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구는 잡혀온 왜가 노를 저어 바다를 건넜다는 뜻이다. 이년 전 학술지에 제출한 논문의 요지는 “광개토대왕이 싸운 전쟁터가 남만주 일대 였다”는 증거를 제시 하느라 부득불 논란이 많은 비문 풀이에도 손을 댔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학설이라 여러분들의 질문이 많아 이를 널리 알리고자 이 글을 쓴다. 한글로된 풀이도 “광개토대왕 비문” 이란 Key word로 Internet에서 찾으면 여러 형의 풀이를 볼수 있다. 광개토대왕 비문은 “손상/실된 글자가 여러 곳에 있고, 비문이라 때때로 주어는 생략 되었고, 한글 어순이 많이 남아 있고, 구독점이 없다. 그 당시 남만주…..
홍익 인간(弘益人間)과 홍범구주 (洪範九疇) 필자가 한국 상고사를 연구한다는 소식을 들은 가까운 사람들이 저에게 “홍익 인간(弘益人間)이란 문구”를 중국 문헌에서 찾았느냐고들 묻는다. 필자가 알아본 한국과 중국 문헌을 토대로 “홍익 인간(弘益人間)의 기원”을 설명한다. 단군왕검이 치수사업에 성공한 왕중왕 (大禹)으로 밝혀 젔다. 치수사업과 직결되는 문구가 홍범구주 (洪範九疇)다. 홍익 인간(弘益人間)과 홍범구주 (洪範九疇) 왕중왕 (大禹) 이란 칭호가 붙은 우왕과 직결되는 어휘다. 그가 치수사업에 성공 했다 하여 홍범구주 (洪範九疇)를 인수 받았다. 요동에 피신 했던 기자가 3년후에 돌아와 주 무왕에게 홍범구주를 가르쳐 주었다 . 기자의 선조 부열(Buyuel傅說)은 해지 연안에…..
고조선 영토-8-4-대석하(大石河)가 패수(浿水) 산해관을 지나는 대석하(大石河)가 패수(浿水)란 말을 아무도 한적이 없다. 필자는 이를 좀더 설명할 책임이 있다고 느낀다. 사기 조선열전에 나오는 국경이 였던 패수(浿水)가 한반도에 있는 대동강, 또는 남만주 요양을 지나는 태자하 (太子河)의 다른 이름이라고 선전하는, 동물농장(動物農場, Animal Farm)의 경영주, 중국공산당에 학술 토론을 제시 한다. 한국 고기(古記)에 실렸던 패수(浿水) 상형문자로 이방인의 예기를 기록하다 보니 원주민의 말소리를 글쓴 한족에게 유리하게 이리저리 바꾸어 가차 전주(PLCs, rPLCs, PSMCs)하여 기록 했다. 한국 상고사 에 나타나는 의문점을 “전쟁 기록, 한자 풀이, 그리고 시경 속에서” 찾아…..
산해관을 지나는 대석하(大石河)가 패수(浿水) 누구나가 인정하는 동양 최초로 황실이 이정한 사가 사마천이 “연나라 마지막 왕이 쫓겨서 요동으로가 요동왕이 되였고, 연 나라 마지막 태자 단이 죽은 곳이 연수 (衍水)라 하니, 연수를 태자하 (太子河)라고 부름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현 요동의 심장부 요양을 지나는 강을 태자하라 하고, 연의 장성이 그 곳 까지 이르렀다”는 현 중국 공사당의 설명은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이 1945년에 출판한 풍자 소설, 동물농장(動物農場, Animal Farm)과 같은 지능지수 두자리 밨에 안되는 사람들이 감성에 치우처 받아 드릴수 있는 우수꽝 스러운 설명이다……
회계(會稽)는 산서성 해지연안에 있던 도산 (塗山)이다 융족 우가 치수사업에 성공하여 대우 (大禹)라 한다. 중국 여러 기록에는 그가 죽어 묻혔다는 회계(會稽)란 장소가 절강성이라 한다 . 당시의 여건을 고려해 보면 다다를수 없었던 먼 곳이다. 이를 반박하는 사료를 정리해 본다. 대우 (大禹)의 출생과 성장한 곳은 그의 아버지로 알려진 곤(夏鯀,xià gǔn)이 치수 사업에 실패한 지역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한다. 그는 아버지가 실행할 때 나타난 잘못을 찾아 이를 수정하여 치수 사업을 일임 받았다. 나이30이 되여 치수 사업을 하던 도중에 도산 (塗山)에서 규수를 만나 결혼하여 아들…..
중국기록에 따르면 요순 시절에 나타나는 여러명의 공신 중 한 사람인 익(益)이 우를 이은 왕중왕 단군 왕검으로 그를 백익(伯益)이라 불렀이다. 사마천이 읽어 버았다는 우본기(《禹本紀》言)가 역대 우의 선조들 업적을 기록한 한국에서 말하는 “우의 가첩”이란 뜻이니 “단군세기”라 생각된다. 단군이 인솔한 부족이 멀리 “서쪽 곤륜구 (崑崙丘) 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왔다”하여 대완열전에 실었다 . 이러한 경로를 수경주에서는,우본기의 내용을 풀이한 고수 (高誘, 東漢末) 의 말을 인용하여, 우가 “곤륜산에서 시작한 하수를 지하로 1만 3000리를 인도하여 용서군 (隴西郡)에 있는 적석산(積石山)에서 지상으로 나와 낙수 (洛)와 준수(準)와 합친다고 하였스니, 5000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