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loration of Gojoseon Capital Geum-Midal. Abstract: Although the meaning is embedded, no one has yet provided a reasonable explanation about the time and place of Gojoseon Capital Geum-Midal. This brief essay confirms that, Geum-Midal was one of many names applied to the place not far away from the Battle of Baideng (白登之戰) where Han emperor Gaozu surrender to the Xiongnu. As the Emperor Yang of Sui (楊廣) Sui was trapped once by Khan of Turkic peoples(突厥) at the Yanmen Pass(鴈門關),…..
Abstract: Crane Dance Battle Formation appears in the last major battle against Japanese navy. Admiral Lee of Korea displayed it as calling the final battle cry first time. The name is very unusual. Naming after Birds of prey would be the appropriate one. By reviewing the situation of the naval war and Korean tradition, he named after the traditional folk religion believing the Seven Stars in the north originated from the Founding Father and National Foundation Day in Korea. 이…..
한국 고유의 칠성사상. 역사는 모든 [인문사회과학의 모체]라고 필자는 정의 했다. 고조선 탄생 시기가 전설에서 기록으로 바뀌는 전환기다. 그에 관련된 역사적 시실을 언어 Linguistics 풍속등 cultural anthropology에서 찾아 가고 있다. 삼국유사에 풍백(風伯)우사(雨師) 운사(雲師)와 같이 3000명을 거느리고 내려 왔다는 기록이 있다. 같이 내려온 세 동반지도자을 찾아 보았다. 산해경과 초씨역림에 조선이란 글자와 백익 살해 사건이 실렸다. 그 안에 세 동반자에 관한 기록이 전쟁을 묘사한 기록에 있다. 산해경에는 우가 상유를 죽이고, 운우를 공격 (禹攻雲雨)했다. 픙(風)우(雨) 운(雲) 자와 짙은 구름을 뜻한 우뢰 뢰(雷; 靁雲)자가 보인다.[1]…..
삼국유사에 실린 “平壤, 都於白岳山 阿斯達。弓忽山。今彌達, 藏唐京” 등을 잊지 마세요. 금미달(今彌達)이란 지금(위서를 작성한 당시미(彌, 큰 칼을 지닌 지도자)가 살고 있는 곳(達, Valley)이란 뜻입니다. 그때 까지가 (御國一千五百年) 1500년 이라 했습니다. 제헌국회에서는 단기 원년을 다루었습니다. 물론 쉬서의 내용애 따라 60갑자 산법으로 계산 했다고 봅니다. 위서가 작성된 시기는 급총 죽간에 실려 있기를 위양왕(魏襄王; 前319年-前296年) 아니면 위안희왕(魏安釐王; 前276年—前243年) 습니다. 단군왕검이 조선을 반포한 시기를 기원전 2333년이라 함은 합당성이 있습니다. 전국시대 말기의 수도는 천진 당산 일대 였다고 봅니다
가차 (假借)란 글자의 뜻. 신라 고승 혜초(慧超) 전국시대 병가 사마법 (六韜、吳子、司馬法)에는 서주 문왕이 국방을 어떻게 하느냐 (如何 奈何)고 강태공에게 물어 보았다.[1] 강태공이 답하기를 [한 낮에는 꼭 혜가 있고(日中必彗) 칼을 잡으면 자르고(操刀必割), 창을 잡으면 찌른다. 일중(日中)이란 해 가운데가 아니라 한 낮으로 풀이 된다. 신라 고승 혜초(慧超)란 글자에서 마음심자가 빠진 글자를 썼다. 같은 뜻을 신서종수(新書宗首)에는 황제의 말이라 하여 “日中必𥶙,操刀必割”라 했다. 설문해자 언부에는 환 (밝음, bright)이 혜야“譞,慧也”라 했다. 사전에 설명 되지 않은“𥶙”자는 마땅히 음과 뜻이 겸한 글자다. [푸초 밑에 밝을 혜자(𥫗:慧)를 겸해] 만들었다……
북을 울려라. 북 고 鼓 와 북칠 고 鼔 자는 모두 힌옷을 즐기전 유목민 백적 (白狄)이 즐기던 북을 뜻한 글자다. 목동 견우의 악기라고도 했다.백익을 저늙은이라고 펌하한 이기씨(伊耆氏造鼓)가 만들었다[1]. 옛적부터 북(鼓)에는 여러 종류가 있었다. 시경에 실린 고종벌고(鼓鍾伐鼛)에 큰 종 (鼛; 鼓 下:咎) 이라고 풀이한 시문을 모시정의에서는 “격종벌고어준상 (擊鐘伐鼛於淮上)이라, 즉 종을 치며 회淮하 상류에서 큰북 (鼛)을 가진 자와 싸우는 장면을 읊었다”고 풀이 했다[2]. 큰 북(鼛)을 가진자는 백익 또는 그를 따르던 사람들을 뜻한 글자다. 설문해자에는 鼛:大鼓也。从鼓咎聲。《詩》曰:「鼛鼓不勝。」라 하나 시경에는 鼛鼓不勝 는 없고, 문왕지십에 “鼛鼓弗勝”란…..
필자는 허황후가 중원에 있던 허국(許國)을 뜻한 글자라고 풀이 했다. 매림 역사문화TV에서는 [허황후 비문에 普州태후 허씨릉]를 설명 했다. 보주란 이름은 남북조 문헌에도 없고 隋唐 이후에 나온다. 당나라 중기에 두우(杜佑, 735년 ~ 812년)가 편찬한 통전(通典 古梁州)에 자새히 설명 했다.普州今理安岳縣。秦時巴郡之西境榢夜郎國之地。漢犍為、巴郡之境。巴郡,秦置。犍為,漢關。李雄之亂,為羌夷所據。梁置普慈郡。後周置普州。隋煬帝初州廢,以地入資陽郡。大唐復置普州. Wikipedia:梁州 (东魏),东魏天平初置,治大梁城(今河南开封市) 梁州 (东魏),东魏天平初置,治大梁城(今河南开封市)治大梁城(今河南开封市)。辖境约相当今河南省开封市和太康、杞县、尉氏、兰考、封丘等县地。北周宣帝改为汴州 통전에 “後周置普州”라한 뒤(後)에 북제(북齊, 高齊) 즉 大陸百濟로 부터 옥새를 물러 받은 북주(北周)에서 바꾸었다는 뜻이다. 허황후는 인도가 아니라 중원에서 천진당산 일대로 올라 갔던 부족의 혈통을 이은 여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