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팽 실위 (大彭、豕韋)단군 시절의 영역: 기원전 2333년-기원전 1046년. 단군조선 건립 부터 상나라가 멸망하고 서주가 등장하는 시기에 단군조선의 남방 한계선이 어디였는가를 추측할수 있는 사료를 찾았다. 하백곤오(夏伯昆吾)의 뒤를 이어 받은 오백지패 (五伯之霸也) 에서 두세번쩨로 거론된 지도자가 이끌던 시대다. 팽백(彭伯)은 하후국(夏后國)초기에 해지 연안에서 활약하다 . 그 후손이 상 왕조 중기부터 중원으로 나와, 기원전 1550년경 하단갑 (河亶甲 ?- 사망 기원전 1536 년)에서 조을(祖乙, 사망 기원전1508년)에 이르는 시기에 중원에서 활약 했다. 이시기에 상은 수도를 여러번 옮겼다. 중원에 살던 “소가 우는 소리, 馬/牟;móu mù mào”라고 기록…..
한강(漢江)을 한강(韓江)으로, 빼앗긴 이름을 되 찾자.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중국 공산당의 팽창주의에 입각하여 진행되는 영토확장을 우려 한다. 한국과 직결되는 문제가 “동북공정” 이다. 모두들 하나 같이 우려하지만 속수 무책이다. 필자는 “정부 언론 각계각층에 그 핵심이 되는 또 실천 하기 쉬운 사안”을 여기 보여 드린다. 간단한 문제다. 정당은 상대방이 받아드리기 거북한, 또는 받아드릴수 없는 사안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누구나 이해할수있는 합당하고 쉬운 문제부터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너무도 커다란 사안이 밀어 닥처 꼭 다루어져야할 사안은 계속 뒤로 처지고 말았다. 국정교과서를…..
오늘 김 탁 대표 께서 동이 (東夷)의 뜻을 간단요약 하게 설명하여 face book에 올렸기에, 저의 “古朝鮮 찾기. 첫 장: 어떻게 찾았나. 글자 속에서. ” 에서 밝힌 내용을 근거로 보충 설명 한다. 앞에서 사이지악(四夷之樂)을 “그들이 흐터저 서러움을 춤과 노래로 표시 했다”고 설명 했다. 주 무왕은 목야전 이후에 서주의 발생지가 되는 해지 연안에 살던, 고조선의 근간이 되는 사람들을 착취 학대 하기 시작 했다. 그들은 사방으로 흐터젔다. 이들을 방위를 뜻하는 형용사를 앞에 붙여 기록 했다. 남쪽, 서쪽에 있던 살람들은 즉시 동화 되여 “서이…..
서주의 건국부터 멸망: 서주의 건국은 기원전 1046년에 목야전에서 상을 멸망한 기록을 근거로 찾아 본다. 지난주 시월 16일 에 올린 “고조선 영토-3” 과 17일에 올린 “단군조선의 천도. 왕검성 (王儉城)을 찾다”까지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산서성에서 동으로 하북성을 지나 산동반도에 이르는 중원 전역에 흐터저, 미 합중국 초기와 같은 연맹 (聯盟) 집권 체제( “Confederation of many town States)를 이루고 살았다. 이 당시의 영역을 다음 장 “고조선 영토-4. 서주의 건국과 멸망”에서 설명 하려고 “고조선 영토-5. 춘추시대”의 대명사로 불리는 “춘추오패”의 어원을 다루었다. 현제 춘추오패라는 첫쩨 두쩨로…..
단군조선의 천도 Kyung Sup Han 씨. 저는 아직도 기다립니다. 기다리다 지처 독백을 합니다. 민족의 소원인 왕검성 (王儉城)을 찾았습니다! 중국사료에는 평양(平壤)을 평양(平陽)이라 기록 했고 같은 이름이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곳에 흐터저 있다. 모두 서주의 제후국이였던 진(晉)의 영역으로 산서성 일대에서 나타난다. 해지연안이 제일 남쪽이였다. 진(晉)이란 한자를 풀어 보면 “밝은 빛이 땅위로 올라오는 형상 (臸,下:日)으로 조선(朝鮮)이란 뜻이 있다 . 삼국유사에 실린 수도 이름들을 추적하여 오늘의 지도에서 그려 본다 . 장당경(藏唐京) 은 “북당의 수도 당경”이다. 당경(唐京)이 당도(唐都)다. 사마천의 아버지가 천관을 배웠다는 곳이다 ……
단군조선 건립부터 목야전 바로전 까지: 기원전 2333년-기원전 1046년. 좀더 첨부하렵니다. 단군왕검 백익을 잃고 분邠수를 따라 북쪽으로 피란 갔던 고조선의 후손이 상나라 무을(武乙: 1147 to 1112 BC)원년에 기산 유역으로 내려왔다. 그 곳에 서주의 시조로 알려진 고공단보(周公亶父)가 들어와 알력이 생겼다. 단보(亶父)가 전사/하고 뒤를 이은 셋쩨 아들 계력(周公季歷)이 원수를 갚았다. 그가 주 문왕(周 文王,기원전 1152년~1056년)이다. 竹書紀年 武乙: 元年壬寅,王即位,居殷。邠遷于岐周 三年,自殷遷于河北。命周公亶父賜以岐邑. 二十四年,周師伐程,戰于畢,克之 무을의 두를 이은 문정(文丁) 2년에 계력이 해지 연안 전투에서 실패 했다. 그후 전공이 많은 계력(季歷)을 죽였다. 계력의 아들 창(子昌立)이 뒤를 이었다. 그가 서백…..
단군조선 건립 이전: Kyung Sup Han 씨가 아직 소식이 없군요. 저가 예기하던 “고조선의 강역”에 관한 예기를 계속 하겠습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단군조선 건립 이전 까지의 선사시대를 다루어 보겠습니다. 태사공은 우왕의 혈통을 밝혔지만 그의 조부 이전은 확인 할수없다고 했다. 아버지가 치수사업에 실패한 곤(鯀)이고 조부 전욱이 처음으로 달력을 만들어 이를 전욱력(顓頊歷)이라 했다. 곤(鯀)과 전욱(顓頊歷)은 생존 했던 인물로 본다 . 글자가 나타나기 전에도 사람들은 시를 읊고 노래 부르며 춤을 추었다. 동북 아시아 사람들이 노래하며 춤추는 장면을 “새와 동물의 털가죽을 쓰고 한 다리”로 박자에…..
첫장. 서론 지금 까지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단군조선의 시발점이 삼국유사에 실린 대로 기원전 2333년에 운성시에서 발생하였다. 이 해를 영(0,Zero) 점으로하여 그 전을 역사 이전, 즉 선사시대 (先史時代)라고 부름이 합당 하다. 기자가 상나라 유민은 이끌고 기원전 1046년에 조선 땅에 피란을 왔다. 그들이 들어온 곳이 발해만 서남쪽 당산 일대다. 1287년동안 단군조선은 수도를 운성시에서 동으로는 당산에 이르는 지역에서 여러번 옮겼다. 이 장에서는 단군조선이 중원 세력과의 세력 분쟁에서 어떻게 변해왔나를 살펴보고자 한다 . 중국이 정사라고 이르는 24사에는 오류가 많다는 이론이 옛 부터 꾸준히 제기…..
목천자전(穆天子傳)-2. The Tale of King Mu, Son of Heaven 앞서 “신시 (神市) 환국 (桓國)시대 의 첫 장 서론”에서는 사기 대완열전을 근거로 첫 아사달이 어디였나를 찾아 보았다. 사마천은 서쪽에 다녀온 장건(張騫)의 말을 인용하여 “곤륜, 서왕무”하는 이름이 허황된 낭설이라 일축했다. 뒤에 한서 서역전에는 천산 남북로를 자세히 설명했다. 북로에 있어야 하는 오손국 (烏孫國)의 지명을 모호하게 기술 했다. 사실을 숨기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 두를 돌아 보니,아직도 의문에 싸여 있는 목천자전에는 “적오씨(赤烏氏) 서왕무, 곤륜” 하는 이름이 나와 있다. 허황된 꿈 예기라고 평하는 의문의 목천자전(穆天子傳)을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