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한 반론 입니다. 저가 증거를 재시 하면 받아 주겠습니까?
아니 증거를 보아야 답을 하지…..
이렇게 시비는 합리적으로 시작 되어갑니다.
그러나 끝에 가서는 어느 한 쪽도 양보 하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을 고수 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기란 극히 어려운 문제 입니다. 하여 2년전(Oct 10, 2016 6:05pm)에 “발조선(發朝鮮)의 선조가 홍산-하가점하층 문화를 이루 었다.”라는 표제 로 짧은 글을 올렸습니다.
다음주에는 홍산문화레 관한 토의가 있다고 하니 다시 올려 드립니다.
발조선(發朝鮮)의 선조가 홍산-하가점하층 문화를 이루 었다.
저가 역사 인식론에서 한 예기 입니다.
이 논쟁은 마치 “기록이 없는 시신을 놓고 주인을 찾는 검시관” 꼴입니다.
저는 “홍산-하가점하층 문화 뿐만 아니라 만리 장성 이북 전역”이 고조선의 영역이라고 중원의 통치자가 인정한 근거를 찾았습니다.
1. 시경 대아 한혁에 뚜렷하게 나와 있다. 주선왕(周宣王, 827-기원전782년) 이 제위 4년인 기원전 823년에 한후(韓侯)에게 끝없는 북국을 통치해 달라고 부탁 했고, 한후는 이를 인정 했다:
“기추기맥 엄수북국 ;其追其貊, 奄受北國, 昊以其伯”.
추나라와 추족과 맥족의 나라까지도 내려주셨다. 북쪽 나라들을 모두 다 맡아그곳 어른이 되라 했다.
2. 의문에 싸였던 추족(其追)이 무엇을 뜻하는 가를 찾았다. 순자 (荀子)에서는 추탁 (追琢)을 조탁(雕琢)이라 했다. 북쪽에 글자를 새기는 기술이 있는 맥족을 맡은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다.
3. 삼국지 한전에는 옛 기자의 후손인 한후(韓侯) 즉 조선후 (朝鮮侯) 의 성이 서주왕실의 핏줄과는 다른 예맥(濊貃,貉)의 핏줄 이라 모성 한씨(冒姓韓氏) 라 했다. 만주 내몽고 지역에 있던 “모성 한씨 한 지류”가 한반도로 왔다.
4. 옛적부터 북국(北國)은 구주 (九州) 보더 더 멀리라 하던, 팔인 밖(八殥之外) 이라 중국의 통치권 밖이라고 해 왔다. 기원 전 664년에 제 환공을 보좌하고 갔던 관자 (管子)가 한 예기가 있다. 조공을 바치지 않고 희귀한 문피 만을 비싼 값으로 사라고하는 발조선(發朝鮮) 즉 기조선 (Gyi Joseon, 暨朝鮮)의 지도자를 북주후 모(北州侯莫)라 했다.
5. 한후가 살았다는 부피한성 (溥彼韓城)의 위치에 관하여 중국기록에는 세 곳의 어느 하나라 했다. 그 세 곳은 모두 만리 장성 남쪽에 있는 지명이다.
중국사람들은 자기 영토가 아니였다고 하다가 지금 와서는 역지 춘향을 부리는 판국에, 한국에서는 “중국 최고 집권자가 하사 해서 받았던 땅”을 우리것이 아니라 하니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다.
모두들 “동북 아시아 특유의 역사 인식론”을 다시 한번 깊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끝
October 10, 2016
모솔, 이 돈성 드림.
미국 와싱톤 근교에
이어 “”Sep 10, 2016 11:16am에는 “역사 인식론”이란 표제로 아래와 같은 짧은 글을 다시 올렸습니다.
역사 인식론:
<동아시아의 역사분쟁>이란 책에서 송 교수는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는 고구려와 신라가 고조선에서 나왔다는 계승의식을 갖고 있었다’면서 “반면에 이 계승의식을 중국사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저는 어찌하다 어저께 Ohmynews에 실린 옛 기사를 읽었습니다.
김종성의 <동북아 진단> 서울대 송기호 교수 “고구려사 배제는 신라 중심주의”
07.12.18 09:56l최종 업데이트 07.12.18 09:56l 김종성(qqqkim2000)
저는 특히 동북아시아 상고사 연구는 “역사 인식론”과 직결되는 문제라 최대한으로 넓은 시각(철학적)에서 옛 중국문헌을 읽고 그 속에 숨겨진 우리의 역사적 사실을 복원 해야 한다고 Prologue에서 방법론을 내 놓았습니다.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기사에 실린 “계승의식을 기준으로 고구려사의 귀속문제를 판단하는 송 교수의 책” 이란 어휘는 저의 역사 인식론입니다.
한국에서 강단에 계시는 사학가는 “ 무엇을 근거로 인식 하고 고집부리느냐” 는 4 낱말에 합당한 답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저는 “古朝鮮 찾기”에서 실증사학을 자부하시는 분들에게 힘이 될수 있는 실증을 보여 드렸습니다. 이를 “상형글자에서, 시경의 여러 시문에, 전쟁기록에, 그 당시 산서성 일대에 살던 사람들이 하던 말의 어순이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어순과 같더라”고 찾아 보여 드렸습니다.
그래도 안믿는 분이라면 “생각이 딴 곳에, 다른 page를 보고 있다”고 판단 할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발해가 우리 땅이 아니였다는 격으로, 또 다시 우리는 만주 땅을 스스로 포기할수는 없습니다.
September 10, 2016.
앞으로 필자가 확신하는 “일차사료의 풀이에 모순이 있었다”는 증거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October 3, 2018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