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朝鮮과 夏 商의 관계-3: 문화와 역사. 상용(商容) 과 관저(關雎) 고조선의 역사는 빼앗겼서도 문화적 유산은 시경에 남아 있다. 앞서 시경 주남 첫 편인 관저(關雎)에 관해서 간단히 설명 했다. 관저와 관련된 여러문구(關雎之人, 關雎之義, 關雎之亂)에 상나라 말기의 현인 상용(商容)이 나타난다. 이를 살펴 본다: 상나라 말기에 [미자微子,기자箕子,비간比干 세 현인]이 있었는 사실은 잘 알려저 있다. 그러나 상나라 사람들의 추앙을 받던 제상 상용 (商容)이 있었다는 사실은 한국 넓리 알려지지 않았다 . 상용(商容)이 현인이란 내용은 위진시대는 물론 송명(宋明)시대의 사서에도 많이 실려 있다. 예기(禮記)에는 무왕이 상나라를 정벌하고 기자를…..
2: 古朝鮮과 夏 商의 영역: 한예문자(韓穢文字)의 출현: 산해내경과 초씨역림에 나오는 “朝鮮”은 모두 상나라 말기 까지 산서성에 있었다. 시경에는 “하 상은 주”를 뜻하는 글자가 보이지만 고조선을 뜻한 글자는 없다. 은미하게 기록 되어 찾지 못했다고 본다. 사마천은 옛적에 치수사업을 하던 곳 하양에서 태어났다. 그의 선조를 설명한 자서전에 역사의 시작을 상명삼왕지도(上明三王之道)라 하고, 상서(尙書)의 뜻을 선왕지사(書記先王之事)라 했다 . 웃사람의 어록이란 뜻이다. 시경 상송에 성탕이란 문구가 있고 상이 상(曰商是常)이라 했다 . 같은 뜻을 여러 “尙, 上, 商, 常, 恒”글자로 적었다. 항상 (always) 이라고 읽는 두…..
王儉의 古朝鮮과 夏 商의 관계-1: 古朝鮮의 발생 시대와 장소. Screenshot-11에서 보신 바와 같이 일연스님은 [古朝鮮의 발생 시대와 장소]를 찾을수 있는 사료를 위서(魏書云)라고 했습니다. 나라 이름을 “古朝鮮 王儉朝鮮”이라 했서요. 그 때가 요고동시(與高同時), 즉 요임금 시절이라 했습니다. 각종 중국 사서에 나오는 삼황오제의 “堯舜禹”, 즉 치수 사업을 하던 시절입니다. 그로 부터 2,000을 지난 전국시대의 위나라 역사서에 [古朝鮮의 발생 사연]이 실렸다고 했습니다. 전국시대의 위(魏: 기원전 403년 ~ 기원전 225년)나라는 산서성에 있던 진(晉)나라가 셋으로 분산되어(三家分晉) 나타났던 전국칠웅 (戰國七雄)의 하나다. 중국 역사서에는 치수사업을 하던 시절에 위(魏)나란…..
관저지란(關雎之亂)-2:증자(曾子)가 바꾸었다. 옛 부터 이 시문 풀이에는 논란이 많다 . 원문의 글자를 올려 설명 한다: 關關雎鳩、在河之洲 . 窈窕淑女、君子好逑. 參差荇菜、左右流之,窈窕淑女、寤寐求之; 求之不得、寤寐思服,悠哉悠哉、輾轉反側。 參差荇菜、左右采之,窈窕淑女、琴瑟友之; 參差荇菜、左右芼之,窈窕淑女、鐘鼓樂之 황하의 자그만 섬에서 꽉꽉(關關, 郭郭)하고 우는 새를 아릿따운 숙녀 (窈窕淑女)에 비유하여 그녀를 [군자의 좋은 배필 君子好逑, 자나깨나 그리워지는 그녀 寤寐求之, 그리워도 못이룰 사랑 求之不得、 자나 깨나 그녀를 얻을 생각寤寐思服, 끝도 없이 그리움에 悠哉悠哉, 잠못들어 뒤척이네 輾轉反側.” 그토록 그리운 그녀를 현악기를 다루는 친구 (琴瑟友之)하고 마지막에는 종고악지 (鍾鼓樂之)라] 했다. 모시정의에는 후비의 덕을 찬미한 시문이라 했고, 시설에는 문왕의 본부인 (文王之妃太姒)과 후비가…..
관저지란(關雎之亂)-1 관저(關雎)의 뜻: 시경 국풍의 첫 시문이라는 주남에 나오는 관관저구(關關雎鳩)를 간략한 글자다 . 장소를 치수 사업을 하던 구주 일대가 역수로 늪을 이룬 어느 섬(在河之洲)이라 했다. 이를 후세 사람들이 글자와 [사람이란 뜻의 발음 치를 저]로, 그리고 시대를 바꾸어 설명 했다 . 사기 공자세가에는 시경의 유래를 설명하면서 위로는 계후직 (上采契后稷)부터 중간은 은주지성(中述殷周之盛) 마지막에는 서주 말기의 유왕과 려왕 시대로 끝냈다(至幽厲之缺)고 했다 . 사마천은 설이 우 후직 백익과 같은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선포 하던 요순시대 (堯時而皆舉用)사람으로 상나라의 시조가 되어 성이 자씨(契為商,姓子氏)라 했다 . 고조선과 夏…..
Screenshot-13 지도 설명-4: 涑水, 安邑, 王官, 周陽: 위와 같은 이름이 강수 남쪽 해지 북쪽에 보인다. 속수(涑水)가 동쪽 청야산 (清野山), 즉 청양산(清襄山) 에서 나와 지나는 계곡을 화곡 (華谷)이라 했다. 분수, 강수, 속수사 황하에 이르는 지역이 늪지였다. 산해경에 경산 남쪽으로 염판지택, 부쪽으로는 소택이 보인다(景山南望鹽販之澤,北望少澤)고 했다 . 수경주에는 [우가 안읍에 도읍을 정했다(安邑,禹都也) . 안읍은 요임금(帝堯陶唐氏)의 도읍지였다. 진서(晉書)에는 산서성 서쪽 분수계곡의 평양이 요임금의 수도(平陽舊堯都)였고, 안읍이 옛적 순임금의 도읍지(安邑舊舜都)라 했다 . 춘추 시대 말기에 진나라가 셋으로 나누어저(三家分晉) 위나라 항자가 안읍(魏桓子都安邑)에 도읍을 정헸다. 한강자는 요임금의 수도였던…..
Screenshot-12-16: 지도 설명-3: 진홍색 강(絳)자: 실사 변의 강(絳)자의 어근이 되는 강(夅:jiàng: 夅:服也)이라고 읽던 글자는 마을 부(阝,阜)변이 없으나 있스나 뜻이 같다 (降:〔古文〕夅.)고 했다. 상서 우공편에 북으로 강(洚.洪. 降.浲)수를 지나 대륙(大陸)에 이르렀다는 진의대륙 (晉之大陸)으로 부터 분수를 따라 내려온 사람들이 치수사업을 하던 곳이다. 공공이 치우와 싸웠다 했고, 산해경에는 우가 공격한 공공국산 있다(禹攻共工國山)라 했다. 옥편에는 [강이 거성으로 옳은 발음이였다]풀이하여[下xià也 夏.荷.何 落 諾 洛이다. 돌아 (歸 鬼, 龜)왔다는 등등] 여러 동음이자로 바꾸어 사용했다. 씨애(Xià)란 어음을 “㙤. 暇. 廈”자 로 바꾸는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옛적에 올린 글이다. 사마씨(司馬氏)의 혈통을 첨가 설명 한다: 전욱고양씨의 아들 중려가 하나라 때에 축융이란 관직 (帝高陽之子重黎,為夏官祝融)의 조상이다. 사마씨가 살던 산서성에 세운 나라를 조선과 뜻이 같은 진(晉)이라 했다 . 좌전에는 [쟁기 려, 얼룩소 리, 떨 류, 밭 갈 리, 밭 갈 려(曰犁. 犂) 란 자가 축융이라 했다. 산해경에는 [전욱이 노동을 낳고 노동이 축융을 낳았다]고 했다 . 사기에는 축융이 제곡 고신씨의 화정이 되어 치수사업을 하던 공공(共工)과 싸웠다는 기록이있다 . 사마천이 중려가 고신씨라 하고, 하(夏)나라 때라한 글자를 여름으로 바꾸어 축융이 남쪽에 나타난 부족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