국가를 만들어16국이란 말로 표현한 시대에 숨어 있다.
십육국시대 말기에, 대륙생활 풍속을 지니고 있던 선비족 탁발부가 고조선의 발생지 산서성에서 북위(北魏: 386년 ~ 534년)를 새워 하북 평원을 통일 했다. 그 나라 말엽에 <위(魏)자와 같은 놉다는 뜻을 훈역한 글자 최(最, 崔)를 성씨로 한 사관 최홍(崔鴻)이 십육국춘추 (十六國春秋)를 남겼다. 십육국이라고 하지만, 당시에 나타났던 나라의 숫자는 16개가 넘는다고 한다.
최홍(崔鴻)이 남긴 십육국춘추 (十六國春秋)에서 을 갖고 대륙백제에 관한 사료를 찾아 보기로 한다.
끝, 다음에 계속.
October 15, 2017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