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 (三韓)의 다양한 글자들:
진수가 사용했던 “꼬까리 모양의 모(牟)자를 그린 상형 글자 변(弁)자를 그러한 모자를 쓰던 사람이 법관이였다 하여 법변자 변한(卞韓)으로 바꾸어 썼다. 변한이 다른 글자(示/卞/ 弁韓)로도 적혀 있다. 모 라는 소리 글자(牟)를 소우는 소리의 상형 글자다. 소우는 소리에 비슷한 글자의 하나가 말 마(馬)자다 . 변한이 마한으로 둔갑 했다. 삼한이란 뜻글자 자체에 의견이 분분하니 그 영역 또한 여러가지로 설명해 왔다. 그러다 보니 삼한의 후예가 되는 “신라, 백제, 가야연맹, 왜인”들이 살던 영역이 어디였다고 확실히 단정할수 없게 되였다. 어떤 글자가 의심스러워 무슨 뜻인가를 확인 하려고 강희자전을 비롯한 다른 문헌을 찾아보면, 사관들이 글자의, 음(音)과 뜻(의 意)을 묘하게 바꾸어 적어 놓았다. 시한 (示韓)의 시자는 “shì qī zhì shí /시/기/해/계”라고도 읽던 상형(象形)글자다. 그 글자를 훈역 하면 (祇, 땅 귀신 기, 다만 지)와 같은 뜻으로 토지신을 뜻한다. 그와 같은 소리를 한 글자가 뿔달린 소 모양을 그린 시(㸷)자라 한다. 그러나 그 글자 (㸷;㓞, bottom: 牛)는 “유목민이 칼로 긁어 자국을 남기다 (Engraving)는 뜻을 그린 상형자”다.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시한 (示韓)에는 칼로 긁어 글자를 만든사람이란 뜻이 있고, “한국 토속 신앙에서 삼신 할미, 일월성 삼신/진(日月星, 三辰/神)에 제사를 드리는 사람 이란 뜻”이 있다 .
광무제 때에 삼한에 관한 글자 “示를 弁”로 바꾸었다는 증거가 강희자전에 있다 . 이는 낙랑평양설과 깊은 관계가 있다. 뒤에 다루기로 한다.
먼 훗날 편찬된 요사에는 진한(辰韓)이 부여(扶餘)즉 백제가 되고,변한 (弁韓)이 신라 (新羅), 마한 (馬韓爲)이 고려 (高麗)가 되였다고 했다 . 통전 (通典 邊防一 馬韓)에는 삼한중의 하나인 마한 땅이 방4천리라 했다 “地合方四千餘里.” 한반도가 3천리라 했으니, 마한이 만주 땅에 있었어야 한다. 신구 당서 (新舊唐書) 에 이르기를 “변한의 후예가 낙랑에 있었다” 했다. 낙랑이 갈석산 일대를 뜻한다고 밝혀 젔다. 낙랑은 옛 부터 조선의 일부 였다. 삼한(三韓)땅이 남만주 일대를 의미 했다는 증거가 당태종의 고구려 친입 기록에 나와 있다. 당 태종은 안시성 (安市城)을 정복하지 못하고 돌아갔지만 그때 고구려의 중요한 방어선이였던 백암성 (白巖城)을 함락하고 남긴 글이 “극 고려 백암성소, 克高麗白巖城詔”다. 당나라군사와 싸우던 고구려군을 “반삼한지사 (反三韓之士), 그들의 경작지를 변진지야(弁辰之野)라” 했다. 백암성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고구려 편에 많이 적혀 있다. 그 위치는 요하 서남쪽에 있어야 한다 .
남북조 시대에 북송 진종(宋 眞宗, 968년-1022년)의 명으로 편찬된 광운(廣韻) 에는 “물 맑을 영(渶, yīng/잉)자 영이란 여울이 청구산(靑丘山)에서 시작 된다고 했다 . 여울 이름이니 수경주에 실릴법도 한데, 두 글자 “渶, 靑丘” 모두 수경주에는 보이지 않는다. 영(渶, yīng/잉)자를 추운 겨울에 내린 비가 나무 가지에서 설어 구슬 같다는 뜻을 그린 글자가 영(霙)자다. 아름다운 여인을 뜻하고, 꽃 봉우리 영(英), 또는 뛰어낫다는 뜻도 있다. 전욱고양씨악(顓頊髙陽氏樂)을 영(英)라 했고, 맹자가“천하의 영제(英才)를 모아 놓고 가르침”이 인생 삼락의 하나라한 뜻을 지닌 글자다 .
자전을 종합해 보면 이 낙랑이란 글자는 제곡고양씨의 후손인 고구려와 깊은 관계가 있다. “애가 놀라서(驚) 우는 소리의 사음자”로도 써왔다. 그와 비숫한 상황을 그린 사음자가 설문해자에 실린 “, 冄冄, rǎn ㄖㄢˇ rǎnㄖㄢˇ 란란이란 소리를 그린 글자(象聲)다 . 이 글자 풀이를 다어(多語), 즉 외국어라 알아 들을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 했고, 또 한편으로는 “다언(多言), 즉 말이 많은, 수다스러운, 똑 같은 소리를 계속하는 이란 뜻”으로 섞갈린 풀이를 하여, 옛적에 단군조선의 수도 평양 일대에 나타난 현상을 읊은 시문 시경 판 (詩經 大雅 板)을 완전히 다른 뜻으로 설명하게 되였다 . 시고(詩考), 좌씨춘추, 그리고 청구산 에서 “물 맑을 영(渶, yīng/잉) 이라고 풀이한 광운(廣韻)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낙랑을 설명한 글자; “, 冄冄, rǎn ㄖㄢˇ rǎnㄖㄢ” 이란 글자는 “맑은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 를 그린 사음자다 . 한국에서 “ 나아갈 염(冄)이라 읽는 글자에 사람이란 뜻이 있는 귀 이(耳)자를 붙여 노자의 별명이 되는 귀머거리 란 뜻의 담이(耼)를 만들었다. 이 글자는 떠나가는 사람이란 뜻이 있다. 후한 시대 이후로는 염(冄)자를 “떠나가다 나약하다 하는 뜻의 나갈 염(冉)로 바꾸어”사용했다 . 나약하다 떠났다는 뜻이 있는 염(冄)자가 갈석산 일대에서 남만주에 이르는 지역에 많이 나타났다 . 삼국지 한전에 염로국 (冉路國)과 변진전에 나오는 염해국 (冉奚國)이 한 예다. 이렇게 중국사람들은 우리의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는 글자들은 뜻과 음을 이리 저리 뒤섞어 기록에 남겨 무슨 뜻인가를 확인 할수 없게 만들었다.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나오는 “다물(多勿)이란 말은 옛 땅을 되 물려라”는 뜻이라고 했다 .
삼한(三韓)의 유래는 사기 조선열전에 실린 내용을 정사에서는 받아드려야 한다. 한나라 군사가 올라온 발해만 서쪽 연안 길목을 청구(靑丘)라 했고 이를 삼한 (三韓)땅이라 했다. 고구려는 3월에 낙랑지구 (樂浪之丘)에서 사슴을 잡아 천신께 제사를 바치는 풍속이 있었다 . 주로 해변가까이 살던 사람들이 한반도 서쪽 해안을 따라 뱃기로 반도 서남부와 대마도 구주 유구열도라 흐터저 갔다. 좀더 남만주 내륙에 살던 사람들은 그 곳에 남아 부족 연맹체를 이루고 살았다. 변한이란 말은 만주 땅에서 금기 되였 마한이나 진한에 포함 되였고, 마한(馬韓)의 한부족이 남아 안정국(定安國)이 되였다 . 남아 있던 진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한자 로 훈역하여 진여국(辰餘國)이라 했다 . 남쪽 사람들은 이들을 비하하여 동음이자로 뒤 바꾸어 여진(女眞)이라는 새로운 부족 이름을 만들었다. 여진의 어원에서 깊히 다루기로 한다.
끝
February 3, 2017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