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중왕 (大禹)이란 칭호가 붙은 우왕과 직결되는 어휘는 치수사업과 홍범구주 (洪範九疇)다. 이를 함께 살펴보면 단군왕검의 치세 (治世)를 알수 있다.
우왕의 선조 혈통:
Lineage: 帝顓頊高陽氏->곤->우이된다. 공공 (龔工,共工), 구룡 (勾龍) 의 후손이 후토 (后土)라 하나 그 관계는 모호하다. 공자가 제자의 질문에 “노자에게서 들은 예기”로 오제에 관해 답한다. 공자가어에 따르면; 오제는 “태호(太皞) 복희씨, 염제(炎帝)신농씨, 황제(黃帝),소호 (少皞) 김천씨,전욱(顓頊)고양씨라 했다.
앞에서 “우 또는 위(禹, 魏)자가 사음자”라 했다. 이를 훈역하면 “높을 고(高) 즉 하늘, 임금을 뜻”하니 소호 (少皞) 김천씨와 전욱(顓頊)고양씨는 우왕과 같은 흉노 혈통이다. 소호 김천씨의 후손 넷( 四叔,重,該,修,熙)은 모두 관명을 받았다. 전욱의 후손에 “려,충융,공공,구룡, 후토( 黎,祝融。龔工, 勾龍,后土) 다섯 사람” 이 살아서는 상공에 있었고 죽어서는 귀한 신으로 모셔저서 제사를 받았지만 최고지도자의 위치에 이르지는 못했다. 공공 (共工)은 치수사업에 성공 했다는 기록도 있고 실패 했다는 기록도 있다. 공공이란 직책은 여러 사람이 맡아 일했다고 본다. 한 때 그는 집정권을 놓고 순우(顓頊)와 다투었다는 기록도 있다.
共工為水害,故顓頊誅之. 顓頊氏之子曰黎,為祝融. 帝顓頊之法,獫狁之俗相反,
결국 맥족의 지도가가 공헌이 많았지만, 치수사업에 성공한 대우 (大禹) 한 사람 만이 최고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다.
《史記•夏本紀》云「鯀之父曰帝顓頊. 呂氏春秋: 禹父鯀者,帝顓頊之後. 其孫昌意之子高陽立,是為帝顓頊也。
《春秋左氏傳》曰:「共工有子曰勾龍,佐顓,平九土,為后土,故封為上公,祀以為社,祇。」
孔子家語: “ 昔少皞氏之子有四叔,曰重,曰該,曰修,曰熙。實能金木及水,使重為勾芒,該為蓐收,修及熙為玄冥. 顓頊氏之子曰黎,為祝融。龔工氏之子曰勾龍,為后土。生為上公,死為貴神,別稱五祀,不得同帝。”
예기에도 “공공과 후토”가 우왕과 같은 임무를 완성 했다. 구주의 패자로 아들 후토를 두었고 구주를 평화롭게 다루어 제사를 받는다. 설문해자에는 후토가 있던 땅이 한나라 시대의 하동임분이라 했다. 오늘의 산서성 임분시 일대가 그곳이다.
禮記 祭法: 共工氏之霸九州也,其子曰後土,能平九州,故祀以為社。說文解字 邑部: 鄈:河東臨汾地,
우왕의 활동 무대는 주로 산서성 서쪽 분수 계곡에서 해지연안에 이르렀다.
그의 아버지 곤(鯀)즉 왕공(王公)이 높은산에 성을 쌓았고, 치수사업에 실폐하여 북쪽 유주에 있는 숭산( 幽洲, 崇山) 즉 높은산 (羽山)에 귀양 갔다. 그 곳 회계(會稽)산 계곡에서 우왕이 죽었다. 그 뒤를 이었다는 상나라는 옛적에 상나라의 시조 설(契, 계/걸/글)이 우왕을 도와 공을 새워 중하문명의 발생지 변두리가 되는 산서성 서북쪽 상산(幽州 常山,上山) 즉 오환(烏桓, 烏丸; 烏亘) 산이 있는 당(唐, 商丘)에서 성장 했다. 우왕 즉 단군왕검의 무덤이 회계(會稽) 즉 항산(恒山/常山) 구릉(丘陵) 어디에 있었다고 본다.
“周易 易經 ䷜坎: 天險不可升也,地險山川丘陵也,王公設險以守其國,坎之時用大矣哉”
三國志: 魏書曰:烏丸者,東胡也。漢初,匈奴冒頓滅其國,餘類保烏丸山,因以為號焉。匈奴傳 匈奴傳下: 烏桓分散,或走上山,或東保塞. 先自會稽遷于譙之銍縣,改為嵇氏,取嵇字之上山以為姓,蓋以志其本也
嵇산 이름 혜. 嵇산 이름 혜 동자(同字)嵆.
“史記 夏本紀:十年,帝禹東巡狩,至于會稽而崩” 史記 殷本紀: 契長而佐禹治水有功。帝舜乃命契曰:「百姓不親,
五品不訓,汝為司徒而敬敷五教,五教在寬。」封于商.契興於唐、虞、大禹之際(boundary), 功業著於百姓,百姓以平.
우왕, 즉 “왕중왕 (大禹), 단군왕검”의 혈통과 활동 지역이 확인 되였다.
이는 또 홍범구주 (洪範九疇)가 어떻게 시작 되였는가 하는 과장을 살펴 보아도 그 지역이 틀림 없다.
홍범구주 (洪範九疇)의 기원:
유가에서는 상서 홍범편을 설명하며 서주의 포형(甫刑)제도는 상서여형 (尚書•吕刑)을 본받아 여후 (吕侯) 를 시켜 우 (禹)왕의 속형 (贖刑) 즉 벌금형을 본 받아 더 가혹한 형벌을 만들었다고 한다.
史記: 上詔曰。周之甫刑。大辟之屬有二百。今大辟之刑千有餘條.
상서 순전 (尚書 虞書 舜典)에는 당시의 형법이 그려저 있다.
象以典刑,流宥五刑,鞭作官刑,扑作教刑,金作贖刑。眚災肆赦,怙終賊刑。欽哉,欽哉,惟刑之恤哉!流共工于幽洲,放驩兜于崇山,竄三苗于三危,殛鯀于羽山,四罪而天下咸服。
그러나 기자 (箕子)가 천도 (天道)에 관하여 자신의 소신을 남긴 내용이라고 현제 전해오는 홍범 (洪範) 에는 포형 (甫刑) 즉 여형(呂刑)과 같은 내용이 없다. 현 상서는 주 목왕 이후에 편집되였고 홍범구주라는 뜻은 천도(天道)에 관한 내용이 많다는 증거다. 무왕은 성주회에 와서 서주에 조공을 바치고 그를 찾아온 기자에게 한 첫 질문이 “이윤(彝倫)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尚書 周書 洪範: 箕子乃言曰:「我聞在昔,鯀堙洪水,汩陳其五行。帝乃震怒,不畀『洪範』九疇,彝倫攸斁。
鯀則殛死,禹乃嗣興,天乃錫禹『洪範』九疇,彝倫攸敘。
사마천은 상서에 실린 글자와는 “한국식 한자 발음은 같으나 뜻이 다른 글자”로 적었다. 홍범(洪範)을 “鴻範” 구주(九疇)를 구등(九等) ,이윤 (彝倫)을 상윤 (常倫)이라 했다.
世家 宋微子世家: 箕子對曰:「在昔鯀陻鴻水,汨陳其五行,帝乃震怒,不從鴻範九等,常倫所斁。」
역사적 배경과 문맥 전채를 살펴보면 “이윤(彝倫)을 흉노의 풍속이라 했다 (獫狁之俗). 오늘의 학술용어로 풀이하면, 가치의 학 즉 윤리(倫理)가 무었인가”를 물었다. 이를 흉노 출신의 기자(箕子)는 천도 (天道, absolute moral standards)에 따른 상식적 가치관 (Situation Ethics)을 설명 했다. 이윤(彝倫)이 무엇인가는 먼 훗날 흉노족이 새운 위나라 성제(成帝)가, 465년에 발표한 칙소에 뚜렸하게 나와 있다. 사마천이 남긴 상윤 (常倫)이란 글자가 그 뜻을 이해하기가 더 쉽다. 자연의 순리에 따름(follow the law of nature. Be it natural)이 곧 이윤(彝倫)을 옳바로 실천함 (彝倫攸敘)이라 했다.
“關尹子曰:「古今之俗不同,東西南北之俗又不同,至於一家、一身之善又不同.”
通典 歷代制中: 成帝和平三年,詔曰:「今選舉之官,多不以次,令班白處後,晚進居先,豈所謂彝倫攸敘者也. 諸曹選補,宜各書勞舊才能。」
좀더 깊이 알고자 하시는 분은 저의 “website”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왕의 아버지 곤은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게 “서울 가까이 흐르는물
(홍수;洚水/洪水)을 막으려다 (堙/陻洪水), 물이 그 본성을 보여 (汩陳其五行) 옥토를 잃어”처벌을 받았고, 아들 우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물길을 터주어(湮洪水) 홍수가 황하로 가는 물길이 트여(決江河)사리구주가 통했다”
鯀堙/陻洪水,汩陳其五行. 孟子: 洚水者,洪水也. 《說文》洪: 洚水也
墨子稱道曰:「昔者禹之湮洪水,決江河而通四夷九州也. 禹抑鴻水. 禹治鴻水.
옛적에는 이곳이 황하로 이어지는 강 하구라 비가오면 물이 거꾸로 흘러 옥토가 자주 범람했고 물새의 서식처로 택 (澤)이라 하여 이상한 새가 살았던 곳이라 했다. 이새를 삼족오라하여 한국전통 장례식에 쓰던 상여 위에 놓였던 새 (장닭?)이다. 산서성 서남쪽,바로 해지 (解池) 북쪽 경산 (景山)남쪽이 된다.
水經注: 涑水又與景水合,水出景山北谷. 涑:水名在河東.
山海經: 曰景山,南望鹽販之澤,北望少澤,有鳥焉,其狀如蛇,而四翼、六目、三足,名曰酸與.
It was in my face book only a day and removed as of today; 8/22/2016
Revised form:
홍익 인간(弘益人間)과 홍범구주 (洪範九疇)
필자가 한국 상고사를 연구한다는 소식을 들은 가까운 사람들이 저에게 “홍익 인간(弘益人間)이란 문구”를 중국 문헌에서 찾았느냐고들 묻는다. 필자가 알아본 한국과 중국 문헌을 토대로 “홍익 인간(弘益人間)의 기원”을 설명한다.
단군왕검이 치수사업에 성공한 대우라 밝혀 젔다. 치수사업과 직결되는 문구가 홍범구주 (洪範九疇)다. 홍익 인간(弘益人間)과 홍범구주 (洪範九疇) 왕중왕 (大禹)
이란 칭호가 붙은 우왕과 직결되는 어휘다. 그가 치수사업에 성공 했다 하여 홍범구주 (洪範九疇)를 인수 받았다. 해지 연안에 살던 우왕의 후손인 기자가 돌아와 주 무왕에게 홍범구주를 가르쳐 주었다. 이를 함께 살펴보면 단군왕검의 치세 (治世)를 알수 있다.
우왕의 선조 혈통:
Lineage: 帝顓頊高陽氏->곤->우이된다. 공공 (龔工,共工), 구룡 (勾龍) 의 후손이 후토 (后土)라 한다. 공자가 제자의 질문에 “노자에게서 들은 예기”로 오제에 관해 답한다. 공자가어에 따르면; 오제는 “태호(太皞) 복희씨, 염제(炎帝)신농씨, 황제(黃帝),소호 (少皞) 김천씨,전욱(顓頊)고양씨라 했다.
앞에서 “우 또는 위(禹, 魏, 韋)자가 사음자”라 했다. 이를 훈역하면 “높을 고(高) 즉 하늘, 임금을 뜻”하니 소호 (少皞) 김천씨와 전욱(顓頊)고양씨는 우왕과 같은 흉노 혈통이다. 소호 김천씨의 후손 넷( 四叔,重,該,修,熙)은 모두 관명을 받았다. 전욱의 후손에 “려,충융,공공,구룡, 후토( 黎,祝融。龔工, 勾龍,后土) 다섯 사람” 이 살아서는 상공에 있었고 죽어서는 귀한 신으로 모셔저서 제사를 받았지만 최고지도자의 위치에 이르지는 못했다. 공공 (共工)은 치수사업에 성공 했다는 기록도 있고 실패 했다는 기록도 있다. 공공이란 직책은 여러 사람이 맡아 일했다는 뜻이라고 본다. 한 때 그는 집정권을 놓고 전욱(顓頊)와 다투었다는 기록도 있다.
共工為水害,故顓頊誅之. 顓頊氏之子曰黎,為祝融. 帝顓頊之法,獫狁之俗相反,
결국 맥족의 지도가가 공헌이 많았지만, 치수사업에 성공한 대우 (大禹) 한 사람 만이 최고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다.
《史記•夏本紀》云「鯀之父曰帝顓頊. 呂氏春秋: 禹父鯀者,帝顓頊之後. 其孫昌意之子高陽立,是為帝顓頊也。
《春秋左氏傳》曰:「共工有子曰勾龍,佐顓,平九土,為后土,故封為上公,祀以為社,祇。」
孔子家語: “ 昔少皞氏之子有四叔,曰重,曰該,曰修,曰熙。實能金木及水,使重為勾芒,該為蓐收,修及熙為玄冥. 顓頊氏之子曰黎,為祝融。龔工氏之子曰勾龍,為后土。生為上公,死為貴神,別稱五祀,不得同帝。”
예기에도 “공공과 후토”가 우왕과 같은 임무를 완성 했다. 구주의 패자로 아들 후토를 두었고 구주를 평화롭게 다루어 제사를 받는다. 설문해자에는 후토가 있던 땅이 한나라 시대의 하동임분이라 했다. 오늘의 산서성 임분시 일대가 그곳이다.
禮記 祭法: 共工氏之霸九州也,其子曰後土,能平九州,故祀以為社。說文解字 邑部: 鄈:河東臨汾地,
우왕의 활동 무대는 주로 산서성 서쪽 분수 계곡에서 해지연안에 이르렀다.
그의 아버지 곤(鯀)즉 왕공(王公)이 높은산에 성을 쌓았고, 치수사업에 실폐하여 북쪽 유주에 있는 숭산( 幽洲, 崇山) 즉 높은산 (羽山)에 귀양 갔다. 그 곳 회계(會稽)산 계곡에서 우왕이 죽었다. 그 뒤를 이었다는 상나라는 옛적에 상나라의 시조 설(契, 계/걸/글)이 우왕을 도와 공을 새워 중하문명의 발생지 변두리 가 되는 산서성 서북쪽 상산(幽州 常山,上山) 즉 오환(烏桓, 烏丸; 烏亘) 산이 있는 당(唐, 商丘)에서 성장 했다 . 우왕 즉 단군왕검의 수도 평양(平壤, 平陽)이 해지연안 운성시 일대에 있었고, 제후들과 만나 회의를 하고 후임을 백익(伯益) 에게 넘겨주고 죽은 곳이 회계산(會稽山)이라 했다. 그 곳이 분수(汾水)하류 산서성 해지연안에 있던 도산 (塗山)이다 . 일연스님이 위서에서 인용 했다는 단군조선의 수도 평양이 해지연안이라 추론한 필자의 결론과 산해경에 나타난 조선 (朝鮮)의 발생지와 일치 한다 . 중국문헌을 찾아 보면 조선(朝鮮)이란 글자는 있스나 “홍익 인간, 弘益人間 , ”이라는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산해경에 나오는 천독 (天毒)이란 글자가 단군조선의 단군이라 본다 . 그 글자는 물가에 살던 사람을 뜻함이 분명 하다. 모양이 비슷한 글자 “쉬애 xié”를 독(毒)자로 바꾸어 적었다. 그 글자는 “홀 규 圭, 珪” 밑에 어미모(母)로 된 글자 입니다. 이를 홀의 핵심이 되는 구슬옥 (玉)의 점을 위에 붙여 주(主)자와 비슷한 들자로 만들어 “가까이 하면 위함하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읽기는 해 (sun, 解, 奚)와 같은 발음으로 “ xié/쉬애/시애() 또는 휴(携 , xié xī xí)라 읽는 글자와 같다”고 했다. 그 글자의 뜻은 “옥으로 만든 규(圭)를 든 mǔ mú wǔ wú, 맥(母,貃,貉,貊)족 사람”이란 뜻으로 “소우는 소리로 기록 된 부족의 최고 지도자 (君)”란 뜻이다. 당태종을 서쪽 돌궐 사람들이 천가한 (天可汗)이라 했다. 천독(天毒/)이란 글자는 ‘하늘에 뜬 해와 같이 제일 높은, 누구에게나 절대로 필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 이란 뜻이다. 이태리 가곡에 나오는 “오 쏠래 미오; Oh Sole mio”의 뜻으로, 나 한 사람이 아니라 복수로, “우리의 태양과 같은 분”이란 뜻입니다. 하여 사서에는 “이적 (夷狄)은 그들의 최고 지도자를 하늘의 아들 (天子) 이라 한다”고 했다 . 이를 시경에서는 “호천왈단; 昊天曰旦” 이라, 즉 하늘에 뜬 해와 같은 사람을 단이라 한다”고 했다. 이 글자를 판험명 (阪險名)이라 했스니, 황제가 염제와 싸웠다는 판천(阪泉)에 있던 요새란 뜻이다. 시애 (xié xī xí/해, 巂,,,)라 부르는 성씨가 이곳에서 나왔다. 시애 (xié)로 발음 하는 글자; “玄, 해, 奚, 契, 解”들의 상호 관계는 한원 일대에서 있었던 요동돼지 우화에서 설명했다. 산해경에 북해지우(北海之隅) 라 한 곳은 산서성 해지(解池) 북쪽 연안이란 뜻이다. 이를 집운에서는 “하동지음; 東海之邑”이라, 즉 하동 해지(解/海池)옆에 있는 마을이라고 했다. 천시애 (天)가 살던 지역에 있던 호수라 하여 염지(鹽池)라는 보통 명사를 쓰지 않고 고유명사인 시애지(xié chi, 解池,해지) 라 했다 . 글자 “, xié/시애/쉐”와 같은 발음의 글자가 해지 연안에 살았던 휴자(攜, xié 子)다. 그에게 순임금이 양위를 하고 돌아오지 않았다 한다. 장자 “왕의 직위를 이양 했다는 양왕편, 여씨춘주, 고사전”등 많은 고전에 실려 있다 . 사음한 글자 “, xié/시애/쉐” 의 다른 사음(xié xī xí )자가 시경 소아 기부지습 시한(詩經 小雅 祈父之什 斯干)에 많이 나오는 시(斯)자다. 휴자(攜子)의 후손은 같은 지역에서 오래 살아 왔다. 그 곳에 마지막 으로 살았던 사람이 시한 (斯干)이다. 그는 서주 무왕의 죽마고우로 태공망과 같이 서주 문왕의 아들 희발을 도와 상나라를 정벌한 공으로 이괘(利簋)
또는 단괘 (檀簋) 라고도 부르는 감사배를 받았다 . 그를 사마천은 혈통이 다르다는 뜻으로 이모동영 (異母同穎) 당숙우(唐叔虞)라 불렀고, 설원에서는 성왕이 당국우와 오동나무 앞으로 규(珪)를 만들어 선물로 주었다”고 했다 .
홍범구주 (洪範九疇)의 기원:
유가에서는 상서 홍범편을 설명하며 서주의 포형(甫刑)제도는 상서여형 (尚書•吕刑)을 본받아 여후 (吕侯) 를 시켜 우 (禹)왕의 속형 (贖刑) 즉 벌금형을 본 받아 더 가혹한 형벌을 만들었다고 한다 .
.
상서 순전 (尚書 虞書 舜典)에는 당시의 형법이 그려저 있다 . 죽서기년 우왕편(竹書紀年 帝禹夏后氏)에는 사형법을 실행 했다. 그러나 기자 (箕子)가 천도 (天道)에 관하여 자신의 소신을 남긴 내용이라고 현제 전해 오는 홍범 (洪範)에는 포형 (甫刑) 즉 여형(呂刑)과 같은 내용이 없다. 현 상서는 주 목왕 이후에 편집되였고 홍범구주라는 뜻은 천도(天道)에 관한 내용이 많다는 증거다.
무왕은 성주회에 와서 서주에 조공을 바치고 그를 찾아온 기자에게 한 첫 질문이 “이윤(彝倫)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 채중랑집(蔡中郎集 )에 상서에 있다는 문구를 인용한 비문에는 홍범구주이윤유서(洪範九疇 彝倫攸敘)라 했다 . 이 상서에 실린 본문 에서 이윤유서(彝倫)란 문구를 때어버려 삼국유사에 실린 “홍익인간 (弘益人間)의 뜻”이 모호하게 되였다.
홍범구주 (洪範九疇) 이윤유서(彝倫攸敘)의 뜻:
사마천은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 읽어 상서에 실린 글자와 발음은 같으나 뜻이 다른 글자”로 적었다. 홍범에 관한기록 또한 그러하다. 홍범구주 (洪範九疇)란 뜻은 “홍수로 범람하던 중화문명의 발생지에 있던 경작지”란 뜻이다. 이를 여러 사서에서 다른 글자로 기록 했다. 홍범(洪範)을 “鴻範” 구주(九疇)를 구등(九等), 이윤 (彝倫)을 상윤 (常倫)이라 했다 .
역사적 배경과 홍범의 문맥 전채를 살펴보면 이윤(彝倫)을 흉노의 풍속이다 (獫狁之俗) . 오늘의 학술용어로 풀이하면, 무왕이 기자에게 국정을 어떻게 해야 좋으냐고 물었다. 무왕이 “나는 아직 이륜유서(彝倫攸敘)를 모르겠다”고 했다. 사람을 어떻게 다스려야 좋으냐 하는, “가치의 학 즉 윤리(倫理)가 무었인가”를 물었다. 이를 흉노 출신의 기자(箕子)는 천도 (天道, absolute moral standards)에 따른 상식적 가치판단 (Situation Ethics)이라고 설명 했다. 이윤유서(彝倫)가 무엇인가는 먼 훗날 흉노족이 새운 위나라 성제(成帝)가, 465년에 발표한 칙소에 뚜렸하게 나와 있다. 사마천이 남긴 상윤 (常倫)이란 글자가 그 뜻을 이해하기가 더 쉽다. 우왕이 하늘로 부터 인수 받았다는 홍범구주이윤유서(洪範九疇 彝倫攸敘) 라는 문구의 뜻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follow the law of nature. Be it natural) 누구나 이해 할수 있는 상식적인 판단으로 사람을 다스림이 곧 이윤(彝倫)을 옳바로 실천함 (彝倫攸敘)이라 했다 .
우왕의 아버지 곤은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게 “서울 가까이 흐르는 물길
(홍수; 洚水/洪水)을 막으려다 (堙/陻洪水), 물이 그 본성을 보여 (汩陳其五行) 옥토를 잃어”처벌을 받았고, 아들 우는 전임자의 잘못을 깨달아 자연의 순리에 따라 “물길을 터주어(湮洪水) 홍수가 황하로 가는 물길이 트여(決江河)사리구주가 통했다”
끝
December 12, 2016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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