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聖水)란 특이한 이름이 북위 여도원(北魏 酈道元)의 수경주에 처음 나온다. 산해경(山海經) 해내서경에는 단 한번 성목(聖木)과 맥국(貊國)이 실렸다[1]. 이 두편은 상관 관계가 있다고 생각 되어 살펴 본다. 북위(北魏, 386년~534년)는 五胡 십육국 시대에 고조선의 후손인 선비(鮮卑)족 탁발씨(拓跋氏)가 화북 평원을 통일하여 세운 나라다. 탁발씨(拓跋氏)는 전욱고양 씨(顓頊高陽氏)의 후손으로 북쪽 산위에 해 뜨는 계곡(北俗, 陽谷, 上谷)에서 높다는 뜻에서 나온 이름이라 한다. 그 들이 세운 나라는 높다는 뜻의 위(魏)를 훈역 하여 더 높다는 원씨(元氏)로 바꾸어 원위(元魏)라고도 한다[2]. 탁발씨(拓跋氏)의 탁(拓)자는 땅이란 뜻이고, 발(跋)자가 북쪽 밝은 곳을 뜻한 사음자다. 탁발씨(拓跋氏)가 나타난 곳이 옛적에…..
산해경(山海經)에는 조선(朝鮮)이 해내경(海內經) 첫줄에 천독(天毒)과 같이 나오고, 해내북경(海內北經) 끝 부분에 “倭, 燕, 蓬萊山” 과 같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번 나온다[1]. 천진-당산 일대를 중심으로 발해만 서쪽 연안을 기술 했다. 해내북경는 위진시대 까지의 상황을 곽박이 보충 설명 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나, 한 세대 앞 사람으로 여러 저서 “戰國策 說苑 新序 荀卿書錄”를 남긴 전한의 유향 (漢 劉向; 77- 06 BC)은 왜(倭)자를 남기지 않았다. 열녀전(列女傳)에 강호왜월(羌胡倭越)이란 문구가 있다[2]. 비단염색을 좋아 하는 여자란 뜻으로 중원지역을 묘사 했다. 왜(倭)자는 왕충(王充;27년-97년)의 논형회국(恢國)편에 황하문명 발생지에서 요순 시대 부터 살던 사람들이…..
개요: 천독(天毒)이란 글자는 뒤에 설명 하기로 하고, 산해경(山海經)을 먼저 다룬다. 산해경의 저자와 성서 기간: 산해경은 오랫동안 여러사람이 가필 증정한 지리 풍물서다. 우(禹)와 같이 치수사업을 했던 백익(伯益)이 첫 저자다 . 사료의 출처는 태평어람에는 오월춘추라 밝혔고 그를 따라가면 여씨춘추 (吕氏春秋)가 된다 . 우가 노총각으로 잂은 시문이 도산가(涂山歌)란다. 오월춘추에는 그에 (候人兮猗)란 구절이 남쪽사람들의 언어(南音, 語順)이라고 했다. 아전 인수격이다. 시경 조풍에 후인( 詩經 國風 曹風 候人)이란 편명이 있다. 후인의 시문을 본받아 주공과 소공이 읊은 시문이 주남과 소남(周南, 召南) 이라 한다 . 조풍에 부여의 어원인…..
May 20 · 선학들이 연구한 상고사에 관한 기록은 “강단 사학계에서 주장하는, 1+1=2라는 단순한 논리에 의거한 실증사학의 범주”에 든다. 그러한 방법으로 <중국사서에 나타난 한국 상고사를 살펴보니까 앞뒤가 틀리더라. 위만(魏滿)을 음이 같은 다른 글자 위만(衛滿)으로 적었더라고 인식> 했다. 여기 까지는 알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고전의 문장이 한글어순이라는 사실은 까마득히 몰랐다 . 하여 위만이 되돌아와 왕이 도였다는 뜻의 복래왕지(復來王之) 하는 문구는 아무도 다루지 못하고 남만주 사람이였던 그를 연나라 사람이라 인식하고 있다. 머나먼 닉원 땅(遼寧)이라고 꿈에 그리던 남만주와 발해만 서남쪽은 고조선 영역이라 옛부터 교류가 왕성…..
May 21 · 삼국유사에는 <단군기(壇君記)내용을 인용하여 해부루와 주몽은 배다른 형제> 라고 했다 . 중국기록에는 고구려와 부여의 건국에 나오는 해모수 (解慕漱), 그의 아들 해부루(解夫婁), 그리고 금와(蛙, 蝸)란 이름이 없다 . 한서 지리지와 통전에 나온 개마(蓋馬: 蓋; gài gě hé音合; hé gě) 란 이름을 비교해 보면,부여와 고구려 시조에 나오는 해모수의 해모(解慕) 같은 뜻이 분명하다 . 수(漱)자는 도망을 간 지도자 (澣)란 뜻으로, 현토군에 있던 서개마현의 지도자로 도망갔던 사람이 해모수 (解慕漱)다 . 흑(黑; [hēi] hēi hè/흐어/해) 자 해(解)자가 모두 해(sun, sun-ray)를 사음한 글자(蓋音合)와 같은 사음자다……
May 24 · 낙랑(樂浪)의 발생지를 찾아보니 패수(浿水)는 산해관을 지나는 여울로 밝혀 졌다. 한무제의 병력이 왕험성을 침략 하려는 출발점이 요동과 열구다. 요동이 어디인지 확인 되었다. 한나라는 국경선 패수(浿水) 가까이 요새를 두었다. 그래서 한나라 사신이 전송 나온 우거왕의 비왕을 죽이고 급히 패수를 건너 요새로 들어갈수 있었 다 . 패수는 한나라가 설치 했던 요새 가까이 자그만 여울이라 사마천은 <좌장군 졸정가(左將軍卒正多) 공격에 실패하여 도망 왔고, 해군이 봉변을 당하고, 한나라 육군 총 사령관 순채(荀彘)또한 코앞에서 적군을 처부시지 못했다(未能破自前)란 표현>을 했다. 요동에 있던 한고조 사당이 불탔다는 진시황…..
May 26 · 치우천왕과 황제가 싸웠던 곳을 탁록 전투(涿鹿之戰)라 한다. 족쇄를 채운 돼지와 사슴때를 상대로 싸운 곳이란 뜻이다.부여(夫餘)의 어원을 발생지에서 부터 흘러온 과정을 살펴 보면 사슴(鹿 deer. 麃reindeer)과 부여의 관계가 밝혀 졌다. 성주대회에 나탄서 열변을 토한 기자를 도망갔던 사름이 움다고 표현하고, 시경에 녹명(詩經 鹿鳴)이란 편이 남아 있다. 한국과 영미 이름있는 연구소와 학술지에 제출 했다 낙방 맞은 “Linguistic and Historical Examination of Bal Joseon,發朝鮮考”에 자세히 설명 했다. 주 왕실에 패백을 바치고, 성주회에 기자가 쓰고 나타났던 해유관(解隃冠)이다 . 이를 신비의 동물 해치(Unicorn)에서 설명…..
May 30 · 동양 상고사는 <당시 최고의 훈고(訓告)학자가 중국 황제을 위하여 글자를 선택하고 문장을 만들었다.> 그 곳에 숨어 있는 한국 상고사를 찾으려면, 최고 기사들이 국수전(國手戰)에서 바둑 한점 한점에 신경을 쓰듯 바둑판 전체를 놓고 깊히 생각하며 동양고전을 풀어야 한다. 글자 풀이의 다양성을 모르고 중국사람들이 남긴 한쪽 의견만을 들어 전세계 사람들이 동북아시아 역사를 잘못 알고 있다. 피해자인 한반도에는 아직 까지도 중국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조작한 문헌을 그들이 풀이한 그대로 인용하여 단군조선이 한반도에서 탄생 했다고 인시하고 있다. 모두들 수나라 이후에 만든 사전에만 의존 하여 고전을 풀이…..
May 31 · 필자는 모두가 인정하는 한서에 나타난 양웅전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드려 조선이 조양일대라고 풀이 했다. 이를 수정 한다. 방언의 저자 양웅(揚雄, 楊雄, ?-?)은 이름자가 다르고 출생 년몰이 확실치 않다. 사기에는 기원전 117년에 죽은 사마상여전에 양웅이 지었다는 마려지부 (靡麗之賦)란 문구가 실렸다. 전한기(前漢紀)에는 효문황제(孝文皇帝; 기원전180년 ~ 기원전 157년) 본기에 실렸다 . 한서에는 양웅전을 상하 두편으로 장구하게 미사려구로 설명 하며 71세로 왕망의 신조(新朝) 원봉 5년 기원후 18년 에 사망 했다 . 수명을 계산 하면 150년 이상이 된다. 방언에는 요동(遼東) 낭랑(樂浪)이란 지명이 없다. 요동…..
한 많은 대동강. 정신과 심리학을 하는 사람들은 한동안 한국문화의 특징을 “한, 한이 맺혀, 한 많은” 의 “한”에서 찾을수 있다고 했다. 그러한 일면이 야인초 (野人草;?~1999) 김봉철이 작사 했다는 유행가, 한많은 대동강이다. 한이란 소리가 무슨 뜻이가를 놓고 시비가 많았다. 어원이 양자 방언에 있다: [조선에서는 마음이 답답하고 괴롭다는 뜻,번만(煩懣)을 한만(漢漫) 이라는 사음자]로 기록 했다 . 이 밖에도 양자 방언에는 전국시대 조선의 고어가 여러 곳에 실려 있다. 진수는 이를 진한전에 설명 했다 : 진한지역에 사는 노인들 예기로는 그들의 선조는 옛적에 진나라의 노역을 피해 한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