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백제를 등에 업고 급성장 했던 공손씨 (公孫氏)의 시말-1: 삼국사기에는 공손도(公孫度)란 이름이 현도군(玄菟郡)에 처음 나타났다. 그 지역에 “고구려(高句驪) 상은대(上殷台) 서개마 (西蓋馬) 세개의 현”을 두었다. 상은대(上殷台)에 살던 주민을 상나라 유민촌으로 부여(夫餘)라고 기록된 곳이다. 그의 후손 구대(仇台)가 발해만 서남쪽 천진 일대에서 도망온 공손도의 딸을 부인으로 받아드렸다 . 공손도(公孫度) 다음 세대는 남만주 발해 요동만연안을 통치하는 연왕(燕王)이라 칭하다 몇달 후에 일당이 주살 당했다. 구대의 후손이 동이의 강국이 되였다는 기록에고 불구하고, 진수는 공손씨가 한해(韓/汗/翰海)를 통치 했다고 기록 했다. 공손씨의 등이 의문에 싸여 있다. 공손도(公孫度,?-204年,字升濟,一作叔濟)에서 부터 공손연(公孫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