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삼경(三京) 장안성(長安城)과 임유관(臨渝關): 고구려는 광개토대왕부터 국토를 확장하여 장수왕의 손자에 이르러 대흥안령을 너머 영양왕 (嬰陽王) 때에는 산서성에 까지 이르렀다. 임유관 전쟁이후 부터는 국내 불만이 생겼고, 만주에서 밀려난 신라와 백제가 동남쪽 변경을 공략하여 장안성 (長安城) 에 7-8년 있다가 요하 동쪽, 평양성(平壤城)으로 되돌아 왔다. 삼국사기에; <당서(唐書)에는 평양성이 곧 장안이다. 고기에는 평양에서 장안으로 옮겼다(古記云; 自平壤移長安) 하였스니, 두성이 같은 곳인지 아닌지, 얼마나 멀리 떠러저 있었는지 알수가 없다>고 했다[1]. 고구려의 장안성(長安城)에 관한 기록은 수서에도 있어야 한다. 삼국사기와 당서에 시렸다는 내용과 같다[2]: 하나 다른 점은 <평양성,…..
단군조선 발생지와 제후국 연(燕): 이렇게 전국시대 (戰國時代, 기원전 403년 ~ 기원전 221년) 부터 진시황이 중원을 통일 할때 까지 연은 갈석산 남서쪽에 있었다. 중국 사서에; <서진 창립 초에 소공 석(召公 奭)을 연(燕) 땅에 봉하고 도읍을 현재의 북경 일대로 정했다>는 주장은 낭설이다. 소공 석(召公 奭)은 황하문명의 발생지에서 옛 <단군조선의 수도 평양 일대에 봉지를 받았다 . 사기연소공세가에 주 무왕이 상나라를 멸하고 소공을 (서주의 수도 호경) 북쪽 호수가 물제비가 날아 다니는 조용한 곳에 봉했다 (封召公於北燕). 이를 후세 사람들은 북연 (北燕)을 독립된 명사로 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