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 있는 비밀을 앞으로 몇 차례에 걸처 발해연안부터 설명해 간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위진시대의 역사 기록을 보면 발해만 서남쪽 해안이 한해 (翰海)의 관문이 였다. 사마천은 북해(北海)라고 했다. 그 곳에 단군조선의 후예들이 오랫동안 살았다. 창해군(蒼海郡)에 관한 내용을 살펴 보면 사기 평준서(平準書)에 나오는 창해지군(滄海之郡)이 원조다[1]. 이를 춘추번뇌에서 흐르는 물의 끝이 창해(流水之宗滄海)라 했다[2]. 그 지역으로 모든 강물 (海河, 黃河)가 흘러 들어 갔다. 발해만 서남쪽 연안이 분명 하다. 삼국지 동이전과, 오주전(吳主傳)에서 본바와 같이 그 유역에서 삼한의 후예들이 한해의 동서 해안으로 흐터져 나갔다. 삼한의 후예들이 발해만 연안을 따라 활발하게 교류 했고 국경이 분명치 않았다.
대륙백제의 시조와 중시조 (仲始祖):
신원이 불확실한 공손도(公孫度)의 혈통을 밝히는 문제가 동북아시아 역사 중고사의 핵심 분제다. 공손(公孫)씨의 종말을 공손연(公孫淵)이 초래 했다. 그가 자칭하기를 연(燕)왕이라 했다. 그들이 받은 직책이 낙랑공(樂浪公), 요동태수 양평후 (襄平侯), 228년(太和二年)에 공손연이 명제로부터 받은 양렬(揚烈將)장군 이다. 공손도 전에는 <공손연을 토벌하여 요동,대방, 낙랑, 현토 일대 가 모두 안정 되였다고 했다[4]. 양렬장군(揚烈)은 열하 (列河),즉 난하(Luan River灤河)일대를 뜻했다[5]. 천진-당산 일대 요동이 공손씨의 본향이고 활동 무대였다.
공손(公孫)씨가 등장 했다 사라지는 동안에 많은 의문 점이 참겨 있다. 고구려에는 발기(拔奇)사건이, 부여에는 공손도를 대릿사위로 삼았던 위구대(尉仇台死)가 죽은 후부터 왕위 계승에 의문이 많이 있다. 후한 시대에 부여 왕이 큰아들 위구대 (嗣子尉仇臺)를 보네 봉헌하니까 천자가 120년(永寧元年)에 인(印綬金彩)을 하사 했다[6]. 위구대(尉仇台) 우대 위대 하는 이름이 시조 구대(始祖仇台)로 부터 사음한 글자로 여러시대에 나온다.
공손도(公孫度)와 발기(拔奇)사건에 나오는 요동이 창해군 영역이다. 사마천이 살던 당시에 기록한 평준서(平準書)에는 보이지 않았던 문구가 한서(漢書)와 전한기 (前漢紀)에는 <예맥군 또는 동이 맥군 남여 (穢貊君南閭, 薉君南閭)라는 지도자 이름이 나오고, 그가 280,000명을 인솔하고 요동에 들어 와서 살았다. 후한서에는 남여가 인솔하고 온 280,000명이 요동에 내속 (遼東內屬) 했다>고 한다 .
진수가 남긴 부여전에는 공손도 (公孫度)를 한말(漢末) 사람이란 모호한 시대로 기록 했다. 후에는 전한 말기에 발생 했던 사건을 후한 말기로 부꾸었다. 공손도 또한 사기와 한서에는 <공손홍의 아들이라 했다가 한편에서는 손자? 또는 어느 후손으로 기록> 했다. 사기의 공손홍 열전은 후한 시대에 가필하여 본문에< 한서의 저자 반고가 말하기를 (班固曰) 하는 문구>가 있다. 한서에는 우거왕의 종말을 목격한 사마천이 남기지 않은 한사군을 비롯한 여러 이름이 실렸고, 왜인 (倭人)이 낭랑 바다 안에서 백여국으로 나누어져 산다. 그로 부터 매년 찾아왔다. 천문지에는 조선(朝鮮)이 바다안에 있다는 등등 의문스러운 문구가 많이 있다[7].
먼 뒷날 남북조 시대 송나라의 범엽(398년 ~ 445년)이 정리한 후한서에는 예군남여 (濊君南閭)가 28만명을 이끌고 요동으로 갔다고 했다[8]. 사마천이 “창해지군”이라 한 이름의 글자를 이리저리 바꾸어 창해군(蒼海郡)이 한반도 함경도 해안에 있었다고 한다. 연의 장성을 과장 하듯 이 사건 또한 많이 과장 되여 갔다. 그러나 그에 관한 여러 기록을 모아 분석해 보면 발해만 서남쪽 해안이다. 남여(南閭)란 글자는 <의무려산(醫巫閭山), 즉 선비산(鮮卑山)에 살던 지도자가 쓰던 관을 쓴 사람이 남쪽에 갔다>는 뜻이 잠겨 있다.
발기(拔奇)사건에 관련된 사건을 평준서 내용에 가첨 하여 후한 말기에 나타난 사건으로 뒤 바꾸었다. 이는 필자가 의문을 제시한 세로운 학설이라 “東北亞 古代史 新論”에서 깊히 다루었다
왕위 쟁탈전에 밀린 신대왕 백고(新大王伯固)의 큰아들 발기(拔奇, 發岐, ? ~ 197년)가 장발(張勃)이 편수한 동오의 역사서 오록(吳錄曰)에 따르면, 200년(建安五年)에 조조(曹操)와 원소(袁紹)가 벌인 관도 대전(官渡大戰)에 발기(拔奇)가 손책의 군사 고대(高岱)의 친구로 참전을 요구 했으나 나타나지 않았다[9]. 발기는 요동으로 다시 돌아 가고 아들 박위거(駮位居)가 비류수 상에 남았다. 이를 삼국 사기에는 <공손도에게 갔다가 다시 돌아와 비류수 상에 살았다>고 기록 했다. 삼국지와 삼국사기를 종합해 보면 발기를 두 다른 글자로 실었다[10]. 요동에 갔던 발기가 하북지역에서 살다 관도전 이전에 이미 죽었다. 발기(拔奇)가 부여왕의 큰 아들이고 뒤에 왕이 된 위구대(尉仇臺)라고 착기 했다. 진수는 위구대의 혈통을 밝히지 않고 대릿사위로 받아드린 공손도의 혈통에 접붙였다. 백제 본기에 몇번 다른 시대로 나오는 비류(沸流, 比流)란 글자는 비류수 일대에서 흘러온 사람이란 뜻이다. 대륙백제의 (仲)시조 (始祖)다.
끝.
September 30, 2018.
[1]. 論語 泰伯:曾子有疾,孟敬子問之。曾子言曰:「鳥之將死,其鳴也哀;人之將死,其言也善。
史記 滑稽列傳:至老,朔且死時,諫曰:「《詩》云『營營青蠅,止于蕃。愷悌君子,無信讒言。讒言罔極,交亂四國』。
願陛下遠巧佞,退讒言。」帝曰:「今顧東方朔多善言?」怪之。居無幾何,朔果病死。傳曰:「鳥之將死,其鳴也哀;人之將死,其言也善。」此之謂也。
新序 雜事一:曾子曰:「鳥之將死,其鳴也哀;人之將死,其言也善。」言反其本性,共王之謂也。
周易 繫辭上: 河出圖,洛出書,聖人則之。易有四象,所以示也。繫辭焉,所以告也。定之以吉凶,所以斷也。
新書 脩政語上黃帝曰:道若川谷之水,其出無已,其行無止。故服人而不為仇,分人而不譐者,其惟道矣。故播之於天下,而不忘者,其惟道矣。是以道高比於天,道明比於日,道安比於山。故言之者見謂智,學之者見謂賢,守之者見謂信,樂之者見謂仁,行之者見謂聖人。故惟道不可竊也,不可以虛為也。故黃帝職道義,經天地,紀人倫,序萬物,以信與仁為天下先。然後濟東海,入江內,取綠圖,西濟積石,涉流沙,登於崑崙,於是還歸中國,以平天下,天下太平,唯躬道而已
[2]. 春秋繁露 觀德: 故受命而海內順之,猶眾星之共北辰,流水之宗滄海也。況生天地之間,法太祖先人之容貌,
則其至德取象,眾名尊貴,是以聖人為貴也
[3].三國史記 高句麗本紀第二: 四年,夏四月,王田於閔中原。秋七月,又田,見石窟,顧謂左右曰:「吾死,必葬於此,
不須更作陵墓。」九月,東海人高朱利獻鯨魚目,夜有光。冬十月,蠶友落部蠶支落部大家戴升等一萬餘家,詣樂浪投漢。『後漢書』云:「大加戴升等萬餘口。」
[4]. 三國志 公孫度傳: 城破,斬相國以下首級以千數,傳淵首洛陽,遼東、帶方、樂浪、玄菟悉平。
[5].三國志 公孫度傳:太和二年,淵脅奪恭位。明帝即拜淵揚烈將軍、遼東太守。淵遣使南通孫權,往來賂遺
[6].始祖仇台之廟.夫餘王遣子尉仇台.永寧元年,乃遣嗣子尉仇臺詣闕貢獻,天子賜尉仇臺印綬金彩
[7]. 漢書 地理志: 故孔子悼道不行,設浮於海,欲居九夷,有以也夫!樂浪海中有倭人,分為百餘國,以歲時來獻見云。
天文志:其後漢兵擊拔朝鮮,以為樂浪、玄菟郡。朝鮮在海中,越之象也;居北方,胡之域也
[8]. 後漢書 :元朔元年,濊君南閭等畔右渠,率二十八萬口詣遼東內屬,武帝以其地為蒼海郡,數年乃罷。至元封三年,
滅朝鮮,分置樂浪、臨屯、玄菟、真番四部。至昭帝始元五年,罷臨屯、真番,以并樂浪、玄菟。玄菟復徙居句驪
[9].三國志 吳書一 孫策傳:建安五年,曹公與袁紹相拒於官渡 吳錄曰:又謂岱曰:「孫將軍為人,惡勝己者,若每問,
當言不知,乃合意耳 岱字孔文,吳郡人也。受性聦達,輕財貴義。其友士拔奇,取於未顯,所友八人,皆世之英偉也。
[10].三國志 魏書三十 高句麗傳: 伯固死,有二子,長子拔奇,小子伊夷模。拔奇不肖,國人便共立伊夷模為王。自伯固時,
數寇遼東,又受亡胡五百餘家。建安中,公孫康出軍擊之,破其國,焚燒邑落。拔奇怨為兄而不得立,與涓奴加各將下戶三萬餘口詣康降,還住沸流水。降胡亦叛伊夷模,伊夷模更作新國,今日所在是也。拔奇遂往遼東,有子留句麗國,今古雛加駮位居是也。其後復擊玄菟,玄菟與遼東合擊,大破之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