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사람들은 간웅 조조의 후손을 삼국의 종주국으로 기록한 삼국지에 불만을 품었다. 명나라 나관중(羅貫中, 1320년-1400년)은 역사 소설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를 역어 종주국을 촉한(蜀漢, 221년 -263년) 으로 바꾸었다. 고조선 영역의 서쪽에서 활동 하던 세력은 남쪽 세력과 서로 견제하며 기록을 수정했지만, 바다로 퍼저 나갔던 삼한의 후예들에 관한 기록은 아무도 이론을 제기한 사람이 없고, 그들이 남겼던 기록마저 소멸 되였다 . 옛 부터 중원에서는 “하우시(夏禹氏)의 후손이 새운 나라를 높다, 천손의 후예라는 뜻을 나라 이름”으로 했다. 하우시(夏禹氏)의 후손이 하북평원에 살면서 발음이 비슷한…..
홍익 인간(弘益人間)과 홍범구주 (洪範九疇) 필자가 한국 상고사를 연구한다는 소식을 들은 가까운 사람들이 저에게 “홍익 인간(弘益人間)이란 문구”를 중국 문헌에서 찾았느냐고들 묻는다. 필자가 알아본 한국과 중국 문헌을 토대로 “홍익 인간(弘益人間)의 기원”을 설명한다. 우 (禹)가 치수사업을 하다 밀려나 동이 수령 백익 (伯益)이 완성 시켰다 : 단군왕검(壇君王儉)이란 글자는 중국문헌에 없다. 어버지 곤의 뒤를 이어 치수사업을 맡아 보았던 왕 (禹) 는 서쪽에서 온 융족(戎禹)으로 모계 혈통(성) 이 시(姒,si xi, xie)라 한다 . 사기에는 흉노(匈奴)는 하후씨(夏后氏)의 후예 순유(淳維)라는 사람이다. 당우(唐虞) 이북에 산융 험윤 훈육(山戎, 獫狁、葷粥)이 야만인으로…..
두 달전 (January 23, 2017)에 운만 띄워 올린 “왜여왕 히미/매꼬(卑彌呼)는 백제왕이 였다”는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그 배경을 간단히 설명해 드립니다. 비미호(卑彌呼)와 비미호(卑彌乎) 비미국(卑彌國) 신라 본기에는 제8대 아달라 이사금(阿達羅泥師今, 154년~184년) 20년 (173년)에 왜여왕 비미호(卑彌乎)가 사신을 통해 예물을 가지고 았다는 기록이 있다 . 삼국지에는 발음이 같은 비미호(卑彌呼)가 왜여왕이다, 한전에는 비미국(卑彌國) 백제(伯濟國) 비리국(卑離國)등 비미(卑彌)와 발음이 같거나 비슷한 여러 국가이름이 실렸다. 이들이 지역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고 본다. 낙랑 본통 한국 (樂浪本統韓國)이라는 곳이 요동 반도에 있던 최리왕 영역으로 밝혀졌다. 그 곳에서 난리(亂離)가 나서 대방 태수 궁존(太守弓遵,…..
낙랑 본통 한국 (樂浪本統韓國)이라는 곳에서 폭동이 났다. 염사치 사건과 같이 이 난리(亂離)도 한국 기록에서는 찾아 볼수 없다. 다른 글자로 실렸다고 본다. 시대와 장소 (攻帶方郡崎離營)가 기록 되였다. 이 문구를 분석하여 현제 지명으로 언제 어디서 발생했나를 밝히려 한다. 발생 시대: 고구려 신라 백제, 왜가 모두 발해만 연안에 있었던 시대다. 위진 시대는 조위(魏, 220년 ~ 265년) 46년과 서진(西晉, 265년 ~ 317년)의 52년을 더한 108년을 의미 한다. 경초(景初)란 년호는 조위 명제 치세중“237년 – 239년”에 썼다. 공손연(公孫淵 , ?198-238)을 정벌 하던 시기다. 오나라 손권이 고구려에…..
동백제 (東百濟)-1: 평양일대 낙랑(平壤 樂浪)유적지가 백제의 수도였다: 당나라가 백제를 정벌한 뒤에 편찬된 통전 (通典) 백제편은 대륙 백제(大陸百濟) 와 동백제(東百濟)를 섞어 기록 했다. 백제의 멸망 과정에는 대륙과 한반도에 백제가 있었다는 증거를 남겼다 . 대륙 백제(大陸百濟)는 북위 효문제(北魏 孝文帝, 471년-499년) 시절에 밀려 났고, 동백제(東百濟)는 고구려가 백제의 제24대 동성왕 모대(東城王牟大 : 479년-501년)의 수도를 격파 하여 약해저서 한반도 남쪽으로 옮겨 살았다. 동성왕 모대가 살해당하여 그의 두쩨 아들 융/사마()가 왕이 되였다.백제는 제24대 동성왕 때에 국력이 몹시 약해지고 천도를 “동백제의 수도를 한반도 남쪽”으로 옮겼다는 뜻이 숨어…..
여주(餘州) 북주후(北洲侯) 무강(武康) 삼국유사에는 백제의 제30대 무왕(武王: 600년- 641년 )에 관한 설화가 실려있다. 성은 부여(扶餘), 휘는 장(璋), 그의 어머니가 용과 관계하여 아들을 나았다하여 그를 서동(薯童) 이라고 했고, 고본(古本)에는 무강(武康)으로 기록되였다고 했다. 필자는 고기에 실렸다는 무강(武康)이 무왕(武王)을 잘못 기록 한게 아니라 무경(武庚)이란 글자를 잘못 바꾸어 기록 했다고 보았다. 이는 글자가 비슷한 무경(武庚)이란 글자를 무강(武康)으로 바꾸어 놓고 혹은 “일기사덕 (一耆篩德) 이라 부른다. 경신(庚申)에 등극하여 41년을 다스렸다”고 한다 . 무경(武庚)이 상나라의 마지막 태자로 삼감의 난이 실패하여 북쪽 발해만 연안에 있던 상나라 유민들이 살던…..
삼국사기 (三國史記) 에 실린 낙랑(樂浪) 과 대방(帶方)-2: 삼국사기에 실린 삼국의 발생에 관한 기록에 신라,백제, 가야에 관한 기록이 간략하다. 백제 땅에서는 백제본기1 에 낙랑(樂浪)이 여러번 나온다. 백제의 기원을 두 갈래로 기록했지만, 첫 아들 비류(沸流)가 새운 나라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다. 반대로 중국기록에는 두쩨 아들 온조왕(溫祚)에 관한 기록이 없다. 이를 편의상 필자는 “비류(沸流)가 새운 대륙 백제(大陸百濟)와 온조가 새운 나라를 동백제(東百濟)”라 가칭하여 설명 한다. 대륙백제(大陸百濟)의 시조 비류(沸流)는 졸본부여를 떠나 옛부터 전해 오던 통상로를 택했다. 발해만 서안을 따라 패수와 대수를 건너 (渡浿、帶二水) 당산 천진…..
낙랑(樂浪) 과 대방(帶方)의 위치가 발해만 서쪽 해안 일대로 판정되고 보니, 삼국사기 (三國史記)에 실린 신라, 백제, 왜가 모두 남만주 해안에서 발생 했다는 근거가 분명하다. 앞에서 거론한 바와 같이 전쟁을 목격한 사마천이 남긴 사기에는“현토(玄菟) 낭랑(樂浪)하는 이름”이 없고, 광개토대왕 비문에도 그런 글자가 없다. 고구려와 백제가 남겼다는 사서가 있었다고 하나, 삼국사기(三國史記)의 편집진은 이러한 한국사료를 인용치 못한듯 하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실린 대방, 현토 ,낙랑 (樂浪)하는 낱말을 종합해 보면 삼국지, 후한서, 통전등 후한시대 이후에 편찬된 중국사료에 의존하여 이치에 어긋나는 앞뒤가 틀린 기록을 남겼다. 삼국사기 (三國史記)에 실린 여러…..
고전을 이해하기 위한 어휘사전 편찬. 이씨가 주장하는 “고전을 이해하기 위한 어휘사전 편찬이 필요하다”는 문제는 학문을 하는 사람이면 언제나 느끼는 점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한마디 한마디 깊히 생각하여 사용한다. 한국사람으로 한국학, 언어학, 한학등에 조예가 깊으신 분으로 애국충정에서 여러분들의 의견을 대변 하셨다고 본다.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되도록이면 한자를 피하고 우리 고유 어휘를 살려 한글 전용을 주장하던 필자는 한국상고사를 다루면서 이 문제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이 씨가 대변한 문구 는 한자를 더 많이 써야 한다고 나서던 분들의 목소리다. 한국고전에 실린 어휘는 크게…..
외로운 여정: 40평생을 의학에다 보내고, 뛰어든 상고사 찾기는 참으로 “외로운 여정”이다. 많은 재야 사학가들이 활동 하지만 필자는 아직 벗을 찾지 못했다. 모두 저나름대로 다른 패이지를 읽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한번 경종을 울려 본다. 한국상고사는 상형글자인 한자에, 옛적 노래를 적은시경 (詩經)에, 각종 중국문헌속에 숨어 있다고! 삼한의 후예들을 연구하려면, 흔히들 전사사(前四史)라고 부르는 중국 초기의 역사서 네권인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를 사료의 핵심이라 한다. 그러나 사마천은 조선열전을 쓰고 (의식적으로?) 끝을 마무리 짖지 않았다. 낙랑 현토하는 글자가 없다. 사기에는 지리지가 없고, 하거서(河渠書)에는 만주땅에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