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는 삼국지에 한전(韓傳) 과 예전(濊傳)을 따로 만들었다.
한(韓) 과 예 (濊)무엇이 다른가? 의문이 생긴다.
삼국지에는 한전과 예전에 다 같이 기자 (箕子)의 유풍이 남아 있다고 했다 . 후한서에도 같은 내용을 되풀이 하였지만, 예의 서쪽에 낭랑(西至樂浪)이 있다. 예와 옥저, 고구려 모두 본래는 조선 땅이였다 . 삼국지와 후한서의 내용을 깊히 살펴 보면, <삼국지에서 한(韓) 후한서에서는 예(濊)로 바꾸어 요하 서쪽을 기술한 내용이 요하 동쪽으로 바뀌어 요동 반도 전체가 한의 영역이라는 뜻을 심어 놓았다. 요나라는 옛적에 기자가 왔던 조선땅에서 나타났다. 기원전 128년(元朔元年)에 예군남여(濊君南閭)가 피란민을 인솔하고 옛 대방(帶方)이라고 하던, 발해만 서남쪽 해안 일대 (燕濟之間)에 내려와 한무제가 그곳에 창해군 (滄海之郡)을 설치 했다 . 이 지역을 광개토대왕이 정벌 했다 . 광개토대왕비문에 고 했다 . 사마천은 만주지역에 있던 조선 (暨朝鮮, 發朝鮮)을 그곳의 지도자 동호왕이 기원전 208년에 흉노 모둔선우에게 피살된 후에는 예맥조선(穢貉朝鮮)이라고 했다 .
한(韓)과 예 (濊, 穢)는 옛 조선땅에 살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같은 지역 또는 가까이 인접해 있던 사람들이다. 한(韓)과 예 (濊)는 한해 (翰海, 瀚海)연안에 살았다. 필자의 주장을 아래와 같은 사료가 입증한다.
강희자전은 송나라 때에 편찬된 광운(廣韻)을 인용하여 라고 했다. 예(濊)자는 모/맥자(䫉同貌)와 같다 . 산서성 해지연안에 한 해(One Year, 一年)을 가름 할때 인용된 별을 목성이라 (歲:木星也)하던 글자에서 떠러저 나온 변질된 글자다.
변진전에서는 고 논증했다.
광개토대왕 비문에 따르면 그 당시 고구려의 활동 무대는 주로 요동만 수계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남해차차웅 16년에 북명인(北溟人)이 밭을 갈다가 예왕인 (濊王印)을 얻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강원도 강릉지역이 옛적에 예군이 다스리던 곳이라고 풀이 한다. 이는 신라가 한반도 동남쪽에서 나타났다는 선입관에 따라 북명(北溟)이란 문구를 잘못 인식 하여 스스로 저지른 오류다. 이를 중국은 역으로 이용하고 있다. 남해 차차웅 (南解次次雄, 재위 4년 ~ 24년)은 신라의 2대 국왕으로신라가 발해만 연안에 나타나 자라던 과정이였다. 북명(北溟)은 라는 뜻이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3대 태무신왕(大武神王, 재위 : 18년~44년)이 최리 낭랑국을 정벌하기 전에 북명사람 괴유(北溟人怪由)를 얻어 부여(扶餘)를 정벌 했다 . 고구려 본기8에는고 기록 했다 . 북명(北溟)이 요동만 북쪽 해안이란 뜻이 분명하다.
예전(濊傳)의 첫 구절에 이 문구는 앞에서 논한 동옥저 땅에 사는 사람들을 뜻했다. 요동 반도 동남쪽 요동만 수계에 속한 땅을 진한(辰韓)이라 불렀다고 본다.
대동강 유역에서 발굴된 부조예군(夫租薉君)과 1966년 경북 포항시 관활 지역 에서 발견되었다는 을 근거로 한서 지리지에 실린 낭랑군 부조현(樂浪郡夫租)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이 또한 잘못이다.
필자는 앞에서 한낭랑(漢樂浪)군이 발해만서쪽에 있는 갈석산 북쪽 해안 일대에 있었다고 논증했다. 낙랑의 남쪽일부를 띠어 만들었다는 대방(帶方)에서 대륙 백제가 나타 났다. 공손도(公孫度, 字升濟)는 그를 등에 업고 급히 성장 했다. 이는 중국측 시각에서 작성한 기록이다. 필자는 온조왕이 세운 백제를 동백제라 이름하고 두번쩨로 정한 백제수도 한성 (漢城)이 대동강 연안이라고 했다. 이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은 대륙백제에서 발행한 유물이 동백제로 왔다는 증거다. 동서 두 백제간의 교류에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본다. 한나라의 군현 부조예 (夫租)는 예맥조선 땅 일부에 설치되였던 한낙랑(漢樂浪)이 고조선의 부조(夫租)현 이름를 인용하였다. 하여 그 현/작은 부족국가 영주를 예군(薉君)이라 했다고 본다. 부조예군(夫租薉君) 인장이 후한때에 만들어 졌다는 근거는 없다. 위진시대에 그때 까지도 남만주에 있던 신라 어느 지도자에게 주었던 인장이 진솔선예백장 동인(晋率譱濊伯長銅印)이고, 신라 사람들이 남만주에서 한반도 영일만 일대에 이주하여 한반도에서 그 인장이 발굴 되였다고 본다.
한(Hahn, 韓,汗;馯)은 큰/가한 (可汗)이라고도 기록 되였던 지도자란 뜻이다. 중동과 서양에서는 칸(Khan) 독일에서는 한(Hahn)이라고도 한다. 예(濊)자는“소가 우는 소리, 馬/牟;móu mù mào”라고 기록 하던 맥/모( 䫉, 貃, 貌,)에서 나온 기마유목민족을 뜻한다.
진수는 예전 (濊傳)에 예인들이 살던 단단대산(單單大山) 동쪽 땅이 한말에는 다시 고구려에 돌아 갔다 (漢末更屬句麗)고 했다 . 이 내용을 재탕한 후한서에서는 는 기록을 싣지 않았다 . 위진 시대에는 중원 세력이 단단대령을 너머오지 못했다는 중국측 기록이다. 사기 조선 영전과 삼국지 한전의 내용에도 주원 세력이 요하 동쪽에 까지 미쳤다는 근거는 희박하다. 개마대산, 즉 단단대령이 어디인가는 다음 편에서 다루기로 한다.
끝, 다음에 계속.
May 26, 2017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