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미호(卑彌呼)와 비미국(卑彌國)은 남만주에 있었다. 왜인전 사절 (Sectin 4 부터 8) 까지는 왜왕실의 역사를 자세하게 설명 했다. 이편에서는 금년 초(January 23, 2017)에 운만 띄워 올린 “왜여왕 히미/매꼬(卑彌呼) 는 백제왕이 였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그 배경을 좀더 설명 한다. 신라 본기에는 제8대 아달라 이사금(阿達羅泥師今, 154년~184년) 20년 (173년)에 왜여왕 비미호(卑彌乎)가 사신을 통해 예물을 가지고 았다는 기록이 있다 . 삼국지에는 발음이 같은 비미호(卑彌呼)가 왜여왕이다. 가까이에는 남자왕 비미궁호소(卑彌弓呼素)가 다스리던 구노국(狗奴國)이 있었다 . 한전에는 비미국 (卑彌國) 백제(伯濟國) 비리국(卑離國)등 비미(卑彌)와 발음이 같거나 비슷한 여러 국가 이름이 실렸다. 이러한…..
왜인전(倭人傳)의 새로운 고찰-3: 본론 설명-2: 대화국(大和國)의 기원: 삼절 (Sectin 3) 왜국 풍속을 보충 설명 했다: 위약에 이르기를: 왜국의 풍속은 4 계절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수명이 길어 90 또는 100세를 사는 사람도 있다. 지도자(大人)가 경배해야 할곳(temple)을 찾아 가면 단순히 손바닥을처 소리를 내고 배례를 한다. 종가에도 서열이 있다. 조세를 받아 드린다. 큰 나라에는 시장이 있으나 교역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대왜(大倭)를 보내 감시한다. 대왜(大倭)에 관한 풀이가 다양하다. 여왕국 이북에는 특별히 대솔(大率)을 두어 감찰 하여 여러 나라들이 두려워 한다. 항상 이도국伊都國)에…..
왜인전(倭人傳)의 새로운 고찰-3: 본론 설명-1: 이절 (Sectin 2) 부터는 풍속을 설명 했다: 후한서 동이전을 포함하여 삼국시대 이후에 편찬된 왜인전이 모두 진수의 왜인전을 인용하고 추가 했다. 이들을 참조 종합하여 왜인전 본론을 설명한다. 첫쩨: 왜인의 풍속을 “黥面文身또는斷髮文身”이라 했다. 이는 앞에서 에 기원을 둔다고 설명 했다. 진수는 사기 오세가에 실린 오태백의 형상을 잘못 인용하여 했다 . 한반도 서남해안을 따라 대마도를 거처 일본열도 구주 연안에 이르는 해상 통로를 자세히 설명해 놓고 나서는 엉뚱한 풀이를 더했다. 강남 해안 지대에 하후씨의 후손이 자리잡게된 이유는 그들의 후손이…..
한해(瀚海)교역의 중심지 일지국(一支國)의 허가 (許家)는 여인숙: 진수가 일대국(一大國)이라고 한 일지국(一支國)은 대해국(對海國; 對馬島)보다 적지만 ( 400리:300리) 가호는 1,000호(千餘戶)의 3배가 되는 3,000허가 있다(有三千許家)고 했다. 오기(誤記, typo)인가 하여 살펴보니, 필사본 (scanned text)에도 허가 (許家)라고 적혔다. 무슨 뜻인가? 이 두 섬은 경작지가 부족하여 배를 타고 (乖船)다니면서 남북시적(南北巿糴)이라. 일지국(一支國)도 그렇다 (亦南北巿糴). 사들일 적 (糴)이라니 남북 어디에도 시장이 있을 만한 큰 지역이 없다. 뱃길로 멀리 가서 구해온다는 뜻이다. 허가 (許家)란 ;인듯 하다. 그렇다. 해상통로의 구심점이 되는 섬나라였다. 일지국(一支國)에서 뱃길로 (방향은 거론 않고) 1,000리를 가면(又渡一海) 말로국에 도착(末盧國)한다……
A New Announcement of New Theory: This article proclaims a new theory that the mystical name Guya Hanguk(狗邪韓國) in The Records of the Three Kingdoms (三國志) is the Han Citadel (漢城)of Baekjae Kingdom (百濟) near the Daedong River or Taedong River (大同江) in the North Korea. The original text was erroneously translated. As a result, scholars around the world believe that the mystical name Guya Hanguk(狗邪韓國) is the Geumgwan Gay (金官伽倻) in the southern tip of Korean peninsula. 왜인전(倭人傳)의 새로운…..
삼국사기에 나타난 염사치 사건: 이 사건은 남만주에 있던 삼한 땅에서 나타났다[.한(汗·干·翰·韓·馯·邯) 강희자전:瀚:《廣韻》《集韻》《韻會》《正韻》𠀤侯旰切,音翰。北海名。《史記》作翰海。 《霍驃騎傳》登臨翰海。《集韻》亦作澣. “如淳曰:「翰海, 北海名也.” Sea of the Han. 三國志 倭人傳:倭人在帶方東南大海之中,依山島為國邑。舊百餘國,漢時有朝見者,今使譯所通三十國。從郡至倭, 循海岸水行,歷韓國,乍南乍東,到其北岸狗邪韓國,七千餘里,始度一海,千餘里至對海國。其大官曰卑狗,副曰卑奴母離。所居絕島,方可四百餘里,土地山險,多深林,道路如禽鹿徑。有千餘戶,無良田,食海物自活,乖船南北巿糴。又南渡一海千餘里,名曰瀚海,至一大國,官亦曰卑狗,副曰卑奴母離。 ]. 시대적으로 전후한 전환기 지황시(王莽地皇時: 20-23년)에서, 건무20년(建武二十年:서기 44년)사이다. 한무제 친입이후 고조선 사람들이 흐터졌다가 다시 작은 군소국가를 형성하였다. 이들이 좀더 큰 부족국가로 성장해가는 삼국의 탄생 초기다. 삼한의 후예들이 연합하여 중원 세력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 싸우던 시대다. 삼국사기에서 찾아 보았다. 고구려: 고구려 대무신왕 (大武神王, 18년-44년)과 민중왕 (閔中王;44년-48년)집권 시대다. 그 때에 중원에서는 왕망(王莽)이 신(新, 8년~23년)나라의 황제가 되였다 가 전한의 후손인 광무황제 유수(東漢…..
필자의 염사치 사건 분석: 영국 문화의 황금시대를 이룩한 기반이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년-1616년 ) 라면, 동양에서 중화 팽창주의에 뿌리(China as the clandestine expansionist)를 내릴수 있는 기틀을 닦은 사람이 사마천과 진수다. 이들은 단독적으로 역사서를 남기면서 한자(漢字;Phono-semantic pictogram)를 묘하게 이리저리 뒤바꾸어 사용한 문자의 귀재 (鬼才) 였다. 진수는 사마천이 못다한 예기를 보충 설명 했다. 하여 사기(史記)와 삼국지에는 처음 나타나는 표현이 많이 실렸다. 진수는 많은 사료를 위약(魏略)에서 택했다. 위약이 진수와 거의 같은 시대에 편찬 되였다고들 하나, 지금까지 필자가 고찰한 바로는; 이다. 그 안에는 고…..
사건 내용을 한글로 해석: 염사치 사건의 발생시기에는 20여년을 두고 차이가 있지만 발생지역이 중국기록에는 으로 나타난다. 삼한 땅이 분명하나 왜 또는 일본에서 발생 했다는 기록이 없다. 삼국지에는 고구려와 신라 백제 기록에도 나타 났다. 삼국 발생 초기의 사건이라 남만주 땅을 포함 했다고 본다. 삼국지에는 염사치 사건을 자세하게 기록 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전사사(前四史) 특히 사기와 삼국지 내용은 와 같은 풀이를 해야 한다. 필자가 풀이한 내용이 종전에 한국 사학계에서 풀이한 내용과는 다른 점이 여러 곳에 있다. <> 問之,男子曰:「我等漢人,名戶來,我等輩千五百人伐材木,為韓所擊得,皆斷髮為奴,積三年矣。」鑡曰:「我當降漢樂浪,汝欲去不?」戶來曰:「可。」鑡因將戶來,來出詣含資縣,縣言郡,郡即以鑡為譯,從芩中乘大船入辰韓,逆取戶來。降伴輩尚得千人,其五百人已死。鑡時曉謂辰韓:「汝還五百人。若不者,樂浪當遣萬兵乘船來擊汝。」辰韓曰:「五百人已死,我當出贖直耳。」乃出辰韓萬五千人,弁韓布萬五千匹,鑡收取直還。郡表鑡功義,賜冠幘、田宅,子孫數世,至安帝延光四年時,故受復除。 후한서에 실린 이 사건…..
진수는 한반도 동해(東海)를 몰랐다: 진수가의 표현을 보면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 동쪽 큰 바닷가에서 편안 할 능(而)능거(而居)라 했다 . 천애의 방어선을 서쪽에 두어 남만주에서 발생했던 전쟁의 피해를 벗어난 그 사람들의 주 활동 무대는 육지가 아니라 동쪽 바다였다. 삼국지 동이전을 숙독하면, 옥저동 대해(沃沮東大海)란 문구는 한반도 서해안, 즉 황해 (黃海)동쪽 한반도 연안을 묘사 했다. 동이전에 나오는 해(海)자 중에 단 한곳 을 이른듯 하나 자세한 설명이 없다. 진수는 직접 한반도 동해를 본사람을 만나지 못했다고 본다. 흔히들 한전 (韓傳)에 그들의 사는 땅이 가이 4000리나 된다…..
동옥저전(東沃沮傳)-2: 서쪽 경계와 태자하의 어원: 동옥저 서쪽은 개마대산 (蓋馬大山)으로 고구려와 접했이다. 예전(濊傳)에는 단단대령 (單單大山領)이란 문구를 쓰고, 산령(山領)을 경계로 이동,이서, 영동(領東)하는 글자를 썼다. 대령(大嶺)을 고의적인가 혹 실수인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뜻이 다른 사음자로 대령(大領)이라 했다. 이 잘못된 글자를 후한서는 그대로 인용하면서 대령이동(大領已東)이라고 했다 . 미묘한 표현이다. 편집진의 입장을 고려해 보면 그들이 사용한 글자 (已; 그칠 이, 이미 기/이)에 답이 있다. 대령(大領)이란 뜻은 로 풀이 된다. 삼국사기에고 했다 . 지리지형과 기후조건을 결부 시켜 보면 대나무가 자라는 곳이 될수가 없다. 이 문구는 어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