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夷傳-4: 진한전(辰韓傳):
진한전(辰韓傳)-1:
진수는 다른 사료를 인용치 않고 진한전(辰韓傳)을 다음과 같이 짧게 남겼다 .
辰韓在馬韓之東,其耆老傳世,自言古之亡人避秦役來適韓國,馬韓割其東界地與之。有城柵。其言語不與馬韓同,名國為邦,弓為弧,賊為寇,行酒為行觴。相呼皆為徒,有似秦人,非但燕、齊之名物也。名樂浪人為阿殘;東方人名我為阿,謂樂浪人本其殘餘人。今有名之為秦韓者。始有六國,稍分為十二國
이 짧은 한 구절에는 한국 상고사의 많은 비밀이 숨어 있다. 찾을수 있는 몇몇 중요한 군구와 글자를 풀어 보기로 한다.
첫쩨: 진한(辰韓)이 마한 (馬韓) 동쪽에 있다. 진한 땅은 어디를 뜻했나?
진수는 어떤 소제를 다룰때 첫 구절에 혈통 또는 지역을 밝혀 설명 했다.
진한전(辰韓傳)에는 했고, 한전(韓傳)에
“진한자 고지진국야 마한제서 (辰韓者,古之辰國也。馬韓在西)라고 했다. 이 문구는 라는 뜻이다. 옛 진국(古辰國)이리는 지역은 이란 뜻이다.
진한 땅의 서쪽이 중원에서 산해관을 지나 만주땅으로 올라오는 길목에 접했다.
진한전에는 성책이 있다란 문구가 있다. 책성 (城柵)이란 낱말이 에 도 있다. 삼국사기에는가 있다 . 책성을 만들어 새운 이유는 백제 건국 2년과 3년에 북쪽에 있던 말갈이 친입했었다. 또다시 온조왕 8년인 기원전 11년 는 말갈 백제의 첫 수도 위래성(慰禮城)을 포위했다. 백제가 결국 말갈을 물리치고 더이상의 친입을 막기위해 책성을 새웠다. 그러니 인접해 있던 낙랑 태수가 자기영토를 잠식하려는 속샘이 아니냐고 질타 했다. 이 때 삼한 후예들의 분포 상황을 보면 에 있었다. 삼국지 진한전에 책성이 있던 곳은 진한 동남쪽, 한전에 실린 여러 한국(諸韓國)을 뜻했다고 본다.
동남쪽은 큰 산맥(大山)을 경계로 했다. 그 산맥을 동옥저전에는 개마대산 (蓋馬大山), 예전(濊傳)에서는 단단대산(單單大山)이라 했다.
다음 문구에서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선조를 밝혔다. 그 내용이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서라벌 땅에는 그전에 (고)조선유민(先是,朝鮮遺民)이 진한(辰韓)6부를 이루고 살고 있었다 .
한전에서 진한(辰韓)이 예군남여(濊君南閭)가 떠나던 시절에 앞서 라고 했다 . 이 3 사건이 한사군에 못지 않는 중요한 문제다. 소제마다 방대한 토론이 필요하지만 이를 뒤에 따로 따로 간략하게 다루고자 한다.
마한(馬韓)을 말 소리(語音)와 뜻을 이리저리 두바꾸어 기록 했다. 삼한이란 개념 자체가 진수의 창안이다.
모두다 다시 말하면 기마유목민족 (騎馬遊牧民國家, The Eurasian Steppe)의 후손이 동호(東胡, 胡)의 한 갈래다. 삼국지 한전(韓傳)에는 위만에게 쫓겨난 모성한씨(因冒姓韓氏) 준(準)이 수행원 몇을 대리고 뱃를 타고 한들이 다스리는 땅(居韓地)에 가서 왕이 되였다 했고, 후한서에는 마한(馬韓) 땅에 가서 원주민을 정벌하고 한왕(韓王)이 되였다고 했다. 한이 사는 땅에서 한이 사는 땅으로 갔다는 뜻이 분명하다. 지도를 보면 기준 일행은 요동만 북쪽 해안, 즉 북명(北溟)에서 떠났다. 도착한 곳은 요동 반도에서 부터 한반도 전역이 고려의 대상이 된다. 이 지역을 여러 한(韓) 들이 사는 곳이라 삼한 땅이라고 했다. 그러나 예전(濊傳)에는 금조선이동 (今朝鮮之東)이 모두 예인(濊, 穢)들이 사는 땅이라고 했다 . 한(韓)이 사는 땅에 예(濊)가 살았다고 바꾸어 놓았다. 앞에서 필자가 을 했고 그에 대답 하기를 고 답했다. 하여 예와 맥을 붙여 예맥(濊貊) 이라고도 부른다. 진수가 한국(韓國)이라고 한 곳은 <가한 (可汗)이 다스리던 예맥족 여러나라 (眾國, 真番旁眾國)란 뜻이다.
기원전 128년(元朔元年)에 예군남여(濊君南閭)가 여러 지도자와 함께(等畔右渠) 28만명을 일솔하고 요동에 와서 한무제는 그곳에 창해군을 만들었다 . 이 지역은 중원과 산동 반도에서 만주로 이어지는 길목으로 예맥족의 본향(夷穢之鄉)이다. 그러한 기록이 좌전, 관자, 맹자,여씨춘추(呂氏春秋)를 비롯한 여러 선진시대 (先秦時代)에 나타난다 . 같은 곳을 맥국(貊國) 예국 (濊國) 이라고도 했다 .
당태종을 보필 하던 재상 양사도 (楊師道)가 “봉화성제 춘망일 奉和聖制春日望” 이란 오언시 (五言詩)시를 지어 답예로 바쳤다. 갈석산에서 올라가서 잂은 시다. 발해만 연안에 청구 (靑丘), 대방(帶方), 숙신향 (肅愼鄕) 하는 이름들이 있다 .
삼국지에서는 이곳에 한인 (汗人)이 살던 곳이라 한국 (汗國)사람들이라 했다 . 같은 내용을 후한서에서는 왜인(倭人) 왜인국(倭人國) 이라 했다 . 한,예,왜 그리고 오끼나와에 사는 사람들 모두 같은 혈통으로 삼한의 후예 (後裔)들이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삼국의 전신이 삼한이라지만, 그 뿌리를 다양하게 설명한다. 요사에는 진한이 부여(辰韓為扶餘), 변한이 신라(弁韓為新羅), 마한이 고려라 했다 . 청나라때 고염무(顧炎武:1613년-1682년)가 편찬한 일지록 집석(日知錄集釋)에는 <요동에 있는 삼한(遼東為三韓者)은 주성왕이 동쪽 상나라 여러 동이부족을 정절했던 들이다 . 발해만 서남 해안 일대가 삼한의 본향이란 뜻이 분명하다.
이와 같은 사료를 근거로 를 추론(Extrapolate) 할수 있다. 뚜렷하다. 위만이 빼았은 땅을 예맥조선(濊貊朝鮮, 穢貉朝鮮)이라 했고, 그곳에서 쫓겨난 기준의 성씨가 모성 한씨 (冒姓韓氏) 라고 했다 . 새로 자리 잡은 지역이 한지(韓地)였다 하여 이를 한(三韓) 땅으로 해석 하여 한반도라고 한다. 그러나 진한이 부여땅에 있었다하니 모두 요동반도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본다. 기준 일행은 야밤도주하여 요동반도 서쪽 해안 일대에 처음 상륙했다. 그 후에 다시 뱃길로 한반도에 정착 했다. 조선 사람들이 바다에 있다 (朝鮮在海中)는 한서의 문구를 좀더 시야를 넖혀 보면; 발해만 서쪽 해안에서 부터 이들이 한해(汗海, 韓海,翰海)의 통치권을 잡고 펼처 나가 동북아시아 대륙 해안선 전역에서 흐터저 있는 섬들이 모두 “삼한 (三韓)땅” 이였다는 결론이 불가피 하다. 이렇게 흐터진 상태를 진서에는 중국땅에 살던 부족은 빼고 여섯 부족 이름만을 기록하여 <동이 10여국(夫余國,馬韓,辰韓,肅慎氏,倭人,裨離等十國)이라고 했다 .
삼국지 진한전(辰韓傳)은 이이다.
끝, 다음에 계속.
May 28, 2017.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