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여정:
40평생을 의학에다 보내고, 뛰어든 상고사 찾기는 참으로 “외로운 여정”이다. 많은 재야 사학가들이 활동 하지만 필자는 아직 벗을 찾지 못했다. 모두 저나름대로 다른 패이지를 읽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한번 경종을 울려 본다.
한국상고사는 상형글자인 한자에, 옛적 노래를 적은시경 (詩經)에, 각종 중국문헌속에 숨어 있다고!
삼한의 후예들을 연구하려면, 흔히들 전사사(前四史)라고 부르는
중국 초기의 역사서 네권인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를 사료의 핵심이라 한다. 그러나 사마천은 조선열전을 쓰고 (의식적으로?) 끝을 마무리 짖지 않았다. 낙랑 현토하는 글자가 없다. 사기에는 지리지가 없고, 하거서(河渠書)에는 만주땅에 있는 강 이름이 실려 있지 않았다.
한서(漢書)와 후한서(後漢書)는 녹취록이 아니라 후세 사람들이 황실의 입맛에 따라 보충 수정 하여 지리지 (地理志)에는 중국영역을 과대 학장히여 동북아시아 판도를 그려 놓았다.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억지 춘향을 부린다. 녹취록에 가까운 진수의 삼국지는 삼한의 후예들 특히 백제의 존제를 무시해 버렸고, 지리지를 남기지 않아 삼국지에 나타나는 지명이 고무줄 처럼 풀이 되고 있다.
당나라 초기에 여러 사관이 모여 편찬한 진서(晉書)에 나타난 지리지를 보면, 필자가 추리한 바와 같이 낙랑과 현토는 발해만 서안에 있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모두 발해만 연안에 있었다. 낙랑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근거가 없다.
“二年春正月辛丑,百濟、林邑王各遣使貢方物。二月,苻堅伐慕容桓於遼東,滅之. 六月,遣使拜百濟王餘句為鎮東將軍,領樂浪太守”
이는 오호 십육국 시대 전진(前秦)의 3대 황제 부견(苻堅 : 357년-385년)이 활동하던 때의 기록이다.
북위 사학가 였던 산동성 사람 최홍(崔鴻, 478—525)이 편찬한 16국춘추 (十六國春秋)에도 백제 신라가 발해만 연안에 있었다는 내용이 실렸다. 삼한의 후예들이 그 시대에 해양권을 잡고 있었다 하여 그들이 누비고 다니던 바다를 한해 (翰/汗/韓海)라 했다. “陳留悼王紹生禽魯陽王倭奴桂林王道成垂之弟子也”
“鮮卑烏桓高句麗百濟及新一作薛羅休忍等諸國並不從” “中郎分遣使者徵兵於鮮卑烏丸高句麗百濟新羅休忍等諸國遣兵三萬助北海公重戍薊諸國”
삼국시대 남쪽나라 손권 (孫權)이 사절단을 고구려에 보냈다. 그 사절단 수장이 백제 사람이라고 풀이 했다. 백제 사람들이 처음으로 황해를 가로 지르는 수로를 찾았다고 본다. 삼국지에 나오는 공손연(公孫淵)이 낙랑군공(樂浪公) 요동 태수 공손문의 (公孫文懿)다. “及遼東太守公孫文懿反,徵帝詣京師”
공손문의 (公孫文懿)를 토벌한 사마중달이 사마의 (司馬懿)라 혼동하기 쉽다.
우리는 지금 옛 선현들이 읽어볼수 없었던 중국고전을 살펴 볼수 있습니다.
모든 학문은 다른 분야에서 개발한 새로운 사실을 받아드려 개발해 나가야 합니다. 너무 국수주의적 생각에서 한국사람들이 편찬한 상고사 기록이 무슨 경전이나 되는듯 그에만 의존치 마시고 중국문헌을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단군 왕검은 실존 인물입니다. 그가 치수사업에 성공한 우왕 입니다. 중국에서는 우왕의 후손이 흉노라 하여 자기들과는 다른 부족이라 하더니 하상주시대공정 이란 미명아래 우왕이 새운 하나라가 자기들의 선조라 하지 않아요. 이러다가는 시조 할아버지 (단군왕검)마저 빼앗길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깊히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솔, 이 돈성 드림.
March 4, 2017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