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모초(益母草) 퇴(蓷tuī): 옛부터 한국사람들은 익모초를 아껴 길렀다. 상형글자 속에 한국 상고사가 숨어 있다는 전제 하에 동북아 역사를 연구하다 보니, 백익(伯益)이 단군 왕검이시다. 그가 우물, 바둑과 납형을 창안 했다. 기자(箕子)가 갔다는 조선은 태행산맥이 흐르는 산서성 북부, 발조선(發朝鮮))이라 했다는 등등, 뜻 밖에 여러 가지 세로운 사실을 찾았다. 익모초란 글자를 구글에서 찾아 보면(Google search) 라 했다[. 익모초는 어머니에게 이로운 풀이라는 뜻으로 어머니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 이로운 풀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 원산이며 일본, 대만, 중국에도 서식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익명, 충위자 등이 있다.]. 같은 식물을 충울(茺蔚)…..
단군왕검의 혈통과 표기: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조선 건립에 관한 기록은 모두 아시리라 봅니다. 熊女者無與為婚。故每於壇樹下咒願有孕。雄乃假化而婚之。孕生子。號曰壇君王儉。 삼국유사에 나오는 웅녀자(熊女者)란 글자는 모두들 의인체 소설의 표현으로 인식하여 암컷 곰 한마리(熊女者)라고 풀이합니다. 그러나 웅녀자(熊女者)란 글자는 란 뜻입니다. 일연 스님은 예기의 출처를 위서(魏書) 라고 밝혔서요. 위나라의 역사서란 뜻입니다. 이름을 “높다는 뜻의 사음자 위 魏, 圍, 衛”라고 지은 나라는 옛부터 여러 곳에 있섰서요. 시경에는 어느 특정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부르던 고향의 노래(향가, 鄕歌)를 모아 국풍이란 편명을 만들었서요. 그 안에 “魏風, 衛風”이라는 두 편명이 있서요. 위란 말소리는 지금 한국에서…..
자부패구(柴夫吠狗)의 자부를 자부선인(紫府仙人)으로: 모시정의에 따르면 월령(月令)에 수질신자(收秩薪柴)란 시구가 있다 하나 보이지 않는다[.正義曰:薪,木稱,故《月令》云「收秩薪柴」,注云:「大者可析謂之薪。」下章蔞草亦云薪者,因此通其文.「槱之」與《大宗伯》「槱燎」文同,故知為祭天也。《大宗伯》以禋祀祀昊天上帝,以實柴祀日、月、星辰,以槱燎祀司中、司命、風師、雨師。彼槱燎之文,唯施用於司中、司命。《月令》季冬,「乃命收秩薪柴,以供郊廟及百祀之薪燎」]. 다음사전에는고 한다. 남 목을 실 사로 바꾸었다. 시경에 있다는 많은 글자와 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사마천이 사기를 편찬한 이후에도 바꾸었다. 섶 시(柴)자는 천신께 제사드리려고 준비한 나무가지 (섶)을 뜻했다[.正義曰:薪,木稱,故《月令》云「收秩薪柴」,注云:「大者可析謂之薪。」下章蔞草亦云薪者,因此通其文.「槱之」與《大宗伯》「槱燎」文同,故知為祭天也。《大宗伯》以禋祀祀昊天上帝,以實柴祀日、月、星辰,以槱燎祀司中、司命、風師、雨師。彼槱燎之文,唯施用於司中、司命。《月令》季冬,「乃命收秩薪柴,以供郊廟及百祀之薪燎」]. 고구려 동천왕의 묘소를자원(柴原)이라 하고, 주 무왕이 기자의 옛 집 앞에서 분향 했(柴箕子之門)는 문구가 그 뜻이다. 시경 거공(車攻)에 나를 도와 섶을 쌓다(助我舉柴)란 시구가 그 뜻이다. 고자란 사람의 후손이 자(柴:薪也,又姓髙柴之後)를 성씨로 했다. 태행산맥 (燕之紫山) 일대(燕,晋)에서 나는 옥돌과 발조선(發朝鮮)의 문피를 귀중 품으로…..
남만주에 나타났던 공손씨(公孫氏)의 시말-교정본: 서론: 한-중 양국 문헌에 공손(公孫)씨가 나타난다. 삼국사기에는 공손(公孫)씨가 한나라가 점령 했던 요동(漢遼東)에서 현도군(玄菟郡)에 이르는 지역에서 활동 했다. 삼국지에는 공손도전(公孫度傳)이 있다[. 三國志 公孫度傳: 公孫度字升濟,本遼東襄平人也。度父延,避吏居玄菟,任度為郡吏。時玄菟太守公孫琙,子豹,年十八歲,早死。度少時名豹,又與琙子同年,琙見而親愛之,遣就師學,為取妻。後舉有道,除尚書郎,稍遷兾州刺史,以謠言免。同郡徐榮為董卓中郎將,薦度為遼東太守。度起玄菟小吏,為遼東郡所輕。先時,屬國公孫昭守襄平令,召度子康為伍長。度到官,收昭,笞殺於襄平市。郡中名豪大姓田韶等宿遇無恩,皆以法誅,所夷滅百餘家,郡中震慄。東伐高句驪,西擊烏丸,威行海外。 ]. 현토태수가 공손도(公孫度 ? ~ 204년)와 동갑이였던 아들을 잃고 공손도를 사랑하여 장가 까지 들려 주었다. 동이전에는 아들 공손강(公孫康, ? ~ 221년) 손자 공손연 3세에 걸처 요동에 군림하여 중원세력에서 벗어나 독자적 정권을 유지 했다. 공손도는 동한 광무제 이후에 출생한 사람이다. 그가 부여왕 위구대(尉仇台)의 딸을 부인으로 택했다. 그의 아들이 공손강이고 손자가 공손연(公孫淵. 238년)이다. 부여 왕실이 공손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